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제대로 가고 있는 거겠죠?”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평야. 군데군데 섬처럼 떠 있는 짙은 녹음의 숲. 따갑게 내리쪼이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고 있는 용하와 인공.
“어제 저잣거리 찾아갈 때 이렇게 많이 걸었어?”
“에이 형님도 참, 불안하게 왜 그러세요?”
“불안할 게 뭐 있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평야에 군데군데 보이는 숲 가운데 하나겠지.”
“그건 그렇지만……. 형님! 어제 저잣거리 갈 때 언덕이나 내리막은 없었죠?”
“확실히 없었지. 아무렴.”
“우리, 잘 가고 있는 거 맞겠죠?”
“…….”
“왜, 대답을 안 하세요?”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하는 거다.”
“왜, 대답을 못 하세요?”
“인생에 정답이 얼마나 되겠느냐? 더군다나 이렇게 낯선 곳에서 말이다.”
“그 말은 알아서 생각하라는 거죠?”
“…….”
“저는 말이죠. 지금의 상황을 상당히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전에 왔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딘지도 모를 낯선 곳에 떨어져서, 어렵게 저잣거리를 찾아 개방으로 가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만해! 언제까지 떠들 작정이야?”
“아무튼 그때하고 비교하면, 지금은 자발적으로 왔고, 만반의 준비가 돼 있고, 개방이라는 우리 편이 있고,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
“네.”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는데?”
“장설 형님, 소희 낭자, 용두방주… 음, 그리고 개방의 많은 사람이요. 게다가 저는 개방의 넘버3(쓰리)잖아요. 창의부흥원 원장.”
“음, 듣고 보니 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은 조건인 건 확실하구나.”
“그렇죠, 제 말이 맞죠? 저는 지금 제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와 있는 것 같다니까요.”
그 순간 인공의 눈길이 흘깃 용하에게로 흘렀다. 곁눈질이었다.
‘저 곁눈질!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의미심장한 순간을 그냥 흘려보낼 용하가 아니었다.
“형님, 설마하니 이번에도 남채화를 거쳐야지만 개방에 갈 수 있는 건 아니겠죠?”
“개방에 가려면 남채화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 게 무림의 법도거늘, 그사이 이곳의 법도가 바뀌었을 리 없질 않으냐.”
“하지만 그건 외지인이 개방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얘기고, 형님이나 저는 개방의 일원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저는 창의부흥원의 원장이고요.”
우쭐거리며 떠들어대는 용하를, 참 딱하다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인공.
“그새 잊은 것이냐?”
“잊다니, 뭘요?”
“우리 21세기로 돌아갈 때 말이다.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하고 떠나지 않았느냐.”
―철렁!
섬뜩했다. 심장이 뚝 떨어지는 듯했다.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그날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용하의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모두가 적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단 말인가?’
순식간에 모든 게 달라졌다. 무림에서의 마지막 날을 잊지 않았다면, 두 번 다시 올 일도 없었을 텐데. 후회라는 막연한 파도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했다.
“형님!”
“왜?”
“혹시 말입니다. 개방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미리 좀 알아볼 방법이 없을까요?”
모를 리 없었다. 용하가 지금 겁을 잔뜩 집어먹고 저런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인공이었다.
“그건 알아서 뭐에다 쓰게?”
“제가 뭘 좀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후회하는 것이냐?”
“네, 아주 많이……. 그리고 형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나한테 뭐가 죄송해?”
인공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시간을 끌며 고심하던 용하의 입에서 겨우 새 나온 말이라고는.
“형님을 사지로 데리고 왔잖아요.”
“사지라는 걸 알고 한 짓도 아닌데,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다.”
“형님…….”
“됐다! 솔직히 말하면, 내 의지도 어느 정도는 있었으니까, 너무 미안해할 필요 없어.”
“형님…….”
인공의 너그러움에 감동해서였을까, 용하의 눈에 불현듯 눈물이 고였다.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여기 온 목적만 생각해.”
무림에 다시 온 목적이라,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실 용하에게는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무사히 무림에 도착하자 무엇이 그리도 설레었던지, 그 목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튼, 용하의 목적을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첫째, 21세기에서 첨단기기들을 가져와 무림의 부호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
둘째, 변두리 검도 체육관 관장에 불과한 자기를 열렬히 지지해 준 용두방주를 만나는 것.
셋째, 오른팔처럼 따르며 개기일식, 그날을 찾는 데만 전념해 준 소희를 만나는 것.
이렇게 세 가지였다. 부와 권력은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다.
‘둘 다 있으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나머지는…….’
용하의 표정에 얼핏 야욕이 스쳤다.
‘우선 가질 수 있는 것부터 취하고 보자. 세 가지 목적 가운데 어떤 게 가장 쉬운 것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같은 순간 인공의 생각은 달랐다.
‘양날의 검이란 영원히 등을 지고 있어야만 하는 기구한 팔자다. 얼핏 둘 다 가졌으니,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겠지만, 자칫 내 것인 줄 알았던 양날의 검은, 황당하게도 나를 향해 날아올 때도 종종 있다.’
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형님! 일단 부딪쳐 보죠.”
“어떻게? 뭘 가지고 그들과 부딪쳐?”
“그들이 아무리 숫자가 많고 검을 잘 다룬다 해도, 현대식 무기 앞에서는 그저 추풍낙엽일 뿐입니다.”
“현대식 무기? 무슨 현대식 무기. 너 혹시, 그 찾지도 못하고 있는 시공간 이동체인가 뭔가 하는 트럭 말하는 것이냐?”
“트럭도 트럭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현대식 무기들이요.”
“뭐, 기관총이라도 가져온 것이냐?”
“에이, 기관총으로 되겠어요? 그보다 한 수 위!”
“기관총보다 한 수 위?”
인공은 종잡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형님, 자꾸 알려고 들지 말고, 그냥 밀어붙여 주세요. 뒷감당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뒷감당을 네 녀석이?”
“네!”
표정이며 목소리 톤이 자신감에 넘쳤다. 용하의 자신감이 지나치다 싶어서였을까, 인공은 더 의심스러운 눈으로 용하를 직시했다.
‘저 녀석이 어떤 카드를 숨기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난색을 지었다.
“아, 형님!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저 눈곱만큼도 꼼수 부리는 거 아니니까.”
이번에도 여전히 용하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넘쳤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강한 신념. 용하가 시종일관 자신감을 보이자, 어느새 인공의 의심은 합리적으로 변해갔다.
‘저 녀석 말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타고 온 거대한 트럭만 봐도 전투력을 상실한 채 까무러치고 말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인공은 일단 용하의 말을 믿어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 말 믿는다. 나 또한 자네를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이니.”
“고맙습니다, 형님.”
“그런데 그렇게 해서 권력이든 부든 갖게 됐다고 치자. 그것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 게냐?”
인공의 기습적인 질문에, 용하는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이었지만, 표정은 더욱 결연해졌다.
―꿀컥!
용하는 울대가 크게 일렁일 만큼 꿀떡 마른침을 삼키고는 마침내 입을 뗐다.
“공정한 세상을 위해 무림맹(武林盟)을 만들 겁니다.”
“무림맹?”
“네. 아홉 개의 정파와 개방 그리고 오대세가(五大世家)까지. 그들이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사이 알게 모르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부패와 맞서 싸울 생각입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 무서워서 너하고 못 다니겠다. 용하야! 그냥 대충 좀 살면 안 되겠니? 아니, 대충 좀 살아주면 안 되겠니?”
“형님, 대충 살면 싱겁잖아요. 그러니까 형님도, 제 말만 믿고 제발 좀 따라와 주십시오. 뭐, 손해 볼 것 없잖습니까?”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긴 한데, 그러다 혹시 다치거나 죽을까 봐 그러지.”
인공은 말로 용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는 각오로 하던 말을 끝까지 내뱉고는 몸서리를 쳤다.
“형님! 형님에게 가장 두려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용두방주입니까?”
인공은 대답은 하지 않고 진저리를 쳤다.
“소희 낭자입니까?”
이번에도 인공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장설 형님입니까?”
용하의 마지막 질문에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장설 형님? 그 형님이 왜 두려워? 보고 싶어 죽겠구먼.”
“좋아요. 그럼 장설 형님부터 수소문해 봅시다.”
“장설 형님을 어디 가서 수소문해?”
“뭐, 저잣거리든 개방이든,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잖습니까?”
인공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잖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형님, 뭐 하세요?”
“…….”
“형님!”
그제야 인공은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을 차리는 기색이었다.
“왜 불러!”
“이러고 계실 겁니까?”
“이러고 있지 않으면?”
“장설 형님 찾아봐야죠.”
용하는 인공의 결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등을 돌려 성큼 걸음을 뗐다.
“어딜 가려고 그러는 것이냐?”
“어디긴 어디겠어요, 저잣거리지.”
저잣거리라는 말에, 인공은 용하 뒤로 바짝 따라붙으며 종종걸음쳤다.
“형님, 자꾸 발 빼고 그러지 마세요.”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어차피 무림이란 곳은 우리에게 양날의 검입니다.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이를테면 판도라의 상자 같은 곳이란 말입니다.”
판도라의 상자! 결코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형님이나 저는 결코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열고 만 것입니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
“이렇게 우리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 같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란 게 남아 있습니다.”
“희망!”
“네, 그래서 한번 해 볼 만하다는 겁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면 긍정적인 것만 보이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것만 보이게 마련.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희망은 다 똑같이 보인다는 사실.
“무슨 말인지 이제 좀 알 것 같구나. 장설 형님이 계신 곳이 어디이든, 우리가 못 만날 리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왜? 우리는 세상 둘도 없는 의형제니까.”
* * *
다음 날.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장설을 찾아 나섰다. 하루의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하나둘 모여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북새통을 이루었다.
“혹시 장설을 아시오?”
“장설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시오?”
용하와 인공은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가리지 않고 장설을 수소문했다.
장설을 수소문하는 두 사람은 보기조차 애처로울 만큼 간절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용하와 인공이 장설을 수소문하기 시작한 지 반나절이 지났을 때였다.
저잣거리 인근의 한 객잔으로, 천지가 뒤흔들릴 듯 “대~협!!”을 외치며 환문으로 들이닥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대여섯의 협객 앞에 무릎을 조아리며 고했다.
“저잣거리에 장설을 수소문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뭣이라! 장설을 수소문하는 자들이 나타났다고?”
대여섯의 협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곧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확실한 것이냐?”
“네, 대협! 반나절을 뒤따르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믿어주마.”
협객은 사내에게 약 10여 문 정도가 담겼을 작은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수고했다.”
―철그렁!
사내는 바닥에 떨어진 주머니를 덥석 주우며 깊이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대협!”
협객은 바닥에 납작 조아린 사내 따위 안중에도 없이 탁한 목소리로 외쳤다.
“가자!”
날렵하게 앞장서는 협객 뒤로 나머지 협객들이 득달같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