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76
차원상인 076화
“2년? 기간에 제약을 두자는 말인가?”
조금은 실망한 듯한 말투다.
하나, 우현은 개의치 않고 답을 해간다.
“언제까지나 비공인 금괴만 팔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금괴 사업을 합법화하겠다는 말인가?”
맞는다는 듯 우현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습니다. 단, 2년 동안 원하는 만큼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나마 맘에 드는 소리를 하는군. 두 번째는 뭔가?”
“보석을 거래하고 싶습니다.”
어이없어하던 백파는 설마하며 묻는다.
“혹시 그것도 금괴처럼 출처가 불분명한가?”
“그렇습니다. 판매는 지금과 동일한 방식으로 했으면 합니다만…….”
“그리되면 값이 많이 떨어질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상관없습니다.”
값 따위 상관없다는 말에 백파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알겠네. 그리하지. 자아, 이제 더 할 말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 그럼, 이번엔 내가 조건을 내걸지.”
“말씀하십시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시원하게 답을 한다.
“별거 아닐세. 자네 일하는 데 우리 측 사람 좀 두게 해달라는 걸세.”
“어느 선까지 말입니까?”
“굳이 높은 자리에 앉힐 필요는 없네. 단, 금괴와 보석 거래에는 꼭 껴주게나.”
부담 느끼지 말라는 듯 말을 건네 온다.
하지만 그의 속셈은 너무나도 뻔해 보인다.
우현의 곁에 사람을 둔 다음 여차하면 사업을 빼앗겠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나, 우현은 별 느낌 없다는 듯 아주 담담히 답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금괴와 보석 담당자로 해 드리죠.”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 아닌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앞으로 거래량이 많아질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복잡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단순화시키는 것이 더 옳다 여겨집니다.”
“이번처럼 일을 당할까 걱정되는 것은 아니고?”
“뭐, 그것도 있고 말입니다.”
겸사 겸사라는 듯 말을 하곤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제일 컸다.
워낙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한 탓에 이것저것 많이 부족한 상태다.
특히 이번 일을 통해 여러 가지로 준비할 것이 많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금괴와 보석의 거래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이 일을 백파 측에 떠넘김으로써 자신의 일에 치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백파는 다음 거래에 대해 물었다.
“거래는 언제쯤 재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나?”
“제 주위 상황으로 보아 한 열흘 정도 추스른 후, 다시 거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그때 다시 말을 나누도록 하지.”
길고 긴 통화의 마침표를 찍으려는 찰나 백파가 황급히 붙잡아간다.
“참! 백인철에게 지금껏 갚았던 돈 6억 원 말일세. 자네에게 돌려주도록 함세.”
“예에?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사실 백인철 일을 해결하면서 말이야. 적잖은 돈을 얻게 되었거든……. 그냥 혼자 먹자니 체할 것 같고, 자네에게 돌려준다면 제법 유용하게 쓸 듯해서 말이야.”
“그 말은 그 돈을 제 자금으로 삼으란 말씀이십니까?”
“그동안 빚 갚느라 수중에 돈도 얼마 없을 텐데 그게 서로에게 낫지 않겠나?”
우현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어찌하면 좋을지 잠시 갈등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벌여 나갈 일들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많은 자본이 필요하긴 하다. 문제는 백파가 이 돈을 주는 저의가 뭐냐는 것인데…….’
그 이름 높은 백파에게는 육억 정도는 껌 값도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뭔가를 얻으면, 또 다른 뭔가를 잃어야 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진리다. 많은 고심 끝에 맘을 결정한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죄송하지만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주겠다는데 사양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 들어서 그렇습니다.”
“호오! 세상 사는 법을 좀 아는군 그래! 알겠네. 자네가 정 받기 그렇다면 6억에 대한 일은 없는 걸로 하겠네.”
“제 생각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드릴까 합니다. 다음번에 할 거래에서 금괴의 수를 4개에서 30개로 늘려 줬으면 합니다.”
“부족한 자금은 그걸로 대신 얻겠다는 말이군. 좋네. 자네 말대로 해주지. 더 할 말은 없는 가?”
우현은 잠시 머뭇대다 물어갔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제가 목격자라는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그건…… 자네 할아버지가 말해줬네.”
“하…… 할아버지가 말입니까?”
우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할머니에게 듣기로 할아버지는 입이 무거워 다른 이들에게 쉬이 말을 한 적이 없다 들었다. 그런 그가 손자의 목숨이 달린 일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말을 했다는 것이 왠지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할아버지가 말해 줬다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쉬이 남에게 말할 분이 아닌데…….”
“당연히 아니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친우가 아니라면 말이야.”
“그럼, 우리 할아버지의 친구 분이란 말씀이십니까?”
잠시 수화기에 정적이 깃든다 싶더니 나지막이 말이 흘러들어 온다.
“19년 전, 그는 나를 찾아와 자네 부모의 일들과 자네에 대해 말해줬네. 그러곤 행방불명이 되었지. 뭔가 이상타 싶어 알아봤지만 당시 자네 할아버지가 말한 목격자라는 아이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네. 왜냐하면 나에게조차 그 아이가 자신의 손자라는 사실을 숨겼거든. 아마도 자네가 해를 입을까 걱정이 든 모양이야. 그 결과 십 년이 지나서야 목격자가 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뒤늦게나마 자네를 찾아볼까도 했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터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기억 속에서 그 일을 지웠네. 그렇게 한참을 잊고 살고 있다 얼마 전 금괴 강탈 사건 때문에 조사를 하던 중 자네가 그의 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네.”
“그렇군요.”
조금은 상황이 이해가 된 듯 우현은 끄덕여 간다.
“내 그때 그 교통사고에 대해 따로 조사한 것들은 다음에 거래할 때 보내줌세. 한번 읽어 보게나.”
“고맙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말입니다.”
“아닐세. 이제야 이 사실을 알린 내가 더 미안하지.”
“그럼, 나중에 거래 때 뵙겠습니다.”
“그때 봄세!”
이 말을 끝으로 둘의 그 긴 통화가 끝이 났다.
수화기를 놓기 무섭게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어쩌려고 거래를 한다고 하십니까? 거기다 보석은 또 뭐고 말입니다.”
“맞다, 우현아! 여기서 멈춰야 한다. 백파라는 자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대통령마저 두려워하는 지옥의 사채꾼이라고!”
아우성대는 그들과는 달리 레이젠은 피식 웃어갔다.
“시간을 벌 생각이냐?”
“시간?”
난데없는 시간 타령에 임동수는 눈만 끔벅댄다.
그걸 보며 내젓던 레이젠은 말을 이어나갔다.
“자넨 우리가 거래를 끊겠다면 백파라는 자가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럼, 강제라도 계속 거래를 하려 들 것이라는 말입니까?”
“그가 그리 금괴 매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을 터! 어떻게든 계속하려 들 것이 분명하네.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대륙으로 건너가는 것이네. 하지만 이대로 가기엔 아직 대륙의 상황이 녹록치 않으니 모든 것이 안정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속셈인 것이지.”
그것도 잠시 임동수마저 ‘아!’하며 아는 체를 하자 서우 아버지는 맘이 급해져갔다.
왜냐하면 그의 귀엔 레이젠이 하는 말이 이상한 외국말로만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이냐?”
그제야 서우 아버지가 왜 그리 멀뚱하니 있었는지 안 임동수는 서둘러 예비로 들고 있던 통역마법이 걸린 반지를 꺼내 들었다.
“대륙에 사는 사람이라 언어가 달라서 그렇습니다. 이걸 끼면 좀 나아지실 겁니다.”
웬 반지냐 싶었지만 끼면 상대의 말이 들린다는 말에 일단 끼고 몇 마디 들어봤더니…… 희한하게도 조금 전 원숭이 울음소리 같던 말이 꼭 한국말처럼 귓가에 들려온다.
누가 들으면 원래 한국 사람인 양 말이다. 서우 아버지는 혀를 내두르며 내저어간다.
“이거 하나 있으면 외국 말을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될 듯싶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맞는다는 듯 임동수 또한 동의를 표한다.
물끄러미 둘을 보던 우현은 두 사람의 손에 낀 반지를 보았다.
‘통역마법이 걸린 반지라…… 한번 팔아봐? 어째 괜찮을 듯싶은데 말이야.’
본성은 못 속인다고 한순간 발동된 상인 기질로 인해 그는 속으로 이해타산을 맞춰본다.
하나, 채 계산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서우 아버지가 말을 건네 왔다.
“그러니까 대륙으로 넘어가기 전 기반을 다지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그랬다는 것이냐?”
“그쪽은 계급이 존재하고 창칼이 쏟아지는 중세 시대입니다. 별다른 지지기반 없이 상단 하나 믿고 가기엔 너무도 힘든 세상입니다.”
“그럼, 기반을 닦을 동안 거래를 계속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아까 첫 번째 요구 사항에 2년을 넣은 것이고?”
“그쪽과 이곳과의 시간은 5대 1. 즉, 이곳에서의 2년은 그곳에선 10년입니다. 그 정도 시간이라면 충분히 기반을 닦을 수 있다 여겨집니다.”
턱을 매만지던 그는 이내 고개를 주억댔다.
“그런 생각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구나! 근데 지지 기반은 어떻게 닦겠다는 것이냐?”
잠시 말을 끊던 우현은 생각했던 바를 꺼내 놓았다.
“우선, 지금 준비 중인 몇 가지 물품 공장 설립과 대륙에서 제조 가능한 물품을 선발해 개발해서 여기의 원조 없이도 상단을 꾸려나갈 수 있는 물품 제조 기반을 조성할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이쪽의 물품 없이도 팔 수 있게끔 하겠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듯 끄덕이던 서우 아버지가 깜박했다는 듯 물어갔다.
“참! 아까 보석상을 하겠다고 한 건 왜 그런 것이냐?”
“앞으로 시행할 사업들의 자금 확보를 위한 것도 있지만 제가 금괴와 보석 말고도 또 다른 거래 품목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식시켜 쉽게 건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을 붙인다고 했을 때 금괴와 보석 담당자로 앉힌 것도 다 그 때문이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미끼로 쓰겠다는 것인데 잘되겠느냐?”
“길어야 1년이 다일 겁니다. 아니, 어쩌면 별 효험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상대는 그 누구도 아닌 백파니까 말입니다.”
백파를 들먹이는 그에 서우 아버지의 낯에 근심이 깃든다.
“위험하지 않겠느냐?”
“어차피 백파와 관련된 이상 위험하지는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되도록이면 빨리 준비해서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일단, 가족들에게도 당분간은 비밀로 하자꾸나. 우리도 입조심하고 말이야.”
알겠다는 듯 모두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그들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도 높게 토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