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장설이 죽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장설은 죽지 않았다!
아흔에 죽었다는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설이 아니다.
‘장설 형님의 나이, 아무리 많아도 여든이다. 이제 겨우 여든 안팎인 사람이 아흔에 죽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그래! 말이 안 되니, 아흔에 죽었다는 그자는 내가 찾는 장설 형님이 아니다.’
용하는 사내의 새 날아가는 소리 따위 더는 괘념치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였을까, 한참을 차가운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던 용하는 단호하게 입을 뗐다.
“좋소! 장설은 됐고. 혹시 남채화를 본 적은 있으시오?”
남채화라는 소리에, 사내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고개를 크게 갸웃했다. 그런 사내를 바라보는 용하의 눈동자가 조금 전 가늘게 흔들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매섭게 변해 버린 용하의 눈이 사내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남채화? 그 할망구들은 몇 년 전에 저잣거리에서 사라졌다오.”
용하의 눈매에 기가 질린 탓인지, 사내는 부들부들 떨며 겨우 대답했다.
“사라지다니, 왜요?”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내는 옥죄듯 다그치는 용하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이라도 칠 기세였다.
“달아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오. 거래를 시작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아니오.”
이 말이 사내의 귀에는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능지처참이라도 하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당장에라도 심장으로 파고들 것만 같은 비수와도 같은 소리에, 조금 전까지 등골이 오싹하게 했던 두려움이 방금 공포로 바뀌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죽더라도 자존심 꺾고 죽어서는 안 되지.’
그 순간 사내의 뇌리에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스쳤다. 그리고.
“아, 왜긴 왜겠어요? 개방에서 외지인을 배척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자리가 없어지니 별수 있었겠소?”
뜻밖에 사내는 신경질까지 내 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곧, 지렁이가 밟히면서 토해내는 마지막 비명이라 생각될 만큼 카랑했다.
용하는 한심하다는 듯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용하의 눈을 피해 몇 번이고 흘깃거렸다.
“이보시오. 괜한 신경질로 사람 성질 돋우지 말고, 개방에서 왜? 대체 무슨 일로, 외지인을 배척했는지 그것을 소상히 말해 보시오.”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건 남채화한테 물어봐야지.”
사내도 답답했는지 목숨 걸고 대드는가 싶더니, 곧 말꼬리를 흐렸다.
‘상대는 지금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모름지기 매는 아픔을 느낄 수 있을 때, 때리라고 했다. 검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금은 공격할 때가 아니고, 인식시켜야 할 때란 얘기다.’
용하는 곧 태도를 바꾸었다. 자세는 정갈하게, 목소리는 온화하게.
“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소이다. 개방의 일원도 아닌 사람에게 그런 것까지 묻다니, 내가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결례를 범하였소.”
달라진 용하의 태도는, 사내를 고개조차 들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오히려 소인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 같은 무지렁이가 그런 걸 어찌 다 알겠소? 그냥 여기 저잣거리 사람들 생각은, 개장이 어찌나 외지 사람들을 심하게 배척하던지, 이러다 무슨 전쟁이라도 나는 거 아닌가 싶었다니까요.”
“아, 그 정도였습니까?”
“거, 말도 마십시오. 여기 사람도 개방에 들어갈 수 없고, 개방의 사람들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소이다.”
“지금 하는 말투로 봐서는, 지금도 그렇다는 뜻이잖소.”
“맞소이다. 세월이 흐르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점점 심해지더이다. 그런데 대협들께서는 왜 남채화를 찾는 것이오?”
“거기까지는 알 필요 없고, 남채화가 두문불출하기 시작한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그거나 대답해 보시오. 남채화가 저잣거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거 말이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거의 10년이 다 돼 가는 거로 기억하고 있소이다.”
“10년이라…….”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하나하나 주워듣다 보니,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듯했다.
그때였다. 인공이 용하에게 눈을 크게 껌벅였다. 그것을 본 용하는 10문 남짓한 구리동전을 사내에게 건넸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떻게든 도움을 주겠다고 애써 준 아저씨 마음이 고마워서 주는 것이오.”
사내는 기대했던 것보다 적은 사례라고 생각했던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더니 곧, 빼앗듯 구리동전을 낚아채 황급히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용하와 인공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아니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당연히 아니지. 뭐 하나 맞는 게 없지 않으냐?”
“누가 봐도 그렇죠? 장설 형님의 나이도 틀리고, 10년 전에 남채화의 활동이 사라졌는데, 우리는 어떻게 활동이 사라진 남채화의 도움으로 개방으로 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게, 뭐 하나 맞는 게 없으니, 저 인간 말은 다 거짓말이라는 거지. 새빨간 거짓말.”
사내의 제보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홀가분했다.
“어떠냐? 몇 문 집어 준 게 아까운 건 아니지?”
“그럼요. 비록 정보를 얻는 건 실패했지만, 그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 쉬운 게 없네그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세상이 내 것도 아닌데.”
“제법 어른스럽게 말하는구나.”
“어른스럽다니요? 형님! 저 어른이에요.”
용하는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알았어, 우리 어른!”
“그렇다고 뭘 그렇게까지.”
“오늘은 어디 가서 눈 좀 붙이고 내일 다시 찾아보자꾸나.”
“그럴까요? 어제 그 객잔 어때요?”
“아, 거기! 좋지.”
“그럼 우리 거기 가서! …한잔 찐하게 빨아삐리 뽕?”
“빨아삐리 뽕!”
두 사람은 객잔을 향해, 모처럼 가벼운 걸음을 내디뎠다.
“사람이란 게 참 이상한 동물 아니냐?”
“동물이요?”
“음, 지능이 좀 높은 동물!”
“근데 뭐가 이상해요?”
“사실 우리가 오늘 이룬 건 하나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장설 형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꿰뚫어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뭔가 대단한 걸 해낸 것처럼 이렇게 들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장설 형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보다 훨씬 좋아진 건 사실이잖아요.”
“내일은 뭔가 찾을 수 있겠지?”
* * *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제의 오늘은 과거가 되고, 현재인 오늘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여기서 해장이라도 하고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저는 저잣거리 주모가 해 준 국밥이 당기는데요.”
“국밥? 아, 그거 좋지.”
무엇이 그리 흡족한지 싱글벙글거리던 인공이 불현듯 외쳤다.
“국밥집 주모!”
인공의 돌발적 태도에 용하도 곧 무엇인가 각성하고는 말했다.
“왜 진작 주모를 생각지 못했죠? 남채화도 소희 낭자도, 국밥집 주모와 꽤 친해 보였는데 말이죠.”
“그렇지? 다들 주모와 친해 보였던 거 맞지?”
“네. 두 사람 다 어디 가서 국밥이나 한 그릇 먹자고 하니까, 거기로 데려갔잖아요.”
“아니야. 만약 용하 네 녀석 말대로면 거기도 별 기대할 건 없을 것 같아.”
“아니, 왜요?”
용하는 격앙된 목소리로 항변하려 들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남채화나 소희 낭자나, 우리를 거기로 데려간 건, 국밥집이 거기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 같거든.”
인공의 말에 조금 전 격앙됐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용하는 그럴듯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형님! 어차피 해장도 해야 하니까, 일단 가서 국밥 한 그릇 하면서 물어보죠. 잘하면 눈썰미 좋은 주모가 형님과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그렇지? 주모가 너는 몰라도 나는 기억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나는 모르고 형님만 기억한다니.”
“원래 사람은 같은 또래의 남녀를 더 잘 기억하거든.”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하 역시 동떨어진 연령대보다는, 또래 연령대에 더 관심이 가고, 오래 기억하는 건 사실이니까.
“형님이라도 기억해 주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아무래도 초면보다는 그편이 훨씬 유리할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저잣거리 사람들은 의심부터 하더라고요.”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21세기 현대사회에선 눈 감으면 코 베 갔지만, 14세기 무림에선 눈 감으면 목을 베 가니 말이다.”
―꿀떡!
인공의 말에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토록 그리워했는데.’
용하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인공의 눈에도 그것이 보였다.
“왜 그러느냐?”
“무, 무엇을 말이니까?”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기에 눈빛이 그 모양인 게야?”
“제 눈빛이 어때서요?”
“무엇인가 깊이 후회하는 기색이지 않으냐?”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갈 리 없는 인공의 예리한 눈에 들킨 게 분명했다.
‘어떡하지? 그냥 인정해 버릴까?’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 차라리 능청을 떨어대며 시치미를 떼는 게 나다운 거지.’
갈등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후회? 음, 후회라면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 후회라면 후회겠죠?”
역시 통했다. 이번에도 용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조금 전 객잔을 나온 용하와 인공은 저잣거리를 향해 걷고 있었다.
“형님, 괜찮으세요?”
대답이 없었다.
“형님, 괜찮으시냐고요?”
“음, 죽을 지경이다.”
“어제 남은 술 다 드신 거예요?”
“그럼 그 비싼 술을 버리니?”
“에이그, 차라리 술을 버리지. 이러다 형님 갖다 버리게 생겼습니다.”
“이것 봐,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떻게 갖다 버린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니? 이래서 내가 주금산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거늘.”
“지금 후회하시는 겁니까?”
“뭐, 후회? 후회하는 게 아니고, 통곡하고 싶다 내가, 인석아!”
“그런데 이를 어쩐답니까? 이미 때는 늦은걸.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오호애재(嗚呼哀哉)라!”
적잖이 깐죽거렸다. 그런 용하 녀석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지, 인공은 주먹을 둘러맸다. 바로 그 순간 속에서 어제 먹은 것들이 역류하며 속이 뒤집혔다.
“우웨에엑!”
“형님! 괜찮으세요?”
―탁탁탁탁!
“인… 인석아… 지금 등을 두드리는 것이냐? 사람을 패는 것이냐?”
“당연히 두드리는 거죠. 어때요, 좀 진정이 되세요?”
“그런데 어째 감정이 실린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잠자코 계세요.”
―탁탁탁탁!
그렇게 용하와 인공은 가다 서기를 수차례나 반복하며 겨우 국밥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코에 와 닿는 구수한 국밥 냄새가 잠시나마 속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형님, 아무 데나 좀 앉으십시오.”
“그러니 말고, 용하야! 우리 방으로 들어가자꾸나.”
“방으로요?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용하는 국밥집 안쪽에 있는 주방 쪽으로 종종걸음쳐 들어갔다. 그리고 인공이 속으로 열도 채 세기 전에 다시 돌아왔다.
“형님! 식전부터 무슨 방이냐고 하는데요.”
“그게 다 무슨 소리인 게냐? 식전이든 식후든, 손님인 내가 방에서 밥을 먹겠다는데, 그게 문제가 된다는 것이냐?”
“문제가 된다는 건 아니고요. 간단하게 먹을 거면, 그냥 평상에서…….”
용하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간단하게 안 먹겠다면?”
그 순간 용하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형님! 어제 그렇게 마셨으면서 또 술을 드시겠다는 겁니까?”
“반주로 탁배기 딱 한 잔만 마시려는 것이니, 한 번만 눈감아 줘. 대신 평상에서 먹을게.”
“평상에서 드시든 방에서 드시든 상관없는데, 그렇게 틈만 나면 술을 마시다가 건강이라도 잃으면 어찌하려고 그럽니까?”
“지금 내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면요?”
“나는 말이다. 네 녀석이 그 잔소리만 좀 안 했으면 하는데. 나는 말이다. 네 녀석 잔소리만 안 들으면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아.”
“아, 이 형님이 진짜! 알았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대신 죽지만 마세요.”
얼핏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것 같았지만, 그 순간 용하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런 용하를 보니, 인공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주모! 여기 국밥 두 그릇만 빨리 말아 주시오.”
인공의 목소리는 ‘나 이렇게 건재하다.’라고 선포라도 하듯 우렁찼다.
“형님! 탁배기는요?”
“됐다. 오늘만 날은 아니잖으냐. 탁배기는 다음에 와서 하자꾸나.”
“형님…….”
잠시 가슴이 다 뭉클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형님! 그런데 이제 국밥집 길은 완전히 외우셨나 봅니다.”
“국밥집 길을 외우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객잔에서 나와 한 번도 우왕좌왕하는 일 없이 이곳까지 단번에 오셨잖습니까?”
“내가 무슨 수로 여길 단번에 찾아와?”
“그럼요?”
“다 부글거리는, 이 속이 찾아온 거지.”
바로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용하의 눈이 마치 향고래라도 본 것처럼 초롱초롱 빛을 띠었다. 그의 뇌리에 무엇인가 스쳤던 것일까.
“형님! 어쩌면 트럭 있는 곳을 찾을 수 있겠는데요.”
무엇보다 반가운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