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91
차원상인 091화
그리고 집으로 도착한 날 밤 그 수급을 자신의 책상 위에 놓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한 절대로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와는 공존할 수 없으리라!
복수를 천명했건만 토니노 자작은 다음 날 방문한 사람으로 인해 그만둬야 했다.
‘조바오니 공작님께서 말하시길 복수는 좀 더 재미있는 방법으로 하시는 게 좋다고 하십니다.’
자신을 테온이라 말한 그는 생글생글 웃는 낯을 한 채 토니노 자작에게 몇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그중 제일 좋았던 건 화이트 그리핀 상단주에 대한 처리였다. 조만간 귀족이 될 거라면서 조그만 기다렸다 그를 처치하고 상단과 영지 모두 차지하라는 것이었다. 그 일에 관한 귀족들의 간섭은 자신이 막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말이다.
가문으로서나, 영지로서나 매우 조건이기에 꾹 참고 기다렸는데 돌연 그 상단주가 후작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작으로서, 후작인 상대를 건들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먼저 치려고 하는데 조바오니 공작은 부득불 막아선다. 그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지금도 거듭된 공작의 반대로 인해 토니노 자작은 그저 분노만 속으로 삭히고 있을 뿐이었다. 씩씩대던 그는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더는 아들놈의 울음소리를 참을 수가 없구나! 이봐라! 어서 나가서 가문 내의 모든 병사들을 집결시키고 기사단장은 내게 오라 해라!”
“아, 알겠습니다.”
시종이 막 발길을 돌리려는데 문이 열리며 노란 머리칼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 하나가 들어왔다.
“다 익지도 않는 과일을 드셨다 체하기라도 할 셈이십니까?”
“테온! 네놈이 여긴 어떻게 왔느냐?”
“그거야 자작님이 걱정되어 온 것이 아닙니까?”
노기로 인해 눈매를 부르르 떨어대던 그는 호통을 쳐댄다.
“날 막을 생각이라면 지금 즉시 돌아가거라! 더는 공작님의 말씀을 들을 생각이 없으니 말이야.”
“그러시지 말고 웬만하면 들으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자작님에게는 제법 회가 동할 만한 것이니 말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들으시겠습니까?”
“뭣이?”
상대가 노기로 들끓는데 생글생글 웃으며 답하는 것이 능글맞기가 구렁이 뺨 칠 정도이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란 것이 뭔지 궁금해진다.
평소 궁금한 것이 있으면 꼭 알아야 하는 성격인지라 잠시 화내는 것을 미뤄두고 그 이야기가 뭔지 물어보았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화이트 그리핀 상단이 왕국 영지 중 두 곳을 골라 위성지부를 설치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그곳에 창고를 지어 타국 상인들과 거래를 하기 위함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작님께서 그중 하나를 털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순간 토니노 자작에게서 콧방귀가 뀌어진다.
“고작 한다는 소리가 나보고 하찮은 도적질이나 하라는 것이냐?”
“하찮다니요. 지금 현 왕국에서 인기 있는 물품들은 대부분 화이트 그리핀 상단의 것입니다. 거기다 상단 독점품이기에 대체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즉, 그들의 물품을 뺏는 건 일확천금을 얻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 하찮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 상단에서 취급하는 종이만 하더라도 엄청난 값어치가 있지.”
토니노 자작은 동의를 표하듯 고개를 끄덕여간다.
“맞습니다. 그런 곳의 물품을 빼앗아 헐값에 대량으로 팔아버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시장이 폭락하여 흔히 하는 말로 똥값이 되겠지요.”
“고작 창고 하나만 가지고 그 정도까지 하겠느냐?”
“만약에 다른 한쪽도 물품이 도난당한다면 그럴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토니노 자작의 눈매가 파르르 떨린다.
잠시 쏘아보던 그는 나지막이 물어갔다.
“그 말은 위성지부 두 곳에 있는 창고 모두 털겠다는 것이냐?”
“턴다기보다는 빼돌리는 것이 되겠죠. 왜냐하면 외성지부가 설치될 곳 중 하나가 공작님과 연을 맺고 있는 분의 영지이니 말입니다.”
그제야 어찌 된 영문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눈앞에 그려지는 그의 속셈에 토니노 자작은 피식 웃었다.
“그래, 네 말대로 물품 값을 폭락시켰다고 하자. 그래봤자 경제적인 타격 외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오히려 지금껏 쌓아둔 돈을 바탕으로 창고를 턴 이들을 찾으러 나서면 어찌할 셈이냐?”
테온은 그런 것쯤은 다 예상하고 있다는 듯 웃어 보인다.
“그럴 틈이 없을 겁니다. 시장의 폭락에 이어 인근 영주가 영지전을 걸 테니까요. 아마도 상단이 있는 영지를 지키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상대는 후작이다. 인근 영주라 해봤자 자작이 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영지전을 걸 수 있단 말이냐?”
“공작님이 뒤에 서주겠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자작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조바오니 공작의 도움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자신이 하게 해달라며 인근 영주들이 난리를 칠 것이다.
영지전의 승리는 상대의 영지를 갖는 것, 즉 그곳에 있는 우현의 상단까지 통째로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걸 생각할 때 분명 실보다는 이득이 더 많은 장사임은 분명했다.
‘한마디로 단물 쪽 빨아먹고 없애겠다는 말이군.’
속셈이 뻔히 보이지만 내색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의 관심사는 상단주인 우현의 목이기 때문이었다.
덤으로 상단이나 영지를 갖게 된다면 더 좋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로서는 매우 좋은 상황인지라 때는 언제쯤이 될지 물어갔다.
“자작님도 알다시피 즉위식이 끝난 후, 1년간은 그 누구도 영지전을 펼칠 수 없습니다. 이는 무분별한 영지전을 통해 국력이 소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걸 염두에 둘 때 즉위 후, 1년 뒤가 계획 실행일이 될 듯싶습니다.”
“그 말은 1년 동안은 그들을 건들지 말라는 소리겠군.”
“원래 음식 먹을 때도 메인이 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천연덕스럽게 음식에 비유하는 그에 토니노 자작은 피식 웃어댄다.
“좋다! 공작님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지.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는 없다는 걸 공작님께도 말씀드려라!”
“걱정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왼손을 가슴에 얹고 살짝 허리를 숙여 보인 테온은 이내 발걸음을 돌려나간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토니노 자작의 입꼬리가 돌연 틀어진다.
“역겨운 놈! 고작 공작 곁에 붙어서 세 치를 혀를 놀리는 주제에 잘난 척은…….”
웃긴다는 듯 콧방귀를 뀌어대던 그는 슬쩍 시선을 뒤로 돌렸다.
“잠시만 기다려라! 더는 저승길 외롭게 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나직이 내뱉는 그의 어깨너머로 구더기에 뒤덮인 채 썩어 문드러져가는 몰핀의 머리가 보였다.
이렇게 우현에게 또다시 위험이 찾아들고 있었다.
제4-6장
어느덧, 대륙에 온 지도 닷새나 지났다. 맘 같아선 좀 더 있고는 싶지만 사무실 오픈 문제도 있고 해서 어서 빨리 가봐야 했다.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고는 티아와 함께 서둘러 창고로 향했다.
언제 왔는지 창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이젠에게 우현은 상단을 부탁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컨테이너 박스부터 옮기고 뒤이어 티아를 데리고 차원을 넘은 우현은 황급히 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짜샤! 너무 늦잖아!”
팔짱을 낀 채 한껏 성을 내고 있는 이 사람, 다름 아닌 서우였다.
“미안하다! 많이 늦었냐?”
“지금 오후 3시 20분이다! 모두 와서 쫄쫄 굶고 있다고!”
굶고 있다는 말에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핑계를 대본다.
“알잖아! 그쪽과 시차 때문에 맞추기 쉽지 않다는 걸…….”
“그럼, 스톱워치를 켜놓고 계산해! 그럼, 되지!”
순간 우현의 얼굴이 멍해진다. 그의 말대로 스톱워치를 사용해서 시차를 계산하면 되는 것을 이제껏 뭐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넋이 빠진 듯한 모습에 서우는 짜증이 난 듯 버럭 소릴 질러댄다.
“뭐해? 차에 타지 않고? 여기서 하루 종일 있을 거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걸 보며 고개를 내젓던 서우는 차문을 열고 앉아갔다. 서둘러 티아를 태운 우현은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창고를 빠져나온 차는 토요일임에도 한산한 도로 위를 무섭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오셨어?”
“벌써 현판 받아 놓고 걸기만 기다리고 계신다.”
“그……래?”
하긴 현판식이 아침 10시였으니 늦어도 많이 늦었다.
죽어라 내달려서 그런가? 4시 이후에나 도착할 듯싶었던 것이 제법 앞당겨져 3시 50분이 채 안 되어 도달하였다.
차문을 열고 나서던 우현은 사무실이 있는 오층짜리 조그만 건물 앞에 서 있는 서우 아버지를 보고는 황급히 뛰어갔다.
“아버님!”
서우, 티아와 함께 뛰어오는 우현을 본 서우 아버지는 짐짓 화가 난 듯 이맛살을 좁혀간다.
“이제 오느냐?”
“제가 좀 늦었습니다.”
“좀이 아니라 많이다!”
단호한 어조에 우현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당혹해 하는 그를 피식 웃던 서우 아버지는 어깨를 툭툭 쳤다.
“사람들 기다리니 이제 그만 들어가자꾸나!”
“예, 아버님!”
서우 아버지를 따라 막 들어가려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태령 종합 상사가 있는 건물인가요?”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러자 검은 원피스에 챙이 큰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미인형의 한 여인이 자신들을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는지 서로를 쳐다보지만 그럴 때마다 모두 내저어간다.
“혹시 장우현이란 분이 아니신가요?”
멈칫대던 우현은 슬며시 끄덕여갔다.
“그렇습니다만 저를 아십니까?”
“전 또 잘못 온 줄 알았는데 잘 찾아왔네요.”
빙그레 웃던 여인은 뒤를 향해 말했다.
“여기 놔두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환을 든 사내들이 앞으로 와 놔두고 간다.
<태령 종합상사 축 개업> 이라 적힌 그것을 지켜보던 우현이 물어갔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어떻게 알고 이걸 보내신 겁니까?”
빙그레 웃던 여인은 슬쩍 선글라스를 벗어갔다.
“아! 인사가 늦었네요. 저는 박정숙이라고 해요. 백파님을 밑에서 돕고 있죠.”
“그럼, 이 화환 백파님이 보내십니까?”
“예! 명색이 개업 날인데 화환이 없어서 되겠냐고 하시면서 말이에요.”
편안한 인상의 그녀와는 달리 주위 사람들의 얼굴은 한없이 굳어져 있다.
말로만 듣던 백파측 사람이라서 그런지 왠지 더욱더 긴장이 되는 듯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박정숙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자아낸다.
“혹시 저 때문에 불편하신가요?”
“아닙니다. 다만 담당자분이 오신다고 했는데 다른 분이 오셔서 놀랐을 뿐입니다.”
우현은 담당자를 들먹여 슬쩍 핑계를 대본다.
한데 그녀는 그 얘기 잘 꺼내들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오늘 오기로 한 분이 사정이 생겨서 다음번에 온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