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치직 치직 치지직!
재미난 놀이기구 하나 탄 것 같은 짧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시공간 이동체 안에 무전을 시도하는 소리가 난무했다.
“전기합선 소리 들리는데.”
긴 하품을 하며 인공이 한 말에, 용하 역시 짧은 하품을 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깜박 졸았나 봐요.”
“어서 무전기 들어.”
“네.”
용하는 대답과 함께 무전기를 들었다.
[김 관장님!]“네, 말씀하십시오.”
[지금 시공간 이동체가 14세기 상공을 비행하고 있습니다.]“아, 벌써요?”
―펄떡펄떡!
시공간 이동체가 14세기를 비행한다는 말에 별안간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7세기라는 긴 시간을 거슬렀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용하와 조 박사의 무전에 귀를 기울인 인공이 잔뜩 긴장해서 물었다.
“뭐래?”
인공의 궁금증 따위, 용하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쉿!
“조 박사님!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모니터 켜세요!]“형님, 모니터 좀 켜 주세요.”
“알았어, 잠깐만!”
―삐욕!
―틱!
―위이~잉~
이제 막 부팅된 모니터 속 화면에, 마치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연상시키는 알 수 없는 지형이 떠올랐다.
“부팅됐습니다.”
[하~]무전기 속에서 긴 한숨이 새 나왔다.
“조 박사님!”
알 수 없는 한숨 소리에, 용하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었다.
[네, 말씀하십시오.]“조금 전에 그 소리는 뭡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조 박사는, 혹 용하가 불안해할까 봐, 대충 둘러댔다. 사실 조 박사가 내쉰 한숨의 의미는,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기기들이 오작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염려했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니 자기도 모르게 새 나온 안도의 한숨이었다.
[모니터에 무엇이 보입니까?]용하는 모니터 속에 보이는 장면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게 말입니다. 혹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위성 사진이라고 본 적 있죠?”
[물론이죠. 그런데 인공위성 사진은 왜요?]“지금 제가 보고 있는 모니터 속 화면이 딱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하고 똑같습니다.”
[지형이 보입니까?]“이게 지형인지는 모르겠는데, 얼추 비슷한 것 같습니다.”
[혹시 그 화면이 카메라 렌즈를 줌으로 당기듯이 조금씩 커지지는 않나요?]“어! 맞아요. 조금씩 커지고 있어요.”
[그럼 침착하게 지켜보다가, 산이나 길 또는 가옥이나 들짐승들이 보이면 말해 주세요.]“조 박사님! 관제실 모니터로 보시면 되지 않나요?”
용하의 기습적인 질문에, 웬일인지 조 박사는 딸막거리는 기색이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문제 생길 일이 뭐가 있습니까? 곧, 무사히 14세기에 안착할 텐데.]조광연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관제실 모니터에는 14세기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저 무전이라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박사님!”
적잖이 격앙된 목소리였다.
“보입니다, 보여요! 조 박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녹음이 짙은 산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길게 뻗은 여러 갈래의 계곡들도 보입니다.”
―꼴깍!
조광연의 말에 용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감이 극에 달한 탓에, 용하가 잠시 넋 놓고 있을 때였다.
[관장님! 제 말 듣고 계십니까?]혹 연락이 끊긴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인지, 조광연은 격앙된 목소리로 앙칼지게 물었다.
조광연의 목소리가 어찌나 카랑했던지, 용하는 곧 제정신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네? 아, 네네. 듣고 있습니다.”
용하가 허둥지둥 대답했을 때였다.
[에효~]무전기 속에서 또 한 차례의 긴 한숨이 새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박사님!”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일은요, 무슨…….]“아무 일 없다는 말씀인가요?”
[아, 그렇다는 데도 사람을 의심하고 그러세요? 정말 아무 일 없습니다.]“그런데 박사님……. 왜 저는 이렇게 불안한 걸까요? 꼭 무슨 일이 생긴 것처럼.”
모든 게 이상했다. 쉽게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조광연에게서 심한 기복이 느껴졌다.
‘분명 뭔가 있는데, 말을 안 하네.’
그때였다.
[김 관장님! 제 말 들리세요?]“네. 그런데 그걸 왜 묻는 거죠? 조 박사님 목소리가 제게 안 들릴 수도 있다는 겁니까?”
[아이참, 관장님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그런데 왜 저는, 자꾸 그럴 리가 있을 것처럼 들리는 걸까요?”
[아마도 예민해져서 그럴 겁니다. 낯선 곳이잖아요.]“아뇨, 그럴 리 없습니다. 14세기가 낯설다니요?”
[아, 그렇군요. 낯설지는 않겠네요. 그럼 혹시 긴장되지 않습니까?]“아뇨, 긴장될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설레는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명심하십시오.]“네, 말씀하십시오.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일단 무사히 안착하면 시공간 이동체를 아무도 찾아낼 수 없게 숨기십시오.]“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깊은 산에 착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현장에 계신 관장님이 판단하십시오. 그리고 일정한 주기로 시공간 이동체가 무사히 잘 보존돼 있는지 확인하시고, 시동도 가끔 걸어 주세요. 기계라는 게, 너무 오래 내버려 두면 고장이 나거든요.]“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무전기에 집중하시고……. 관장님! 지금은 모니터에 뭐가 보입니까?]“울창한 숲이 보이고 커다란 습지가 보이는 거로 봐서, 중경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착륙할 준비를 서두르십시오.]“어떻게 하는 겁니까? 착륙!”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시공간 이동체를 설계할 때, 그 기초가 됐던 게 다름 아닌, 자동차였습니다. 그러니까 자동차 운전한다 생각하시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세요.]“알겠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렇게 무책임한 자세로는 안 됩니다. 책임감을 느끼고 안전하게 착륙시켜야 합니다.]“…알겠습니다. 정정합니다. 책임감 있게 착륙을 시도하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공간 이동체가 어딘가의 허공에 멈춰있었다.
“조 박사님. 시공간 이동체가 멈췄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니터를 주시하세요.]“네, 지금 보고 있습니다.”
[눈에 익은 게 하나라도 보입니까?]“글쎄요……. 음, 그게……. 어! 있습니다. 일전에 왔을 때도 이 근처였던 것 같습니다.”
[어디입니까?]“복호사입니다. 복호사가 보인다는 건, 우리가 지금 아미산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행입니다. 전혀 낯선 곳에 도착한 게 아니어서.]“일전에도 이 근처에 도착했었습니다. 물론 한참을 돌아 저잣거리로 갔다가 이곳으로 숨어들긴 했지만 말입니다.”
[아미산이란 곳은 안전합니까?]“여기도 그리 안전한 곳은 못 될 겁니다. 여자들이 좀 드세야죠.”
용하의 반응은 짐짓 회의적이었다.
[여자들이라뇨?]“그런 게 있습니다. 뭐, 알아 봤자 도움 될 인간들도 아니고.”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했던 말 명심하시고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저는 연구해야 할 게 있어서 이만!]―치직!
무전기는 전기가 합선되는 듯한 단말마를 남긴 채 꺼져버렸다.
용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인공 또한 같은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렇게 끊어버리면 어쩌라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착륙을 시켜주고 끊어야지.”
용하는 무전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어떻게 해야 다시 교신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허공에 버려진 듯한 황당함. 두 사람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그럼 어떡합니까? 착륙시키는 방법을 모르는데.”
“일전에 왔을 때 말이다. 우리에게 21세기에서는 할 수 없는 이상한 능력이 있었던 거 기억하느냐?”
“이상한 능력이요?”
“이를테면 저잣거리에서 도포 훔쳐서 달아날 때, 배우지도 않은 경공술도 쓰고…….”
그 순간 용하가 강한 공감대를 표현했다.
“맞아요! 어디 그뿐이었습니까? 형님이 복호사에서 주화입마에 빠져 꼼짝도 못 하고 있었을 때 장설 형님이 내가요상술로 치료해 주었잖아요. 그때는 허공을 날다시피 했다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게 우리 능력 밖의 일인데 우리가 거뜬히 해내지 않았느냐.”
“그랬지요.”
“그럼 지금 우리가 이렇게 양철통 안에 갇혀 있을 이유가 있겠느냐?”
“그럴 이유가 없죠. 그런데 말입니다. 저 물건들은 다 어떻게 합니까?”
용하가 시공간 이동체에 실린 첨단 장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 그게 또 문제구나. 일단 우리 먼저 나가서 개방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
“개방으로요?”
“개방으로 가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그곳에 가면 소희 낭자도 있고, 장설 형님도 계시니 말이다.”
“그게 좋을까요?”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뭘 망설이는 것이냐.”
“참, 그건 그렇고. 이렇게 시공간 이동체를 공중에 띄워 놓으면 사람들 눈에 금방…….”
“하!”
용하의 말에 인공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이를 어쩐다… 그게 또 문제네.”
“형님! 조 박사가 분명 자동차를 기초로 설계했다고 했잖아요.”
“자동차를 기초로 설계했으면, 뭐?”
“그럼 자동차 운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 아닙니까?”
“당연한 얘기지. 그런데 그래서 뭐, 어쩌겠다고?”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운전이라면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거든요.”
“꼭 그래야 하겠느냐? 별것도 아닌 일에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이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요. 혹시 잘못되면 비상착륙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시간 없습니다. 그만 마음의 결정을 내리시죠.”
“아이참, 이 사람이! 뭐가 그렇게 바빠?”
인공은 곧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그가 이렇게 깊이 고민하는 걸, 용하는 본 적 없었다.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던 인공이 마침내 입을 뗐다.
“김 관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하자꾸나.”
“어떻게요?”
“내가 먼저 내려가고, 김 관장 자네는 시공간 이동체를 안전하게 착륙시켜.”
인공의 말에 용하는 어이가 없었다.
“형님! 지금 자기 혼자 살겠다고 저를 배신하는 겁니까?”
“아니, 아니. 배신이라니 이 사람이! 자네 혹시 이런 말 들어 봤어?”
“무슨 말이요?”
어느 순간부터 용하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곱지 않았다.
“계란(鷄卵)은 절대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그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이 안에 둘 다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둘 다 죽는 거 아니냐.”
“그래서요?”
“따로따로 움직이면 죽을 확률이 반으로 줄어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알겠습니다. 형님이 먼저 뛰어내려서 죽지 않고 무사하면, 저도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그러든가 말든가. 그럼 일단 내가 먼저 뛰어내리도록 하마.”
“형님.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뛰어내리기엔 좀 높은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살 운명이면 이보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도 살 것이고, 죽을 운명이면 툇마루에서 떨어져도 죽는 게 사람 명줄이 아니더냐. 잔말 말고 문 열게.”
그러는 사이, 시공간 이동체는 조금씩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