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동이 트자 기다렸다는 듯 번쩍 눈을 뜨는 장설.
반면 용하는 자는 체하며 혹 장설이 잠에서 깨어날까, 가슴을 조였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구나. 딱히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안절부절못하는 것인지.’
인기척이 느껴졌다. 장설이 잠에서 깨었다는 뜻이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이렇게 가슴 조이고 있느니 차라리…….’
용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장설을 보았다. 하지만 장설과 눈이 마주치기 직전 고개를 돌려 장설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딴청을 부리며 능청을 떨고 있는 용하를 지그시 바라보는 장설. 그는 생각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설산에 사는 용에게서 구슬을 빼앗아 반드시 인공을 구해 내고야 말겠다는 신념이 강했던 자가 어찌하여 오늘은 저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녀석의 강한 신념에 사로잡혔었는데 이렇게 나를 실망시키다니. 밤사이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단 말인가.’
장설의 눈에, 용하의 행동이 그리 떳떳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굴해 보였다.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게요? 이리 가까이 오시오.”
용하는 수차례나 장설을 흘깃거리며 쭈뼛쭈뼛 다가왔다.
“날이 밝았으니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겠소?”
장설의 말에 용하는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딴청을 피웠다. 그의 말인즉, 작전이 섰으니 행동 개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장설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지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건,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직 준비가 덜된 모양이군.”
장설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은 정곡을 찌르는 듯했다.
“네. 그게 좀…….”
“그럼 나부터 움직일 것이니, 준비되면 올라오시오.”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장설은 아미산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장설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 용하는 웬일인지 갈 곳을 잃은 길고양이 같았다.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눈길로 이리저리 둘러보던 용하는 다시 스마트폰을 열어 자료를 스크롤했지만, 그의 눈에는 어떤 목적의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 * *
원경으로 보이는 아미산 마루 인근에 오랜 누각이 하나 있었다. 누각에는 주화입마에 든 인공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창백한 그의 얼굴 위로 이제 막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이보시오! 정신을 좀 차려보시오!]의식 저편에서 보내는 장설의 메시지였다. 그의 메시지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죽은 듯했던 인공의 눈가에 옅은 경련이 일었다. 인공의 얼굴에 앉아 있던 호랑나비가 이마 쪽으로 날아올라 그의 얼굴 주위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아직 살아 있었구려. 눈을 좀 떠보시겠소.]한 가닥 희망이 보였던지, 장설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인공은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음, 의식이 있어 경련을 일으킨 게 아니었나 보군.]절망의 메시지를 보냈을 때였다. 인공의 눈가에 한 차례 경련이 일었다.
[뭐야, 무언의 대화인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오?]이번에도 인공은 눈가에 옅은 경련을 일으켰다.
[다행이오! 내 의식이 전달되는 듯하니 한 가지만 묻겠소. 혹시 움직일 수 있으시오?]장설의 물음에 이번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건 아직 무리겠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시오.]무슨 말인가 하려던 장설은 벌렸던 입을 다물며 잠시 시간을 두고 인공을 관찰했다. 호랑나비 또한 어느새 인공의 콧등에 처연하게 앉아 있었다.
[어찌하다 주화입마에 들었는지 말해 줄 수 있겠소?]이번에는 제법 크게 눈두덩이를 꿈틀해 보였다. 온 힘을 다해 마지막 구원의 손을 흔들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곧 장설에게 의식 속 메시지를 전달했다.
[닌자술을 쓰는 7인의 협객과 대치했었소. 그들의 기운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는 것 같소.]인공은 더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미간을 좁히며 고통스러워했다.
[알겠소. 그 정도만 들어도 그때 상황이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소. 아무튼 이런 몸으로 아직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견뎌 주어서 무엇보다 다행이오.]그때였다. 눈에서만 간헐적으로 일던 경련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장설 아니, 호랑나비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인공의 주변을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어떤 현상이든 처연하게 받아들이시오. 견뎌 보겠다고 내가진기를 소진해 버린다면,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사라지고 만다오.]인공의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서서히 풀렸다. 팔랑거리던 호랑나비가 불현듯 멈추는가 싶더니 인공의 어깨로 날아와 앉았다.
[내가요상술을 시작할 것이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그곳으로 갈 것이니, 유체이탈 된 나의 분신인 호랑나비에게 그곳 위치를 전해 주시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자주 말이오.]바로 그 순간 인공의 두 눈이 강한 자극을 받아 반응하듯 번쩍 열렸다. 아직은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단지 보이는 거라고는 어깨에 앉아 있는 호랑나비뿐이었다. 몽환적인 호랑나비는 한 차례 날갯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미산 기슭을 빠르게 오르는 한 노인이 있었다. 등이 구부정한 노인은 다름 아닌 장설이었다. 그는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유심히 살피며 숲을 헤쳤다.
“음, 잘하면 나의 분신인 호랑나비가 뿌려 놓은 나노 입자만으로도 지금 인공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장설은 어금니를 깨무는 것으로 각오를 새롭게 하고 두 눈을 감았다. 붉게 물드는 눈앞에 호랑나비의 눈을 통해 보이는 인공. 그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처참한 모습이었다.
인공은 기운이 빠지는지 간혹 고개를 크게 떨구고는 했다.
[정신 바짝 차리시오. 잠시라도 정신줄을 놓아서는 아니 된단 말이오.]장설은 간절한 목소리를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곧 그 메시지가 인공에게 닿았던지 그는 어깨를 세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모습을 본 호랑나비가 팔랑! 날갯짓을 했다.
[잘하였오. 그대로 조금만 기다리시오.]“서둘러야겠군!”
장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운기조식을 하였다.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자연체로 돌아왔을 땐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 이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볼까.”
장설이 떠올린 기억은 다름 아닌 경공술이었다. 그는 새털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아미산을 오르며, 인공이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말동무가 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 용하라는 자를 기억하시오?] [아, 그 얼치기는 나와 함께 21세기에서 차원 이동한 변두리 검도 체육관 관장이라오.] [그게 다 무슨 말씀이시오. 21세기는 뭐고, 검도 체육관은 또 무엇이란 말이오?]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인 장설이 인공의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그런데 지금 모르는 체하는 이유는 인공을 조금이라도 자극하고 싶어서였다. 스스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야만 내가요상술의 치료 효과 또한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어허,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소.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꼭 살아야만 하겠습니다.]장설이 바라던 대답이었다.
* * *
조금 전 호랑나비가 보낸 위치를 알리는 기운이 바로 코앞에서 느껴졌다. 장설은 눈을 들어 정면에 보이는 누각을 바라보았다. 누각 위에 머릿속으로 그렸던 인공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장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가 인공이시오?”
장설은 인공을 향해 한달음에 거리를 좁혔다. 마침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왔을 때였다. 인공의 어깨에 앉아 있던 호랑나비가 몸을 비틀어 산산이 부서졌다. 나비의 조각들은 곧 빛으로 변해 장설의 머릿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갔다.
이윽고 호랑나비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때였다. 장설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인공에게 다가가 바로 뒤에 같은 자세로 앉아 내가요상을 준비하는 운기조식을 하였다. 멀리서 바라본 두 사람은 마치 무슨 성대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했다.
먼발치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선을 다름 아닌 7인의 협객, 호위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수신호에 따라 누각을 에워싸고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그들의 은밀한 행위를 장설이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요상술을 서두르는 게 무엇보다 시급했다.
촉각을 다투는 내가요상술이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7인의 협객들이 급습했다. 궁지에 몰린 두 사람은 황급히 몸을 움직여 벼랑 끝으로 달려가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의 몸이 아직은 비행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할 만큼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몸을 사지 방향으로 쭉 펴시오!”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장설이 스카이다이빙 하듯 허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지금은 떨어지기 바빠 그럴 겨를이 없소이다.”
“떨어지기 바쁘다는 거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내가요상술을 중도에서 그만둘 수는 없소. 알다시피 내가요상술을 중도에 그만둔다면 그대의 내가진기가 소진해 건사하고 말 것이오.”
“건사?”
“별말 아니오. 그냥 말라 죽는다는 뜻이오”
“뭐, 말라 죽어? 하, 쪽팔리게 말라 죽을 순 없지…….”
인공은 그 와중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크게 가슴을 부풀리며 각오를 다졌다.
“제가 어찌하면 좋을지 알려 주시오.”
“알겠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시오. 그대의 몸을 대지와 나란해질 때까지 눕히고, 사지를 최대한 벌려 사방으로 늘린다는 생각으로 쭉 펴시오.”
인공은 장설이 하라는 대로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사지를 있는 힘껏 쭉 폈다. 설마 했는데 뜻밖에도 대책 없이 추락하던 몸이 비행을 시작했다.
“잘하였소.”
장설은 빠르게 인공에게로 거리를 좁혀 갔다. 그리고 인공의 등에 사뿐히 내려앉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장설이 인공의 등에 앉아 있었지만,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고 새털처럼 가벼웠다.
장설의 내가요상술이 다시 시작됐을 때였다.
벼랑 위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7인의 협객은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기라도 한 듯 분통을 터뜨렸다.
* * *
“끝내 두 사람을 놓치고 말았단 말이냐?”
노기 가득한 보현의 목소리가 전당을 뒤흔들었다.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모르는 호위무사들이었다. 그런 호위무사들이 보현의 앞에서는 무릎을 조아리고 있었다.
게다가 여간해서는 말을 아끼는 호위무사들 가운데 우두머리 격인 한 협객이 입을 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7인의 협객이 강호에서 도적질과 불필요한 살상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먹고 살면서 지금처럼 비밀스러운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건, 아미파 보현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이제 나의 자비가 필요 없어졌다는 것이냐?”
무엇인가 결심한 듯 카랑한 목소리였다. 보현은 자비라는 명목으로 그동안 7인의 협객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며 그들을 손아귀에 넣고 자기 것인 양 부렸다.
그렇지만 사실 7인의 협객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독립적인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일이다. 아미파 장문인을 호위하던 무사들이 보현의 풍족한 지원을 받으며 무공을 연마하는 데만 매진한 결과, 그들의 무공은 신의 경지라 할 만큼 강해졌고, 그것을 계기로 독립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보현은 그 틈을 타, 호위무사들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7인의 협객은 일제히 검을 눕히며 무릎을 꿇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여성으로 구성된 조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절도 있는 태도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에는 충성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것이니, 반드시 생포해 내 앞에 데려오거라.”
보현의 명령에 7인의 협객은 일제히 예를 갖추며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했다.
척!
이제 막 수신호를 보인 호위무사는 다른 호위무사들에 비해 유독 강인해 보였으며 눈빛 또한 살의로 얼룩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