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57
차원상인 057화
“행색만 봐도 그런 듯싶구나!”
“아니, 제 말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순간 남은 세 사람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든다.
어이가 없다 못해 당혹스럽기까지 하던 남궁조공은 확인하듯 물어갔다.
“이 세상? 그럼, 이곳 중원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말이더냐?”
“예! 원래 전 지구라는 세상, 아니 차원에서 살던 사람으로 흔히 마르세우니스 대륙이라 불리는 또 다른 차원을 넘나들며 물건을 파는 상인입니다.”
“차원? 대륙?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알기 쉽게 말해 보아라.”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그에 우현은 서우에게 들었던 무협지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해갔다.
“제가 알기로는 이곳 무림에도 수많은 세력이 존재한다 들었습니다.”
“그렇지. 무림 세가만도 삼백여 개가 넘으니 말이야.”
“그처럼 세상 또한 수많은 것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 세상들 각각을 차원이라는 말로 부릅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남궁천옥이 물어왔다.
“그러니까 중원이라는 차원이 있고, 자네가 왔다는 지구라는 차원이 또 있다는 말인가? 거, 무슨 대륙이라는 차원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 그 차원을 넘나들며 상인 일을 해오고 있었고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곳에 온 것도 대륙으로 가려고 하던 중에 그리된 것입니다.”
“허허!”
조금은 이해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남궁천옥의 얼굴에 놀라움이 피어난다. 그런 그와는 달리 뭔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나머지 두 사람은 다시금 설명을 부탁했다. 잠시 후, 남궁천옥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는 말이더냐?”
“그렇다면 어디 한번 저와 같은 복장의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시지요. 제가 장담컨대 절대로 그런 이는 없을 것이니 찾아내 보십시오.”
우현의 행색을 살피던 남궁조공은 이맛살을 좁혀간다.
“네 말대로 그리 독특한 복장을 한 이는 쉬이 찾아볼 수 없을 듯싶구나.”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정황상으로는 그의 말대로 타차원에서 온 것이 맞는 듯한데 머릿속으로 쉬이 믿어지질 않는다. 하긴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이란 중원을 쓸 정도이니 타 차원의 존재 따윈 전혀 생각지 않을 것이다. 관자놀이를 톡톡 쳐대며 생각에 잠겨보지만 우현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답이 나오질 않는다. 점점 한숨만 늘어가던 그때 슬쩍 남궁천옥에게서 전음이 들려온다.
-아버님! 그를 받아들이시죠.
-그건 또 무슨 말이더냐?
-아까 그랬지 않습니까? 다른 차원으로 물건을 팔러 가던 중에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입니다. 그 말은 그가 빈 몸은 아니라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순간 남궁조공의 눈이 번뜩 뜨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세가 사람이 와서 전하길 천휴당에 웬 쇳덩어리가 떨어져 부서졌다고 하였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필시 그 쇳덩어리라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팔 물건을 담아 놓은 것이 분명하다.
‘천옥이 말한 대로 이놈이 가져온 물건을 팔아서 이득을 챙겨 빚을 탕감한다면 어쩌면 기사회생할 수도 있겠구나!’
슬쩍 고개를 끄덕여 의도를 알았음을 표한 남궁조공은 시선을 우현에게로 돌렸다.
“아무리 행색이 독특하기는 하지만 네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은 믿기 힘들구나! 그래서 말인데 아까 말하길 대륙으로 상행을 가던 중에 이곳에 왔다 하던데 진짜인지 팔 물건을 보여주지 않겠느냐? 혹시 아느냐? 네 물건에 혹해 본가가 다 살지도 모르고 말이야.”
솟구친 우현의 고개 위로 한껏 찌푸려진 미간이 보인다.
그럴 것이 지금 한 말에 남겨진 여운으로 미루어볼 때 상대가 자신의 물건에 관심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긴, 물건이 목숨보다 귀할 순 없다. 물건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이곳이 아닌 대륙으로 가 팔면 되니 말이야.’
생존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일까? 물건을 포기함에 있어 그리 긴 시간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미련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을 넘나들면서 생존이 우선이라는 것을 배웠기에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알았습니다. 그리하지요.”
“잘 생각했느니라. 그럼, 나가서 한번 보자꾸나! 대체 어떤 물건을 팔려 했는지 말이야.”
일어서는 그를 따라 다른 사람들 역시 자리를 박찬다.
이렇게 우현은 훗날, 자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남궁세가와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제3-3장
“이것이 종이란 말이더냐?”
왠지 심드렁한 남궁조공의 낯에 우현은 의아함을 표하였다.
A4용지라면 대륙에선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인데 정작 이곳에서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흐음! 크기도 작은 데다가 붓글씨를 쓰면 마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릴 듯싶어서 그런 것이니라.”
“붓글씨…… 아아!”
그제야 이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대륙은 깃털에 잉크를 묻혀서 쓰지만 이쪽 중원은 먹물에 붓을 담가 쓰는 형태로 방식 자체가 전혀 다르다 할 수 있었다.
‘이쪽은 화선지나 한지 같은 것을 가져와야 할 듯싶은데…….’
A4 대용품으로 뭘 가져와야 할지 생각하던 그때 남궁천옥이 세숫비누를 꺼내 들었다.
“향이 좋구만! 이게 대체 뭔가?”
“아! 세숫비누라고 얼굴과 손, 몸을 씻을 때 쓰는 것입니다. 말보다는 한번 보는 것이 좋을 듯싶으니 물이 가득 담긴 물통 하나만 가져와 주십시오.”
남궁천옥은 사람을 시켜 커다란 물통을 가져오게 하였다.
잠시 후, 큰 물통 앞에 선 그는 슬쩍 주위를 살피다 제법 손이 더러운 한 사내를 가리켰다.
졸지에 지명이 된 사내는 쭈뼛대는 걸음으로 우현의 곁에 섰다. 그걸 지켜보던 사람들은 궁금하다는 듯 앞으로 모여들었다.
“자아! 보시면 때에 찌들어 손이 아주 더럽습니다. 솔직히 말해 만지기도 싫죠. 하지만 이 세숫비누 하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우선, 손을 물에 적시고, 비누를 비비면…….”
손 사이로 피어나는 흰 거품이 이내 시커멓게 변해간다.
보는 이가 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이니 얼마나 흉물스러운지 알 것이다.
우현은 비누칠이 다 된 듯싶자, 손을 물통에 넣고 씻으라 했다.
시커멓던 땟물이 씻기고 더럽던 살빛이 뽀얗게 제 빛을 찾아간다.
일순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오며 놀라움이 깃든다.
하나,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우현은 말을 덧붙였다.
“이렇듯 깨끗하게 씻어질 뿐 아니라, 손에서 향긋한 향이 나 자신은 몰론 타인까지도 기분 좋게 합니다.”
향이 난다는 말에 너도 나도 몰려와 손을 코를 갖다 댄다.
“정말 향이 나네.”
“그것도 오이향이야.”
“이거 왠지 오이가 당기는걸.”
사람들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대간다.
그것을 지켜보던 우현이 화룡정점을 찍듯 말을 뱉어간다.
“특히, 여성분들은 하루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 세숫비누로 씻으면 피부가 좋아지고 고와지니 필수품이라 할 수 있죠. 또한, 신혼 첫날밤이나, 일 마치고 땀에 찌든 채 집에 돌아갈 때 이걸로 몸을 한 번 씻고 가면 떨어졌던 정도 붙을 정도이니 매우 유용한 물건이라 할 수 있겠죠.”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나 한 번쯤 땀 냄새 때문에 밤일을 치르고 싶어도 숨 막혀 포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묵묵히 설명을 듣고만 있던 남궁조공은 제법 맘에 드는 듯 끄덕여 간다.
“괜찮은 물건이야. 제법 팔리겠어.”
“대륙에서도 없어서 못 파는 물건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도 하겠군. 근데 이것도 세숫비누 같은 것인가?”
“그건 빨랫비누라고 더러운 빨래를 씻는 데 쓰는 겁니다.”
우현은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며 설명해가지만 세숫비누만큼의 반응은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소금과 커피 잔, 손톱깎이, 손톱 소지 줄에 관심을 표하긴 했지만 빨래판의 경우 굳이 사는 사람이 있겠냐며 반문까지 해 당황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대륙과 같이 높은 호응도를 기대했던 우현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풀이 죽은 듯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던 그때 컨테이너 박스 밖으로 남궁현철이 뭔가를 들고 나섰다.
“이것이 뭔가?”
“아! 그건 양초라고 밤을 밝히는 데 쓰는 것입니다.”
“한번 보여주지 않겠나?”
“그러겠습니다.”
우현은 컨테이너 한쪽에 쌓여 있는 박스에서 양초와 성냥을 꺼내 들고 나섰다.
주위 사람들 하나를 잡아 양초를 들게 한 그는 성냥을 켜갔다.
타탓!
일순 치솟는 자그마한 불길에 사람들은 놀랐다. 물론 화섭자라고 해서 불을 켤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쓰기가 매우 불편해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근데 우현이 쓴 성냥은 대충 한 번 쓱 긋기만 하는데도 불길이 치솟는다. 이건 어린아이라도 쓸 수 있을 듯싶다.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양초로 향한다. 이윽고 양초 위에 불길이 옮겨 붙고 자그마한 불꽃을 피워낸다. 넋 놓고 바라보던 그때 남궁천옥이 물어왔다.
“이…… 이것 말일세. 언제까지 켤 수 있는 것인가?”
“아직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충 밤 동안은 능히 켤 수 있을 겁니다.”
“어둔 밤중 내내 켜 있다라……. 호오! 놀랍구만!”
놀라운 건 그만 그런 것이 아닌지 주위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기한 듯 연신 살피고 있는데 돌연 남궁현철이 물어왔다.
“이 양초라는 것 말일세. 안에 보니 그리 많지 않던데 일부러 가져오지 않은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고, 원래 가려 했던 곳에 양초 공장을 만들려고 재료만 가져와서 그런 것입니다.”
“그럼, 이 양초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느새 회가 동한 듯 남궁조공이 다가온다. 셋이서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 왠지 세숫비누보다 반응이 좋은 듯싶다. 양초를 끝으로 다시 창천전으로 돌아온 네 사람은 기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하인이 가지고 온 차를 본 우현이 말을 하였다.
“죄송하지만 차는 됐고, 그냥 잔에 뜨거운 물을 삼분지 일 정도 채워서 갖다 주시겠습니까?”
알겠다며 막 나가려는데 가주 남궁현철이 발목을 붙잡는다.
“남은 빈 잔은 이쪽에 주고 주전자는 내게 주어라!”
그의 말대로 빈 잔 서너 개를 옆에 내려놓은 하인은 주전자를 건넸다.
받은 주전자를 오른 손바닥 위에 놓은 가주 남궁현철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뭐 하나 싶어 말없이 보고 있는데 돌연 주전자 밑 부분이 붉게 달아오른다 싶더니 뚜껑이 들썩대기 시작한다.
‘설마…… 주전자를 가열시키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된다며 내뱉던 그때 삐이익 하는 소리가 주전자 주둥이에서 들려온다.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그에게 뜨거워진 물이 담긴 주전자를 들어 잔에 따라 주었다.
“이 정도면 되는가?”
“예, 예에!”
멍하니 주억대기만 하는 우현에 가주 남궁현철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하였다.
“삼매진화의 수법을 사용해 데운 것뿐이니 너무 놀라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