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어찌 생각하느냐?”
“밑도 끝도 없이 어찌 생각하냐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협객들과 헤어진 용하와 인공은 척박한 광야를 걷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흙먼지 날리는 광야와 이글거리는 대지에서 뿜어내는 아지랑이 그리고 지평선이 전부였다.
용하는 이미 이런 환경에 익숙하기라도 한 듯 저벅저벅 걸음을 내디뎠다. 반면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몰라 막연하게 걷고 있는 인공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남채화를 찾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소리다.”
“아뇨! 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트럭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래! 바로 그래서 하는 소리야. 트럭을 찾으려면 여기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그게 누구겠니? 장설 형님 다음이 바로 남채화야. 그런데 지금 상황을 좀 봐. 장설 형님을 찾는 게 빠르겠어, 남채화를 찾는 게 빠르겠어?”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일까. 용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인공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러고는.
“네네, 무슨 말씀하시는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제 말은 형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고, 남채화의 도움을 받아서 트럭을 찾는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립니다.”
웬일인지 인공의 귀에는 용하의 말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남채화의 도움으로 트럭을 찾는 게 마음에 걸리다니, 왜?”
그래서인지 인공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의구심을 드러냈다.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짧게 대답했다.
“트럭이 노출되잖아요.”
“아무래도 트럭이 노출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내가 가진 거 다 지키면서 할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느냐.”
“내가 가진 걸 지키겠다는 게 아닙니다.”
용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뭐, 아니라고? 그게 아니면,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형님! 아직도 뭔가 느껴지는 게 없으세요?”
“왜 없겠어. 하지만 그건 생각조차 하기 싫으니, 이렇게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나 떠들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만에 하나라도 트럭이 노출된다면, 어쩔 수 없이 남채화를 없애야 하는데, 형님이 그거! …할 수 있겠어요?”
“어허! 불자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부처님께 귀의한 중생이 살생을 어찌하겠느냐.”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형님은 이유 없이 살생하면 안 되잖아요. 저 역시 누굴 해친다거나 하는 짓은 절대 할 수 없고요.”
“절대 할 수 없다니, 왜 못 한다는 것이냐?”
“저는요, 형님. 작은 벌레 하나 죽은 것만 봐도 심장이 꿈틀거리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발뺌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질긴 신경전이 되었다.
“하긴, 작대기만 써본 네 녀석이 뭐는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그건 그렇고, 이 더운 날씨에 패딩은 왜 가지고 온 것이야?”
“우리 21세기로 떠나던 날 기억하세요?”
“21세기로 떠나던 날! 글쎄, 대체 뭘 기억하느냐는 건지. 아, 에베레스트!”
“네, 바로 거기! 에베레스트 말입니다.”
용하는 짧게 대답했고, 인공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
“알았다. 그건 뭐 따로 쓸데가 있겠지. 그건 그렇고, 우여곡절 끝에 개방으로 갔다고 치자. 방주가 너를 반길 것으로 생각하느냐?”
“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유는, 꺼질 듯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작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희망이 있다! 그게 무엇이냐?”
“제가 아는 개방의 방주는,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떤 타협도 가능한 사람입니다. 물론 인명피해 없이 진행할 수 있는 협상이라면요.”
인공의 귀에는 용하의 말이 조금은 추상적으로 들렸다.
“인명피해라니, 무슨 인명피해를 말하는 것이냐?”
“에베레스트에서 방주가 우리를 미행했잖아요. 그때 말입니다.”
“그때 무슨 인명피해가 있었을까? 나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하지만…….”
인공은 무엇인가 석연찮은 구석이라도 있었는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용하는 득달같이 따져 물었다.
“대체 무엇입니까? 그 마음에 걸린다는 게.”
“소희 낭자 말이다. 우리를 따라오려다가 결국 떨어지지 않았느냐.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 전혀 모르고 있질 않으냐?”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소희에게 인공이 우려하는 일이라도 있었다면, 마지막 희망조차 날아가 버리고 만다.
“우리가 좀 무심했죠. 하지만 시대가 다르니,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잖습니까?”
“따지려고 얘기를 꺼낸 게 아니니, 괜히 날 세우지 말고 들어.”
“…….”
용하는 고개를 숙이며 자세를 낮췄다.
“만에 하나, 소희 낭자가 그때 떨어져서 죽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방주와 협상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느냐?”
“…….”
용하는 고개를 들어 멀리 보이는 커다란 산을 바라보았다. 첩첩이 보이는 능선들이 자신의 심경을 대신해 주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막막해서였을까, 예전에 왔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고마운 사람들…….’
특히 장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의형제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가장 필요한 사람 가운데 하나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여기 지형에 밝고, 무공은 물론 통찰력까지 뛰어난 사람.
장설은 여러 방면으로 완벽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척박한 곳을 걷다 보면, 장설 형님을 만날 수 있겠지?’
용하에게는 척박한 곳에 가야 장설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용하야! 꼭 이렇게 삭막한 데를 걸어야 하겠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곳에 와야 장설 형님을 만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아지랑이들 사이로 등이 구부정한 장설이 걸어올 것만 같았다.
“난 어이가 없다.”
“왜요?”
“네 녀석 말대로면, 난 주화입마에 들어야 장설 형님을 만날 수 있거든.”
“형님도 참, 뭐 그런 뜻으로 한 말인가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어서라니, 그 말이 더 슬프게 들렸다.
“아무튼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 둘 다 장설 형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네, 맞습니다. 그냥 그리운 게 아니고,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용하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반면 인공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곤경에 처하지 않았어도 미치도록 그리웠을까?”
아니, 어쩌면 회의적이라고 해야 옳을 듯했다.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우리는 의리로 똘똘 뭉쳐진 의형제잖아요.”
“의리로 똘똘 뭉쳤다? 그 말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겠느냐?”
기습적인 질문이어서였을까. 이번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왜, 대답을 못 하는 것이냐?”
“솔직히 말하면, 한 점 부끄럼이 없지는 않습니다.”
인공이 엄히 다시 물었을 때, 비로소 용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인정하는 걸 보니,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는 모양이구나.”
“21세기로 돌아갈 때 말입니다. 장설 형님만 내버려 두고 간 게, 끝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땐 달리 방법이 없었잖느냐. 만약 [바람찬(윙슈트)]이 세 개였어도, 장설 형님을 떼놓고 갔겠느냐?”
분명 자기 합리화임을 알면서도, 그편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
“…….”
“그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그것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막연하게 걸어야 하는 것이냐?”
“해 질 무렵이 되면, 장설 형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어쭙잖은 녀석의 막연한 추측을 따라야 한다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이렇게 막연히 걸을 게 아니라, 이 근처에서 기다리는 게 현명할 것 같구나.”
“그건 왜요?”
“이렇게 막연하게 걷다가 장설 형님도 못 만나고, 저잣거리에서 멀어져 돌아가는 길도 잃어버리면, 그땐 어떻게 할 작정이야?”
저잣거리에서 멀어져 길을 잃는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뭘 해도 저잣거리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견은 없었다. 저잣거리에 있어야 남채화도 만날 수 있고, 정보 팔이 소녀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 순간.
“형님! 저잣거리로 갑시다.”
용하의 결단은 빠르고 명쾌했다.
“갑자기 왜? 일단 여기서 해지기 직전까지는 있어 봐야 하는 거 아냐?”
“막연히 장설 형님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저잣거리로 가서 정보 팔이 소녀를 수소문해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정보 팔이 소녀라면, 소희 낭자를 말하는 것이냐?”
“네.”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
지금 인공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이유는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그 고귀하신 분이 저잣거리에 나올 것으로 생각하느냐?”
“그 고귀하신 분을 처음 만난 곳이 저잣거리입니다.”
대단한 역설이었다.
* * *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 용하와 인공은 저잣거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형님! 저잣거리 들어가면, 정보 팔이 소녀도 같이 수소문해 봅시다.”
“기왕 하는 거, 남채화도 같이 수소문해 보자꾸나. 뭐든 하나만 걸리면 실마리가 풀릴 것 아니겠느냐?”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장설 형님과 함께 정보 팔이 소녀 그리고 남채화까지, 한꺼번에 수소문하는 겁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저잣거리 초입을 걷고 있었다.
“여보시오! 혹, 장설이라는 스님을 아시오?”
용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정보를 판다는 소녀를 아시오?”
인공이 소희 낭자를 수소문하는 말로 뒤를 이었다.
“오늘 남채화를 본 사람이 있소? 만약 있으면 얘기해 주시오. 섭섭지 않게 사례를 하겠소.”
그렇게 한참을 수소문하고 다닐 때였다. 상단이 서던 자리에서 용하와 인공을 직시하는 한 사내가 보였다. 사내는 수차례나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하면, 의심의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용하와 인공을 향해 거리를 좁혀 왔다.
사내가 거리를 좁혀오자, 용하와 인공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저잣거리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했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사내가 두 사람 앞에 우뚝 섰다.
“혹시, 장설 어른이나 정보를 파는 소녀를 아시오?”
“정보 파는 소녀는 모르겠고, 장설이라는 어른은 몇 년 전에 죽었소.”
“네?”
용하와 인공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경악했다.
“장, 장설 형님이 죽, 죽다니요?”
입이 떨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어른 오래 살았지. 눈 한 번 잘못 감으면 목이 달아난다는 무림에서 아흔까지 살았으니 말이야.”
“거짓말!”
용하와 인공의 입에서 동시에 새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곧 믿기지 않는 현실을 자각이라도 했는지, 용하의 입에서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잖아요. 내가 찾는 장설 형님이 아닐 거야.”
“용하야! 진정하거라. 진정하고 자세히 좀 알아보자꾸나.”
“자세히 알아보긴 뭘 자세히 알아본다는 겁니까? 보나 마나 저 사람이 잘못 알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는 거라니까요. 뭐, 아흔까지 살았다고? 저 사람이 아는 장설과 우리 장설 형님은 다른 사람이라고요. 우리 장설 형님의 나이는 팔순이었습니다.”
그제야 인공도 무엇인가 깨닫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보게, 용하! 듣고 보니,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우리 장설 형님의 나이는 기껏해야 여든이었어.”
그 순간 잠깐 눈을 마주친 용하와 인공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두 사람은 한목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 장설의 행적을 말한 사내를 동시에 노려보았다.
“설마 네 녀석이 사례금을 노리고 거짓을 고하는 것이냐?”
이번에도 입을 모아 사내를 위협했다.
“무례하시오. 그깟 사례금 몇 푼 받겠다고 양심을 파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오?”
사내는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든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장설 형님이 죽다니. 혹시 동명이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