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92
차원상인 092화
“이번 기회에 안면 좀 틀까 했는데 아깝네요.”
“그분도 같은 말을 전해달라 하셨어요.”
그러냐며 끄덕이던 그때 박정숙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건넨다.
“우현 님이 보내 주신 보석 말이에요.”
“예!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보석을 들먹이자 순간 우현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실 그동안 바빠서 대륙에서 가져온 보석들을 살피지도 않고 대충 넘겼는데 혹시나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건 아닌지 박정숙은 고개를 내저어간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구요. 담당자분이 말하기를 저번에 주신 대부분의 보석들이 원석에 가까운 상태이니 커팅 작업을 해서 모양새를 갖춘 뒤 새 브랜드로 런칭해서 파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새 브랜드 런칭이요?”
갸웃대는 그에 박정숙은 설명을 잘 못했음을 깨닫고 말을 덧붙여간다.
“혹시 패션 브랜드 아세요?”
“예! 알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보석도 브랜드가 있거든요. 우현 님이 주신 보석들이 워낙 질도 좋고, 희귀한 것들이 많아 따로 브랜드를 만들어 런칭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서 그래요.”
“브랜드를 만든다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막대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듯싶지만 자칫 런칭 후 물건이 팔리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관한 부대비용 인해 극심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었다. 흔히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여 위험도가 높은 만큼 커다란 이득을 있다고 하지만 워낙 보석에 대해 무지한지라 그걸 실천하기엔 겁이 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우현은 슬쩍 박정숙을 보았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제 보석을 가지고 새 브랜드를 런칭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의 말에서 뭘 걱정하는 지 안 박정숙은 빙그레 웃어갔다.
“우현 님이 모르셔서 그런데요. 전에 주신 물건들 이미 다 팔린 지 오래예요. 한마디로 없어서 못 팔 지경이란 말이지요. 그걸 생각해 볼 때 못해도 손해는 안 볼 것 같은데요.”
우현은 놀라움 가득한 빛을 띤다. 설마하니 대륙에서 가져온 보석들이 그리 잘 팔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새 브랜드를 런칭하자고 하더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만약 새 브랜드를 런칭할 경우 지출액이 얼마나 됩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우리 측에서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듯싶네요. 이번 보석 거래로 얻은 이득이 꽤 많거든요.”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서우가 슬쩍 제동을 걸어간다.
“근데 그렇게 하려면 보석들의 출처가 문제가 되지 않겠어?”
그 점은 우현도 신경 쓰였던 것이라 박정숙에게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 점이 걱정되는데 괜찮겠습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충분히 커버 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걱정 말라는 그녀에 우현은 조금씩 맘이 동해간다.
특히나 별 지출 없이 한다는 점이 더욱 좋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저들도 나름 이득을 높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한번 동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군.’
결국 뜻에 따르기로 결정한 우현은 시선을 들어 박정숙을 보았다.
“알겠습니다. 담당자분 말대로 새 브랜드를 런칭해 팔아보죠.”
“생각 잘하셨어요. 그럼, 지금부터 그것에 관련된 일들을 준비하도록 할게요. 아! 혹시나 걱정하실 수 있으니 중간 중간 보고를 드릴 테니 큰 염려는 하지 마세요.”
“그럼, 그 담당자라는 분만 믿겠습니다.”
“후회 없으실 거예요.”
이제 할 말을 다했던 지 벗었던 선글라스를 다시 껴간다.
“전할 말은 다 했으니 이제 저도 가볼게요.”
“백파님께 화환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세요.”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던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갔다. 그러자 대 여섯 명의 사내가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는데 무슨 영화에서나 보던 귀빈 경호 같아 보였다. 차를 타고 가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우가 나직이 말을 건네왔다.
“저 여자 왠지 백파측에서도 고위층 인사 같지 않냐?”
“나도 그래 보여서 왠지 더 조심스럽더라!”
맞는다는 듯 끄덕이던 서우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담당자를 말할 때 존칭을 쓰지 않았어?”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아니! 고위층 인사로 보이는 저 사람이 존칭을 쓸 정도면 그 담당자라는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을까 싶어서…….”
순간 우현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담당자는 자신들과 비슷한 위치의 사람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예상과는 다르게 고위층 인사가 담당자가 될 줄이야.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혹해하는 우현에게 서우 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다음에 담당자 만나면 실수하지 말거라! 괜히 그랬다 꼬투리라도 잡히면 골치 아프니 말이야.”
“아무래도 그래야 할 듯싶습니다.”
“그래! 조심 또 조심해라.”
“예, 아버님!”
주억대던 그때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근데 보석은 뭔 말이야?”
홱 돌려진 사람들의 고개 너머 한 여인이 보인다. 슬리퍼에, 점퍼 차림, 거기다 주근깨가 보일 정도로 적나라한 민낯에, 푸석푸석한 머리 위에 쓴 모자까지. 딱 봐도 백수 같아 보이는 그녀는 우현을 보며 연신 갸웃댄다.
“우……리야! 네가 여기 왜 있냐?”
“그거야 네 동생이 불러서 왔지. 근데 너 보석 팔아?”
잠시 주위 사람들을 살피던 우현은 이내 끄덕여간다.
그걸 본 우리는 제법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갔다.
“신발 공장 사장에 보석 사장까지…… 오오! 제법 돈 좀 만지겠는데…….”
“야! 헛소리하지 말고 들어가자!”
건물 안으로 잡아끄는 그의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계속 이어나간다.
“그러지 말고 하나 줘! 시집 갈 때 팔아서 쓰게!”
“그만하고 들어가자니까!”
“백수 주제에 보석 같은 거 언제 만지겠어? 그러지 말고 줘!”
땡깡을 부리는 그녀에 결국 우현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알았으니까 어서 들어가자! 들어가자고! 쪼옴!”
준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환하게 웃더니 우현의 팔짱을 껴간다.
“그래, 들어가자!”
그런 그녀를 보며 내젓던 우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간 그들은 한 사무실 앞 출입구 옆에 걸린 간판을 보았다.
<태령 종합 상사>
단순히 회사명만 적혀 있을 뿐인데 그걸 매만지는 우현의 눈엔 반가움과 놀라움, 기쁨이 교차해간다. 동시에 시설을 전전하던 어릴 적 시절이 영화 속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물론 연대 보증을 서게 했던 박유범 소장이 죽일 듯이 밉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을지 걱정이 든다. 참! 사람이란 게 간사하다고 하더니 딱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하염없이 간판을 쓰다듬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 사이로 손 하나가 휘둘러진다.
타탁!
“야! 간판 앞에서 뭐해? 불공 드려? 그만 청승 떨고 안으로 들어가자!”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 것일까?
회한 어린 눈동자 위로 시뻘건 노기가 고개를 쳐든다.
막 한바탕 성을 부리려는데 대뜸 우리가 말을 건네간다.
“뭐해? 어머님 기다리시잖아! 어서 들어가지니까!”
서우 어머님을 들먹이기 무섭게 치솟던 노기가 눈 녹듯 사라져간다.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자신의 노화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편에 제사상 위에 돼지 머리를 놓고 앉아 있는 서우 어머님과 두 동생이 보인다.
“이제 오니?”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왔으니 됐다!”
괜찮다는 그녀와는 달리 두 동생에게선 차디찬 한기가 흘러나온다.
“대체 사람이 시간 약속을 안 지키고 뭐하는 거야? 거기다 전화는 왜 씹어? 이제 막 나가자는 거야?”
버럭 소릴 질러 대며 두 눈을 부라리는 서연과는 달리 보영은 차분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그 무엇보다 무서운 세 마디를 날린다.
“집에 가서 봐!”
다른 누구도 아닌 보영이 해서 그런지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진다.
살벌하기 짝이 없던 이때 돌연 서우가 우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다가왔다.
“야! 그만하고 제사나 지내자! 돼지 머리까지 가져왔는데 어느 정도 예의는 지켜야지. 안 그래?”
“그, 그래?”
오늘따라 서우가 왜 이리 고마운지 모르겠다.
슬쩍 동생들 틈에서 자신을 빼주기도 하고 말이다.
고마움에 눈물이 나오려다 뒤이어 들려온 말에 쏙 들어간다.
“보영아! 집에서 볼 것 없이 제사 끝나면 봐! 자리 마련해 줄게!”
정말 원수가 따로 없다! 남몰래 구시렁대며 제사상 앞에선 우현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들었다.
만 원을 빼내려다 날이 날이니만큼 통 크게(?)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상 위에 놓인 돼지 머리 콧구멍에 쑤셔넣고 막 절을 하려는데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려온다.
뭔가 하고 봤더니 사무실에서 쓰려고 설치한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문제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 모두 울린다는 것이다.
한데 이것이 시작이었는지 우현은 물론이고 서우 핸드폰까지 미친 듯이 울어대기 시작한다. 서둘러 꺼내들고는 귀에 갖다 대자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이보게! 장 사장! 대박이야! 대박!”
“공장장님이세요?”
“그래, 나네! 자네가 하도 보고 싶어서 연락했네.”
“그러세요? 근데 대박이라니 그건 또 뭡니까?”
목이 탄 것인지 아니면, 점심을 먹지 못했는지 후루룩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끊어졌던 대화가 이어진다.
“이번에 새로 출시한 신발과 가방 말일세. 초대박이 났네.”
“초대박이라면…….”
“오늘 풀린 물건들이 벌써 다 팔렸다고 물건 내놓으라고 도매상들의 연락이 줄을 서고 있네.”
“예에?”
어이없어 하는 우현 곁으로 서우가 다가온다.
“야! 신발 도매상들인데 물건 좀 달라고 아우성이다.”
“오빠! 신발하고 가방 남는 것 좀 달래!”
“만세야! 이쪽도 신발, 가방 이야기인데?”
연거푸 이어지는 재촉 소리에 우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옆에 있는 냉수 한 잔을 들이켠 그는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물어갔다.
“자세히는 모르겠고 무슨 연예인인가 하는 사람이 우리 신발과 가방을 찍어서 올렸다나? 뭐래나? 어쨌든 그 덕에 우리 물건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네. 예약 주문도 밀려 들어와서 지금 가지고 있는 가죽으로는 감당이 안 될 지경이야!”
묵묵히 듣고 있던 우현은 시선을 보영에게로 돌렸다.
“보영아! 핸드폰으로 인터넷 좀 검색해봐!”
“인터넷? 왜?”
“무슨 연예인이 우리 신발과 가방을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고 하니까 살펴봐!”
알았다는 듯 끄덕이던 그녀는 폰을 꺼내들고는 인터넷에 들어갔다.
근데 검색 사이트에게 들어가기 무섭게 탄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