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96
차원상인 096화
한데 우현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은 납득이 간다. 자신이 사는 세상이 아닌 영화에서나 보던 마법이 판치는 세상의 사람이라면 능히 그럴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묻겠다. 네 말에 따르면 저 사내는 여기 사람이라는 것인데 내 말이 맞는가?”
“예! 마르세우니스 대륙의 전 도베르만 왕실 기사단 소속이자, 현재 저희 상단 호위대에 속해 있는 엘레토라고 합니다.”
소개를 받은 흥만은 슬쩍 손을 들어 콧등을 긁적댄다.
“왕실 기사단이라…… 그럼, 저쪽 세상은 아직도 왕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쉽게 말해 중세시대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하긴 기사라면 중세시대이지.”
맞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어이없어 한다.
그럴 것이 마법과 칼이 난무하는 세상이라니…… 이건 꼭 어릴 적 보던 아더왕 이야기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어찌 그리 한국말을 잘하는 것인가?”
우현은 슬쩍 손을 들어 엘레토의 마법 통역 반지를 가리켰다.
“저 반지는 마법 통역 반지로, 어떤 말이든 해석해서 들려주죠. 말도 할 수 있게 해주고 말입니다.”
“그것도 마법이란 말인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 자아내던 흥만은 시선을 들었다.
“좋아! 자네 말대로 타 차원을 넘나들 수 있고, 그곳엔 마법과 칼이 있는 중세시대이며 교역을 통해 금괴를 얻는다고 말이야. 한데 그걸 어찌 백파가 아는 것인가? 자네가 금괴를 취급하는 것을 어찌 아냐는 말일세.”
“사실 전 1년 전만 해도 평범한 영업 사원이었습니다. 그러다 아는 분의 연대 보증 빚으로 인해 쪼들리게 됐는데 그걸 타파시켜준 것이 바로 차원을 넘어가는 능력이었습니다. 전 그걸 통해 그곳 사람들과 거래를 통해 금괴를 손에 쥐었고 그걸 여기로 가져와 팔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백파가 제 금괴를 사가게 되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타 차원에서 가져온 거라면 인증이 안 될 것이고, 시대상 중세시대니 현재 금괴와는 많이 다르겠군. 비자금 형성하기엔 딱이겠어.”
“그런 셈이죠.”
흥만은 조금은 납득이 된 듯 고개를 끄덕거려간다.
“다시 묻겠네. 정확히 나에게 원하는 게 뭔가?”
“저와 제 가족, 그리고 친구 가족의 생존입니다.”
“그것뿐인가?”
재차 묻는 말에 머뭇대던 우현이 고개를 쳐들었다.
“한 가지 더 바랄 수 있다면 그건 상단 사람들이 안전입니다. 그쪽이라고 꼭 안전한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하긴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 똑같지. 싸우고, 훔치고, 뭐든 많이 가지려 하고 말이야.”
“맞습니다.”
흥만은 손을 들어 턱 밑을 매만져간다.
“거참! 거절도 못하겠군. 백파라면 이미 자네 곁에 사람을 붙여 놨을 테니 지금쯤 우릴 보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야. 아마도 자네들이 나가면 우리가 금괴에 대해 뭘 들었는지도 알아보려 들겠지. 이거, 딱 외통수에 걸릴 격이야.”
“그보다 백파와의 악연이 깊다고 하는 편이 나을 듯싶은데요.”
피식 웃는 그와는 달리 흥만의 낯은 일그러져갔다.
“날 조사한 건가?”
“거듭 안 좋은 일을 당하다 보니 상대방 조사는 필수라는 것을 알 게 됐거든요.”
“이거야 원…… 단단히 준비하고 왔다는 말이군.”
흥만은 두 손을 들어 보인다.
마치 항복이라는 듯 말이다.
“좋아, 도와주지. 하지만 돈 때문이 아니라…… 자네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릴 듣고 하는 거야.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1년 20억에, 계약금은 2억이네.”
“자…… 작전 장교님!”
대뜸 액수를 두 배로 올리는 그에 임동수는 당황해하였다.
하나, 흥만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당황들 하지 말아! 의뢰비를 올리는 것이 아니니까…….”
“그럼, 왜 액수를 올리신 겁니까?”
“회사를 넘기려고 한다. 왜?”
“회사를 넘겨요? 설마 이름만 있는 우리 회사 말하는 거예요?”
“이름만 있다니! 우리들이 가진 능력이 얼만데…… 그리고 요놈과 같이 있으면 제법 재미있는 일이 있을 듯싶어. 그 악연 가득한 백파란 놈 낯짝도 볼 수 있을 듯싶고 말이야. 거기다 어차피 코 꿰인 거 확실하게 하면 좋잖아. 안 그래?”
듣고 보니 그게 나을 듯싶다. 차원을 넘어 무역하는 양도 꽤 될 듯싶고, 백파가 탐을 낼 정도로 금괴를 가져온다면 의뢰를 받는 것보다 들어가 일하는 것이 더 안정적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범수, 네 생각은 어떠냐?”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그게 나을 듯싶군요.”
“형철이는?”
“그게 나을 듯싶군요. 언제 백파의 위협이 살아질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럼, 결정됐다. 꼬맹아! 20억에 2억에 우리 회사 사가는 것이 어떠냐?”
우현은 얼굴에 화색을 디며 좋아했다.
“저야 그리되면 좋죠. 감사합니다. 제 의뢰, 아니 말을 들어주셔서 말입니다.”
“그거야, 나름 돈 좀 벌고 같고, 재밌기도 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이니 너무 고마워 말거라. 그보다 향후 어찌 해야 하는지 그거나 읊어 보거라! 일단, 알아야 경호 팀을 꾸리든 말든 할 것 아니냐?”
“팀이라면 제가…….”
“네놈이 짠 거와 내가 짠 게 같은 건 줄 아느냐?”
자신을 앞지르려면 천 년은 부족하다는 듯한 그에 임동수의 눈살이 찡그려진다.
“거기다 요즘 놀고 있는 놈들 많지 않느냐? 보수도 꽤 좋겠다. 일도 재미있을 듯싶겠다. 하겠냐고 묻기만 하면 알아서들 달려올 거다.”
순간 흥만의 눈빛은 번뜩인다. 벌써 그의 머릿속엔 어찌 팀을 꾸려야 할지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과거 군단 참모를 하면서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흥만의 거듭된 재촉에 우현은 향후 일정과 가족에 대해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장엔 오랜만에 열의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단 한 사람, 엘레토에게 패배한 고상용만 빼고 말이다.
고상용과 고흥만을 포섭한 후 우현이 만든 경호업체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갔다.
고작 일곱 명, 한 팀에 불과했던 인원이 무려 사십 명까지 늘어난 것을 비롯해 특임대나 정보부처, 경찰, 해외 용병 등 갖가지 주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단순 경비, 경호 업무에서 벗어나 갖가지 업무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는 차원 너머에 있는 우현의 상단이 위기에 처할 경우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것으로 고흥만의 작품이기도 하다. 훗날, 대륙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한 갖가지 전술들이 나왔으며 전신 타르만(최상위: 군림하는 자를 뜻함)이라 불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그가 이끄는 테란이란 부대는 차원을 통틀어 최고의 부대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이렇듯 조직 개편 및 운영에 신경 쓰는 동안 고상용은 엘레토나 중원 무사들과 맞부딪치며 점점 강해져 갔고 끝내는 마스터에까지 이르게 된다.
또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파르카스탄이란 무술은 우현의 상단 무사라면 누구나 배워야 할 것으로 알려져 갔고 시작 전 보이는 동작은 하나의 상징으로까지 될 정도이니 능히 짐작이 될 것이다.
정확히 이십 년 후, 차원을 뒤흔들 강자들의 만남은 백파란 한 인물로 인해 시작되고 있었다.
‡ ‡ ‡
“우현이란 자가 고흥만을 만났다고 합니다.”
“하긴 저번에 그 일 때문이라도 경호팀이 필요하겠지.”
백파는 이해가 간다는 듯 끄덕여간다.
“어떻게 할까요? 우현의 붙여둔 사람을 치울까요?”
“그냥 내버려 두어라. 어차피 지금쯤이면 우리가 사람을 붙였다는 것쯤은 알 테니 지레 겁먹고 치울 필요는 없어.”
“그렇긴 합니다만 자칫 상대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건들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다. 그저 감시 정도로만 생각하면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범우의 고개가 숙여져간다.
붓을 들어 먹을 묻혀가던 백파가 물어왔다.
“그나저나 우현이가 가져온 보석으로 새 브랜드를 런칭한다고?”
옆에서 먹을 갈던 한복차림의 고운 박정숙이 답을 하였다.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그편이 훨씬 더 값어치가 높아질 것이라며 그리하겠다고 했어요.”
“대충 얼마나 높아질 것이라 하더냐?”
“못해도 열 배가량은 상승할 것이라 했어요.”
백파는 놀랐다는 듯 바라본다.
“열 배라…… 거참! 은근히 기대가 되는구나!”
“저 역시 그래요.”
먹을 다 간 듯 벼루에서 손을 뗀 그녀는 준비해 온 잔에 차를 따라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 아이에게 피해갈 만한 것들은 알아서 정리해 두어라!”
붓을 다 놀렸는지 벼루에 올려놓자, 박정숙은 난이 그려진 화선지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아마도 그림이 잘 마르도록 밖에다 둘 생각인 듯싶다. 홀로 남은 백파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셔갔다. 향이 살아 있어서 그런지 맛도 매우 일품이다.
“자아, 그럼 어디 한번 네 실력을 발휘해 보거라.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말이야.”
나직이 뱉어지는 말 위로 미소가 감돈다.
찻잔에 어리는 향인 양 말이다.
제4-8장
“눈이 부시군!”
창고를 나서던 우현은 손을 들어 햇빛을 막아간다. 마법등이나, 천장에 백열등이 달려 있는 대륙이나 현대와는 달리 중원의 창고는 아무것도 없다.
혹시나 밖에서 누가 볼까 봐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다 막아놓은 상태라 더욱더 그랬다. 그래서 매번 중원에 올 때면 이렇듯 손을 들어 햇빛을 막았다. 잠시 눈이 빛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 오는 건가?”
한껏 찌푸리는 눈을 돌리자 자신을 보며 웃는 남궁조공이 보인다.
“좀 늦었습니다.”
“그래도 저번처럼 오래 걸리지 않아서 다행일세.”
비꼬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은 죄가 있는 터라 꾹 참아간다.
컨테이너 박스를 열어 세가 식솔들이 물품을 챙기도록 한 우현은 남궁조공과 함께 상단 논의 장소인 천상전으로 향하였다.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활력이 돋아나는 것이 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듯한 기분이 든다.
“제법 세가(중원에선 남궁세가 사람들을 생각해 상단을 일부러 세가라 부른다.)이 좋아진 듯싶습니다.”
“그게 다 자네 덕분일세.”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남궁조공은 뭔 말이냐는 듯 바라본다.
“빚을 갚아주고 있지 않은가?”
“그건 돈 많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망해가는 무림세가를 봐주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세. 특히나 무림제일가의 경우 견제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더욱 그러지.”
우현은 미처 몰랐다는 듯 끄덕인다.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았으면 거길 도와줄 걸 그랬습니다. 그럼, 적어도 돈 갚는 수고는 덜 테니 말입니다.”
“다만 귀찮은 혹이 생기겠지. 무림제일가라고 불리는 곳 말이야.”
“그렇습니까?”
두 사람은 잠시 서서 파안대소를 해간다.
한참을 웃어젖히던 남궁조공은 슬며시 어깨를 잡아간다.
“고맙네.”
“뭐가 말입니까?”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키게 도와줘서 말이네.”
피식 웃던 우현은 멈췄던 발길을 다시 움직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