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오후가 되자, 지칠 대로 지친 용하와 인공은, 더는 작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형님! 아무래도 우리가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괜한 짓을 하다니, 왜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장설 형님을 만난 장소는 이런 저잣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저잣거리가 아니면 어떤 장소였느냐?”
“장설 형님은 매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척박한 평야나 숨쉬기조차 힘든 사막 또는 고원 같은 열악한 곳에서 만났었습니다.”
“음,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그 형님이 혼자 저잣거리에 나올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장설 형님을 찾은 게 아니고, 우리 여기 있으니 얼른 와서 잡아가시오, 라고 이실직고하고 다닌 것에 불과합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잡아가? 잡아가길.”
“형님 말대로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 말입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하고 갔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네 녀석 말은, 너와 나는 무림 전체의 주적이다?”
“아뇨, 14세기 전체의 주적입니다.”
두 사람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때늦은 후회였다.
용하와 인공이 자괴감에 빠져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였다.
―사삭! 사사삭!
보폭이 좁은 일단의 움직임이 두 사람을 향해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형님,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살 궁리를 해야지. 마음 단단히 먹어.”
“…….”
“왜 대답이 없어? 약해지면 죽는 거야. 자부심 있잖아.”
“자부심요?”
“그래, 자부심. 우리는 평생을 무술을 연마하면 산 사람들이다. 여기 무림의 무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무림의 무사들과 다르지 않다니요? 어불성설입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어불성설이라니.”
“생존을 위해 무술을 연마한 사람들하고 체육관에서 무술 수련을 한 사람하고 어떻게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들판에서 자랐든, 온실에서 자랐든, 꽃은 꽃이고, 식물은 식물이다.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자부심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야.”
용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인공을 바라보았다.
‘좀 무모하긴 하지만, 항상 자신감에 넘치는 저 모습! …부럽다.’
“형님, 일단 해 빠지기 전에 시공간 이동체를 찾아봐야 합니다.”
“그게 뭐 그리 급해서?”
“현재로서는 그곳이 가장 안전합니다.”
인공은 용하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시공간 이동체가 변신한 거대한 트럭. 일단 외관이 크고 웅장하며 단단하다. 다시 말해 여기 무림에 이런 물건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바람 한 점 들어올 틈도 없이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그래, 어디까지 기억을 더듬을 수 있겠느냐?”
“제가 기억하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광대무변한 평야에 마치 섬처럼 군데군데 떠 있는 숲 어딘가에 주차했습니다.”
“문제는 그 광대무변이야.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한, 광대무변한 평야에서 트럭을 주차한 숲을 어떻게 찾겠다는 것이냐?”
맞는 말이었다. 망망대해의 수많은 섬 가운데, 찾고자 하는 섬을 정확히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형님! 트럭에서 내려 저잣거리까지 간 시간이 얼마나 걸렸던 것 같습니까?”
“저잣거리가 어딘지도 모르고 간 것치고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죠? 저도 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하여 이렇게 애먹을 거라고는…….”
“누가 아니라니. 국밥 한 그릇 뚝딱 먹고 나와서, 바로 트럭으로 돌아갈 거로 생각했는데.”
그때였다. 용하가 연신 곁눈질해가며 인공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지껄였다.
“형님, 티 내지 말고 아무렇지 않게 걸으면서 들으십시오.”
“왜 또? 무슨…….”
“쉿!”
인공은 버럭 고함을 지르려다가 용하의 저지로 입을 꾹 다물었다.
용하는 조금 전보다 더 나직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형님, 미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소란스러운 저잣거리를 벗어나 사방이 조용해지니, 그들의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이제야 느낌이 오는구나. 대여섯쯤 되는 자들이구나.”
“대여섯?”
인공의 말에 용하는 무엇인가 감지했는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형님! 대여섯이 확실합니까? 일곱이 아니고요?”
“아니, 많아야 여섯이야. 다섯보다 적지는 않고. 그런데 일곱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느냐?”
“지난번에 무림에 왔을 때 말입니다. 우리를 줄곧 미행하던 협객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 그 흉악한 놈들? 아미파(峨嵋派) 장문인 보현이 보낸 하수인들 말이지?”
“네. 그들의 수가 일곱이었습니다.”
“맞아! 개방의 경계석 앞에서 정확히 봤잖아. 일곱 놈!”
“그런데 지금은 많아야 여섯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수가 줄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없었다.
“용하야! 이런 상황일 때,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일 것 같아?”
“글쎄요. 여기 무림에서 우리가 안전할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한 걸까요?”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적잖이 비관적이었다.
“만약 저들과 대적해야 한다면, 몇 놈이나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몇 놈이나 상대할 수 있냐고요? 저는 말입니다. 대적은커녕 저놈들 중에 한 놈도 상대하지 못할 건 자명하고요. 모르긴 해도 저놈들 중에 단 하나, 단 하나의 털끝도 못 건드릴 겁니다.”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는 것이냐? 허풍이라도 좋으니 제발 자신감을 좀 가져!”
“이건 게임이 안 된다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고양이 앞에서 쥐가 자신감은 가져서 뭐에다 쓰겠습니까? 괜히 한 대 맞을 거 두 대 맞고, 10분은 버틸 거 1분도 못 버티고 잡아먹히기나 하지.”
“아니! 내 생각은 좀 달라. 예전에 우리를 뒤쫓던 협객들은 닌자술을 쓰는 자들이었다.”
“그야 물론 그랬었죠.”
“그런데 지금 저들은, 고작 21세기에서 온 우리한테조차, 쉽게 들키고 말지 않았느냐.”
역시 인공의 통찰력은 용하보다 한 수 위였다.
“그 말씀은 적어도 보현의 하수인들은 아니란 말씀인 거죠?”
“그것도 장담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게 정답이야.”
“그러면 말입니다. 그때 그 7인의 협객들보다는 하수란 말이죠?”
“그걸 굳이 물어야 하겠느냐? 딱 봐도 어설프잖아.”
“그럼 막연하게 피할 게 아니라, 한번 붙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먼저 시비를 거는 건 바보짓이야.”
“왜요? 선제공격이 바보짓이란 말은 생전 처음 듣습니다.”
“아직 놈들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선제공격이라.”
혼잣말로 되뇌는 인공의 표정은 적잖이 회의적이었다.
“어때? 그건 좀 아닌 것 같지?”
“그럼 우선 저들의 정체부터 파악해야겠네요?”
“무슨 수로?”
용하는 어떤 대답도 수 없었다. 사실 의욕만 앞섰지, 뾰족한 수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하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용하야! 수중에 돈 될 만한 게 무엇이 있느냐?”
“현재로선 여행 가방에 든 크로스백과 패딩점퍼 몇 벌이 전부입니다.”
“그거 다 팔면 얼마나 되겠느냐?”
“음, 21세기 값어치로 대략 100만 원 남짓!”
“100만 원 남짓이라…….”
“그런데 돈을 뭣에다 쓰려고요?”
“저들을 매수해 볼까 한다.”
인공의 말에 용하는 경악해서 물었다.
“저놈들을요?”
“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느냐?”
“당연히 불가능하죠. 형님 같으면 낯선 놈들이 돈 몇 푼 던져주면서, ‘너 내 편 할래?’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넙죽 수락하실 겁니까?”
“넌 내가 그렇게 간사한 놈으로 보이느냐?”
“넙죽 수락하면, 당연히 간사한 놈으로 보이겠죠.”
“그러니까 네 녀석 말은, 저놈들이 넙죽 수락하면 간사한 놈들일 테니, 더욱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 호흡이 척척 맞을까 고민했는데, 이제야 호흡이 좀 맞는 것 같네요.”
“그러니까 매수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뭐 그런 얘기인 게지?”
“매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돈으로 잠깐 저들을 살 수는 있겠지만, 뒷감당은 어찌합니까?”
용하의 말에 인공은 씁쓸하게 대답했다.
“하긴, 그래. 저런 것들한테 무슨 기대를 하겠어. 그렇지?”
“혹시 말입니다. 일단 넓은 장소로 유인해서 저것들 실력이나 한번 볼까요?”
“야, 김용하! 너는 꼭 목숨을 걸어야 하겠냐?”
“왜, 목숨을 걸어요? 형님, 피구 해 보셨죠?”
“해 보지는 않았지만, 하는 건 몇 번 봤는데, 피구는 왜?”
“저들과 피구를 한번 해 볼까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피구는 숫자 싸움이거든. 해 보나 마나 불리한 싸움이야.”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 무슨…….”
“저들보다 빠르게 움직이면 승산이 있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한번 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 도망갈 곳도 없는데.”
“그러면 말입니다. 어느 정도 가다가 적당한 곳에 매복하는 겁니다.”
“매복한 다음은?”
“우리가 안 보이면 분명 저들은 우왕좌왕할 겁니다.”
“그렇겠지? 일단 놓쳤다는 생각이 먼저일 테니까.”
“그렇지요. 그다음은 우왕좌왕하다가 일순 긴장을 놓을 겁니다.”
“음, 네 녀석이 사람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구나.”
“바로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득달같이 달려들면 안 되고요. 저들 주위를 빠르게 돌면서 포위망을 서서히 좁히는 겁니다. 간혹 잽도 한 번씩 던지면서요.”
용하의 전술을 듣는 인공은 머릿속으로 그 광경을 상상하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만약 네 녀석 작전이 성공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개방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개방으로요? 저는 거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원래 어느 동네를 가나 복면하고 다니는 놈들이 그 동네를 잘 알지. 모르긴 해도 저것들이 개방이 어디 있는지, 아니면 개방으로 갈 방법 정도는 알고 있을 거야.”
“잃은 건 없는 승부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해보자꾸나. 몸조심해야 한다.”
“네, 형님도요.”
두 사람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갑자기 빨라진 두 사람을 놓칠세라, 미행자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미행했을까. 대여섯의 협객들 시야에 용하와 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척!
앞서가던 우두머리 격인 협객이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춰 세웠다.
협객들은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지만, 그들의 눈에 살기보다는 두려움이 더 역력했다.
그때였다. 최대한 몸을 낮춰 작은 바위 뒤에 은폐하고 있던 용하와 인공이 날렵하게 몸을 세우더니 협객들 주위를 빠르게 맴돌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는 그들의 동작은 마치 슈퍼맨 영화에서 지구를 거꾸로 돌리던 장면을 연상시켰다.
“정신 차려라! 놈들의 작전에 말려서는 아니 된다.”
우두머리 격인 협객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하지만 서서히 좁혀 오는 용하와 인공의 치밀한 포위망을 감당하기엔 이미 늦은 듯했다.
“형님, 그만 뛰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가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구나.”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던 그들의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너희들의 정체를 밝히거라!”
인공이 고함을 질렀지만, 협객들은 서로 힐끔힐끔 눈치만 볼 뿐이었다.
“왜, 늙은이 말이라 우습게 들리는 것이냐?”
이번에도 협객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는가 하면, 젊고 패기 있어 보이는 용하를 힐끔거렸다.
용하는 순식간에 그들이 왜 대답을 미루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우리를 미행한 이유가 무엇이냐?”
일부러 단전에 기를 모아 근엄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우두머리 격인 협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소인들은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던 자들입니다.”
“그럼 장사를 할 것이지, 어찌하여 사람을 미행했던 것이냐?”
“지금 이 무림은 사람 살 곳이 못 됩니다. 협객이 되거나, 도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만이 살길입니다.”
협객의 말에 용하와 인공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