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88
차원상인 088화
어쨌든 좋지 않다고 하니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웜홀을 쓰는 건 자제를 해야 할 듯싶었다.
막 알겠다며 주억대려는데 돌연 레이젠이 그를 보며 물어왔다.
“근데 웜홀이나 워프 피어스 같은 건 어떻게 쓸 수 있게 된 건가?”
“얼마 전 대륙으로 왔다 저번에 창고에서 싸울 때 텔레포트가 떠오른 것처럼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못 미덥던지 채차 질문을 던져온다.
“정말 갑자기 알 게 된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레이젠은 알 수 없는 상황에 그저 고개만 갸웃거린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우현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형님, 제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차원을 넘는 능력이 커지면서 그리 된 것 같습니다.”
“차원을 넘는 능력이 커져서 그렇다고?”
맞는다는 듯 우현은 끄덕거려간다.
“솔직히 말해 텔레포트 같은 기술을 더 배울 수 없을까 하며 고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내린 결론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알 게 된 것이었고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텔레포트가 떠오른 시점이 바로 대륙이 아닌 중원으로 넘어간 뒤라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즉, 차원을 넘나드는 능력이 커질수록 텔레포트 같은 기술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전 대륙에 오가는 동안 떠오르는 것이 없나 살폈었고 그러는 와중에 웜홀과 워프 피어스를 쓰게 된 것입니다.”
턱 밑을 쓰다듬던 레이젠은 일리가 있다며 동의를 표했다.
“듣고 보니 그럴 가능법도 싶긴 하네만 아직은 확실치 않으니 점 더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싶네.”
“저도 그게 나을 듯싶습니다.”
알겠다며 주억대는 것을 보던 레이젠은 문득 하늘을 보았다.
제법 해가 위로 솟구친 것이 시간이 꽤 지났음을 깨달은 그는 서둘러 말을 건넸다.
“그러지 말고 이만 돌아가도록 하세. 오늘 할 일도 많다고 하지 않았나?”
“예! 조금 있다가 위령비 공원에 가야 하고, 그 뒤엔 양초 공장에 들러 어찌 돌아가는지 살필 생각입니다. 오후엔 상단 곳곳을 돌아볼 생각이고 말입니다.”
“즉위식 일로 왕성에 갈 준비도 해야 하지 않는가?”
“그것도 있었네. 하여튼 어제 이어 오늘도 꽤 바쁠 듯싶습니다.”
힘든 여정이 될 것이 상상이 되는 듯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런 그를 다독이며 레이젠은 발길을 돌려갔다.
‡ ‡ ‡
팔랑! 팔랑!
녹색의 잔디 위로 고개를 내린 갖가지 꽃들 사이로 유영을 하듯 날아다는 나비 하나.
노란 날개를 나풀대며 막 꽃에 앉아 지친 몸을 쉬려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온다.
팔랑팔랑 날아오르는 나비 밑으로 꽉 쥐여진 자그마한 손 하나가 보였다.
“에이! 놓쳤다.”
텅 빈 손을 보며 아쉬워하던 아이는 재차 나비를 잡으러 몸을 일으킨다.
“토미! 토미!”
“엄마, 잠깐만! 나비 좀 잡구!”
“토미야!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고 얌전히 있으랬지!”
짐짓 화난 듯한 여인의 눈빛에 토미는 멈춰 선 채 입술만 씰룩댄다.
불만 가득한 아이의 손을 잡고 그녀는 잔디 옆에 난 작은 소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색찬란한 꽃들을 때문일까? 찡그려졌던 아이의 낯에 웃음이 찾아든다.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따라가던 두 사람 앞에 하얀 분수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층 맨 꼭대기에서 뿜어진 물줄기는 각 층을 타고 흐르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일게 한다. 어느새 엄마의 손을 뿌리친 토미는 바닥에서 조그만 돌을 집어 들고는 분수대에 던져 넣는다.
두 손까지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감은 걸로 봐서는 뭔가를 비는 듯한 모습이다. 그걸 본 여인은 한숨을 흘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잠시 후, 기도가 끝났는지 되돌아온 토미의 손을 붙든 여인은 멈추었던 발길을 옮겨간다.
한 발, 또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주위에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 싶더니 이내 가득 차간다.
그들 사이 비집고 앞으로 나오자 하얀 벽 앞에 길게 늘어선 줄 하나가 보인다.
하나같이 조금은 침울한, 아니 슬퍼 보이는 얼굴들을 한 채 품에 안은 꽃을 벽 밑에 내려놓고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두 사람 역시 그들 뒤에 서서히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 길던 길이 차츰 줄어들더니 어느새 하얀 벽 앞에 서게 되었다. 앞전 사람들과 같이 꽃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깜박 잊고 빈 손으로 온 둘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때였다. 텅 빈 손 위에 하얀 목련화가 놓인 것은 말이다. 누군가 싶어 주위를 살피던 아이의 엄마의 일순 멈춰졌다. 그들 뒤에 미소를 짓고 서 있는 한 사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 상단주님!”
“절 찾기보다는 참배가 먼저 아닌가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아이 엄마는 서둘러 벽 밑에 꽃을 놓고 기도한다.
뒤따라 참배를 한 토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고맙습니다. 상단주님!”
넙죽 고개를 숙이고 가는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짓다 벽 앞으로 다가가 꽃을 내려놓고 기도를 하였다. 뒤따라 레이젠과 헤일러 또한 참배를 한다. 그들을 마지막으로 모든 참배가 끝나자 우현은 돌아서 사람들에게로 나서갔다.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 하나하나 마주하던 그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무릇 생명이란…… 단 하나의 존재에게만 있는 두 번 다시 없는 아주 소중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그게 날벌레든, 신분이 미천한 자이든 다 똑같습니다. 그런 것을 저희 상단을 위해 쓴 우리의 영웅들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몸을 돌려 하얀 벽을 대고 허리를 숙여간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매번 사람들은 당혹감은 금치 못한다. 특히나 진심을 담아 사죄를 하는 그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그럴 것이 지금껏 그들이 본 상단주나, 귀족들은 사죄나, 미안함커녕 신분이 하찮아서 그렇다는 등 욕지거리를 해대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욕만 들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괜히 심기라도 뒤틀리는 날엔 자신을 욕보였다며 죽을 만큼 얻어맞고 노예로 팔리거나,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곤 했다. 즉, 사람들에게 있어 상단주나, 귀족들은 목숨줄을 쥔 저승사자와 같았다.
그런데 우현은 전혀 그렇지를 않고 친구인 양, 가족인 양 사람들을 보살피려 한다.
그래서일까? 하나둘 허리가 숙여지더니 이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숙여간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말이다. 잠시 후, 모든 사람들이 허리를 세우자 우현은 발끝을 돌려 그들을 보았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위령비 공원을 완공하였습니다. 안타깝게 이 세상을 저버린 희생자들의 넋이 이제야 쉴 곳이 생긴 것입니다.”
한순간 주위에 무거운 적막이 깃든다.
과거 참혹했던 희생자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메마른 입새를 축이던 우현은 잠시 멈추었던 말을 이어나갔다.
“이에 전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하얀 벽을 세인트 월이라 하고, 오늘을 세인트 소울 데이라 명하여 일 년 단 하루, 이날만큼은 상단 문을 닫고 우리 영웅들의 고귀한 희생과 남은 이들의 슬픔을 되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상단이 문을 닫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며 대대로 그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입니다.”
순간 사람들에게서 웅성거림이 피어올랐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벽에 이름을 새기고 공원을 조성한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서 알지만 1년에 하루를 그들을 위한 날로 제정하고 상단까지 쉬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것도 잠시뿐 그 누구도 우현의 말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그들 역시 그의 의견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울함과 슬픔이 가득한 사람들을 훑어보던 우현이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여러분! 우리의 영웅들은 죽었다고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저 멀리 하늘 위에서 우릴 보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이리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말입니다.”
이 말을 들어서 그런가?
사람들 속에 미소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우현이 헤일로를 찾았다.
“음식은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준비하라 이르십시오. 그리고 오늘만큼은 유족들에 대한 시비거리나, 상처가 되는 일이 없게 호위대로 하여금 각별히 주의하라 하십시오.”
“그건 이미 다 말해뒀으니 걱정 마!”
잘했다는 듯 미소를 짓던 그는 이내 발끝을 돌려갔다.
상단주인 자신이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까 봐 자리를 옮기려 한 것이다.
그런 속내를 알아챘는지 뒤따라 헤일러와 레이젠도 나선다.
잠시 후, 공원에서 나온 우현은 예정대로 양초 공장으로 향하였다.
그간 공장 사정을 말로만 듣고 있었던 터라 이참에 상황이 어떤지 보러 나선 것이다.
“참! 상단 주거지 상황은 어떻습니까?”
질문을 듣기 무섭게 쫓아오던 헤일러가 뛰어와 답을 한다.
“현재 구할이 찼고, 나머지도 조만간 뽑게 될 앞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양초와 성냥 제작에 들어가면서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사람들을 더 뽑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그걸 말하는 듯하다.
“그래요? 근데 이번에 몇 명이나 뽑는 겁니까?”
“대략 50명쯤 뽑을 예정입니다.”
“50이라…… 이거 영지민의 반이 우리 상단에서 일을 하게 되는군요.”
“워낙 이곳 영지민이 적다보니 그럴 수밖에요.”
그랬다. 하임이트 영지민은 고작 해봐야 백구십 호 정도로 대략 삼백팔십여 명이다.
거기서 아이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빼면 삼백여 명쯤 되는데 그중 현재 상단에서 일하는 이가 구십여 명, 이번에 뽑을 인원까지 치면 딱 반이 된다. 공교롭게도 말이다.
“위성지부 설립 말입니다. 즉위식이 있는 왕성에서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내건 조건은 받아들이던가요?”
“일부러 맞춰 주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별말 없었습니다. 참! 위성지부에 조성할 주거지 말입니다. 규모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며 좀 더 키우는 것이 어떻겠느냐 묻던데 상단주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우현은 생각할 필요 없다는 듯 내젓는다.
“계획대로 그곳에 상주할 용병들과 관리관이 묵을 건물만 지으라 하세요.”
“지부에서 일하게 될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앞서도 말했지만 그들은 타 영지민입니다. 자칫 그곳 영주와 분쟁이라도 일으켜 위성지부가 문을 닫기라도 한다면 본 상단으로써는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니 괜히 주거지로 들였다가 영지민을 빼돌린다는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르세요. 또한, 그곳에 머물게 될 용병들에게도 지부 치안 외엔 영지와 관련된 어떤 일도 간섭하지 말라 하세요.”
“말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영지민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이탈을 막는 것도 영주들의 큰 고민거리라는 것을 아는 헤일러인지라 더는 거기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