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98
차원상인 098화
“그 걱정을 말거라.”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한 손을 들자, 허공에서 한 사내가 떨어져 내린다.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를 한 것이 흔히 말하는 야행복을 입은 듯하다.
혹시나 싶어 슬쩍 티아를 보니 낯에 아무 빛도 안 이는 것이 그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싶었다. 그녀와 일별한 우현은 시선을 남궁조공에게 돌렸다. 그러자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술이 슬며시 벌려졌다.
“이쪽은 야월이라고 하여 세가에서도 상대할 자가 몇 없는 고수 중에 고수이니라. 현재 직계 자손을 호위하는 천음위의 대주이니라. 이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운혜 한 몸은 능히 지킬 수 있으니 걱정 말거라.”
호위까지 준비한 것이 어떻게든 그녀를 보내려는 생각인 듯싶었다.
남궁운혜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우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려갔다.
“알겠습니다. 태상가주님의 말씀대로 하죠.”
“늙은이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구나!”
“아닙니다. 세가 식솔을 보살필 사람인데 당연히 태상가주님이나 세가주님이 정하신 분으로 해야지요.”
당연한 일이라며 답을 하자 남궁조공은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걸 보고 있던 우현은 분위기로 보아 더는 할 말이 없을 듯싶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려는 것이더냐?”
“예! 대륙에서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어 더 늦기 전에 가야 합니다.”
“그럼, 가는 김에 운혜도 같이 데려가 그곳이 어떤 곳이지 보여 주거라!”
의자를 옆으로 치우던 우현의 고개가 홱 돌려졌다. 조금 전 들은 말이 진짜인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운혜라는 이 여성분을 데려가라 하셨습니까?”
“앞으로 그곳에서 지내게 될 것인데 이참에 가서 대륙이 어떤 곳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 하는 편이 좋을 것 아니더냐?”
“하지만 세가 사람들은 다음번에 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 대해 살피고 알아야 식솔들에게 도움이 될 것 아니더냐?”
“그렇지만…….”
여전히 같이 가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에 남궁조공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세가를 대표할 사람이니라. 그런 이가 앞으로 지내게 될 대륙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된다 생각 하는 것이냐?”
거친 일갈에 우현은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입을 닫고 만다.
그런 그를 쏘아보던 남궁조공은 맘에 안 든다는 빛을 띠며 말을 흘렸다.
“하루라도 빨리 데려가 대륙에 대해 알려주고 세가 사람들을 그곳에 적응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꽁무니를 빼고 있으니…… 그게 앞으로 상단을 꾸려나갈 사람으로서 할 짓이라 생각하더냐?”
거듭되는 추궁에 결국 우현은 고개를 끄덕여갔다.
“알겠습니다.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데려가겠다는 답을 들었음에도 남궁조공의 표정이 쉬이 풀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제법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만든 듯싶었다.
한껏 좁힌 눈매 사이로 눈동자를 굴려 남궁운혜 쪽으로 향한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넸다.
“너는 상단주를 따라 대륙으로 건너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살피도록 해라! 풀 한 포기, 구름 하나 허투루 보지 말고 세세하게 봐야지만 앞으로 그곳에서 지낼 식솔들을 잘 돌볼 수 있을 것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더냐?”
“예, 할아버지! 뭐 하나 흘리는 일없이 잘 살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래! 그럼, 어서 상단주를 따 가 보거라! 우리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휘이휘이 내젓는 손짓에 남궁운혜 한 차례 고개를 주억대고는 우현에게로 다가갔다.
곁으로 오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짓던 그는 남궁조공에게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발끝을 돌려갔다. 뒤따라 집밖으로 나선 남궁운혜는 우현에게 말을 건네 왔다.
“할아버님이 부득불 소녀를 보내야 한다고 고집 부려 아침부터 기분 상하게 한 것 죄송해요, 상단주님!”
“아닙니다. 태상가주님의 말씀대로 제가 먼저 신경 썼어야 했던 일입니다. 그러니 미안해할 것 없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괜찮다는 그에 남궁운혜는 다행이라는 빛을 띤다.
근데 아까는 보지 못했던 보조개가 양 볼 깊이 파여간다.
‘보조개가 있는 것이 제법 귀엽네.’
이렇듯 혼자만의 감상평을 흘리던 그때 그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상단주님! 절 남궁운혜 님이라고 하시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운혜라고 부르세요.”
“하지만 세가주님의 차녀라고…….”
“그래봤자 일개 식솔에 불과해요. 나이도 어리고요. 그러니 편히 대해주세요.”
거듭되는 요청에 우현은 알겠다며 끄덕였다.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하죠. 참! 어리다고 했는데 근데 나이가 어떻게 되죠?”
“며칠 전 생일이 지나 열아홉이 되었어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그녀의 몸을 훑어간다. 열아홉이라고 하기엔 몸이 생각 외로 성숙했기 때문이었다. 무공이란 것을 배우면 이리 되는 건가 하는 쓸데없는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도 잠시, 우현은 멈추었던 발을 놀려간다. 생각 외로 시간이 많이 지체된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것은 가서 이야기하기로 하죠.”
“알겠어요.”
이렇게 우현과 티아는 혹인 양 남궁운혜와 야월을 데리고 소네스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컨테이너 앞에서 기다리고 그는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등장에 난감한 표정을 지어갔다.
“캐슬! 이 사람들은 또 뭐야?”
그의 말에 우현은 간단하게 앞서 있었던 사정을 설명하였다.
묵묵히 듣고 있던 소네스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곳에 올 대륙 사람들의 수장이란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 온 것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살피러 온 것이고요.”
살피러 왔다는 것이 맘에 거슬렸던 것일까?
왠지 낯에 못마땅한 빛이 가득한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운혜가 앞으로 나서서 인사를 건넨다.
“남궁운혜라고 해요.”
하나, 중원말을 알 리 없는 소네스 난감해하였다.
잠시 후, 통역 마법 반지를 끼고서야 겨우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소네스라 해! 상단의 총관이지.”
“이곳에 대해 잘 모르니 많은 도움 부탁드려요.”
명망 높은 자제가 예를 다해서 그런 것일까?
소네스의 낯이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뭐, 상황 봐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그래 주세요.”
빙긋 웃는 남궁운혜에 소네스는 멋쩍은 듯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런 그를 보며 웃던 우현의 곁으로 하인 하나가 다가왔다.
“상단주님! 차카타파 사람들이 뵙고 싶다고 청해왔습니다.”
“차카타파라면…… 헤네브 사람들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말에 잘됐다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저택으로 갈 것이니 20분 후에 서재로 오라고 하세요. 커피 좀 부탁하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하인이 돌아가자 우현은 남궁운혜를 보았다.
“상단 일 때문에 할 일이 많으니 미안하지만 오늘은 소네스 형님과 함께 상단 구경 좀 하십시오.”
“일이 먼저니 그러세요.”
괜찮다는 듯 끄덕이는 그녀에게서 일별한 우현은 서둘러 소네스를 찾았다.
“형님! 부탁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내가 데리고 다닐게.”
“고맙습니다.”
한 차례 주억댄 우현은 발길을 돌려 주택으로 향했다.
서재에 앉아 하인이 주고 간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어 잠시 피곤함을 쫓아낸다.
그렇게 잔을 반 쯤 비웠을 때즘 문이 열리며 대략 십여 명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제법 긴장을 한 모양이다. 일단, 자리에 앉도록 한 우현은 커피 한 잔씩 대접을 하였다. 근데 한 모금을 먹는데도 무슨 쌀 낱알 씹듯 씹고 또 씹어 먹는다. 아마도 귀족들만 먹는 비싼 것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가 보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남몰래 조소를 흘리던 우현은 정색을 하며 말을 건넸다.
“먼 길 오시느라 모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말을 듣기 무섭게 차카타파 현 수장이자, 헤네브의 스승인 아카브라암이 답을 하였다.
“아닙니다. 후작님께서 비천한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만 해도 영광인 것을 이렇게 불러주시고 지극정성을 들여 대접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다 귀한 사람을 받아 드리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 같은 하찮은 사람들이 귀하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앞으로 대륙을 선도해나갈 인재들입니다. 어찌 귀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귀인이라며 극진한 모습을 보이는 그에 차카타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였다.
어딜 가나 하찮은 버러지 취급을 받고,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절연을 당할 정도로 모두 쓰레기 보듯 했는데 이렇듯 융성한 대접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럽기까지 하던 그때 아브라암이 들고 있던 커피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우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금 하신 말씀 진심이십니까?”
과거 달콤한 말로 꼬드겨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리곤 한 적이 있던 터라 재차 사실이냐 물어간다. 우현도 이 사실에 대해 미리 언급을 받았던지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롭게 답해간다.
“지금은 여러분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역사가 판명해줄 겁니다. 그대들의 노력으로 인해 대륙이 변화하게 될 것을 말입니다. 일예로, 전에 헤네브에게서 그간 실험한 것에 대해 정리한 것을 받았습니다. 아직 자세히 읽지 않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블랙 파우더란 것과 스켄다라암(차카타파에서 스멘트를 부르는 말)만 봐도 능히 그리 될 것이라 짐작이 갑니다. 왜냐하면 블랙 파우더는 탄광업과 현 대륙의 전쟁사 자체를 뒤바꿀 만큼 그 존재가 크며, 스켄다라암은 집과 성, 그리고 다리 등 지금까지 해오던 건축에 관련된 모든 것이 부정될 정도로 그 여파가 큽니다. 한마디로 이 둘만 해도 세상이 발칵 뒤집힐만한 것이라 이 말입니다.”
순간 아브라암의 노구가 부르르 떨린다. 천대받고, 그리 모진 대우를 당했어도 언젠간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다. 그런 그를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우현이 그걸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주고 있었다. 또한 그 누구도 봐주지 않던 자신들의 연구들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있었다. 마치 지금껏 살아온 것이 그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는 듯 말이다.
북받쳐 오르는 열기를 애써 잠재우며 아브라암은 또다시 물어갔다.
“상단주님, 아니 후작님!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저희에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
“원하는 건 별거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여러분은 실험을 하면 됩니다. 단, 결과물에 대해선 전적으로 우리 상단이 모든 권한을 갖게 됩니다.”
“한마디로 모든 걸 한손에 틀어쥐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우현은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내저었다.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겠지만 여러분이 하는 실험들 중에는 악용당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블랙 파우더만 봐도 파괴력만 극도로 키워 전쟁에 쓸 경우 자칫 대륙은 핏물에 잠길 우려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