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9
차원상인 009화
“저도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럼, 한번 보자.”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터라 가죽 주머니를 열고 침상 위에 부었다.
투투툭! 투투툭!
연신 떨어져 내리는 금화도 그렇지만 수북이 쌓이는 양이 족히 백 냥은 넘는 듯하다.
“뭐, 뭐가 이리 많아? 그것도 금화로 말이야.”
금화를 세던 세네스는 놀란 듯 입을 쩍 벌린다.
그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인지 멍하니 있다.
물끄러미 보던 우현은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큰 형님, 받으세요!”
주는 것이니 일단 받기는 했지만 이유가 궁금했던 레이젠이 물었다.
“이건 왜 주는 것인가?”
“여기 있는 금화 전부 큰 형님이 가지십시오.”
서로를 보며 눈을 끔벅이던 세 사람은 우현을 보며 재차 물었다.
“왜 주는 것인가?”
“이번 일 성공하면 수고비 받기로 했잖아요?”
“수고비? 설마 이것을 모두 주겠다는 말이냐?”
“예! 약속했으니까요.”
레이젠은 당혹스러운 빛을 띤다. 물론 수고비를 받기로 했지만 이렇듯 많은 액수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 갖기엔 너무 많으니 일부분만 주게!”
우현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아닙니다. 다 가지세요.”
“우린 이리 많은 돈을 받을 만큼 한 일이 없네.”
“물건을 팔게끔 도와준 것만 해도 저에겐 고마운 일인걸요.”
“그렇지만…….”
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소네스가 끼어든다.
“형! 뭘 그리 바보처럼 굴어. 자기 딴에는 우리 챙겨준다고 주는 건데 그럼 감사하게 받아야지. 자꾸 사양하면 릭 캐슬만 민망해진다고…….”
레이젠에게서 가죽 주머니를 뺏은 그는 금화를 쓸어 담았다.
네시아도 신이 났는지 양팔을 걷어붙이고 담는 데 동참한다.
금화를 모두 다 담은 가죽 주머니를 들어 올린 소네스는 씨익 웃었다.
“우리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오늘 한번 포식해보자! 어때?”
머뭇대는 레이젠과는 달리 네시아는 두 눈을 반짝이며 다가선다.
아주 두 손까지 모은 채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진짜요?”
“당연하지. 오늘은 내가 한턱 쏜다.”
“우와아아! 그럼, 오늘 배 터지게 먹어야지.”
“좋았어! 나를 따라라!”
“예! 작은아빠!”
한바탕 소란과 함께 뛰어나간 둘을 쫓아 레이젠이 나선다.
“네시아, 조심해서 가! 그러다 엎어지면 어떡하려고! 하여튼……. 캐슬! 자네는 안 가나?”
막 방문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여전히 방 안에 있는 우현을 보며 물었다.
“아까 계약하면서 긴장을 많이 했는지 피곤하네요. 조금 있다가 내려갈게요.”
그럴 만도 하다는 듯 레이젠이 끄덕거린다.
“백작을 상대로 그렇게 배짱 튕길 때부터 조금 걱정이 되긴 했네.”
“그땐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피식 웃던 레이젠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좀 쉬다 내려오게. 내 자네 몫은 따로 챙겨둘 터이니 말이야.”
“예, 그러겠습니다.”
홀로 남은 우현은 털썩 침대에 몸을 던졌다. 눕기 무섭게 몸이 노곤해지는 것이 곧바로 잠들 듯싶은데 이상하게도 쉬이 이루질 못했다.
“옷이 불편한가?”
낯설어서 그런지 왠지 입고 있는 옷이 맘에 안 든다. 결국 가방에서 옷을 꺼내서는 갈아입었다. 흙투성이 정장까지 입고 나자, 그제야 기분이 한결 편해진다.
“나도 영업맨 다 됐네. 정장이 이리 편하게 느껴지고 말이야.”
피식 웃던 그는 나무로 만들어진 창을 열고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그간 사람들과 함께 있느라 담배 한 개비 제대로 맛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라이타가 켜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말이다.
“시장인가? 사람들 참 많네.”
시야 가득한 건물 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오고 간다.
아마도 시장터인 듯 온갖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손님들과 흥정을 벌인다.
어릴 적 장터에서 보았던 그 광경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래서 그런가?
돌연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치민다.
“잠시만 기다려! 오빠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돌아갈 방법을 찾을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줘! 알았지?”
눈앞에 여동생들이 있는 듯 말을 한다.
손을 들어 허공만 움켜쥐던 그는 이내 한숨을 흘렸다. 집 생각이 나서 그런지 가슴 한편이 뭔가에 눌린 듯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재차 한숨짓던 우현은 라이터를 꺼내 켰다.
타탓!
순간 우현의 몸이 돌부처처럼 멈칫댄다. 입에 문 담배가 떨어진 것도 모른 채 그저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두 눈으로 멍하니 있었다.
“뭐, 뭐야?”
조금 전, 한적한 시골 장터는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 그의 앞엔 너무도 익숙한 회사 앞 정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움에 그저 입만 뻐끔대는데 회사로 돌아오던 선배 하나가 그를 보곤 황급히 다가온다.
“야, 우현아! 우현이 맞지? 너 이 자식! 대체 연락도 안 되고, 이틀 동안 어디 갔었어? 그리고 옷은 또 왜 흙투성이인 거야?”
“예에?”
“어디 갔었냐고? 너 때문에 회사 난리 났었어. 야, 내 말 듣고 있어?”
“회……사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그리도 돌아오고 싶었던 세계에 돌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제1-4장
쾅!
“3년간 결근 한 번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거기다 계약하기로 약속까지 잡아놓고선 얼굴 한 번 내밀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책상 위로 서류철을 내동댕이친 과장에게서 속사포 같은 불만이 토해졌다.
열중쉬어 자세를 한 채 서 있던 우현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떨군다.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한 걸 아는 사람이 이따위야?”
“…….”
“입은 뒀다 뭐 해? 벙어리가 된 거야?”
“죄송합니다.”
“또 죄송이야? 아주 입에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구만!”
또 한 번 푹 숙여진 고개를 보던 과장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됐어! 지금은 자네 낯 보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어서 가서 시말서나 써 와! 어서!”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온 우현이 서랍에서 충전해둔 배터리를 꺼내 휴대폰에 끼고 전원을 켜자 연신 벨 소리가 울려댄다. 부재 중 전화만 무려 사십 통에다, 문자는 육십 통이나 도착해 있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실종에 놀란 동생들을 비롯해 서우네 가족들이 보낸 것이리라. 확인할 필요 없다는 듯 휴대폰을 품에 넣은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근데 갑자기 피식 웃음이 치민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일장춘몽인가?”
한바탕의 봄 꿈. 그 말이 이렇듯 잘 어울릴 수 없는 듯하다.
허나, 아직 꿈에서 못 벗어난 듯 금괴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자신도 모르게 움켜쥐지만 손바닥엔 그 어느 것도 있질 않았다.
“하아~!”
긴 한숨에 진한 아쉬움을 담아 흘려보낸다.
잠시 후, 대충 시말서를 써 제출한 우현은 이내 집으로 돌아왔다.
허탈해서 그런 것이진 식욕이 뚝 떨어진 그는 부엌은 쳐다보지 않고 그대로 방으로 직행했다. 이불도 펴지 않고 실신하듯 바닥에 쓰러져 곯아떨어진 지 얼마나 됐을까?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오…… 일어나!”
“오빠 일어나라니…….”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현의 눈꺼풀이 들린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는 서연과 보영이 눈에 들어왔다.
“왔니?”
그가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서연이 물어온다.
“어제 그제 집에 왜 안 들어왔어? 연락도 안 받고 어디 갔었냐구?”
“일이 좀 있었어.”
“무슨 일? 대체 무슨 일이기에 동생들 전화도 못 받았냐고?”
“서연아!”
“왜? 오빠!”
빽 소릴 지르는 그녀를 보던 우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서연아, 보고 싶었다! 보영이도!”
난데없는 말에 서연은 물론이고 보영이까지 당혹스러워하였다.
평소 감정 표현이 서투른 그인지라 놀라움은 더욱 배가된다.
“그런 소릴 하면…… 누가 봐준데? 어제 그제 어디 있었냐니까?”
빽 소릴 질러보지만 정작 당사자는 안 들리는지 보영이에게 묻는다.
“실컷 잠을 자서 그런지 배가 고픈데…… 식사 준비는 됐어?”
순간 보영이의 미간이 좁아진다. 밥 타령을 하는 걸로 봐서는 평소의 그가 분명한 것 같은데 조금 전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슬쩍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오빠!”
“왜?”
“밥 먹기 전에 옷 좀 벗어요. 온통 흙투성이인 것이 아무래도 세탁소에 맡겨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에요.”
“옷?”
고개를 숙여 보니 이불 밑으로 흙투성이 정장이 보인다.
아마도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눕는다는 것이 그대로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뭐야? 왜 정장이 흙투성이야? 오빠! 대체 이틀 동안 어디서 뭘 한 거야?”
“일이 있었다고 했잖아.”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재차 추궁해보지만 아예 귀를 닫았는지 딴소리를 해댄다.
“아! 배고파! 나 좀 씻고 와서 밥 먹을 테니까 준비 좀 해줘!”
“알았어, 오빠!”
보영이가 밖으로 나가자 우현은 겉옷을 벗어 옆에 두고는 새 옷을 꺼냈다.
“왜 말을 안 해? 우씨!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그런 거냐고?”
“밥 먹고 나서 이야기하자! 알았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던 우현은 발걸음을 돌려 나간다.
그런 그가 기가 찬 듯 멍하니 있던 서연은 서둘러 뒤쫓아 간다.
하지만 채 달라붙기 전에 그는 이미 욕실로 들어간 상태였다.
욕실 문 앞에 선 그녀는 목청껏 소리쳤다.
“나 무시하는 거지? 그런 거지?”
“…….”
“오! 그래! 좋았어!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어디 한번 식사 때 어떻게 하나 보자구!”
이 말을 끝으로 홱 몸을 돌린 서연은 식탁 의자에 앉아 팔짱을 꼈다.
마치 오기만 하면 단숨에 요절을 내겠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내젓던 보영은 식사 준비에 열을 올렸다.
잠시 후, 시원하게 샤워까지 마친 그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런 우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연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한 소리를 해댄다.
“휴대폰은 장식이야! 왜 연락을 안 했어? 대체 왜 안 했느냐고?”
“…….”
“오빠! 어서 대답해?”
“…….”
우현은 대답 대신 그저 미소만 짓는다.
서연의 잔소리도 이때만큼은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녀는 그런 모습에 빈정이 상했는지 건너와 아예 옆자리에 앉아서는 연신 떠들어댄다. 어디 한번 계속 그리해보라는 듯 말이다.
“이유가 대체 뭐야? 뭔데 이러는 거냐구?”
계속되는 추궁에 보다 못한 보영이 그를 방으로 데려갔다.
괜히 식사하는 사람 체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오빠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그래?”
“식사 중이잖아. 체하면 어쩌려고 그래?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 나중에 물어봐!”
씩씩대던 그녀의 눈가에서 뚝 하며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또 우리 둘만 남겨지는 줄 알고 얼마나 두려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