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이건 뭘까?”
계기판 아래 이상한 버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용하는 의심의 눈으로 한동안 의문의 버튼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용하의 손이, 빛처럼 빠르게 버튼을 향해 허공을 갈라놓았다. 당장에라도 버튼을 누를 기세로 다가갔지만, 막상 버튼 앞에서 손이 멈추고 말았다. 기세등등하게 버튼을 향해 갈 때와는 달이 회수되는 손은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그러기를 수차례나 반복하는 용하. 그는 지금 의문의 버튼 앞에서 누를까 말까, 강한 내적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다.
‘쳇, 긴장한 탓인지, 별게 다 의심스럽네. 설마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조광연 박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으로 봤을 때까지, 기억을 더듬어 그의 행태를 차분히 떠올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거다 싶은 나쁜 구석이 짚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용하는, 설마 조 박사가 시공간 이동체가 폭발해 버리거나 망가져 버리라고, 버튼을 설치했을 리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이러고 있느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시도라도 해보자.’
어금니를 질끈 깨문 용하는 과감하게 버튼을 눌렀다.
―꾸욱!
버튼을 누른 용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남은 건 하늘의 뜻이다.’
그때였다.
―크릉크릉! 크크크크킁! 크르릉크릉!
쇳덩어리들이 서로 맞물리며 지축을 흔드는 굉음을 냈다.
그와 동시에 시공간 이동체가 복잡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 웅장한 변화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면,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옵티머스 프라임이 로봇에서 트럭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연상시킬 만큼 장황한 현상이었다.
둥근 몸통의 시공간 이동체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사각으로 변했고, 변화된 동체에서 여러 개의 작은 문들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문으로 여러 장치가 쉴 새 없이 들락거리며 꺾이거나 비틀리기를 수차례나 반복한 끝에, 마침내 커다란 트럭으로 거듭났다.
“어! 이거 수륙 아니, 공륙(空陸) 양용인데요. 게다가 거대한 탑차예요.”
그 순간 용하는 콧날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여기까지 염두에 두고 알아서 척척 준비해 준 조광연의 긍휼함에 가슴이 뭉클해서였다.
‘자상하기도 하지. 여기까지 염두에 두고 시공간 이동체를 설계해 주었다니.’
조광연 박사의 섬세한 배려에 다시 한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야. 과학자의 상상력을 누가 따라갈 수 있겠어?’
조광연 박사. 그의 과학자다운 집요한 상상력에, 용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믿고 자신감 있게 해보자. 할 수 있어!’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이건 오롯이 시공간 이동체를 향한 믿음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었다. 지금 용하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인공과 시공간 이동체 그러니까, 조광연뿐이었다.
“형님, 일단 차를 적당한 곳에 숨기고 저잣거리로 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정보를 구하려면 그편이 좋을 것 같구나.”
“어디 적당한 동굴이라도 찾아보는 게 좋겠죠?”
“이걸 숨기려면 어지간한 동굴로는 턱도 없겠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처음엔 차가 좀 커야 안전하고 좋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몸집이 너무 크면 기동력이 영 아닐 것 같아서요.”
“기동력은 맨몸이 최고야. 왜? 여긴 몸이 곧 무기인 무림이니까.”
“검이 곧 법이고요?”
검이 곧 법이고, 몸이 곧 무기인 무림의 세계!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은 크기가 너무 커서 숨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너무 동굴에만 집착하지 말고, 울창한 숲도 한번 고려해 볼 만하지 않을까?”
“괜찮은 생각이긴 하지만, 사람들 눈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장소는 피하고 싶습니다.”
“내 말은 숲에다 숨기자는 게 아니고, 최악의 경우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는 얘기지.”
“그랬다가 만약에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엔 어떻게 합니까?”
“띄면 좀 어때?”
“띄면 좀 어떠냐니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여기 사람들이 저걸 발견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으냐? 모르긴 해도 저게 뭔지도 모를 텐데.”
인공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이를테면 이동 수단이라고는 말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최첨단 승용차를 내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마 소희 낭자가 본다 한들 기껏해야 특이하게 생긴 집 정도로 생각할 것이야.”
“압니다. 형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래서 말인데요. 일단 오늘은 해가 지기 전까지 동굴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만약에 못 찾으면?”
“형님 말씀대로 숲속에다 숨겨놓고 차박할 생각입니다.”
“차박! 차에서 잔다는 소리냐?”
“노인네가 모르는 게 없어.”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아마도 이 무림에서 여기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것이야.”
“그나저나 배를 좀 채워야 할 텐데.”
“지금 밥이 넘어가겠니? 우선 이 물건부터 좀 처리하고 생각해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그런데 동굴은 대체로 어떤 지형에 만들어질까요?”
“음, 일단 바위산이 있어야겠지? 큰 바위산일수록 큰 동굴이 있을 거야?”
“바위산! 알겠습니다. 일단 바위산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광야로 나가서 지형부터 살펴보자꾸나.”
“광야로요?”
인공의 제안으로 옵티머스 프라임의 변신 트럭은 광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승용차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덩치답게 중후하고 웅장했다.
―크르르르릉~
“형님! 이름 하나 지어보세요.”
“이름? …누구 이름?”
“시공간 이동체 말입니다. 모양과 기능이 바뀌었으니, 그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허공을 가르던 로켓 비행체가 육지를 달리는 트럭이 되었으니, 그에 맞는 이름을 지어 달라?”
“네, 형님. 역시 찰떡이네요.”
“찰떡! 뭐, 따로 지을 것도 없이 찰떡이 좋겠네. 뭐든지 척척 되잖아.”
인공의 말이 못마땅했던지, 용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엣말로 무어라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형님! 생각해 보니까, 괜찮은 이름인 것 같은데요. 소희 낭자나 용두방주와 함께 있다가도, 필요한 게 있어서 트럭에 가 봐야 할 일이 생기면, ‘형님, 우리 찰떡 좀 먹으러 갈까요?’ 하면, 우리가 트럭으로 간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 아닙니까.”
“하여튼 알아줘야 한다니까.”
“알아줘야 한다니, 뭘요?”
“큰 머리는 영 아닌데, 잔머리 굴리는 건 기가 막힌다니까.”
“형님도 참, 뭘 그렇게까지.”
“대단하다, 대단해! 찰떡이란 말을 그렇게 갖다 붙이네.”
“호호, 가자 찰떡!”
―크릉크릉~ 크르르르릉~
용하가 운전하는 찰떡, 그러니까 옵티머스 프라임 변신 트럭은 흙먼지를 날리며 육중하게 광야를 달려 서서히 멀어져 갔다.
* * *
그날 저녁.
“형님, 해지기 전에 돈을 좀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수로 돈을 마련하려고?”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왜, 무림의 순박한 사람들 상대로 사기라도 치게?”
“형님도 참, 사람을 뭐로 보고.”
조금은 한가해진 저잣거리를 옥신각신하며 걷고 있는 용하와 인공이 보였다.
“그런데 웬 여행용 가방이냐?”
용하는 트럭에서부터 줄곧 여행용 하드 케이스를 끌며 걸어왔다.
“아, 이거요? 밑천이 있어야 돈을 마련하지 않겠습니까?”
“뭐, 장사라도 할 생각인 게냐?”
“일단은요.”
“대체 그 여행용 가방에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호언장담하는 것이냐?”
“일전에 왔을 때 말입니다. 여기 저잣거리에 전대를 빼앗아 달아나는 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용하는 여행용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하더니, 크로스백 하나를 꺼내 인공 앞에 내놓았다.
“어! 이건 크로스백이 아니냐?”
“바로 알아보시네요?”
“당연하지. 한때 삼척동자도 메고 다닐 만큼 유행하지 않았느냐.”
“네, 맞습니다. 사실 이 크로스백이 진짜 필요한 시대는 21세기가 아닌, 14세기! 바로 여기입니다. 이걸 전대 대신 몸에 메고 다니면, 쉽게 날치기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용하에게서 우쭐거린다거나 하는 건 엿볼 수 없었다. 그냥 당당함이었다.
“알았어, 무슨 소리인지. 아, 그러고 있지 말고, 몇 개 꺼내 봐.”
“어떻게 하시려고요?”
얼핏 우려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인공은 버럭 호통을 쳤다.
“아, 장사 안 할 거야? 장사하려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거 아냐.”
인공은 크로스백 하나를 척 몸에 둘렀다. 그러고는 하나를 더 들더니, 용하의 어깨에 메어주었다.
“자, 어떠냐?”
“글쎄요. 아직은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별 기대감은 안 생기는데요.”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저잣거리 사람들 시선을 좀 봐!”
인공의 말에 용하는 조심스럽게 눈을 들었다. 그러고는 긴장된 가슴으로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숨이 턱 막혔다. 자기 자신에게 아니, 자기가 메고 있는 크로스백에 꽂힌 저잣거리 사람들의 예리한 시선이 따가워서였다.
“보았느냐? 모름지기 장사란 자기가 먼저 써보고, 그 물건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남에게도 권할 수 있는 것이야.”
“형님도 참. 거, 형님은 가끔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 가끔 뿐이었겠느냐? 매사에 깜짝깜짝 놀라게 했지.”
모처럼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인공이 우쭐한 기색이자, 용하는 짓궂게 받아쳤다.
“아뇨, 진심 매사는 아니고, 가끔!”
“알았으니까, 그만하자꾸나. 앞으로도 가끔 놀라게 해주마.”
그때였다.
“이보시오, 장사치들이시오?”
행인 하나가 용하와 인공 쪽으로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아 네, 그런데요?”
용하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냉큼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인공은 용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다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장사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뭡니까? 내가 보기엔 장사하러 나온 거 맞는데.”
어지간한 사람의 속은 정확히 꿰뚫어 보는 인공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의 속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을 알고자 이렇게 사람을 떠보는 것일까?’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인공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알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니 모든 걸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저희는 말입니다. 정확히 말해 장사하러 나온 건 아니고, 저녁 끼니가 없어 쓰던 물건을 좀 팔아보려고 나왔습니다.”
“맞죠? 물건 팔러 나온 거.”
행인은 뜻밖에 반가운 기색이었다. 그런 행인을 보는 용하와 인공은 얼핏 고개를 갸웃했다.
“그 어깨에 두른 것도 팔려고 가지고 나온 거 맞소?”
행인의 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용하와 인공이 어깨에 멘 크로스백을 직시하고 있었다.
좋아해야 할 순간이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아, 이거요? 아 네, 그럼요.”
너무 쉽게 대답해 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얼마 쳐 드리면 나한테 팔겠소?”
갑작스럽게 훅 치고 들어오는 통에, 얼마를 불러야 할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망설이는 것이오? 내가 그렇게 없어 보이기라도 한 것이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어서 말해 보시오.”
이번에도 행인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왔다.
“음, 얼마나 예산을 세우고 나오셨는지요? 이게 보기보다 좀 비싼 물건이라…….”
“어디 대답해 보시오. 뭐, 집 한 채 값이야 하겠소?”
너무나도 당당한 행인의 말에, 용하와 인공은 입이 떡 벌어지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헉!”
“딸꾹!”
용하와 인공은 놀란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 * *
크로스백 하나를 판 용하와 인공은 장사는 뒷전이고 황급히 국밥집으로 향했다.
“호호, 형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네요. 여행 가방에 든 거 몽땅 팔아야 겨우 국밥 한 그릇 먹나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전부는 아니어도 거의 다 팔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나 했는데, 딸랑 크로스백 하나 팔고, 일 년 먹고도 남을 양식을 벌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이 지금 열심히 세고 있는 돈은 하찮은 동전 따위가 아닌, 지폐 다발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몰래 따라 걷는 대여섯의 그림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