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배가 부르니 기분은 좋은데, 뭔가 좀 이상한 게 없었느냐?”
어스름한 달빛을 받으며 광야를 걷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용하 그리고 인공이었다.
조금 전 인공이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질문이 뜬금없게 들릴 만도 했으나, 용하의 귀에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의 덧없음을 통감한 듯 긴 한숨으로 되물었다.
“사람이 그렇게 빨리 늙을 수도 있는 겁니까?”
얼핏 묻고 있는 것 같았으나, 사실은 인공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옳거니! 네 녀석이 제대로 본 게야.”
“국밥집 주모 말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갑자기 폭삭 늙은 걸까요?”
“실은 나도 그것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여서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말았구나. 나이 들면 사람 앞일 모르는 거거든.”
두 사람을 먼발치에 두고, 국밥집까지 미행했던 자들이 아직도 은밀하게 뒤따르고 있었다.
―자박자박!
일정한 거리를 두고 미행자들의 나직한 발소리가 아까부터 들렸지만, 용하도 인공도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형님! 우리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습니까?”
“왜, 길을 잃은 것으로 생각되느냐?”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저잣거리를 벗어나면서부터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형님 뒤만 졸졸 따라왔거든요. 그래서.”
“엥! 내 뒤만 졸졸 따라왔다고?”
웬일인지 인공은 경악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용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런데 왜요?”
사실 태연한 척 대답은 했지만,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순 없었던지, 용하의 표정에 깊은 걱정이 앞섰다.
“뭔 일이 난 게 틀림없어.”
“왜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 그게 말이다. 나는 네 녀석 가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거든.”
두 사람의 말이 서로 뒤엉키자, 미행하던 일단의 발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아마도 미행을 더 한다는 게, 별 의미가 없음을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형님도?”
“용하, 자네도?”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울상을 지었다. 두 사람의 울음소리가 어둠을 갈라놓자, 줄곧 그들을 미행해 온 발소리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울음소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뚝 멎었을 때였다.
“혹시…….”
두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새 나온 말이다.
“먼저 하…….”
이번에도 두 사람의 말은 어김없이 맞물렸다.
말이 자꾸 뒤엉키자, 용하는 나름대로 생각했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이다 보니, 의식도 생각도 비슷한가 보구나. 그렇다면 나라도 입을 다물자.’
같은 순간 인공의 생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 혈기여서인가, 말이 앞서는구나. 나라도 입을 다물어야겠군.’
인공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용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마주 보며 침묵을 지키던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거의 동시에.
“이거 너무 호흡이 척척 맞는 거 아냐?”
이렇게 길게 한 말도 무엇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일치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호흡이 척척 맞았지만, 사실 놀란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호흡이 지나치게 척척 맞아도 소통이 안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대화의 기본은 듣는 것부터라는 것도 이참에 깨달았다.
‘이를 어쩐다…….’
한참을 고심하던 용하가 불현듯 무엇인가 떠올리고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펴,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용하의 행동을 본 인공은 일순 갸웃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용하의 속내를 찰떡같이 알아차리고는, 그 역시 손가락을 펴, 굳게 다문 자기 입을 가리켰다.
비록 대화가 오간 건 아니지만.
무언중에 이 두 마디 말을 소통시킨 용하와 인공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용하가 입을 열었다.
“형님, 일단 오늘은 저잣거리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용하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이번에는 인공이 손가락을 펴,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용하 역시 손가락을 펴, 굳게 다문 자기 입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무언이 소통이 이루어지자, 마침내 인공이 입을 뗐다.
“길을 잊은 게 아니고, 어둠 때문에 방향을 잃은 거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까 국밥집에서만 해도 돌아가는 길이 눈에 선했거든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
“에효~”
두 사람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새 나온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내일 날 밝으면 갈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보다 더 다행인 건, 우리 수중에 돈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그것으로 객잔을 좀 알아보자꾸나.”
“하, 객잔! 생각만 해도 아주 징글징글한데요.”
“그때는 돈이 없었잖아. 돈이 없으니 진상 대접받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하긴, 그래도 오늘은 다른 객잔을 좀 알아보죠?”
“그렇게 하자꾸나. 서둘러 저잣거리로 가야겠구나.”
“굳이 서두를 것까지 있나요?”
“사람들 있을 때 가야, 어딜 가면 객잔이 있는지 물어볼 거 아니냐.”
“아, 맞네요! 역시 형님은 형님이십니다.”
“형님은 형님이라니, 그런 말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아, 제가 말입니다. 제대로 감동했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알았다. 기억해 두마.”
두 사람은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두 사람의 눈앞에 옅은 불빛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형님! 저잣거리입니다.”
“나도 아까부터 보고 있어.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으냐?”
“이상하다니, 뭐가 말입니까?”
“아까 갈 때 말이다. 이렇게 오래 걸었느냐?”
“글쎄요, 아까는 오로지 시공간 이동체 아니, 찰떡 먹으러 간다는 생각에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조심하자꾸나.”
점점이 보이는 불빛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가벼워야 할 그들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걸음을 내디뎌 객잔에 도착했을 때였다. 객잔 규모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평범하고 좋아 보였다. 우선 문지기가 없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어떠하냐? 일단 문이 개방돼 있어 마음을 편하게 하는구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뭐 그런 느낌인데요.”
“들락거리는 사람들 행색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구나.”
“네. 사람들 모두 소박해 보여, 무엇보다 부담스럽지 않아 더욱 좋습니다.”
“음, 들어가자꾸나!”
두 사람은 활짝 열린 환문(歡門)을 지나 객잔 안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점소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쇼~”
인공은 일반손님들이 술을 마시는 중앙 홀을 힐끔 바라보았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적잖이 소란스러웠다.
“음, 둘이 묵을 방부터 하나 보여주시오.”
“네네, 알겠습니다.”
“돈 걱정은 말고, 이 객잔에서 제일 좋은 방으로.”
“따라오십시오. 객주들에게만 내주는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객잔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중앙 홀을 지나 거마차자(拒馬杈子)가 앞을 가리고 있는 문 앞에 섰다. 점소이가 거마차자를 지우고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드십시오.”
안으로 들어가니 잔디가 드넓게 펼쳐진 정원이 보였다. 정원 끝에 뜻밖에 번루가 보였다.
“아니, 저것은 번루가 아니오?”
“네, 맞습니다.”
“번루가 어찌하여 개인이 운영하는 객잔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오?”
“특별한 손님을 위해 허가를 내었습니다.”
허가라는 말에, 인공은 다소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은 넓고 아늑했다. 한눈에 봐도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 남을 듯했다. 한쪽 벽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 방으로 정하겠소. 그럼 방은 됐고. 음, 술은 각자(閣子)에서 마시기로 하겠소.”
“각자에서요?”
“왜, 안 되겠소?”
“아닙니다. 그럼 각자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점소이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방에서 마시면 흔히 말하는 룸서비스에 따른 작은 팁이라도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룸에서 마시겠다고 하니, 팁은 부르는 게 값이 되기 때문이다.
“혹시 밀담을 나눌 소저들도 들여보내 주는 것이오?”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요.”
점소이의 안내로 번루를 나와 다시 객잔으로 돌아왔다. 중앙 홀 가운데 있는 계단을 오르자 밀폐된 방들이 즐비했다. 인공은 은자 한 냥을 점소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잘 부탁하네. 내 나이는 생각하지 말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점소이는 벙긋 웃는 인공의 속내를 찰떡같이 알아차렸다.
“네, 알겠습니다. 아직 족보에 먹물도 안 마른 소저들로 대령하겠습니다.”
인공은 흡족한 표정으로 점소이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용정차를 좀 올릴까요?”
“아니, 차 말고 술을 좀 내오시오.”
“술이라면, 어떤…….”
점소이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죽엽청으로 내올까요?”
“그리하시고, 안주는 저녁을 든든히 먹어서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독주를 마시려면 속을 좀 달래 줘야 하니, 소채볶음을 좀 내오시오.”
인공이 주문을 대충 끝냈을 때였다.
“대협!”
점소이의 대협이란 호칭에 인공은 짐짓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점소이가 인공을 대협이라 부른 이유는, 단지 그가 중장년의 나이로 보였기 때문에 적당한 예를 갖춰 부른 것이다.
“아뢰기 황송하나, 소저들은 그런 안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좋아한단 말이오.”
“소저들은 회과육이나 동파육을 좋아합니다.”
“소저들이 왜 그런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오?”
“번루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귀한 음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러시오? 그럼 그것들도 내오시오.”
“네, 알겠습니다. 대협!”
어느새 점소이의 입에서 손님이라는 호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점소이가 밀폐형 공간을 나와 총총히 복도를 걸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용하는 인공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꾸짖었다.
“형님!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겁니까?”
“어쩌긴 뭘 어째? 이렇게라도 눈도장을 찍어 둬야 나중에 애로사항이 생기면 도움을 받을 것 아니냐.”
인공의 말에 얼핏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용하는 일단 그의 처세술을 믿어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술집 체질에 안 맞거든요. 그러니까 밀담을 나누든, 재미를 보든, 형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젊은 놈이 뭐 그래! 화류계 문화 몰라?”
“네. 알다시피 저는 검도밖에 모르고 살았거든요.”
“아, 그 작대기?”
인공은 짓궂은 표정으로 죽도 휘두르는 동작을 아주 작게 흉내 냈다.
그날 용하와 인공의 밀폐형 공간은 향락의 밤이었다. 두 사람 능력으로 이런 향락을 누리는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용두방주를 만나 그에게 대접을 받지 않는 한.
* * *
다음 날 아침.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환문을 나서는 용하와 인공에게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먼 길을 가실 거면, 벽곡단(辟穀丹)을 좀 챙겨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벽곡단이라…….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알고자 하신다면, 얼마든지요.”
인공은 기대감으로 점소이를 바라보았다.
“벽곡단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내공이 고강한 강호의 협객이 먹을 경우, 한 알만 먹어도 3일을 거뜬히 견딜 수 있다는 신기 중의 하나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음식이길래, 한 알로 3일을 견딜 수 있단 말이오?”
“크기는 상관없습니다. 벽곡단 한 알에 든 영양성분 때문이니 말입니다.”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영양성분이 그리 좋단 말이오?”
“송홧가루에 솔잎과 꿀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약재가 들어갔습니다.”
“아, 말로만 들어도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소. 벽곡단을 챙겨 주시오.”
인공은 잠깐의 고민 끝에, 점소이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던 용하는 인공의 귀에 대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형님, 우리의 여정이 그리도 길어질 것 같습니까?”
적잖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