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77
차원상인 077화
딸깍!
내려지는 수화기와 함께 돌연 백파에게서 웃음이 흘러나오자 박정숙이 물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다. 간만에 당찬 놈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다.”
슬쩍 콧등을 찡그리다 재차 물어갔다.
“혹 우현이란 자 때문인가요?”
“그래, 이놈이 그 문제의 금괴 주인이라고 하더구나.”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제법 운이 좋은 모양이군요.”
“운만 좋은 게 아니라 깡도 있고 생각도 있는 모양이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백파란 이름으로 협박하자마자 되레 거래량을 늘리자는구나! 거기다 2년 뒤엔 금괴 판매를 합법화하고 싶다는구나.”
박정숙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그 말은 2년 안에 사고 싶은 양을 다 사란 말이잖아요?”
“그만큼 금괴가 많다는 것도 되지.”
“철이 없어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원래 대범한 건지 분간이 안 가네요.”
고개가 절레절레 내저어진다.
그 모습에 백파는 피식 웃었다.
“아무렴 핏줄이 어디 가겠느냐? 과거 우현이의 할아비인 놈도 나한테 대든 적이 많았다. 서로 주먹다짐도 했고 말이다.”
“백파 님이 싸움을 하셨다는 말입니까?”
“뭘 그리 놀라느냐? 소싯적엔 남자라면 누구나 그런 것을 말이다.”
“그게…… 백파 님이 그러셨다는 게 좀 믿기지 않아서요.”
“하긴, 나와 주먹다짐을 한 사람은 그 친구 놈이 유일하지.”
잠시 말을 끊은 백파는 옛 생각에 잠긴 듯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그린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던 그는 박정숙을 깜박했다는 듯 말을 건넨다.
“그건 그렇고 종로 오 사장과 임 사장! 아직 보석상 하고 있지?”
“예, 그런데요?”
“조만간 내 물건을 줄 테니 팔아보라 일러라.”
“설마…… 금괴에 이어 보석까지 판매하겠다는 건가요?”
“그렇다는구나!”
“대체 정체가 뭐기에 금괴와 보석 둘 다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너무 어이없어서 그런가?
평소와는 다르게 반문까지 해댄다.
“오랜만이구나! 네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죄송해요. 너무도 황당해서…….”
“나 역시 예측 못한 일이니 그쯤 해 두어라.”
연신 허리를 숙이는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제지해간다.
잠시 틈을 둔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그나저나 우현이란 놈에게 사람을 붙여 알아보려 했건만 그건 힘들 것 같구나.”
“아까 우리 측 사람을 쓴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아주 금괴와 보석 담당자에 앉힌다더구나. 한마디로 거래까지가 끝이라고 선을 딱 긋는 것이지.”
“그래요? 보통은 일에는 관여 못하게 관리직이나 한직으로 돌리는데 놀랍군요.”
박정숙은 예상 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동의한다는 듯 백파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만약 그리했다면 우현이란 자의 동향 파악이 더 쉬웠겠지. 일에 관여는 못해도 이리저리 기웃거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지금 들은 것으로 보아 백파 님 말씀대로 머리가 좋다고는 해야겠지만…… 일개 영업 사원이 그 정도까지 수를 세고 한 것 같지는 않네요.”
“그거야 시간이 가면 알겠지. 참! 소연이 좀 불러라.”
“손녀 아가씨를 말입니까?”
“다른 사람보다는 그놈을 우현이 곁에 두는 것이 좋을 듯싶으니 말이야.”
알겠다며 주억대던 박정숙이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뭐더냐?”
“왜 우현이라는 자를 그냥 두는 것인가요? 혹시 친우의 손자라서 그러신 건가요?”
“언제 내가 친구고, 가족이고 그런 것을 따지더냐?”
“그럼, 왜 굳이 그와의 거래를 통해 금괴를 가지시려는 겁니까? 그냥 찾아가서 금괴와 보석의 출처만 캐면 되는 것을 말입니다.”
이유가 궁금한 듯 박정숙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백파는 옆에 있던 찻잔을 들어 마셔 입술을 축이고는 답을 하였다.
“나도 그러려고 했었지. 근데 말이야. 갑자기 거래를 늘리는 것이 뭔가 이상해서 그만뒀다. 그 많은 돈을 단순히 쌓아 둘 것만은 아닐 것이고 따로 생각이 있다는 것이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말이야. 뭐, 과거 그놈 부모 사건도 있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무슨 사건 어쩌고 하시던데…… 그건 또 뭔가요?”
“여수 기자 부부 자동차 추락 사건 기억나느냐?”
잠시 눈을 끔벅대던 그녀가 끄덕였다.
“생각나요. 하지만 그 일은 백파 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설마 백파 님과 연관이…….”
찻잔을 내려놓은 백파는 박정숙의 말을 끊었다.
“거기까지 하지. 그 일에 관해서 자네가 알 것은 없으니 말이야.”
“아, 알겠어요.”
한기로 덮이는 낯빛에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그런 그녀를 보던 백파는 찻잔을 들어 마셔갔다.
“앞서 말한 대로 우현이가 바라는 대로 해주어라! 그다음에 그놈이 가진 금괴나 보석에 대한 출처를 얻어내도 늦지 않을 듯싶으니 말이야.”
“옳으신 말씀이세요.”
슬며시 고개를 숙인 박정숙은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홀로 남은 백파는 화선지에 난을 치다 이내 붓을 벼루에 놓고 만다.
“보고 싶구만! 우현이란 놈이 앞으로 어찌해 나갈지가 말이야.”
제4-1장
백파의 통화를 한 며칠 뒤, 우현은 대륙으로 상행에 나설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부서진 창고를 대신할 곳을 찾아 알아봤는데 이걸 어찌 알았는지 백파가 영등포 외곽에 좋은 자리가 있다며 사람을 보내왔다. 창고가 세 개씩이나 되는 그곳은 전보다 세 배는 더 크고 튼튼하게 지어져 맘에 들었다. 거기다 가격도 헐값이라 할 정도로 엄청나게 싸게(백파가 그리 만든 거라 짐작하지만) 나와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백파가 준 것인데 꺼림칙하지 않느냐 하겠지만 우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차피 2년 안에 대륙으로 건너갈 것인데 굳이 받지 않는 것보단 백파를 최대한 이용하는 쪽으로 선회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몰핀에 이어 백인철 사건을 겪으면서 우현의 생각이 완전히 바뀐 탓이라 볼 수 있었다.
그 예로 창고가 확보되자 우현이 다음으로 한 것은 임동수에게 경호업체를 설립케 한 것만 봐도 능히 알 수 있다. 이는 혹시 모를 백파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지만 과거처럼 말로만 부르짖는 힘이 아닌 대륙이든, 현대이든 자신을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갖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즉, 더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굳은 결의라 볼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우현은 상단 호위대 중 일부를 선발해 데려올 예정이며 필요에 따라 대륙은 물론, 중원에서도 힘을 빌릴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현대식 무기는 다른 곳에 가져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껏 그랬듯 각 차원간의 무력 불균형을 깨는 일은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경호업체까지 설립에 들어가자 그는 서우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변호사를 찾아가 물류상사 설립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아진 거래량도 그렇고, 반년가량 사들인 물건들에 대한 문제들로 인해 부득이하게 회사를 차릴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채 상담이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지금껏 물건을 사들일 때 사용한 자금의 출처 때문이었다. 비공인 금괴를 팔아서 만든 돈이기에 공식적으로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도저히 답이 보이질 않았다. 난감해하던 우현은 결국 백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그라면 이 일에 대한 해법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우현의 생각에 주위 사람들은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금괴 거래를 비롯해 백파에게 너무 많은 빌미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현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백파에게 기댐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고 안도하게끔 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에 주위 사람들은 동의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파가 그 정도도 눈치를 채지 못할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위의 걱정과 우려 속에 우현은 백파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한데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행적에 대해 조사했던 것일까? 사정을 듣기 무섭게 백파는 백철은행의 대출 담당에게 연락해 그곳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식으로 자금 출처를 만들어줬다. 그것도 과거 사용했던 것부터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돈까지 전부다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파는 페이퍼 컨퍼니를 만들어 지금껏 대륙에 판 물품들을 그곳을 통해 판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대출 받은 것을 탕감한 것처럼 꾸몄다. 한마디로 서류상으로는 하자가 없게끔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백파의 도움으로 문젯거리를 해결한 우현은 회사 설립에 들어갔다.
자금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창업주만은 그나 서우 가족이 아닌 제3자로 하였다. 굳이 복잡하게 일을 만든 것은 훗날 백파가 자신을 건든다 해도 회사만은 손을 못 대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서류 문제가 해결이 될 동안 우현은 서우를 상무 자리에 앉힘과 물건들을 사드려 물량 확대 및 거래량의 원활함을 꾀하였다. 동시에 대륙에서 가져온 가죽으로 만든 여성 구두와 가방 등의 판매와 할인 마트 설립 건도 맡게 해 이후, 좀 더 자금 유입에 원활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대륙에서 가죽을 가져와 사업을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 대륙으로 가져가서 할 사업들을 간추려갔다. 이곳에서 오래지 않아 가야 하는 만큼 어느 정도 준비해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바쁘게 일을 추진해 가는 상황에서도 우현이 빼먹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마석을 통한 차원 이동시 전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 알기 위한 실험이었다. 이는 차원을 넘어 상행할 때 많은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더 중요했다. 소네스가 준비해준 마석들 이용해 십여 차례 차원이동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좋아졌음을 깨달았다.
우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전에는 창고에서 창고로 정해져 있었지만 지금은 가고 싶은 곳으로 곧바로 갈 수 있다.
물론 내 맘대로 가 아닌, 한 번이라도 가본 곳만 갈 수 있고 6등급 이상의 중급 마나석(마나석은 1~8등급까지 있으며 낮을수록 좋다.)을 써야 돼서 돈은 좀 나가지만 최대 컨테이너 박스 세 개, 또는 사람 세 명을 데려갈 수 있고 거기다 연속으로 세 번까지 오갈 수 있다는 편리성이나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더! 마석을 통해 차원 이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주 특이한 신체적 특성이었다. 다른 이들의 경우 심장을 통해 마나를 사용하는 데 반해 우현은 묘하게도 손바닥에 통해 그리할 수 있다.
문제는 심장과는 달리 손바닥에 써클을 만들어 둘 수가 없어 마석과 같은 것을 손에 쥐어야만 마나를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할머니가 주었던 라이타에 박혀있던 충전식 마석이나, 얼마 전 백인철과의 싸움에서 마석을 쥐어야만 텔레포트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