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95
차원상인 095화
그러고 보니 대륙에 있을 때 늘 엘레토를 따라다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일인군단! 그냥 하는 말인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듯싶다.
슬쩍 시선을 돌려 보던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이 벌려져갔다.
“이제 답이 됐나?”
고상용도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푹 고개를 숙인다.
어느새 도장 안은 차갑다 못해 무거운 고요로 뒤덮여간다.
적막감이 가득한 주위에 임동수는 울상을 지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사실 대륙에 있을 때 두어 번 레이젠과 손을 섞은 적이 있어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씁쓸 입맛만 다시던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아무 말 못하는 고상용을 보았다.
‘그나저나 팀장은 괜찮을지 모르겠네. 옛날에 삼합회에게 깨지고는 맨손 격투는 나름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걱정 어린 눈빛을 자아내던 그때 흥만이 혀를 차댄다.
“세상엔 너보다 강한 놈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격투 연습은 그만하고 머리 공부 좀 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한심하다는 듯이 보다 이내 발길을 돌려 관장실로 향했다. 쭈뼛대던 사람들도 이내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우현은 긴 소파에 티아와 임동수, 엘레토와 같이 나란히 앉았다.
반대편에 흥만이 앉기 무섭게 고상용이 음료수 캔 몇 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슬쩍 사람들을 훑고 나가는 것이 아마도 아까 대결에 진 것에 대한 분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쯧쯧쯧! 뭔 사내놈이 싸움 한 번 졌다고 저리 삐쳐서야. 원!”
고개를 내젓다 이내 우현에게 사과를 건넨다.
“이해하게. 원래 좀 속 좁은 놈이니 말이야.”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먼 길 왔을 텐데 시원하게 들이켜게.”
마시라는 그의 손짓에 세 사람을 일제히 건네받은 캔을 까서 입에 쏟았다.
순간 엘레토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지더니 마시던 것을 멈춘다.
“어…… 이거!”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낀 우현이 끄덕거려간다.
“이것도 탄산수야.”
“이건 전에 먹었던 것과는 좀 맛이 다르군요.”
“다른 회사에서 나온 거니까.”
그러냐며 주억대던 엘레토는 다시 한 모금 마신다.
좋아라는 하는 그에게서 막 시선을 거두려던 그때 임동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티아 님…… 그거 제 것입니다만…….”
흘낏 돌려보니 빈손의 임동수 너머 양손에 캔을 꽉 쥔 채 마시는 티아가 보인다.
둘의 모양새로 보아 아무래도 그의 것을 빼앗아 마시고 있는 듯싶다.
“마……맛이 좋아서요.”
홍당무처럼 양 볼을 붉게 물들인 채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던 우현은 피식 웃었다.
‘하여튼 탄산귀신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니까…….’
한번 콜라를 입에 댄 후, 물 대신 옆에 끼고 주구장창 마셔댔다.
콜라 중독에 빠졌다는 딱 맞을 정도로 말이다. 못 말린다는 듯 내젓는 그때 흥만이 말을 걸어왔다.
“일단, 인사부터 하세나! 이쪽은 상용이와 임동수가 특임대이던 시절 후임병이라네.”
언제 왔는지 사내들이 우현을 향해 허리를 숙여간다.
“범수입니다.”
“형철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우현이라고 합니다.”
인사에 답을 하는 우현과는 달리 티아와 엘레토는 고개 끄덕거림으로 답을 대신한다.
그런 그들이 괘씸하게 느껴졌지만 조금 전 싸움을 떠올리면 쉬이 표현하기도 그런 터라 그냥 꾹 참아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고개를 내젓던 흥만이 말을 건네왔다.
“아까 듣자 하니 의뢰를 하러 왔다는데 조금 전 싸움을 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듯싶은데 왜 날 찾아온 것인가?”
“두 분을 채용하러 왔습니다. 조건은 1년간 총 금액 10억으로, 그중 계약금으로 2억 먼저 드리겠습니다.”
품안에서 지갑을 꺼내 오천만 원짜리 자기앞 수표 네 개를 펼쳐놓았다.
10억이란 금액도 금액이지만, 탁자에 놓인 수표 네 장에 눈이 돌아간 주위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리고 만다. 하나, 단 한 사람은 아까와는 다르게 얼굴은 딱딱하게 굳힌 채 쏘아보기 시작했다. 한기마저 느껴지던 그때 흥만의 입이 벌려져갔다.
“네놈들 정체가 무엇이냐? 혹시 조폭이냐?”
“거기와는 전현 관련이 없습니다.”
우현은 미리 준비한 명함을 앞으로 내밀었다.
“태령 종합 상사 대표? 무역회사인가?”
“그렇습니다.”
명함을 연신 살피지만 여전히 못 믿겠다는 눈치다.
“내 듣기로 무역회사가 한 번에 수조를 움직인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그건 몇 안 되는 회사뿐이고, 나머지는 그리 돈을 많을 벌지 못한다 들었는데 넌 대체 뭘 수입하기에 이리 많은 돈을 쓰는 것인가?”
“일단은, 금괴와 보석을 수입한다 해두죠.”
뭔가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한 인상에 흥만의 이마 골이 더 깊어진다.
“그건 그렇고 금과와 보석을 취급한다면 굳이 우리 아니라도 계약을 원하는 곳이 많을 텐데…….”
“상대가 좀 셉니다.”
“상대? 그럼, 널 노리는 자가 있다는 말이더냐?”
“예! 백파가 말입니다.”
순간 주위가 적막으로 휩싸여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어이없어 하는 범수와 형철과는 달리 흥만은 한껏 눈매를 좁힌 채 물어온다.
“백파라면, 사채꾼 그 백파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말에 흥만은 와락 얼굴을 구긴다.
“이놈…… 복덩인 줄 알았더니만 완전 재앙덩이구만! 그것도 초특급으로다가…….”
기가 막힌다는 듯 바라보다 이내 말을 던져온다.
“자네 백파가 누군지나 알고 있나?”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는 말에 흥만의 시선이 임동수에게로 향한다.
그가 아니고서는 일반인인 우현이 알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쏘아보던 눈길을 치운 그는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벌렸다.
“저놈에게 뭘 들었는지는 모르겠네만 자네 상대는 절대 백파가 아닐걸세.”
“자신 입으로도 백파라고 했습니다.”
눈살을 꿈틀대던 그가 재차 물어갔다.
“대화한 적이 있다는 말인가?”
“예! 전화로 말입니다.”
“전화라…… 자네에게 묻지. 정말 그자가 백파라 단정할 수 있겠는가?”
물음에 우현은 쉬이 답을 할 수 없었다. 상대가 백파라고는 했지만 단정 지을 만한 것은 보여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흥만이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과거 육군 정보부에 속했을 때 본 첩지에 따르면 70년대부터 활동하던 사채꾼으로 전 천철우 대통령을 비롯해, 노태길, 김소중, 노현우 대통령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라 하지. 그뿐만 아니야. 경찰, 검찰, 정계를 비롯해 조폭까지 그의 입김이 안 닿는 곳이 없다 알려져 있지. 일각에선 어둠의 제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니 대충 어떤 인물인지 알게야. 그런 인물이 자네를 협박하고 있다고? 대화까지 나누고?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한발 물러서 백파라 치세! 그렇다면 날 찾아올 것이 아니라 검사, 판사 뭔 이런 사람들을 찾아야 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는 그리하는 것이 옳다 여겨지네만!”
말을 마친 흥만은 우현의 두 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백파 핑계 대지 말고 이곳에 온 진짜 이유를 말하라고 말이다.
그런 그를 마주하던 우현이 나지막이 말을 하였다.
“솔직히 말씀드려 그가 원하는 건 제가 아니라 금괴입니다.”
“금괴? 이해가 되지 않는군. 백파쯤 되는 자가 고작 금괴에 탐을 내다니 말이야. 그런 걸 원한다면 굳이 자네를 통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야.”
“일반 금괴라면 그렇겠지요.”
순간 흥만의 눈매가 좁혀들어간다.
“자네! 무역 일을 한다고 했지. 혹시 밀수입을 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왜냐하면 저흰 차원을 넘어서 다른 세상 사람들과 무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 상단주님!”
설마하니 차원을 들먹일 줄 몰랐던 티아는 화들짝 놀래했다.
그와는 달리 나머지 세 사람은 다른 의미로 놀라워하였다.
지구상의 나라가 아니라 타 차원 세계와 무역을 한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어벙하니 있던 흥만은 이내 기가 막힌다는 듯 돌아앉고 만다.
“범수야! 소금 뿌려라! 웬 미친놈이 왔나 보다.”
“아, 예에…….”
“뭐하느냐? 어서 소금 뿌리지 못해!”
대답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멍한 얼굴로 앉아있기만 한다.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현은 굳게 닫았던 말문을 열었다.
“아마도 믿겨지지 않을 겁니다. 아니, 속으로 절 미친놈이라고 욕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그렇지. 딴 나라도 아니고 차원을 넘어 다른 세상과 무역을 한다니 그 어떤 놈이 믿겠느냐?”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것 좀 보십시오.”
가져온 서류 케이스에서 뭔가를 하나 꺼냈다.
“증거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타 차원 나라와 무역할 때 받은 계약서입니다.”
“이거…… 양피지 아니더냐?”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양피지에 흥만은 놀라워하였다.
거기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기묘한 문자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그리고 맨 밑엔 날인을 하듯 장우현이라는 한글이 선명하게 적혀져 있었다.
모양새로 보아 계약서가 맡기는 한데 아직까진 이게 사실이라 믿겨지지 않는다.
“이런 거야 거짓부렁이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더냐? 이런 걸 어찌 증거라 볼 수 있겠느냐?”
흥만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또다시 뭔가를 꺼내놓았다. 아까 보인 계약서에 쓰는 글자와 함께 기묘한 문양이 박혀있는데 서류라고 보단 부적에 가까웠는데 이게 바로 흔히들 말하는 마법진, 스크롤이었다. 일전에 소네스에게 받아둔 것으로 2서클 파이어 마법이 그려진 것이다.
우현은 스크롤을 치켜든 채 자리에서 일어서갔다.
“잠시 뒤로 물러서십시오.”
왜 그러나 싶었지만 모양새로 보아 그러는 편이 나을 듯싶어 일단 다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어느 정도 떨어진 것을 본 우현은 나지막이 뱉어갔다.
“파이어!”
순간 불길이 치솟는다 싶더니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워낙 거센 탓인지 안면에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잠시 후, 불길이 잦아지더니 사라졌고 부적 같은 종이는 모래에 바람에 날리듯 바스러져 재로 화하였다. 세 사람은 물론 임동수까지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하니 탁자만 바라보았다.
점점 고요함이 깃들던 그때 돌연 범수가 나직이 말을 뱉었다.
“마……법! 마법이다.”
난데없는 마법 타령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릴 때쯤 우현이 고개를 끄덕여갔다.
“맞습니다. 마법! 제가 거래하는 세상에선 이것처럼 마법을 씁니다. 또한 싸움도 강합니다. 조금 전, 고상용이란 분이 몇 번 싸우지 못하고 질 만큼 말입니다.”
순간 흥만의 시선이 범수에게서 엘레토로 옮겨간다. 지금 생각해도 상용이의 패배는 확실히 이상했다. 그럴 것이 그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외인부대 출신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제대로 공격 한 번 하지 못한 채 지는 것도 그렇고 툭 쳤을 뿐인데 터져버리는 샌드백도 이해가 안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