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78
차원상인 078화
어쨌든 더 강력해진 능력(?)과 마석의 중요성을 안 그는 앞으로 일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데 수월해질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우현은 차츰차츰 앞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 ‡ ‡
타탁! 타타탁!
키보드를 치던 우현은 손에 쥔 서류를 살펴보다 목을 매만졌다.
제법 오랫동안 일을 해서 그런지 뻐근한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목을 풀어대던 우현의 눈에 자그마한 창 너머 서서히 빠져나가는 2톤 트럭을 보인다. 벌써 세 대째 나가건만 여전히 창고 근처에 서 있는 트럭들보다는 적었다. 바쁘게 트럭과 창고를 오가는 인부들을 보며 뿌듯해하던 그때 창 옆에 붙은 달력 하나가 보였다.
“벌써 두 달이 지났나?”
이것저것 일을 벌이다 보니 어느 틈에 이리 시간이 지나갔다.
문제는 착수한 사업 대부분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이야 고작 해봐야 1년 조금 더 있게 될 건데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는데 누군가 말을 건네왔다.
“커피 드세요!”
슬쩍 돌려지는 시선 너머 검은 양복에 두툼한 점퍼를 입고 쟁반 하나를 든 티아가 보인다.
저번 백인철의 일을 계기로 완전한 개인 보디가드가 되어버린 그녀는 우현을 따라 서울로 왔는데 오자마자 사달라고 한 것이 바로 검은 양복이었다. 서우를 데리러 대륙에 갔을 때 레이젠이 입고 온 검은 양복이 멋있어 보인다며 속에 담아두었다가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네스를 시작으로 필리온, 엘테르 심지어 헤일러까지. 온통 양복을 사달라며 갖은 청탁을 했다. 결국 우현이 서우를 데려다 주고 나중에 다시 갈 때 양복만 백여 벌을 들고 갔으니 대충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검은 양복 없이는 못 산다고 할 정도로 티아의 양복 사랑은 남달랐다.
‘나중에 선글라스라도 하나 사줘야겠네.’
영화 속 보디가드가 떠올라서 그런지 왠지 선글라스를 껴야 제대로 된 모양새가 나올 것 같다. 멀뚱히 보고 있어서 그런가? 갸웃대는 그녀를 보며 우현은 빙그레 웃어갔다.
“잘 마실게!”
쟁반 위에 놓인 머그잔을 집어 들던 그의 눈살이 좁혀든다.
그럴 것이 잡는 순간 안경 쓴 뽀로로의 모습이 시야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 달 전, 창고 옆에 임시 사무실로 쓸 요량으로 컨테이너 박스 놓고는 그곳에서 쓸 물건을 사러 할인 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 근데 들어가기 무섭게 뽀로로 잔에 꽂히더니 인형, 시계, 공책, 심지어 젓가락까지 뽀로로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사들였다. 그 결과 지금 임시 사무실은 뽀로로의 낙원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뽀로로로 치장되어 있었다.
‘뽀통령이라고 하더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네.’
애써 이해해보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컵까지 뽀로로가 그려진 것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 할인 마트로 가서 평범한 잔 하나 사 와야겠다.
그때 문을 열고 서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우웁! 춥다. 3월이면 봄인데…… 뭔 날씨가 이리 추운지?”
“물품 수량 체크하고 오는 거냐?”
“어! 계약 한 수량 모두 들어왔어. 티아도 있었네. 티아 안녕?”
서우의 인사에도 티아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우현과 친구라는 점을 들어 편하게 반말로 하라 했지만 그녀는 맘에 들지 않는지 쉬이 말을 건네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사를 해도 매번 뻘쭘해지는 건 다름 아닌 서우였다. 오늘도 역시라는 듯 한숨을 내쉬던 그는 우현에게 말을 건넸다.
“그보다 저 인사 좀 어떻게 할 수 없냐?”
“인사?”
들려지는 검지를 따라 움직이던 그의 시선이 창 너머 연신 탄성을 질러대는 소네스로 향한다. 호기심 천국이라는 마법사답게 뭐든 보고 만지며 감탄을 해댄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서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다.
“어제 오늘 이틀간 내리 저러는데 아주 미쳐버리겠다. 아깐 일하던 사람이 정신병원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 어린 말까지 하더라고!”
“원래 마법사라는 사람들이 그래! 네가 좀 이해해!”
“그래도 그렇지. 저 정도면 심각하다고!”
하긴 자신이 봐도 좀 심하긴 하다.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을 미친 병자 취급할 수도 없던 터라 그냥 자신이 나서서 주의 주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소주병을 들어 눈가에 가져가 보는 그에게서 아련한 부시맨 향수를 느끼던 우현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물어갔다.
“가죽 공장장님이 보내신 건데 모레 토요일 아침에 풀릴 가죽 상품들 품목과 물량, 그리고 재고 상태야.”
서우는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건넸다.
받아든 것을 단숨에 읽어 내린 우현은 시선을 치켜들었다.
“대충 각 품목마다 200개씩 출하하기로 했네.”
“어! 현재 재고는 각 품목당 500개 정도 되는데 낯선 가죽에, 신생 브랜드인 걸 감안해 초도 물량은 그 정도로 하기로 했어. 나중에 상황 봐서 물량은 더 풀기로 했어.”
“그거야 공장장님이 알아서 잘할 거니 굳이 신경 안 써도 될 거고…… 가죽은 어때? 부족하지 않대?”
“부족하지. 그것도 많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의 딱 이십 배만 가지고 오란다. 그 정도는 있어야 각 종류 별로 2000개는 만들 수 있다고 말이야.”
“알았어. 대륙에 가면 분량 맞춰서 가져올게.”
“그렇게 좀 해주라.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공장장님이 전화하는 통에 내가 다 죽겠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한지 부르르 떨어댄다.
그런 그가 재미있는지 웃던 우현이 깜박했다는 듯 서둘러 물었다.
“참! 할인 마트에 대한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반응은 어때?”
“아무래도 할인 마트라고 하니까 가격 인하를 걱정하는 눈치더라고! 그래서 아직까지는 반응이 미온적이기는 한데 그래도 아주 나쁜 건 아니야. 할인 마트가 생기면 제일 좋은 건 다름 아닌 판로가 없어서 허덕이는 그들이니까 말이야. 조만간 쌍수 들고 환영할 테니 걱정 마!”
상무 자리에 올라서 그런가? 다른 때와는 달리 활력이 넘치고, 사업 추진력이 아주 좋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진짜로 그런 듯싶다. 피식 웃던 우현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근데 일전에 말한 연필 공장은 어떻게 됐어?”
“폐업 신청한 곳을 상대로 알아보고는 있지만 규모들이 너무 커서 말이야. 좀 더 알아보고 말해 줄게.”
“천천히 해! 어차피 우린 공장이 아닌 제조 기술을 얻어내는 것이 목적이니까 말이야.”
우현이 현대 문물을 대륙으로 가져감에 있어 제일 큰 벽은 다름 아닌 전기였다. 현대 문물의 특성상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춘다 한들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번잡스럽기는 하지만 제조 기술을 얻어내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것만 알면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 곧이어 들려온 말에 그 생각도 깨지고 말았다.
“근데…… 연필 공장이야 대충 어찌 될 것 같은데 다른 게 문제네.”
잔뜩 찌푸려지는 서우의 낯에 우현은 되물어갔다.
“뭐가 문제인데?”
“제지 공장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업이 기계화되어 있는 형편이라 제조 기술을 알아낸다 해도 기계를 가져가지 않은 이상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 재료들 중에는 필요에 따라 만든 혼합물인가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건 이곳에서밖에 구할 수 없어. 그렇다고 그것들을 대처할만한 것을 찾아보자니 박사님들과 같은 고급 인력을 모셔야 하는데 우리로서는 금전적이로나, 시간적으로나 부족해! 한마디로 대륙과 이곳 간의 과학 기술 격차가 너무나 큰 것이 문제야.”
우현은 팔짱을 낀 손을 들어 턱을 매만져갔다. 사실 재료 문제야 양초 역시 파라핀을 이곳에서 가져가 만들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거였다. 기계화나, 기술자와 같은 고급 인력 부족등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이렇듯 안 될 걸 알면서도 굳이 추진해 온 것은 쥐구멍에 볕들 날 있다고 어찌하다 보면 해결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아니, 현대 문명이 가진 기술력에 더 욕심이 났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고심에 찬 그를 보던 서우는 커피 믹스를 담은 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말을 건넸다.
“그러지 말고 눈을 조금 낮추지 그러냐?”
우현은 눈을 치켜들고 보았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현재로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대륙에서 사용하기는 힘들어. 제반시설도 없고, 그렇다고 자원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야. 그런 상황에서 굳이 돈 버려, 시간 버려가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내 생각에는 대륙 수준에 맞춰서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을 듯싶은데 말이야.”
솔직히 확실히 서우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미련은 더욱더 진한 빛을 내간다. 쉬이 끝맺지 못하던 우현은 결국 좀 더 생각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만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서우는 문뜩 떠오른 생각이 있는 듯 손에 쥔 잔을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나 언제 사람 붙여 줄 거야? 이젠 혼자 하기 너무 벅차다고!”
불만을 표하듯 불쑥 주둥이를 오리인 양 내밀어간다.
“조만간 김 팀장님하고 몇 분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텨봐!”
“며칠 전에 다 이야기 끝났다며. 근데 또 기다려?”
“명색이 회사원이다. 무슨 드라마처럼 사직서 하나 달랑 내면 끝인 줄 알아?”
“그거면 끝나는 거 아니야?”
“하던 일 인수인계도 해야 되고…… 어쨌든 복잡해! 그러니까 잠시만 기다려! 꼭 오실 테니까 말이야.”
“알았어!”
고개로는 끄덕이면서도 입으로는 연신 삐죽댄다.
못 말린다는 내젓던 그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참! 임동수 씨에게 맡긴 경호업체 건은 어떻게 됐어?”
“어제 군대시절 후임병인가 하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소네스 형님에게 종속의 인이란 걸 받았다고 들었어.”
“몇 명이나 데려 왔는데?”
“한 여섯 명 정도 된다고 들었어.”
우현은 눈살을 좁혀간다. 생각 외로 너무 적은 숫자였기 때문이었다.
‘후임병이면 특임대 출신들 같은데…… 그래도 여섯이면 너무 적지 않나?’
염려스러운 생각에 재차 서우에게 물어갔다.
“그게 전부래? 더 데려올 사람은 없고?”
“그건…… 때마침 저기 오니까 직접 물어봐!”
서우의 고갯짓을 좇아 시선을 돌리니 막 임동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일단, 앉으시죠.”
인사를 건네는 그에 우현은 자리를 권해갔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기 무섭게 티아가 커피를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에 그녀는 살포시 웃어준다.
조금 전, 서우 때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왜 나만 차별하는 거야?”
툴툴대는 그에 피식 웃던 우현이 물어갔다.
“듣자니 며칠 전 사람들을 데려왔다 들었습니다.”
“예! 후임병 여섯을 데려와 종속의 인을 찍게 했으며 두 명을 더 충원할 계획인데 생각처럼 설득이 안 돼 시간이 좀 걸릴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