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7
차원상인 007화
“이곳은 영주님이 계시는 곳이오! 무슨 용무로 방문한 것인지 밝히시오.”
“난 페릴 레이젠이라고 하네. 전에 펨 총관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안에 계시면 잠시 뵐 수 있게 해주시겠나?”
“펨 총관님과는 어찌 만난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과거 도베르만 공국 왕실 기사단 샌드 스톰에 있었던 시절 만났네.”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대륙에서 제일 특이한 왕실 기사단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도베르만 공국의 샌드 스톰이다. 왕실 기사단임에도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오로지 능력으로 사람을 뽑는 데다가 기마, 창, 검과 방패, 활 등 못 쓰는 무기가 없고 개개인의 실력 또한 마스터에 필적하는, 그야말로 일인군단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샌드 스톰 소속 기사들이 은퇴 또는 그만둘 경우 타 왕국에서 서로 데려가기 위해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병사들에게는 꿈과도 같은 곳에서 있었다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물었던 병사 역시 그러한지 고압적인 자세는 사라지고 조금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십니까? 일단, 안에다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고맙네.”
막 병사가 발길을 돌리려는데 천을 열고 소네스가 나섰다.
“병사 양반, 가는 길에 이것도 같이 전해 주시오.”
“이게 뭡니까?”
“주면 아실 테니 일단 가져가시구려!”
둘둘 말린 양피지를 건네받은 병사는 알겠다며 갔다.
그걸 보고 빙긋 웃던 소네스는 마차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몸을 눕혔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이군.”
우현은 조금은 걱정이 되는지 말을 건네 본다.
“형님! 그걸로 되겠습니까?”
“걱정 마! 저 정도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사실 지금 그가 준 양피지엔 우현이 가져온 A4 용지 한 장이 같이 말려 있었다.
직접 종이를 건네 판단케 한다는 건 좋은 판단이기는 하나 문제는 그것이 종이란 것을 상대가 알아챌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혹시나 싶어 종이를 팔러 왔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겠냐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였다.
‘아까 그냥 말할 걸 괜히 소네스 말은 들어 가지고…….’
점점 커져만 가는 불안감에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만다.
그런 그의 애타는 속내도 모른 채 소네스는 너무도 태평하게 잠을 잔다.
코까지 요란하게 골아대며 말이다.
“드르렁! 음냐! 드러러렁!”
“저번에 보고를 받았네만 영지 사정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좋지 않군.”
깊은 한숨 너머 한 중년 사내가 보인다. 짧은 황옥빛의 머리에, 녹색 눈동자, 길쭉한 콧대 밑에 멋들어지게 난 ‘ㅅ’ 자의 수염과 각진 턱 선까지. 호협한 듯하면서도 조금은 매서운, 마치 선과 악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듯한 인상의 소유자인 이 사람이 바로 현 알카인 왕국의 백작 중 한 사람인 바딘 백작이었다.
친왕파로 익히 알려진 그는 현 승상 조바오니와 다툴 정도로 정계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허나, 지금은 권력 암투에서 밀려나 왕실 상단이나 책임지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언젠가 왕의 부름을 받아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싶었다.
시름에 잠긴 그의 곁으로 한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매우 큰 키에 짙푸른 색의 말총머리를 한 그는 누가 봐도 좋아할 만한 온화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백작가의 총집사 겸 상단 총관인 펨이었다.
“아마도 작년 연말에 행해진 대규모 몬스터 습격을 막아내느라 들어간 지출이 워낙 많아 그런 듯싶습니다.”
“나도 그 때문이라 생각하네만 문제는 삼 년 뒤에도 또다시 몬스터 공습이 온다는 것이네.”
그렇다. 이곳 하임이트 영지는 4년에 한 번 대규모 몬스터 공습이 있다. 이는 왕국 곳곳에서 행해진 몬스터 토벌에서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엘케비노 산맥을 타고 남하하다 끝자락인 이곳에 다 모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산중에 짐승은커녕 먹을 것조차 없어지고 배고파진 몬스터들은 산 아래로 내려와 민가를 습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만약 이곳이 백작령이 아닌 일반 귀족들의 영지였다면 오래전에 몬스터들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다.
근데 이런 영지는 이곳만이 아니었다. 케타른 성벽이 있는 메타포 영지, 조지아 영지, 보모스 영지 모두 몬스터들의 대규모 습격을 받는 곳으로 대대로 공작 또는 백작 들의 영지였다. 그들이 굳이 이곳을 영지로 삼게 된 것은 초대 왕인 헤르도 왕에 의해 그리된 것으로, 공작과 백작 들의 무력이나 힘을 계속적으로 소진시켜 왕권 찬탈의 위협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허나, 왕권 강화를 위해 한 이 조치가 훗날 귀족들의 반발을 사는 단초가 되고 그로 인해 십여 번의 극심한 내란에 빠지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또다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에 바딘 백작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단, 요번 상행에서 얻은 이득이 제법 크니 이쪽부터 지원하라 일러두게.”
“재정 문제도 문제지만 병력 문제도 제법 큽니다.”
“그 문제는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으니 용병 길드에 의뢰를 넣어 해결하도록 하라 이르게. 비용은 백작가에서 준다고 하고 말이야.”
“그리 처리하라 이르겠습니다.”
막 손에 든 서류를 펼치려는데 병사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뭔가?”
“총관님께 전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바딘 백작은 알겠다는 듯 끄덕인다.
허락을 받은 병사는 조심스레 다가와 양피지를 건넸다.
받은 것을 살피던 펨 총관은 누가 줬냐고 물었다.
“전 도베르만 공국 왕실 기사단 페릴 레이젠이 이걸 전해 달라 했습니다.”
“도베르만 공국 왕실 기사단 페릴 레이젠?”
펨 총관이 갸우뚱대던 그때 바딘 백작이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아! 저번에 공국 갔을 때 우리 왕국 출신이라고 하던 그 기사 말인가 보군.”
“일전에 백작님이 다부지게 생겼다던 그 기사 말씀이십니까?”
“아마도 그인 듯싶네.”
그제야 펨 총관도 생각이 난 듯 들고 있던 양피지를 펼쳤다.
그러자 눈처럼 새하얀 종이 위로 멋들어지게 새겨진 글들이 있었다.
펨 총관님, 이것이 바로 종이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문구이건만 그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이…… 이것이 종이라고?”
입을 쩍 벌린 채 서 있는 펨 총관의 모습에 의문을 표하던 바딘 백작이 물었다.
“대체 뭘 보기에 그런…….”
그마저도 흰 종이와 그 위에 적힌 글을 보고는 망부석이 되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는가 싶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초…… 총관!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종이인 듯싶습니다.”
“그게 정말 종이란 말인가?”
“예……에!”
펨 총관은 깜박했다는 듯 서둘러 바딘 백작에게 건넸다.
손에 쥔 종이를 만지작대던 그에게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부드럽군! 아주 부드러워! 내 평생 이렇듯 부드러운 종이는 처음일세. 거기다 크기도 쓰기 좋게 적당한 것이 좋군, 아주 좋아!”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펨 총관도 마찬가지인지 연신 신기해하였다.
사실 현 대륙에서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세투란 제국뿐이다.
허나, 그곳에서 만든 것은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인 데다가 촉감도 투박하고, 빛깔 또한 거무죽죽한 것이 일반 양피지와 비교해 별다를 것이 없는 데다가 워낙 소량으로 판매가 되는 바람에 쉬이 구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종이는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것이 자꾸 뭔가를 쓰고 싶은 욕구가 들었고, 거기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촉감 또한 아주 좋았다.
세투란 제국이 만든 것이 같은 종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연신 미소를 짓던 바딘의 시선이 병사를 찾았다.
“레이젠이라는 자는 아직 밖에 있느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작님!”
“그 귀한 손님을 어찌 그곳에서 기다리게 한단 말이더냐? 어서! 이곳까지 모셔 오너라!”
“아, 알겠습니다!”
거듭되는 재촉에 병사는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재차 종이로 눈길을 돌리던 그에게 펨 총관이 말을 건넸다.
“모양새로 보아 이 종이를 팔러 온 듯싶습니다.”
“내 생각에도 그런 듯싶네만 어째서 우릴 찾느냐는 것이 문제겠지.”
“제 생각입니다만 일전에 백작님이 기사단을 관두면 찾아오라 말씀하신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바딘 백작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자신이 그랬었냐는 듯 말이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당시 왕실 기사단 단장인 그를 보며 그리 말하셨습니다.”
“하긴 젊은 나이에 단장까지 할 정도로 빼어난 실력이었으니 나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겠지.”
그럴 만도 하다는 듯 주억댄다.
펨 총관은 미소를 그리며 말을 건넸다.
“이참에 아주 백작가로 그를 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되면 나야 좋겠네만 그가 쉽게 그러겠는가? 그래도 명색이 도베르만 기사단 출신의 이름 높은 사람인데 말이야.”
“말이야 한번 건네 볼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바딘 백작은 피식 웃었다.
의도하는 바가 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세. 지금은 이 물건을 우리 손에 쥐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니 말이야.”
“맞습니다. 이런 종이를 타국에 판다면 영지 재정은 물론, 왕국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주억대던 두 사람은 또다시 시선을 종이로 돌렸다.
마치 그것에 깃든 마성에 홀린 듯 말이다.
“저택으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병사의 안내에 따라 철문 안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 한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삼 층 높이의 커다란 저택도 그렇지만 족히 운동장 세 개 넓이쯤 되어 보이는 안마당은 저택이 안마당을 품은 건지, 아니면 안마당이 집을 품은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엄청난 안마당과는 달리 본 저택인 삼 층짜리 건물은 너무도 단출해 왠지 초라하기까지 하다. 조금은 언밸런스한 안마당, 저택과는 달리 곳곳에 자리한 병사들의 삼엄한 경계는 이곳이 영주관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 넓은 안마당을 이십여 분쯤 달려 이윽고 저택 앞에 선 마차에서 내린 그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하녀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깔린 그 큰 양탄자를 시작으로 주위 곳곳에 위치한 그림들과 동상까지. 중세 시대 부호들의 집이 어떤지 명확히 보여준다.
시골 촌부처럼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우현에 소네스는 조소를 금치 못한다.
계단을 올라 이 층 한 방에 선 그들은 조심스레 문을 쳐댔다.
똑똑!
“백작님, 말씀하신 분들을 데려왔습니다.”
“어서 안으로 데려오게!”
문 한쪽을 연 하녀는 슬쩍 입구에서 비켜섰다.
그런 그녀에게 네시아를 맡기고 우현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난 백작 바딘이라고 하네. 어서들 오게!”
바딘 백작의 환대에 사람들의 경계심이 조금은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