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90
차원상인 090화
“그럴 겁니다.”
재차 맛을 보던 헤일러의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이 정도면 팔아도 무방할 듯싶군그래!”
팔아도 되겠다는 말에 헤일러도 궁금한지 한 잔 달라고 한다. 한 모금 마신 그도 제법 맘에 드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어…… 근데 커피 우유 말입니다. 듣고 보니 만들려면 우유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많은 것을 대체 어디서 얻으실 예정입니까? 제가 알기론 이곳 영지에서는 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은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문제가 있었군. 대체 우유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건가?”
듣고 보니 답이 궁금해진 듯 레이젠도 물어온다.
빙그레 웃던 우현은 슬며시 입새를 벌려가기 시작했다.
“우선, 인근 영지에 젖소를 키우는 곳이 있다고 하니 그곳에서 우유를 받아 만들어 팔 생각입니다. 위성지부를 통해서 제작 판매하고 말입니다. 타 왕국의 경우 제조법을 팔아 로열티를 받아먹을 생각입니다.”
“로……로열티?”
“로열티는 일종의 수수료라 할 수 있는데 가령 제가 약간의 계약금을 받고 양초 제조법을 가르쳐주는 대신 물건을 팔 때마다 일정량의 금액을 받는 것이죠. 형님이 물건을 50실버에 판다면 그중 5실버 정도 받는 형식이죠.”
턱을 매만지는 헤일러에게서 흥미로운 빛이 보인다.
“이익은 적겠지만 지속적인 재정이 확충될 것이니 장기적으로 볼 땐 아주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거기다 그런 방법이면 굳이 왕국뿐 아니라 전 대륙을 상대로 팔아도 되겠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아직 영지 외 기반이 부족한 우리에겐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고개를 끄덕대는 둘과는 달리 레이젠은 조금은 걱정스러운 빛을 보인다.
“아까 그러지 않았나? 판매한 물건에 대한 일정 금액을 받는다고…… 만약 상대가 판매한 물량수를 속이면 어떻게 되는 건가?”
우현은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유리병을 쳐든다.
“그래서 이게 필요한 것이죠.”
“유리병이 필요하다고?”
“예!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무늬가 없지만 이 병에 우리 상단 특유의 마크가 새겨질 것입니다. 즉, 커피 우유는 무조건 이 병에 담겨 판매가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병은 우리 상단 유리공방에서 만들 것이고 말입니다.”
순간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가 애써 유리병을 제작하려 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감탄을 마지않는 그와는 달리 헤일러는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미간을 한껏 좁히고 있었다.
“근데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좀 전 상단주님께서 유리병을 제조해 거래를 맺은 왕국에 제공하여 판매 개수를 파악할 수 있다 하셨는데 과연 우리 상단 유리공방에서 그 많은 유리병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우현 또한 낯이 굳어져갔다.
유리병을 만드는 것만 생각했지 수량에 대해선 전혀 고심한 적 없기 때문이었다.
“현재 유리 공방의 세공사는 총 열두 명! 하루 열 시간 정도 일하니까 시간당 5개씩만 만든다 치면 대략 600병 정도 나오겠네. 흐음! 그 정도로는 많이 부족할 것 같은데…….”
대략 셈을 해보던 레이젠도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이때 말없이 멍하니 있던 파보아가 서둘러 말을 건넨다.
“느, 늘릴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상단주님이 원하시는 물량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봐! 그게 무작정 하겠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그래도 우리가 맡은 첫 물품이자, 상단의 아주 중요한 물품이 될 건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습니다. 하게 해주십시오.”
흥분을 하다 못해 목에 핏대까지 세워대며 소릴 쳐댄다. 아마도 지금껏 유리세공사라는 이유만으로 천대받던 것에 대한 억울함과 슬픔을 토해내듯 말이다. 묵묵히 바라보던 우현은 시선을 헤일러에게로 돌려갔다.
“세공사를 더 충원할 수는 없겠습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워낙 유리 물건이 하향세라 별로 없습니다. 상단에 있는 세공사들도 왕국에서 긁어모으다시피 한 사람들입니다!”
“충원하기 힘들다는 말이군요.”
“그런 셈입니다.”
둘의 대화에 다시 파보아가 끼어든다.
“우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고집이 아니라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막무가내로 하겠다는 그에 이내 헤일러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무슨 방법이 없을 까 고심하던 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살던 시대 또한 지금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
현대 문명의 초석이자, 소규모 수제업에서 대량으로 물품을 만들어내게 된 문명의 일대 변혁을 일으킨 원동력이 된 바로 산업혁명이었다.
‘현대로 돌아가면 산업혁명에 대한 모든 자료를 모아보자. 그것을 살펴보면 분명 양초와 유리병을 대량 생산한 방법 또한 알 수 있을 것이야.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사업에서도 산업혁명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야. 크큭! 선조의 지혜를 빌려 현대를 밝힌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네.’
문제를 받기도 전에 해답서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이 생각이, 훗날 자신을 혁명가라 불리며 대륙을 송두리째 바꿀 위대한 변혁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전혀 몰랐다.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그린 우현은 파보아를 향해 말을 건넸다.
“일단, 이 문제 대해선 제가 해결책을 마련해 볼 테니 유리 공방에서는 이 모양으로 천 개 정도 만들어 내라고 하십시오. 왕성에 갈 때 가져갈 것이니 말입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레이젠이 말을 건네 온다.
“캐슬, 혹시 아까 말한 커피 우유를 가져갈 생각인가? 왕성으로 말이야.”
“명주와 비단, 그리고 샹들리에와 양초까지 다 가져갈 생각입니다. 이참에 제대로 물건 좀 팔아보려고요.”
“허허! 즉위식 하러 가는 장소에서도 물건을 팔다니…… 아주 타고난 상인체질이구만!”
씨익 웃는 그를 못 말린다는 듯 바라본다.
레이젠에게서 일별한 우현은 파보아를 다시 찾았다.
“어서 가서 제가 말한 대로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기간은 넉 달뿐이 없으니 이 점 명심하십시오.”
“맡겨만 주십시오. 밤을 새더라도 다 만들어 내겠습니다.”
자기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쳐댄다.
그를 유리공장으로 되돌려 보낸 우현에게 호른이 다가왔다.
“모두 준비가 됐습니다.”
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 가로등 근처로 갔다.
불이 붙은 양초에 유리 덮개를 씌워 부착한 가로등을 보던 우현은 문득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또 다른 가로등을 보았다.
“저 옆에 있는 건 뭡니까?”
“아까 말한 윈드 마법진을 부착한 것으로 가로등에 바람이 골고루 닿도록 일부러 다른 철기둥에 달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냐며 주억대는 우현에게 호른이 물어왔다.
“실험해도 되겠습니까?”
“예, 하십시오.”
허락을 구한 호른은 이번에 상단에 들인 마법사 펄에게 마법진 운용을 부탁했다.
앞으로 나선 그는 철기둥으로 가 마나석을 쥐고 영창을 했다. 순간 마법진이 녹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자그마한 회오리를 피어 올린다. 그렇게 생겨난 그것은 양초를 켠 가로등을 향해 바람을 보내기 시작했다.
‘꼭 소형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 같군.’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은 그리 강하지 않은 것이 꼭 선풍기를 옆에 틀어 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바람 때문인지 잠시 양초 끝에 달린 불빛이 흔들리긴 했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주위에 빛을 비춘다. 대충 바람에 견딘다 싶자 이번엔 양철 물뿌리개를 든 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바람 위로 물을 뿌려댔다.
한순간 비바람으로 변한 그것은 가로등 주위로 거칠게 뿌려진다.
이때 또다시 양초 불이 흔들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텨낸다.
“일단, 성공이군요.”
동의를 표하듯 호른이 주억댄다.
“아무래도 그런 듯싶습니다.”
잠시 시선을 맞대던 둘은 빙그레 웃어간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에게서 거센 함성이 울려 퍼진다.
“이야! 성공이다. 성공!”
“우리가 대륙에서 처음으로 가로등을 만들었어!”
“맞아요. 이제 대륙은 밤에도 낮인 양 환하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그렇지. 그렇고말고!”
가로등 제작에 함께한 사람들은 서로들 얼싸안고 환희의 기쁨과 눈물을 토해낸다.
보는 이가 다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말이다. 하나, 호른은 그들과는 달리 정색한 얼굴로 소리쳤다.
“모두 진정하게! 가로등은 밤 동안 계속 켜져 있어야 하는 것. 한마디로 아직 실험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네. 그러니 모두 그만 좋아하고 가로등에 신경을 쓰게!”
한기 어린 그의 말에 주위 공기가 싸늘히 얼어간다. 한 덩어리로 뭉쳐 있던 이들은 하나둘 눈치를 살피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던 호른은 우현에 허리를 숙였다.
“시끄럽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감정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나쁜 건 아닙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좀 더 실험해서 보강할 것은 보완해 어떤 것에도 끄덕없는 가로등을 만들겠습니다.”
우현은 빙그레 웃으며 호른을 바라본다.
그의 굳은 의지가 가슴 가득 밀려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실험도 봤겠다, 이젠 공장장님만 믿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상단주님의 이름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만반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미소로 답하던 우현은 발길을 돌려 공장을 나섰다.
뒤따라 문밖으로 나서는 헤일러에게 말을 건넸다.
“술과 음식 좀 구해서 유리 공장과 양초 공장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내일은 푹 쉬고 모레 나와서 일을 하라 하십시오.”
“예, 분부하신 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말을 마친 우현은 창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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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탁자 위로 내려쳐진 주먹이 부르르 떨려온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참으라 했느냐?”
“예……에! 전해온 연락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사색이 된 채 떨어대던 사내의 고개가 끄덕인다.
와장창창!
탁자를 위를 휩쓰는 손길을 따라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그걸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중년 사내는 발로 밟고 차고 난리법석을 떨어댄다.
잠시 후, 거친 숨을 토해내던 그의 고개가 쳐들었고 진한 살기가 눈 밑으로 흘러내린다.
“내 아들놈의 목을 치던 날 난 그 애의 핏물을 손에 쥐고 맹세를 했다.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를 꼭 죽이겠다고 말이다. 한데 조바오니 공작!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는 대체 언제까지 내 발목을 잡을 작정이란 것이더냐?”
서슬 퍼런 말을 서슴없이 날리는 이 사람이 바로 몰핀 남작의 아버지인 토니노 자작이었다.
바딘 백작과 우현 앞에서 아들의 목을 치던 날 그는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수급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핏물이 옷을 적시고 피비린내가 몸에 배어갔지만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