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71
차원상인 071화
“빌어먹을 개자식!”
욕설과 함께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바닥에 던져버린다.
박살이 나 흩어지는 것을 뒤로한 채 임동수가 다가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무래도 내 친구 아버님을 납치한 것 같습니다.”
“납치요? 백인철이라는 그자가 납치를 했다는 겁니까?”
“그런 듯싶습니다.”
“납치라……. 일을 크게 벌이는군요.”
기막혀하는 임동수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레이젠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되찾아야지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분은 저의 아버님과도 같은 분입니다. 어떻게든 꼭 되찾아올 겁니다.”
흔들림 없는 그의 시선을 보던 레이젠의 고개가 끄덕여갔다.
“알았다. 그 일에 내 힘을 보태지.”
“고맙습니다.”
슬쩍 미소를 보이던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럼, 더는 이곳과 볼일은 없겠군.”
“예! 이제 그만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셋은 이내 몸을 일으켜서는 밖으로 나섰다.
“어딘지 찾을 수 있겠나?”
레이젠의 물음에 우현은 주억거려갔다.
“내비 찍어서 가면 되니 걱정 마세요.”
“내비가 뭔가?”
“그냥 그런 게 있어요.”
일일이 설명하다 보면 길어질 듯싶어 대충 이쯤에서 말을 끊는다. 레이젠도 그걸 알아챘는 지 더는 그에 대해 묻질 않았다. 뒤적뒤적 조폭들을 뒤지던 우현은 그중 하나의 옷을 벗겨 레이젠에게 건넸다.
“형님! 치수가 맞지는 않겠지만 일단 몸에 두르십시오.”
“이건 또 왜 입으라는 건가?”
“그대로 갈 수는 없잖습니까?”
자신의 옷을 살피며 동의를 표한다. 그러지 않아도 우현이 매번 입고 오는 검은 정장이 제법 맘에 들었던 레이젠인지라 건네받기 무섭게 근처 나무 뒤로 가 옷을 입었다. 흡족한 듯 미소까지 띠는 그를 데리고 차로 가 태웠다.
“이게 전에 말했던 철마차라는 것이로군.”
신기하다는 듯 차 안을 살피는 그에 우현은 피식 웃었다.
대여섯 살짜리 아이가 차를 맨 처음 탔을 때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소를 하는 것도 모른 채 레이젠은 몸에 둘러진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린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의자에 편히 기대십시오.”
움찔대던 레이젠은 헛기침을 하며 부인을 해간다.
“크흠! 내 어디가 긴장했다고 그러느냐?”
아닌 척해보지만 창백한 안색이나, 두 손 꼭 붙든 안전벨트가 말과는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던 우현은 차를 돌려 백인철이 말한 곳으로 향해 가기 시작했다.
“어르신, 범우입니다.”
“들어오너라!”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병풍 하나가 보인다. 두 폭씩 대칭 구도를 이루도록 배치 된 그 병풍 속엔 다양한 괴석과 난초의 입이 뿌리에서 촘촘히 자라나 있고, 그 위로 한껏 기세를 뿜으며 완곡하게 퍼지는 난의 형세. 거기다 행서로 쓰인 이 화제의 서체는 보기에도 매우 독특한 맛을 풍기고 있다.
석파 이하응의 묵란도, 흔히 흥선대원군의 묵란도병, 묵란도 12병풍이라고도 불리는 이것 주위엔 오동나무로 짜인 쌍문갑이 두른 듯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엔 늘어놓듯 자리한 난초와 온갖 화병들, 그리고 막 벼른 듯한 벼루 위에 자리한 먹물과 일렬로 걸린 붓 등 흡사 시간을 되돌려 조선 초기 서생의 방을 보는 듯한 정경 속에 자리한 하얀 비단 한복을 입은 백발의 한 노인. 조금은 처진 듯한 눈매에, 팔자 눈썹, 작고 두툼한 콧방울, 풀잎처럼 조금은 긴 입새까지 평범한 듯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빛을 발하는 눈동자와 전신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있었다.
눈이라도 쌓인 듯 앞머리 부분이 새치로 허연 사내, 범우는 슬며시 고개를 숙이고는 한 걸음 다가왔다.
“김 사장님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김 사장이? 그래, 무슨 일로 했다 하더냐?”
“최근 매입하고 있는 금괴를 노리고 일을 벌인 자가 있다고 합니다.”
막 붓을 치켜들던 노인의 고개가 홱 들린다.
“금괴를 노린 자가 있다고?”
“예, 어제저녁 양제동 한 창고에서 정체 모를 이들이 우현이란 자와 금괴 거래를 하는 이의 아들을 습격했다 합니다. 당시 금괴를 운송하던 도중으로 경찰에 확인해 보니 당시 112로 전화가 와 긴급 출동까지 했다고 하니 거짓말은 아닌 듯싶습니다.”
눈살을 찌푸리던 노인은 나지막이 들었다.
“네 생각엔 누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 생각이 드느냐?”
“아마도 김 사장은 아닐 겁니다. 어르신에 대한 충성도 워낙 높은데다 연줄로 먹고사는 이라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할 겁니다. 일전에 대리 구매를 시켰던 박 사장이나 최 사장 역시 수하에 사람도 적고 담도 작아 못하고 말입니다.”
“그럼, 제3자가 개입되었다는 말이냐?”
“그건 아닌 듯싶습니다. 매입한 사람들 모두 몇 안 되는 데다가 금괴 거래를 워낙 복잡하게 하는 지라 쉬이 알아챌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한 사람, 의심이 가는 이가 있습니다. 전에 황 사장에게 금괴의 뒷배경을 조사하라 시키셨지 않습니까? 그걸 청솔파(헤리엇 론 사장 백인철이 만든 조폭 세력)에게 맡겼다 들었습니다.”
“소매치기 출신이었다가 최근 대부업 한다고 설치는 백인철인가 하는 아이 말이더냐?”
“최근 백인철이 비밀리에 애들을 호출했다 합니다. 주위 말로는 사업 확장을 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금괴를 가로채 우리와 거래를 트려는 듯싶습니다.”
노인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최근 빚진 사람들 등골을 빼먹다 못해 자살로 내몬다며 말들이 많은 이가 바로 백인철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사냥개 주제에 주인에게 대든 것도 모자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뱃가죽을 가르려 들다니……. 쯧쯧쯧!”
기가 막힌다는 듯 연신 혀를 차댄다.
범우는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
“조치를 취할까요?”
“황 사장을 비롯해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흔적을 지워라. 단, 금괴를 파는 이들은 내버려 두어라. 지금은 그들과의 거래가 끊기면 당장 곤란한 것은 우리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마무리되면 오 사장더러 황 사장 자리를 대신하라고 해라. 경찰에도 입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말이야.”
슬며시 고개를 숙인 범우는 몸을 돌려 나갔다.
잠시 생각에 잠겨가던 노인, 백파의 입술이 벌어졌다.
“살펴보라 했던 금괴는 어떻더냐?”
붓과 먹, 화선지를 치운 중년의 미부, 박정숙(범우와 더불어 백파를 떠받드는 두 기둥 중 하나이다.)이 책상 위에 조심스레 찻잔을 놓으며 답을 해갔다.
“금괴 형태나 제조 방식은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는 아주 오래된 것이라 했어요. 불순물이 있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라고 하고요. 거기다 지금까지 가져온 금괴를 보면 소량이지만 공통되게 검출되는 것이 있는 걸로 봐서는 정확하진 않지만 직접 금괴를 제조해 파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럼, 어디서 만드는 것 같다 하더냐?”
“한국에선 그런 식으로 만드는 곳은 이제 더는 없다 했어요. 아마도 외국에서 만드는 듯싶은데 금괴에 낀 불순물이 세계 그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 쉬이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했어요.”
“그 말은 금괴 제조하는 곳을 알려면 수송하는 이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야 한다는 말이군.”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찻잔을 내려놓는 백파의 얼굴에 짜증이 치민다. 한국당 오 의원 대선 때 사용할 비자금 조성 및 자금 세탁을 위해 비공인 금괴가 필요하다 하여 사들인 것인데 알고 보니 한국 그 어디에서도 이런 금괴를 만드는 곳은 없다 하였다.
혹시나 새로운 금광이 발견되었나 싶어 소유해볼까 하는 맘에 뒷조사를 시킨 것인데 직접 나서지 않았다가 이런 사달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맘 같아선 지금 당장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으나 대선이 코앞이라 잠시 미뤄두기로 하였다. 자신이야 상관없지만 괜히 오 의원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린다면 제법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지금은 그들 손에 잠시 들려줘야겠군.’
입꼬리를 뒤틀던 백파는 찻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일단, 그 금괴를 수송하는 이에 대해 조사해 올려라! 나중에 우리 손에 틀어쥐기 편하게 말이다.”
“밑에 말해 그러라 할게요.”
알았다는 듯 백파는 끄덕거렸다.
노기로 얼룩진 눈빛을 짙게 흘리며 말이다.
제3-10장
시외로 나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신정 연휴라서 그런 것일까?
조금은 한적한 도로를 따라가던 차가 한편에 멈춰 선다.
“저깁니다.”
차창이 내려가며 허물어진 담벼락에 걸린 정아방직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그 낡은 현판 위엔 붉은색의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모양새로 보아 경매 딱지인 듯싶다.
“저 정도로 낡은 폐공장이면 사람 묻기에는 딱인 듯싶은데요.”
임동수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 우현이 끄덕여간다.
잠시 폐공장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시선을 레이젠에게로 돌렸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너희 둘은 그를 만나러 가거라. 난 여기서 몰래 폐공장에 들어가서 기회를 엿볼 테니 말이야.”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설마하니 내가 그런 놈들에게 당할 듯싶으냐?”
“그건 아니지만…….”
레이젠은 손을 들어 어깨를 매만졌다.
“걱정 마라! 다 잘될 것이니 말이야.”
별말 아닌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든든해진다.
안정이 된 듯한 우현의 모습에 레이젠은 차 문을 열고 나섰다.
“그럼, 이따가 보자꾸나!”
피식 웃어 보이던 그는 발길을 돌려서는 담벼락을 향해 달려간다.
코앞에 닿았다 싶던 그때 거짓말처럼 허공을 날아 벽을 넘어 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무협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임동수도 놀랐는지 혀를 내둘러간다.
“놀랍군요. 어떻게 사람이 그리 높이 치솟아 오른단 말입니까?”
“그러니 대륙에서도 몇 안 되는 마스터에 가깝다는 소리를 듣는 거겠죠.”
그럴 듯싶다는 듯 임동수는 고개를 끄덕여간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하던 우현은 운전대를 꽉 잡아갔다.
“우리도 이제 출발하죠!”
“예! 그렇게 하시죠.”
우현은 기어를 넣고 차를 출발시켜갔다. 도로를 따라가다 폐공장 정문 쪽으로 차머리를 틀자, 웬 사내 둘이 녹이 슨 철문 앞에서 손을 쳐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를 멈춰 세우자 한 사내가 다가와 물어왔다.
“네가 우현이란 놈이냐?”
“맞습니다. 제가 우현입니다.”
그러냐며 끄덕이던 사내는 슬쩍 옆 좌석에 앉은 임동수를 보았다.
다부진 몸매에 매서운 눈빛의 그를 봤음에도 별 감흥은 없는 듯하다.
아니, 피식 웃어가는 것이 같잖아 보이는 모양이다.
“문이 열리면 안으로 들어가 주차해!”
말을 마친 사내가 손을 들자, 그게 신호였던지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활짝 열렸다.
차를 몰아 안으로 들어가자 또 다른 이가 옆 빈 공터로 안내했다. 그곳에 주차하고 나선 두 사람에게 다가온 사내들은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