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80
차원상인 080화
“그렇다면 창고에서 물품을 싣고 나간 차가 있다는 말인데 보름간 창고에 오간 차량들은 어떤가요? 그런 차가 있나요?”
“물건을 싣고 들어간 차량은 있어도, 물건을 싣고 나온 차량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현이라는 자는 그 어떤 운송업체와도 거래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로 판명이 난 걸로 보아 차로 물품을 실어 나른 건 아닌 듯싶습니다.”
“그럼, 사람이 그 많은 물건을 일일이 들고 나른단 말인가요?”
“죄송합니다만 그것까지는…….”
박형만은 죽을죄를 진 것인 양 고개를 숙인다. 그걸 보던 진소연을 어이없다는 빛을 내비쳐갔다. 물건을 내보낸 적이 없는데 창고가 비고 재정이 늘어나는 이런 기이한 일은 생전 처음 들어본 것이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한 듯싶으니 좀 더 알아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끄덕거리는 박형만을 본 진소연은 시선을 창밖으로 향해 돌렸다.
이 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뿌리 채 쥐고 흔들 그 지독한 인연이 될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제4-2장
“이곳이야?”
소네스의 물음에도 우현이 답하지 않은 채 눈살만 찌푸리고 있다.
그럴 것이 특임대 팀장과 지원군 문제로 대륙이 아닌 중원의 남궁세가 천휴당으로 왔건만 정작 도착한 곳은 웬 정자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위는 온통 연못에 갖가지 오색찬란한 화초와 아름드리나무들로 가득했다. 꼭 화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니 대충 어떨지 상상이 갈 것이다.
어리둥절해 있던 그때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귓가로 흘러 들어온다.
“우현 님!”
누군가 싶어 보니 저번에 자신을 붙잡아 창천전으로 압송을 했던 남궁명국이 나무 옆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간만에 봐서 그런가? 반가움에 손을 쳐들려는데 돌연 그가 입가에 검지를 댄다.
“조용히 하십시오.”
“무슨 일 있습니까?”
“일단, 저를 따라오십시오.”
연신 주위를 살피는 것이 뭔가 있다 싶어 우현은 사람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갔다.
연못을 지나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간 그들은 남들의 시선이 닿기 전에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도둑 고양이처럼 조심조심 한참을 가던 그들 앞에 뒷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근처 나무 뒤에 숨어 주위를 살피던 남궁명국은 문지기로 보이는 더벅머리를 한 사내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걸 본 그는 슬쩍 주위를 살피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남궁명국은 이 말을 끝으로 황급히 뒷문으로 내달린다.
우현 일행 역시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아 문지기가 열어준 뒷문 밖으로 나섰다.
세가에서 나왔다 싶자 우현은 대체 왜 이리 하는 것인지 물어갔다.
잠시 발걸음을 늦춘 남궁명국은 긴 한숨과 함께 답을 해갔다.
“그게…… 이젠 저곳은 남궁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궁세가가 아니라고요? 그럼, 저긴 누구 집이란 말입니까?”
“오장원이라고 상인인 오씨세가의 장원입니다.”
“예에?”
우현은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는지 이마를 잡아갔다.
“자, 잠시만요!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대체 남궁세가는 어디 간 겁니까? 이사라도 간 겁니까?”
“사실 남궁세가는 이미 파산한 지 오래입니다.”
“파산했다고요? 남궁세가가 말입니까?”
“부끄럽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현은 믿기지 않는 듯 멍한 기색을 띤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세가는 무림에선 견줄 이가 없다는 무림제일가가 아닌가?
거기다 저번에 자신이 남기고 간 물건만 해도 금자로 몇 백이 될 텐데 어째서 파산에까지 이르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저번에 얼핏 세가 사정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파산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안이 벙벙한 모습을 하던 우현은 확인하듯 재차 물어간다.
“제가 드린 물건은 팔지 않았습니까? 그것만 팔아도 아무리 남궁세가가 방만하다 해도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텐데 어찌 파산을 했다는 말입니까?”
순간 발걸음을 멈춘 남궁명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세가를 다년간 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는 겁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냐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2년 가까이 됩니다. 우현 님이 세가를 다시 찾은 것이 말입니다.”
“2년……?”
“정확히 말하면 629일이 지났습니다.”
“629일?”
우현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시간이 지났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황당함을 금치 못하던 그때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자, 잠깐! 629일? 내가 백인철 일로 현대에서 2달 3일 정도 머물었으니까 일수로는 63일. 그럼, 중원과 현대의 시간차가 무려 10대1이라는 말이야?’
그랬다. 저번에는 워낙 정신머리 없이 왔다 가서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중원은 대륙의 2배인 10대1이었다. 즉, 현대에서 하루는 대륙에선 5일이고, 중원에선 무려 10일이나 된다는 뜻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소네스는 슬쩍 티아를 보았다.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저도 그런 듯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아직 상황이 어떤지 자세히 모르니까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캐슬 신경 쓰고, 알았지?”
“그리할게요.”
티아에게서 시선을 뗀 소네스는 손에 낀 반지를 보았다.
“그나저나 통역마법 반지를 가져오길 잘했는데 안 그랬으면 무슨 말인지 통 몰랐을 거야.”
“맞아요.”
차원을 넘어 또 다른 곳으로 간다기에 혹시나 몰라 챙겼는데 잘한 듯싶다.
스스로 뿌듯해하던 소네스는 문뜩 상대와 편안히 대화를 하는 우현을 보았다.
‘그나저나 캐슬은 대체 어떻게 저 말들을 알아듣는 거야? 내가 알기로는 여기가 두 번째 왔다고 하던데 말이야. 혹시 차원을 넘나들면서 생긴 능력 중 하나인가?’
그러고 보니 대륙에 처음 왔을 때도 현지인처럼 말을 잘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빠져 있을 동안 겨우 정신을 차린 우현이 다시 남궁명운을 찾았다.
“그럼, 남궁세가분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요 옆 산 부근에 친족들이 머물고 있고 대부분 떨어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에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전부 산에 사는 건 아닙니다. 세가에 있던 하인들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넘어간 상태고 세가 제자 중 대부분 세가를 나가 삶을 영위하습니다. 개중에는 저처럼 운 좋게 장원 호위무사나 표사로 일하고 있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낭인 또는 흑도들의 수족이 되어 칼에 목숨을 걸고 벌어먹고 있습니다.”
“그럼, 산속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산에는 직계를 포함해 대략 삼십 명가량이 있는데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우현에게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무림제일가로서 명망 높은 그들이 숨어살 듯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먹고 살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틈틈이 찾아와 살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왠지 자신 때문에 이리된 듯 죄책감이 든다. 미안함에 시선을 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쉽게 얻을 수 있을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당혹감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현은 속내를 내비치지 않은 채 슬며시 시선을 들었다.
“근데 오장원엔 왜 계신 겁니까? 혹시 저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현재 오장원의 일꾼으로 있습니다. 혹시나 우현 님이 오시면 마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얼마나 그곳에 계셨던 겁니까?”
머뭇대던 남궁명운은 이내 나지막이 답을 해간다.
“1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줄어드는 말소리만큼이나 얼굴 또한 딱딱하게 굳어져간다.
1년간 자신만 보며 기다린 이들의 애끊는 절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굳어진 그의 낯을 살피던 남궁명운은 안절부절못했다. 가주가 명하길 우현을 보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데려오라 하였다. 한데 막상 만나고 보니 그의 곁에는 정체 모를 두 사람이 있었다.
특히나 여인으로 보이는 이의 눈빛에 어린 기광은 절정 고수의 것과 비슷해 고작 일류에 밑에 머무는 자신으로서는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해하던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태상가주님을 만나 뵈러 가죠.”
“정말이십니까?”
“예! 지금은 그것이 우선일 듯싶습니다.”
걱정거리를 한 방에 날려주는 그의 말에 남궁명운은 서둘러 앞을 나선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벼워진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으며 나아간다.
그의 뒤를 쫓아가는 우현 곁으로 소네스가 바짝 다가서갔다.
“이대로 따라가는 거 괜찮은 거냐?”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까 듣자니 남궁 뭐시기 하는 곳이 파산했다고 하기에 말이야.”
“형님 말씀대로 파산한 것은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림제일가가 어디 가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히 갔다 앞으로의 상행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 돼서 하는 말이다.”
소네스를 보던 우현은 입가에 미소를 그려간다.
“사실 전 이 일이 우리에겐 큰 행운이 될 듯싶은 생각이 듭니다.”
“행운?”
“예! 나머지는 가서 들어보시면 알 테니 그때까지 참아주십시오.”
걱정 말라는 그의 말에도 소네스는 여전히 염려가 된다.
그럴 것이 가끔 우현을 보면 너무도 착하게 세상을 사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과는 많이 그가 변했다는 것은 잘 모른 채 말이다. 어쨌든 길을 떠난 그들은 남궁명운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었다. 굽이굽이 산자락을 지나 한 절벽 밑 나지막한 언덕에 도달하자 허름한 집한 채와 함께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서 그런 것일까?
하나같이 경계심이 가득한 것이 지난 2년간 어찌 보내왔는지 쉬이 짐작케 한다.
집 앞에 선 남궁명운은 고개를 돌려 우현을 찾았다.
“안에 기별을 넣을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알겠다며 끄덕이자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는 틈을 타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데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보인다.
물론 자신을 알아보고 조금은 수그러든 이도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경계하는 눈빛들이 더 많았다. 소네스도 심히 안 좋은 듯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만다.
“이거, 참! 불편하기 짝이 없군그래!”
그의 말 때문인가? 한순간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간다.
슬쩍 시선을 돌려 책망의 빛을 보내지만 여전히 소네스에게선 불편함만 가득하다.
그걸 보며 한숨을 짓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이군!”
한없이 낮은 목소리지만 그 속에 반가움이 담겨있다.
낯도 좀 익은 것이 어디서 본 듯하다 싶던 우현에게서 탄성이 인다.
“아! 현 가주이신 남궁현철 가주님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