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89
차원상인 089화
“참! 이건 위성지부로 파견 나갈 사람들 목록입니다.”
갖고 온 서류 중 몇 장을 꺼내 내민다.
잠시 훑어보던 우현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 부서마다 한 사람씩 배치해, 총 열 명이 가는군요.”
“우선은 반년마다 바뀌는 순환제로 하기로 했습니다.”
“상단을 떠나 객지로 가는 만큼 그에 따른 보수 역시 생각하셨겠죠?”
“지금 받는 것에 5할 정도를 더 주기로 했고, 다녀와서는 좀 더 주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가족이 걱정되면 데리고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타지에 나가는 사람들치고 가족 걱정 안 하는 이는 없죠.”
좋은 생각이라는 듯 우현은 얼굴에 미소를 그린다.
“그럼, 이대로 시행할까요?”
“예! 이대로 해주십시오.”
빙그레 미소를 짓던 우현은 양초 공장 문을 열었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얼굴은 물론이고 온 전신을 붉게 물들여간다. 제법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니 대충 그 열기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매우 덥습니다.”
헤일러의 말에 동의를 표하던 끄덕이며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화로에는 천장에서 길게 늘어진 쇠사슬에 연결된 어른 두 사람 덩치만 한 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이백여 개쯤 되는 양초 모양의 쇠틀들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십여 명의 사람들이 그중 하나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닌가?”
“아무래도 틀의 길이를 조정하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만…….”
“그것 보다는 두께를 더 두껍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두껍게 하려면 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그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길이를 조정하든, 두께를 조정하든 죄다 새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상관없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는 그들 곁으로 우현이 다가섰다.
“양초는 여전히 6시간 만에 꺼집니까?”
그제야 그를 알아본 사람들을 서둘러 허리를 숙인다.
“상단주님 오셨습니까?”
당혹해하는 그들을 보며 빙그레 웃어 보이는 우현 곁으로 양초 공장장이자, 전직 대장장이인 호른이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상단주님!”
“실험이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렇긴 합니다만 요 며칠 실험을 통해 크기를 얼마큼 늘려야 하는지 대략 알게 된 터라 조만간 정확히 8시간 만에 꺼지는 양초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냐며 고개를 주억대는가 싶더니 재차 물어온다.
“현재 상황으로 보아 출고량, 그러니까 하루 평균 양초 몇 개를 만들 것 같습니까?”
“확실한 것은 만들어 봐야 알겠지만 대충 하루에 500개는 만들지 않을 가 싶습니다.”
“500개라…… 그럼, 한 달이면 대충 15,000개는 만든다는 말이군요.”
우현의 눈살이 살며시 찌푸려진다. 그럴 것이 양초 15,000개는 고작 해봐야 500세대(한 가족당 한 달 내내 밤마다 양초 1개를 소비할 경우임)가 다다. 이것도 평민으로 생각해서 한 계산이지 왕실이나, 귀족들을 끼어서 계산한다면 100세대도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물론 대륙에 넘어오기 전에 철공소에 양초 제작 기구를 추가로 만들어달라고 신청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1철공소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의논해봐야겠는데…….’
문외한인 자신보다는 전문가들인 그들이 더 나은 듯싶어 일단 뒤로 젖혀 놓기로 맘을 먹었다.
“참! 가로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침 양초를 올리는 부분에 덮힐 유리가 만들어진다 하여 시험용으로 다섯 개 만들어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들기 어렵지 않았습니까?”
“그저 쇠기둥에 덮개 하나 연결한 것에 불과한데 힘들 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어려운 건 지금 제작 중인 샹들리에인가 뭔가 하는 물건입니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럴 것이 샹들리에는 단순히 방을 밝히는 양초들을 올려놓는 것이 아닌 예술품으로도 인정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모양새, 안정성에 곳곳에 새겨지는 아름다운 무늬에 갖가지 크리스털보석까지 온 신경을 써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공정이기도 하다. 우현은 호른을 다독이며 그의 지친 마음을 달래간다.
“앞으로 여기서 만들어진 샹들리에는 이곳 알카인 왕국 왕실과 귀족은 물론이고, 전 대륙에 있는 왕국들의 왕궁과 귀족들의 저택 천장에 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많이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힘을 내십시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넉 달 뒤 제 즉위식 날 저녁 왕성에서 있을 연회장에 걸 생각이니 틀린 말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왕실 천장에 걸린다고…….”
순간 호른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십여 개의 양초를 얹고 천장에 매달아 방을 밝히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 들었다.
한데 우현의 말을 듣고 보니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닌 하나의 예술품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다 알카인 왕성 천장에 매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전 대륙의 귀족 저택과 왕실 천장에 걸리게 된다니 이거야말로 대장장이로서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천우의 기회라는 것도 말이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부르르 몸을 떨어대던 그는 확인을 하듯 되물어온다.
“그, 그럼 양초도 같이 가져가는 겁니까?”
“양초와 가로등 또한 가져갑니다. 그러니 좀 더 노력해서 정확히 밤 동안 탈 수 있는 양초를 만들어 주십시오. 가로수는 삼십여 개, 양초는 대충 사천 개 정도가 필요하고 말입니다.”
“사천 개? 아……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거, 걱정 마십시오.”
너무 놀라서 그런 것일까?
호른은 말끝마다 허리를 숙여댄다.
그걸 보며 웃던 우현은 시선을 가로등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오늘이 가로등 첫 시험식이군요.”
“예! 더불어 기상악화에 관한 시험도 같이 할 겸 소네스 총관님에게 윈드 마법진과 양철 물뿌리개를 받아 준비해 둔 상태입니다.”
“윈드…… 마법진이요?”
설명을 해달라는 듯 우현의 고개가 옆으로 향한다.
그의 시선을 받은 호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차근차근 답해갔다.
“윈드 마법진은 말 그대로 바람이 불게 하는 것으로 마나석을 이용한 1써클 마법진입니다. 대충 훈풍보다는 조금 더 바람이 거셉니다. 간단히 말해, 비바람 속에서도 얼마나 가로등 양초가 얼마나 버텨 낼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하긴…… 가로등 불빛은 사방이 뻥 뚫려야 더 빛을 발하니 비바람과 같은 기상에도 대비를 해야겠군요.”
“상단주님 말씀대로입니다.”
그제야 이해가 된 듯 우현이 주억대간다.
“그럼, 유리는 언제쯤 온다고 합니까?”
“조금 전 시제품을 보낸다고 했었는…….”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장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선다.
“공장장님! 가로등 덮개 유리 가져왔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그를 본 호른은 빙그레 웃어갔다.
“이제 도착한 모양입니다.”
“가로등 실험하는 것을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상단주님께서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말입니다.”
“그럼, 실험을 시작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한차례 주억댄 호른은 서둘러 덮개 유리를 가져온 이에게 다가섰다.
빼앗듯 가져가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사내는 옆에 서 있는 우현을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사, 상단주님! 유리 공장의 파보아라고 합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공장이 터나가라 소리 지르는 그에 일순 사람들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조금은 당황한 듯한 모습에 우현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제가 상단주라고 그리 크게 인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목청이 커서…….”
미안하다는 그에 헤일로가 한마디 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 큰 목소리가 시비 거는 것처럼 들린다고 맨날 유리 공장장님에게 혼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웃는 그에 뒷머리를 긁적이던 파보아가 빽하니 소릴 지른다.
“맞다! 상단주님께 드릴 게 있었지.”
귀청을 찌르는 그 고함에 옆에 있던 레이젠이 이맛살이 좁혀든다.
“목소리 좀 낮출 수 없겠는가? 매우 거슬리는군.”
“죄, 죄송합니다.”
눈을 부라리는 그에 파보아는 황급히 허리를 숙인다.
우현 역시 잠시 멍해 있던 빛을 지우며 물어갔다.
“제게 대체 뭘 주기에 그리 소리를 지른 겁니까?”
“공장장님이 가로등 덮개 유리 배달 가면서 주라고 하신 건데요.”
파보아는 품 안을 이리저리 헤집더니 가죽에 싸인 뭔가를 꺼내 들었다. 뭔가 싶어 티아를 시켜 건네받은 우현의 낯에 미소가 깃든다.
그럴 것이 가죽 안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유리병으로, 어렸을 적 우유병이라 불리던 것과 같았다. 유리 세공사가 있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이렇듯 똑같이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게 대체 뭔데 그리 좋아하는 건가?”
레이젠의 물음에 우현은 손에든 병을 들어 보였다.
“아! 앞으로 출시될 신상품을 담을 병입니다.”
“신상품? 양초 말고도 신상품이 더 있는가?”
“예! 커피 우유요!”
유리 세공사가 있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떠오른 것이 커피 우유이긴 하지만 이것을 만들어 팔기로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재 커피는 귀족이나, 부자들만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태라 판매력에 한계가 있고, 소비 계층 또한 좁았다. 이는 과거 8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그리 다르지 않았는데 그 당시 커피는 호텔 커피숍에서나 먹는 매우 고급 음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때 이 편견을 깨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커피 우유였다.
사람들이 잘 먹는 우유에 커피를 넣어 팔아 커피란 어떤 것인지 또 맛은 어떤지 알게 했으며, 이를 통해 인지도를 높여 훗날 대한민국 인구 중 70%가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잠재적 소비자까지 낳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현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은 물론이고 우유란 것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일반적으로 대륙에선 소젖을 짜낸 우유보단 양젖을 짜낸 양유가 더 많이 먹는 편이다.) 일거양득을 얻겠다는 나름의 계책이었다.
“커피…… 우유? 대체 우유가 뭔가?”
“소젖은 짠 우유에 커피를 넣은 겁니다. 참! 영지민 중에 소를 갖고 있는 이에게서 우유를 받아와 커피랑 섞어 만든 것이 있는데 한 모금 해보시겠습니까?”
“한번 줘보게!”
서재에 가서 시식하려 가지고 담아 온 주전자에 담긴 커피 우유를 잔에 담아 레이젠에게 줬다. 갈색이라서 그런가? 조금은 망설이며 코를 벌렁거리더니 이내 한 모금 입에 넣어본다.
“제법 맛이 괜찮군. 우유가 들어가서인지 특유의 커피 쓴맛이 부드러워져서 매우 먹기 좋아.”
“아직 커피랑 우유의 비율이 맞지 않아 좀 맛이 겉도는 경향이 있지만 조절해나가다 보면 더 맛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커피 맛이 좀 약하다 싶더니만 아마도 그 때문인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