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63
차원상인 063화
“한마디로 일장일단이 있다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다시 팔짱을 낀 우현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톡톡 관자놀이를 쳐대는 검지가 하염없이 느려졌다.
그만큼 머릿속을 맴도는 고민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치권과 엮이지 않으려면 왕국을 떠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러기엔 새로 기반을 쌓아야한다는 문제가 있다. 거기다 난 일개 평민 상인. 힘이 없는 존재이다. 다른 곳에서도 이만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랬다. 분명 다른 왕국으로 가면 평민이란 점을 들어 깔고 뭉개려 들 것이다.
특히나 이곳에서 벌어들인 금액을 생각해 어떻게든 자신을 손에 쥐고 뒤흔들려 들 것이다.
물론, 자신을 눈여겨보는 엘테르 성국이나 세투란 제국으로 간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또 보상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생각이 길어지는 만큼 고민은 깊어지던 그때 레이젠이 말을 건네 왔다.
“사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네.”
“방법이 더 있다고요?”
레이젠은 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싶어 생각에 잠겨보지만 도통 떠오르는 것이 없다.
“대체 그 방법이 뭡니까?”
“그건 자네가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네.”
순간 침음성이 우현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은 대륙인이 아닌 차원 너머 사는 현대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잠시 혼자 생각 좀 해야 할 듯싶습니다.”
잠시 서로를 보던 소네스와 레이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곁에 있어봤자 하등 도움될 거라곤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 생각이 되면 부르게!”
“나중에 보자구!”
두 사람이 나가고 홀로 남은 우현은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갔다.
바쁘게 움직여가는 사람들을 보던 그에게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자네가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네.
메아리치듯 레이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그의 말대로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더 이상 대륙에 오지 않으면 된다. 어차피 빚을 갚을 목적으로 이곳에 왔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청산된 상황에서 굳이 머물 이유는 없었다. 하나, 돌아가려 맘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더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죽 공장이라든지, 자신과 거래하는 여타 중소기업 사장님들, 몰핀 일로 희생당한 유족들과 현재 상단 식구들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하아~!”
길어지는 한숨만큼이나 깊어진 고심이, 하루가 저물어간다.
다음 날, 아침. 끝내 밤새 뜬 눈으로 지샌 우현은 레이젠과 소네스를 서재로 불러들였다.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대충 고양이 세수만 하고 온 두 사람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한 우현을 보았다.
“밤새 한숨도 못 잔 모양이군.”
“예! 생각할 것이 좀 많았습니다.”
“그럴 테지. 여기서 보낸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적다고도 할 수 없으니 말이야.”
이때 하인이 들고 온 커피를 마시던 소네스가 말을 건네 온다.
“근데 하루 갖고 되겠어? 적어도 사나흘 정도는 고민해야 답이 나올 듯싶은데 말이야.”
“길게 한다 해도 답은 같을 듯싶어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답이 뭔데?”
“일단, 상단을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대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야?”
“그러기엔 제가 발을 너무 깊숙이 담근 듯싶습니다.”
“하긴 그렇긴 하지.”
레이젠 또한 그렇다는 듯 끄덕인다.
“그럼, 결국 방법은 어제 말한 두 가지라는 건데…… 캐슬, 네 생각은 어때?”
어제 밤새 고민하면서 가슴속에 점점 뚜렷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것!
몰핀과의 일이 있은 후,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키고, 주위 사람들에게 또다시 그때와 같은 아픔을 남기지 않겠다 생각하니 답은 점점 명확해져 갔다. 눈을 뜬 우현은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향해 굳게 닫힌 입술을 벌렸다.
“후작 위를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말했듯 권력 싸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네. 그래도 받겠다는 건가?”
“지금껏 저를 믿고 따라준 상단 사람들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자네가 상단을 얼마나 위하는지 잘 아네. 하지만 지금 이 결정으로 인해 그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네. 그걸 알고서 하는 말인가?”
“압니다. 그래서 힘을 키울 생각입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이곳이 아닌 어딜 가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게 할 생각입니다.”
레이젠은 이내 입을 다물고 만다. 그의 말대로 자신들이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것은 다름 아닌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바딘 백작이나, 조바오니 공작과 같은 힘이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겪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쉬이 덤비질 못하고 그저 눈치만 살피고 있을 것이다.
슬쩍 시선을 돌려 소네스를 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인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제자리로 돌린 레이젠은 우현을 향해 주억대갔다.
“알겠네. 자네 뜻에 따르지. 하지만 결심을 단단히 해야 할 걸세. 앞으로는 가시밭길만 있을 테니 말이야.”
“그러겠죠. 왕실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분명 저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빚진 걸 받아내야겠지만 말입니다.”
“빚?”
소네스는 의문을 표한다.
빙그레 웃던 우현은 답해주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나를 후작으로 세웠으니 그만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들이 헛소리만 해대지 않았어도 별문제 없었을 테니 말이야.”
“그렇죠.”
소네스는 맞는다는 동의를 표한다.
“좋아! 그럼, 바딘 백작에겐 언제 말할까? 후작위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이야.”
“천천히 말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골치 아파한 만큼 그들 애간장도 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놈의 뒤끝은 여전하구만!’
못 말린다는 듯 속으로 생각하던 소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이젠이 말을 건네 왔다.
“그나저나 일이 더 많아지겠군.”
“그러겠지. 상단과 이곳 영지 둘 다 돌봐야 하니 말이야. 아 참!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 세워둔 위성지부 건설 건도 수정을 해둬야겠네.”
“위성지부 건설은 왜 수정을 합니까?”
우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어온다.
“각 지부 이동을 세투란 제국 사람들을 들여와 마법진을 설치하기로 했잖아. 그거 아마도 왕국에서 제지를 걸 거야. 타국의 침입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말이야.”
“그 말은 우리더러 왕국 내 게이트를 사용하라는 말이겠군요.”
“빙고! 기왕이면 자국 내 것을 쓰게 하면서 돈도 받고 일석이조일 테니까 말이야.”
“아무래도 대폭적인 계획 수정이 필요할 듯싶군요.”
“그래야 할 거야. 네가 후작이 된 이상 이래저래 딴지를 걸 놈들이 많아질 테니 말이야.”
순간 우현에게서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설마하니 후작 위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렇듯 계획이 어긋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일단, 소네스 형님은 준비 중인 위성 지부 건설 계획을 검토 및 수정하여 왕실로부터 얻어낼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시고, 레이젠 형님은 현재 호위대를 중심으로 한 위성 지부 수호 방안을 짜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전 제조 시설을 맡아 향후 신제품 개발 계획을 짜보겠습니다. 단, 이 모든 것을 사흘 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두 분 괜찮으시겠습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보다 고개를 끄덕댄다.
“밤샘 작업을 해야 할 듯싶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상관없어.”
“나도 괜찮네. 어차피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는 없으니 말이야.”
“두 분 모두 제 생각에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이 뭐 있어? 셋이 시작한 거 셋이 같이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형, 안 그래?”
“네 말이 맞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환히 웃는 두 사람이 너무도 고맙다.
절로 숙여지는 고개를 레이젠이 괜찮다는 듯 다독이며 치켜세운다.
“그나저나 당면한 과제를 풀려면 제법 시일이 걸릴 듯싶은데 자네는 어찌할 셈인가?”
“사실 양초 제조 문제와 위성 지부 설치 건 때문에 대충 이십 일 정도 있을 예정으로 짐을 싸왔습니다.”
“20일이라…….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서 문제를 다 해결할지는 모르겠네만 그래도 며칠 있다 훌쩍 자리를 비우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군그래!”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대충 상황이 정리됐다 싶어 소네스는 손을 들어 배를 매만졌다.
“아침을 걸렀더니 배가 고프네. 우리 간만에 모인 김에 식사나 같이 할까?”
“그러지 않아도 배가 고팠는데 그렇게 하죠.”
레이젠 또한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 모두 동의하자 소네스는 밧줄을 당겨 사람을 불러 식사를 준비시켰다.
이후, 이들은 네시아까지 불러 같이 밥을 먹으면서 향후 상단의 진로에 대해 논의해갔다.
“축하드립니다. 공작님! 조금 전 왕성에서 온 전갈에 따르면 드디어 릭 캐슬이 아국의 귀족이 되겠다고 하였다 합니다.”
“테온, 엘테르 성국이 아니었다면 그리 쉬이 될 순 없었을 게야.”
“그들이 우리 말에 따라 줘 분위기 조성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되긴 힘들었겠지요.”
그랬다. 조바오니 공작과 테온은 소금 판매와 우현의 정체를 빌미로 엘테르 성국을 움직였고 결국 왕으로부터 세실리안가의 마지막 후손이라 공언하게 만들었다. 조바오니 공작은 바구니에서 사과를 집어 들고는 한 입 베어 먹으며 물어왔다.
“그래, 바딘 백작은 어찌하고 있다더냐?”
“즉위식 준비로 바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가하다 들었습니다.”
“아마도 즉위식을 늦춘 모양이구나!”
“현재 상단이나 영지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도는 것이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그런 듯싶습니다.”
“그 귀한 얼굴 한번 보나 싶었더니만 그것도 소원하겠구나!”
피식 웃던 조바오니 공작은 사과를 들어 또 한 입 베어 문다.
이때 테온이 우현에 대한 처우를 어찌할 것인지 물어갔다.
“일단, 지금은 내버려 두었다가 즉위식을 마치면 영지를 줘 키우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싶구나!”
“영지를 말씀이십니까?”
“현재 그의 상단은 왕국의 재화를 쓸어담는다 싶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있지. 물론 몬스터 출몰로 인해 한동안 상단 문을 닫기는 하겠지만 그리 큰 타격은 아닐 게야. 오히려 이번 일을 기회 삼아 상단 소속 병사를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할지도 모르지. 그럴 경우 자칫 아국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해. 그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상단이 가진 재력을 소비하게 해야만 하는데 그중 제일 좋은 방법은 그로 하여금 하임이트 영지를 운영케 하는 것이지. 물론 나중에 상단과 함께 그 영지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한마디로 우현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겠다는 것이다. 대충 어떤 말인지 알면서도 왜 하임이트 영지를 줘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은 테온이 물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