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62
차원상인 062화
갑작스러운 박치기에 또 한 번 몸을 틀어 피해간다.
그와 동시에 레이젠의 목검이 쭉 뻗어간다.
뒤늦게 목검을 쳐들던 우현은 턱 밑에 놓인 상대의 목검을 보고는 이내 멈춰 서고 만다.
“이번에도 졌네.”
우현은 그 모습 그대로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갔다.
많이 힘든 듯 거친 호흡을 줄기차게 토해낸다.
“하아! 하아! 더는 못하겠습니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모습에 레이젠 또한 그만 웃고 만다.
아침나절 내내 벌어진 대결로 인해 우현은 녹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그가 이런 것을 하는 것은 온갖 고수들이 판치는 무림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목숨줄을 길게 해보자는 것에서 그런 것이다. 뭐, 그렇다고 갑자기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복날의 개처럼 헐떡대며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린 우현의 곁으로 레이젠이 다가왔다.
“괜찮은가?”
“열두 판을 내리 이겨놓고 할 소리입니까?”
“그럼, 내가 져주길 바라기라도 한 것인가?”
“누가 그렇다고 했습니까? 그저…… 살짝 좀 봐주라는 것이죠.”
그의 불만 섞인 투정에 레이젠은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고 싶어도 빈틈이 너무 많은 걸 어쩌겠는가?”
“끄응!”
틈이 너무 많다는 말에 우현은 앓는 소리를 내고 만다.
나름 얼마 전에 배운 체술까지 섞어서 공격을 했는데도 말이다.
너무 기를 죽였나 싶었던 레이젠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쳐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리 실력이 는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니 너무 실망 말게!”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진심일세.”
피식 웃던 우현은 내밀어진 레이젠을 손을 잡고 일어섰다.
“참! 마나 심법 수련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됩니다.”
“그래도 1써클은 되었을 것 아닌가?”
뒷머리를 긁적이던 우현은 내저어간다.
“저번에 형님이 제 몸에 마나를 움직이게 해줄 때 빼고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마나를 돌리지 못했습니다.”
“흐음! 너무 걱정 말게! 티아처럼 더러 마나심법을 익히는 데 늦는 이도 있으니 말이야.”
“티아가 그랬습니까?”
우현은 한편에 서 있는 티아를 보며 못미더워했다.
“그렇다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마나 심법을 잘 사용한다네. 그러니 심려치 말게!”
“알겠습니다.”
대결이 너무 지나쳤던 것일까? 아님, 체력이 다해서 그런 건가?
자리에서 일어서기 무섭게 몸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 안 아픈 곳이 없는 듯하다. 한껏 찡그려지는 그의 낯을 보며 웃던 레이젠이 말을 하였다.
“오늘은 이만하고 쉬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레이젠과 일별한 우현은 티아와 같이 저택으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물씬 풍기는 땀 냄새로 코가 다 마비가 되는 듯싶다. 결국 서재로 사람을 보내 씻고 간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는 욕실로 향했다. 한바탕 시원하게 몸을 씻은 탓인지 왠지 기분이 날아갈 듯싶다. 잠시 후, 자신의 일터인 서재로 들어간 그는 책상 한편에 자리한 책자를 집어 들었다.
어제 소네스가 사람을 시켜 보내 준 것으로 헤네브가 쓴 연구일지였다.
약 백여 가지의 실험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아직은 정리가 되질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약간은 중구난방 식으로 쓰여 있었다. 그래도 몇 가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불을 붙이면 폭발을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살펴보니 실험 도중 만들어진 검은색 가루인데 불을 붙이면 폭발하며, 양에 따라 폭발력이 강해진다고 적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뒤에는 한 암석에 매우 높은 열을 가한 후, 물을 섞어 반죽해 기다리면 단단하게 굳고, 그 암석과 비슷한 어떤 것은 반질반질한 외면에 파도 모양의 매우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져 있다 한다. 이 말들을 풀이하면 앞서 말한 암석은 시멘트의 주재료인 석회석의 특징이고, 뒤에 보이는 것은 대리석(석회석의 변성암)의 특징이다. 우현이 이걸 아는 것은 한때 서연이가 대학 입학 후, 난데없이 집 안에 돌덩이들을 늘어놓고는 그걸로 시멘트를 만든다고 야단법석을 떤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약에다, 시멘트 재료 석회석까지…… 역시 연금술사를 품은 것이 최선이었어!’
기쁨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춰댄다.
워낙 흥에 겨운 탓에 일종의 막춤을 추고 있었는데 때마침 서재 문을 열고 들어오던 소네스는 이걸 보고는 어이없어한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서둘러 자리에 앉은 우현은 정색을 하며 답을 하였다.
“몸이 찌뿌둥해서…… 근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아! 바딘 백작님이 너와 이야기 좀 하고 싶다는데?”
“대충 마무리도 되었으니 들어오시라 하십시오.”
“알았어! 그럼, 내가 모시고 들어올게.”
“그러십시오.”
소네스가 문 밖으로 손짓을 하자 바딘 백작이 안으로 들어섰다.
근데 뒤이어 레이젠까지 오는 것이 뭔가 일이 있는 듯하였다.
의아해하면서도 우현은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백작님! 오래간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냈나?”
“저야 별일 있겠습니까?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고맙네.”
자리에 앉아가는 그의 얼굴이 한껏 굳은 것이 자신의 예감을 확실시해준다.
하인이 건네주는 커피 잔을 들고 마시던 우현은 바딘 백작에게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물었다.
“아까 소네스 형님께 듣자 하니 제게 할 말이 있다고 하시던데 그게 뭡니까?”
다 마신 듯 잔을 한쪽으로 치운 바딘 백작은 조금은 진지한 빛으로 바라본다.
“사실 한 달 전, 국왕 폐하께서 자넬 두고 왕실 외가 중 하나인 세실리안가의 마지막 후손이자 후작이라고 선언을 했네.”
우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 잠깐만요! 제가 왜 세실리안가의 마지막 후손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일전에 엘테르 성국에서 소금 판매 일로 사람이 왔지 않은가? 그때 상단뿐만이 아니라, 왕국에도 사신을 보냈던 모양이더군. 자네가 알카인 왕국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말이야.”
“그럼, 대화 도중 백작님이 뛰쳐나간 것도 다…….”
“자네 생각대로 왕실로 찾아온 엘테르 성국 사람들 때문이네.”
그제야 모든 것이 납득이 된다. 엘테르 성국 사람들이 소금 판매를 막은 것도, 바딘 백작이 그리 허겁지겁 나간 것도 또 왕실에서 자신을 두고 세실리안가의 마지막 후손이라 칭한 것도 말이다.
‘어쩌면 상단에 온 엘테르 성국 사람들은 나를 포섭하기 위해 보내진 이들일지도 모르겠군.’
그랬다. 상단에 온 이들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왔었다.
첫 번째는 우현이 알카인 왕국 사람이 아닐 경우 회유 및 포섭을 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소금 판매를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두 번째의 경우 우현의 물품을 독점함과 동시에 향후 타 왕국과의 거래를 통해 천일염이 엘테르 성국 것임을 인식시키는 계획까지 세워 놓은 상태였다. 즉, 소금 판매에 한해서는 발도 못 디디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소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물품 또한 소금과 마찬가지로 하나둘 빼앗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기던 우현은 슬쩍 시선을 들었다.
“만약 제가 세실리안가의 마지막 후손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왕국의 위신이 추락함과 동시에 국왕 폐하에 대한 신임과 명예가 실추되겠지. 그로 인해 자네도 더는 이곳에 머물게 되지 않겠지.”
“쫓겨날 거란 말씀이십니까?”
우현의 눈매가 한껏 좁혀든다.
이에 바딘 백작은 미안한 빛을 띠었다.
“잘못이야 했지만 그래도 일국의 국왕인데 모양새나마 그리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상단을 지키고 싶으면 곱게 후작이 되란 말씀이시군요.”
“자네가 그리 말해도 내 할 말은 없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 크니 말이야. 하지만 우리로서도 자네들을 놓치는 것은 큰 손실이기에 그리했다는 것을 좀 알아주게.”
알카인 왕실의 마음이야 능히 짐작이 간다.
자신만큼 재정을 배부르게 해주는 이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언반구 하나 없이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데에는 여전히 화가 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도 미리 귀띔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았습니까?”
“당시 엘테르 성국 사람들이 너무 몰아친 모양이야. 귀족 수장이자 재상인 조바오니 공작의 재촉도 심했고 말이야.”
“재상 조바오니 공작이요?”
“그렇다네.”
순간 돌아간 레이젠의 고개 너머 소네스와 시선이 맞부딪친다.
감정 하나 없는 한기로 뒤덮인 그들의 눈빛에서 승상 조바오니 공작을 잘 알고 있는 듯싶다. 변화된 둘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채 우현은 생각에 잠겨갔다.
한참을 말없이 있는가 싶더니 시선을 들어 너머 자리한 바딘 백작을 보았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미안하네만 그리 오래는 못 주네. 국왕 폐하의 발언 이후, 자네에게서 이렇다 할 반응이 없어 모두들 의심하고 있는 상태라 말일세.”
“알겠습니다.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후작님!”
고맙다는 듯 끄덕이던 바딘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이 어서 빨리 가는 것이 우현이 생각하기 편할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가 서재 문을 열고 나가자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소네스가 다가왔다.
“아주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지고 말았네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
동의를 표하던 소네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지금껏 닫고 있던 말문을 레이젠이 열어간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그보다 형님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저보다야 일찍 들으셨으니 대충은 어찌해야 할지 생각해 두셨을 듯싶으니 말입니다.”
잠시 소네스를 보던 레이젠이 답을 해간다.
“솔직히 말하면 아까 바딘 백작에게 말을 듣고 우리 둘 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네. 소네스는 후작의 권위와 힘을 발판 삼아 상단을 키워가는 쪽이네. 하지만 오랜 내란을 겪은 알카인 왕국은 불안정한 정국이 큰 문제야.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조바오니 공작과 알카인 왕은 지금 내란이 터진다 해도 당연할 만큼 아슬아슬하기만 하네. 이런 상황에서 자네가 후작 위에 오를 경우 자칫 정치 싸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네. 거기다 영지로 받은 곳이 이곳 하임이트 영지일세. 워낙 상황이 좋지 않은지라 상단의 발전은커녕 영지 정리하는 데만도 제법 오랜 시일이 필요하네. 반대로 난 이곳을 떠났으면 하네. 알카인 왕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상단을 운영했으면 하는 것이지. 그러나 이것 또한 문제가 있네. 알카인 왕이 한 말을 뒤집는 일이라 알카인 왕실 명예에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네. 그 후, 우리와의 관계는 경색되다 못해 악화일로에 빠질 것이 분명하네. 또한 엘테르 상국에서 자네를 눈여겨보고 있는 만큼 다른 곳으로 간다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못하네. 거기다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