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오호! 이것은 정녕 주모의 솜씨인가, 신의 조화인가?”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인공이, 아직도 뚝배기에 코를 묻고 킁킁거리며 낙천적인 그의 성격을 드러냈다.
“그렇게 맛있습니까?”
“내가 언제 맛있다고 하였느냐?”
가볍게 던진 말에 인공은 뜻밖의 대답으로 사람을 놀라게 했다.
“방금 신의 조화니, 뭐니, 거창하게 나불거리지 않았습니까?”
나불거린다는 말은 아랫사람에게나 하는 막말이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혀를 끌끌 차며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저, 버르장머리하고는.”
“버르장머리라니, 왜요?”
적반하장이었다.
“그게 어른한테 할 소리야?”
인공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건데요? 나불거렸다고 해서 화가 난 겁니까? 그럼 시정할게요.”
“시정? 어떻게 시정할 건데?”
“떠벌렸다고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됐다, 그만하자. 어차피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나이는 따져서 뭐 하겠느냐.”
“잘 생각하셨어요. 그깟 나이는 따져서 뭐에다 쓰겠습니까? 늙은 게 자랑도 아니고.”
눈치가 없는 건지, 정말 버르장머리가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장난이 심한 건지. 아무튼 용하는 장난치고는 좀 심하게 인공의 심사를 뒤틀어 놓았다.
“너는 꼭 자기 입맛에 맞아야지만 맛있다고 하니? 내가 국밥을 극찬한 건 말이다.”
인공은 자기 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요, 요! 세 치의 혀가 느끼는 국밥 맛이 아니라…….”
이번에는 자기 배를 둥글게 문지르며 또 말을 이어 갔다.
“이 속에서 느끼는 국밥 맛과 내 코가 이미 알고 있는 국밥의 향을 표현한 것이다.”
“오호라! 그런 복잡한 심경을 시적으로 표현하신 거로군요?”
“그렇지.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는구나.”
“국밥에서 향이 난다……. 대체 어떤 향이 났던 걸까요?”
“자꾸 따지지 말고!”
인공은 발끈한 기색으로 빈 뚝배기를 들어 용하의 코에다 들이대며 말을 이어 갔다.
“이래도 모르겠냐? 이미 코가 알고 있는 이 구수하고 매콤한 이 냄새에, 이 속에서 느끼는 시원함! 이런 것들이 두루 어울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글거리던 속이 진정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형님 얘기는 해장이 됐다는 거잖아요?”
“어디 해장만 됐겠느냐? 기력도 되돌아와, 이제 막 날아갈 것 같구나.”
용하는 입맛에만 충실한 탓에, 미처 국밥의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이마를 탁! 쳤다. 그러고는 엉뚱한 말로 사람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형님! 그것도 재주입니다. 특별히 국밥 냄새를 음미하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세상천지에 누가 음식 냄새까지 신경 쓰면서 밥을 먹겠어.”
“그렇다고 형님이 별스럽게 음식 냄새에 민감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이상하게 말이야. 나는 다른 사람이 신경 쓰고 맡아도 맡지 못하는 냄새를, 그냥 몸이 느껴. 그냥 이 몸이 알아서 느낀다고.”
인공이 자기의 소회를 각인시키듯 말하자, 이번에도 용하는 무릎을 탁! 치며 호응했다.
“맞네, 맞아! 재주가 분명해. 형님! 절대음감이라는 말 들어 보셨죠?”
“해장국 먹다가 느닷없이 절대음감은!?”
“아이참, 자꾸 토 달지 말고, 들어 봤어요, 못 들어봤어요?”
“텔레비전에서 들어는 봤지. 뭔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말입니다. 음, 뭐랄까……. 아! 말이 필요 없고 몸이 느낀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좋다는 것이냐, 나쁘다는 것이냐?”
“당연히 좋다는 거죠. 아니, 이게 어디 좋기만 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형님은 절대 후각의 소유자가 분명합니다.”
“절대 후각?”
“네. 형님 덕분에 찰떡이 있는 곳도,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찰떡? (잠시 생각하는 기색이더니) 아― 아, 찰떡―!”
그러고는 다시 곰곰이 생각하는 기색이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생각보다 쉽게 트럭을 찾을 수 있다니.”
“쉿!”
용하가 강력하게 주의하자, 인공은 목소리를 낮췄다.
“아, 알았어. 찰떡! 그런데 음식 냄새 잘 맡는 재주로 트럭이 있는 곳을 찾다니?”
“말이 뭐가 필요합니까? 해장도 했고, 기력도 되찾았으니, 슬슬 찰떡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때 부엌에서 나오던 주모가 괄괄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아, 방금 밥 먹고 또 무슨 찰떡!”
“이보시오, 주모! 거, 우리는 말이오. 국밥 들어가는 배 따로 있고, 찰떡 들어가는 배 따로 있는 사람들이라오.”
“거, 뭔 소리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주 와서 국밥이나 많이 팔아주시오.”
“그러잖아도 입맛에 맞는 걸 보니, 대놓고 먹을까 생각 중이오. 그나저나 밤에는 몇 시까지 하시오?”
“요즘 같아서는 해 빠지면 문 닫아야지. 등롱에 넣을 기름 값도 안 나온다오.”
“허허, 장사가 잘 안되나 보오?”
“예전 같지 않아요. 예전엔 이 시간이면 여기 평상들 꽉 찼거든.”
“어허, 큰일입니다. 어딜 가나 서민들의 입에서 힘들어하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으니 말이오. 그럼 많이 파시오. 또 오리다.”
용하와 인공은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고 국밥집을 나섰다.
국밥집을 나온 용하는 대체 무엇을 찾는지, 눈을 크게 두리번거리며 저잣거리를 휘저었다.
“대체 뭘 그리 찾는 것이냐?”
“그런 게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너는 팔자가 왜 그러냐? 매 순간 그렇게 뭘 찾아만 다니고.”
“뭐, 저만 그런가요? 인생이 다 그렇잖아요.”
“하긴, 산다는 게 다 그렇구나.”
적잖이 자조적인 말투였다. 그래서인지, 용하는 인공을 흘깃 바라보았다.
“무엇을 그리 찾는지 말해 보아라. 혼자 찾는 것보다 둘이 찾으면 좀 낫지 않겠느냐?”
“그럴까요? 그럼 기름류를 좀 찾아주세요.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식물류 말고요.”
“식물류가 아니면, 뭐 동물류 말이냐?”
“그렇죠, 동물류! 이왕이면 공룡의 화석 같은 데서 나오는 동물류의 기름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휘발유를 찾는 것이냐?”
공룡의 화석이라는 말에 인공은 다소 경악하며 물었다.
“욕심 같으면 휘발유였으면 좋겠지만…….”
“14세기에 휘발유를 사용했다는 자료가 있느냐?”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자료를 찾아볼 만한 장비들이 전부 트럭에 있는데.”
“그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걸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냐?”
“저잣거리 출발하기 전에 한번 둘러보고 가는 게 왜 시간 낭비입니까? 시간을 유효 적절히 잘 활용하는 거지.”
듣고 보니 달리 항변할 이유가 없었다.
“형님! 혹시 말입니다. 시공간 이동체가 21세기를 출발해서, 14세기로 거슬러 와서 거대한 트럭으로 변신하기까지, 무슨 냄새가 났다거나 뭐 그런 거 없었습니까?”
“그건 왜 묻는 것이냐?”
용하를 쳐다보는 인공의 눈빛이 그리 곱지는 않았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질색하는 용하를 더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인공이 비릿한 미소로 물었다.
“개 취급하는 거지?”
“네? 개 취급이요? 그, 그럴 리가요.”
“너 지금, 나더러 킁킁거리면서 가서 찰떡인가 트럭인가 찾아오라는 거 아냐? 야, 심하다, 심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지, 이건!”
어찌나 자존심이 상했던지, 여차하면 징징거리며 눈물 흘리는 것조차 불사할 기세였다.
“형님! 그런 뜻은 절대 아니고, 제 말은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 그 정도로 절박하다는 걸 말씀드린다는 게 그만……. 농담 아닙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만큼 간절합니다.”
용하의 간절한 하소연이 마음을 움직였던지, 조금 전까지 발끈했던 인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들며 물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건데?”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시공간 이동체가 우주를 비행하는 동안 어떤 연료를 사용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적어도 무림에 도착해서 트럭으로 변신한 다음에는, 내연기관에 쓰이는 연료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트럭이니까 디젤엔진을 썼을 테고, 그럼 사용된 연료는 경유겠네.”
“요소수도 사용했을 테고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냄새를 토대로 트럭을 찾아봐 달라?”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라고. 선뜻 대답하고 싶었지만, 용하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한 채 얼핏 치켜뜬 눈으로 눈치만 보았다.
“알았다, 알았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이라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보자꾸나. 그래야 후회가 없지 않겠느냐?”
“감사합니다, 형님. 이 못난 동생의 어리석음을 깊이 헤아려주셔서.”
“그새 철이 든 것이냐? 어째 이제야 좀 사람 같구나.”
늘 기고만장해서 까불 줄이나 아는 얼치기로 알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자세를 낮추는 용하. 자세를 낮출 줄 안다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겼다는 뜻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기특하게도 완전 바보는 아니니 말이다.’
인공의 얼굴에 그의 속내가 교차하자, 그것을 의아하게 여긴 용하가 물었다.
“형님! 지금 상태가 좋은 겁니까, 그 반대입니까?”
“왜, 내 상태가 어때서?”
“형님, 얼굴색이 LED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정이.”
“내 얼굴색이 LED 같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음, 그러니까 그게… 밝은색이었다… 어눌한 색이었다… 희망적인 색이었다… 암울한 색이었다……. 바뀌고 또 바뀌고… 음, 지금 또 바뀌려고……. 아니다. 이제 더 보여 줄 색깔이 없으신가 보다.”
“허허, 듣고 보니 세상 둘도 없는 적절한 표현이로구나.”
“이제 색깔 다 보이셨으니까, 한 가지 색을 선택하실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이미 색깔은 정했으니 출발하자꾸나. …찰떡 먹으러!”
두 사람은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킁킁, 킁킁!
인공은 마치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산속을 헤매고 다니듯 코를 벌름거리며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감이 좀 잡히세요?”
“쉿!”
용하는 헤벌어졌던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몇 걸음도 채 걷지 않았을 때였다.
용하는 나직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형님. 냄새가 좀 나세요?”
“글쎄다… 다른 건 몰라도 다림질하는 냄새는 확실히 느껴지는구나.”
“다림질하는 냄새?”
용하의 이맛살이 일순 여러 겹으로 접혔다 풀렸다.
“형님, 다림질 냄새라니, 이건 너무 황당한데요?”
“그러게, 이런 냄새가 왜 나는지 모르겠지만, 무림에서 이런 냄새가 날 리 만무하니, 일단 실패하더라도 이 냄새를 따라가 볼 생각이다.”
듬직했다. 젊은 나이가 아님에도 꿋꿋하게 도전정신을 보이는 인공.
“아, 좋습니다. 그런 정신… 아주 좋아요. 그렇게 탐구하는 자세로 지치지 않고 찾아가다 보면, 어딘가에 반드시 있겠죠?”
용하는 확신에 찬 얼굴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네, 반드시 있을 겁니다.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
얼핏 자신감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 이면엔 사실 나약한 마음이 스멀거렸다.
용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자칫 인공과 눈이 마주치는 날엔, 그가 귀신같이 알아차릴 테니까.
‘다림질 냄새라……. 대체 그 냄새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용하는 우선, 인공이 다림질 냄새라고 했던 그 냄새를 정확히 알기 위해, 21세기에서 가끔 가 봤던 근처 세탁소를 떠올려 보았다. 바로 그 순간 용하의 기억 저편에서 여러 가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벤젠, 톨루엔, 휘발유 같은 유기용제들.
‘전부 발암물질인데, 왜 이런 냄새가 난다는 걸까?’
사실 인공이 말한 다림질 냄새는 세탁소에서 나는 드라이클리닝 냄새였다.
‘대체 인공 형님은, 시공간 이동체 어느 곳에서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맡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던지, 용하는 양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엄지손가락의 자극으로 뇌 혈류가 원활해져서인지, 금세 시야가 맑아지며 복잡했던 머릿속이 일순 개운해지는 듯했다.
그때였다. 용하의 뇌리에 무엇인가 불현듯 떠올랐다.
“형님! 당장 그만두십시오.”
웬일인지 용하는 경악해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