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60
차원상인 060화
“알겠어. 그리 조치하도록 하지.”
소네스는 조퍼슨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려갔다.
그걸 보던 우현은 시선을 돌려 주위를 훑어갔다.
“그럼,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끝내죠. 아무래도 상황을 보고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좋을 듯싶으니까 말입니다.”
한 차례 주억대던 사람들은 하나둘 서재를 빠져나간다.
뒤늦게 일어선 소네스와 레이젠의 발길을 우현이 붙들었다.
“두 분은 잠시 저와 이야기 좀 하다 가십시오.”
둘은 옆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는 다시 의자에 몸을 실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즉시 알카인 왕국 서부, 동부, 북부 국경선에 맞닿은 영지들에 연락을 해 우리가 쓸 수 있는 땅이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땅은 왜?”
“그곳에 위성지부 및 상단 이름을 딴 상점을 개설할 생각입니다.”
“지부? 상점을 개설한다고?”
소네스의 낯에 의아함이 피어오른다. 상점을 개설하는 거야 이익을 얻기 위해 그런다고 쳐도 지부까지 세우는 것은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갸웃대는 그의 곁에 묵묵히 있던 레이젠이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혹시…… 상단을 옮길 생각인가? 이번 몬스터 출몰 때문에 말이야.”
순간 소네스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러고 보니 우현이 갑자기 지부를 만든다는 것도, 상점을 연다는 것도 다 그 때문인 듯싶었다.
“그런 거야? 상단을 옮길 생각인 거야? 그럼, 이곳에 만들고 있는 주거지는 어떻게 해? 버리고 가는 거야? 이곳 사람들도?”
“그런 것 아닙니다.”
“근데 왜 지부에다, 상점까지 만든다고 하는 거야? 상인들이 안 와 판매가 저조해서 그렇다면 상점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추궁하듯 묻는 그에 우현은 슬며시 고개를 내젓는다.
“형님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니 너무 화들 내시지 마십시오.”
“그럼 대체 이유가 뭐야?”
“제가 굳이 둘 다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크게 네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는 형님들도 알다시피 4년마다 찾아오는 몬스터들과 상인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될 것을 대비한 조치. 두 번째로는 소비력 증강입니다.”
“소비력 증강?”
우현은 예전부터 상단에 생각했던 바를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예! 저희 상단 최고의 단점 중 하나가 소비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남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탓에 오가는 데 두세 달, 사 간 물품을 다 쓰고 구매하러 오는 데 기본적으로 사 개월가량 걸립니다. 대부분 물품 수송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이후 물품에 더해지는 것이 많아져 결국 가격을 천정부지로 높이게 되고 이에 소비자들은 가격에 큰 부담을 갖고 우리 물품을 점차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물품의 희귀성 같은 갖가지 사항이 맞물려 소비가 빠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어떻게든 소비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소극적 자세가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야. 이번 일로 인해 상단이 문을 닫을까 염려한 상인들이 사 간 우리 물품의 가격을 점차 높여 간다는 소리가 있으니 말이야.”
소네스는 동의를 표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째는 자체적인 판로망 구축입니다. 현재 저희 상단은 종이를 비롯해 거의 모든 판매를 바딘 백작에게 의존한 상태로 그와의 손을 놓는 것은 모든 판로가 끊긴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물론 백작과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공생하면 되는 일이지만 자칫 질질 끌려다닐 염려가 있습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체적인 판로망을 갖춰야 합니다. 문제는 현 상단 구조상 상행을 하러 다니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 물품창고를 갖춘 지부를 설치하여 그 부근에 상점을 개설하려고 합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레이젠이 슬쩍 물어온다.
“모양새로 보아하니 상점을 하나만 낼 것 같지는 않은데…….”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리던 우현이 답을 하였다.
“혹시 체인을 아십니까?”
“체인?”
“쇠로 만들어진 원형 고리 말입니다.”
“알지! 그건 왜?”
난데없는 체인 타령에 둘은 어리둥절해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현은 왼손 검지와 엄지를 맞잡고 원 모양을 만들었다.
“체인 하나는 별거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에 또 다른 고리를 걸고, 또 걸고 계속 걸다 보면 온 세상을 체인으로 뒤덮을 수 있습니다.”
그랬다. 우현이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체인점이었다.
곳곳에 자리한 물류 창고를 통해 유통하는 시스템을 차용하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행보단 물품 창고를 둔 지부를 설립하여 그 주위에 상점을 여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소네스는 감탄에 탄복을 마지않는다.
“설마! 너, 지부를 알카인 왕국 전 곳에 세우려는 거야? 어디든 우리 물건을 팔 수 있게?”
“알카인 왕국만이 아닙니다. 전 대륙의 모든 왕국에 세울 생각입니다. 즉, 이번 지부 설립은 대륙을 도모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싸늘히 식어버린다.
아니, 침묵이 짙다 못해 아주 적막감에 빠져버렸다.
지금 그가 말한 것은 대륙의 상계를 지배하겠다는 것과도 같았다.
숨소리조차 쉬이 내지 못하던 그때 레이젠이 물어왔다.
“상계를 통일하겠다는 건가?”
단숨에 들이켠 커피의 맛을 잠시 느끼던 우현의 시선이 들린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신분, 나이, 혈연, 왕국에 상관없이 세상을 평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인이라고 말입니다.”
영업 사원 당시 박 대리가 해준 말로, 사실은 영업왕이 되어보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하나, 영업을 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꼈던 우현인지라 지금껏 가슴에 심어 두고 있었다.
“세상을 평정할 수 있다라……. 상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
동의하듯 소네스는 레이젠를 보며 끄덕거려간다.
“네 번째 이유는 업무 분할입니다.”
“업무 분할? 그건 또 뭐야?”
“앞으로 설치할 지부들은 상단 물품 판매를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할 것이며 이곳은 상단의 물품 유통 및 제조하는 공장이 들어설 겁니다.”
“제조공장? 상단 물품을 만들겠다는 거야?”
“단, 앞으로 나올 신상품에 한해서입니다.”
“물품 제조공장이라…… 좋아! 아주 좋아!”
소네스가 화색을 띠며 좋아한다. 제조공장이 들어선다면 지금처럼 재고가 떨어질까 봐 안달하지 않아도 되고, 좀 더 안정적인 물품이 공급되어 판매 증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묵묵히 듣고 있던 레이젠이 슬쩍 둘의 대화에 끼어들어 왔다.
“지금 말하는 것으로 보아 제조할 신상품이 있는 듯 보이는데 맞는가?”
순간 소네스의 시선이 우현에게로 향한다. 답 대신 입가에 미소를 보이는 그에게서 뭔가 있음을 확신한 소네스가 물었다.
“신상품이 있는 거야?”
답도 하지 않은 채 박스에서 양초를 꺼내 곳곳에 두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게 뭐냐고 묻고 싶지만 일단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온 우현은 책상 위에 양초를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창문을 닫아 실내를 어둡게 해주세요!”
그의 말에 둘은 일어나 창문을 닫아갔다. 일순 서재는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어느새 숨소리마저 사라져 적막하기까지 하던 그때 어두컴컴한 주위를 보던 우현은 슬쩍 성냥을 꺼내 마찰판을 긁었다.
팟!
작은 불빛 하나가 켜지자 순간 탄성이 인다.
둘의 시선을 끈 그 빛은 이내 양초로 옮겨진다.
그러자 컴컴하던 서재가 희미하지만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주위가…… 주위가 밝아진다.”
“이게 무슨…….”
시끄러워지는 둘에도 우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양초를 들고 곳곳에 놓아둔 양초에 불을 옮겨갔다. 점점 밝아져가는 서재를 보며 둘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느덧 마지막 양초까지 켠 그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의자에 몸을 얹는 것을 보던 소네스가 다급히 물어갔다.
“대체 저것들은 뭔가? 아까 어둠 속에서 불을 피어오르게 만든 그것은 또 뭐고?”
여전히 미소만 짓던 우현의 입술이 벌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것은 양초라는 것으로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리고 아까 보신 것은 성냥이라 부르는 것으로 급히 불씨가 필요할 때 쓰는 겁니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면 밤에만 쓰는 거란 말인데 사람들이 살까? 비싸 보이는데 말이야.”
“대충 아이언 한 닢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한 달에 삼십 아이언이란 소린데…… 뭐, 가격은 이 정도면 괜찮을 듯싶은데 문제는 사람들이 살 것이냐는 것이네. 아까 보니까 살짝만 움직여도 불이 심하게 떨던데 갖고 다니기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어?”
“그래서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현은 박스에서 철로 된 양초등을 꺼냈다.
시범을 보이듯 유리를 들고 양초를 집어넣고는 들어 보였다.
“위아래로 크게 흔들지 않는 이상 들고 다니는 데는 별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도면을 꺼내 샹들리에와 가로등 같은 것을 탁자에 펼쳐갔다.
“여기 보이는 것은 등잔이라고, 마치 컵처럼 생긴 받침으로 집에서 간편하게 양초를 들고 다닐 때 쓰는 것으로 귀족은 물론이고 일반 평민들까지 두루두루 쓸 물건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샹들리에라고 해서 수십 개의 양초를 달아 천장에 걸어놓는 것입니다. 단순히 철로 된 것부터, 유리나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것까지 수십 종류가 있으며 대부분 귀족들이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로등이라는 것으로 쇠로 된 기둥 위에 양초를 달아 주위를 환히 밝히게 하는 것입니다. 길이나 담장 근처 같은 곳에 세워 두면 길을 잃거나,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쉽게 피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 만도 하네.”
소네스는 연신 탄성을 질러대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레이젠도 마찬가지인지 도면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로등이라……. 이거 저택 주위에 수십 개만 깔아 놓으면 대낮처럼 환해지겠군.”
“저택뿐만이 아니라, 영지와 왕국 더 나아가 온 대륙의 밤을 환히 밝힐 수 있을 겁니다.”
“대륙 전체를 밝힌다고?”
놀랍다 못해 경악한 듯 그저 입을 쩍 벌리고만 있다.
확실히 충격을 먹을 만도 하다. 그 누가 온 대륙의 밤을 환히 밝히겠다 하겠는가?
그건 신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한데 지금 우현이 그걸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일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대륙의 어둠을 밝힌 사람으로 말이다.
‘온 대륙의 밤을 환히 밝힌다라…….’
소리 없이 되 읊던 소네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양초라는 물품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보자며 말을 뱉으려던 그때 한껏 굳어져 있는 레이젠이 보인다.
“형! 무슨 문제라도 있어?”
우현 역시 심상치 않아 보였던 터라 묵묵히 바라보기만 한다.
팔짱을 낀 채 침묵하던 레이젠의 굳게 다문 입술이 이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