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지금 사 두면 무조건 이익이오.”
조금 전 장사치와 헤어진 용하는 패딩점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간절히 외쳤다.
“여름이라 반값에 주는 것이니, 지금 사 두시오.”
무더운 날씨 탓에 패딩점퍼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제값에 두세 배를 줘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될 것이오.”
아무리 목이 터지라 외쳐도 소용없었다.
“히든카드는 적기에 내놓아야 승부수가 되는 법! 용하야. 여기 사람들한테 패딩점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인 것 같구나. 겨울이 되면 몰라도. 예서 이러느니 차라리 안목을 가진 상단을 찾아가 보는 게 어떻겠느냐?”
시시각각 과거로 흘러가 버리고 마는 시간이 용하의 숨통을 조였다. 약속했던 한 시간 중 삼십여 분이 훌쩍 지나갔다.
“형님, 상단이라면 거래의 대가들인데, 제가 과연 그들과 협상할 수 있을까요?”
“너무 불안해하지 마. 이 인공이 자네 뒤에서 항상 뒷배가 돼 주지 않더냐.”
“그리만 해주신다면, 제가 상단의 객주와 담판을 한번 지어보겠습니다.”
“허허, 상단의 객주와? 객주가 어디 너 같은 애송이를 만나 주기나 한다더냐?”
“객주가 그렇게 높은 자리입니까?”
“모르긴 해도 21세기로 치자면, 큰 규모의 상단은 그 밑으로 작은 상단을 여럿 두고 있을 테니, 그런 상단을 거느리는 객주는 그룹의 회장쯤 될 것이고, 좀 작은 규모의 상단을 거느린 객주는 계열사 사장이나 단일회사의 사장쯤 되는 위치니, 우리 같은 것들이 만난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구나.”
“달리 방법이 없겠습니까? 실력 발휘 좀 해보십시오.”
“아, 인석아! 실력 발휘도 내 편이 좀 있어야 하는 거지. 사고무친한 중세 무림에서 대체 뭘 가지고 실력 발휘를 해보라는 거야?”
여간해서 감정의 기복들 잘 드러내지 않는 인공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 말씀은, 결국 형님 실력은 형님께 아니고, 형님 카페 회원들 실력이었다는 거네요.”
용하는 인공의 오기라도 자극해서 상단에다 패딩점퍼를 팔아먹겠노라 결심했다.
“야야, 야 인마! 회원들이 내 말을 믿고 따르게 하는 것도 실력이야 인마. 너 같은 소인배가 뭘 알아?”
“뭐, 소, 소인배? 그러는 그쪽은 뭐, 엄청 아량이 넓은 줄 아나 봐?”
“그럼 아니었다는 얘기니? 그래도 나는 용하 너한테만큼은 아무런 조건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뭐.”
인공은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던지, 입을 삐죽거려가며 울먹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용하는 내심 쾌재를 질렀다.
‘앗싸! 걸려들었어.’
“형님! 그걸 그렇게 말로 다 풀어버리면 어떡합니까? 그동안 쌓은 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잖습니까.”
용하는 제대로 안타까운 표정까지 지어가며 실감 나는 연기를 해 보였다.
“내가 또 뭘 잘못한 것이냐? 도대체 넌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냐?”
“형님, 그 베푼다는 건 말이죠. 아무 때나 막 하는 게 아니고, 꼭 필요할 때 상대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 주는 겁니다.”
“듣고 보니 괜찮은 철학인 것 같구나. 나도 기억해 두고 삶의 가치관으로 삼아야겠구나.”
“가치관으로 삼기만 하면 뭐 합니까? 실천에 옮겨야지.”
“당연히 행동으로 옮겨야지. 그러지 않을 거면, 뭐 하러 기억을 하며 가치관으로 삼겠니?”
“정말?”
끝까지 깐죽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용하.
‘뭐야, 저 미소는?’
인공이 의심의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지금 베풀어주세요. 저 지금 간절하게 형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꾸나.”
“들어나 보자꾸나! 그 말은 그냥 들어나 보겠다는 거죠? 그 속셈 누가 모를 줄 알고.”
“아니, 이 녀석이 끝까지 사람을 능멸하려 드네. 너 인마, 지금 상단에다 그 잘난 패딩점퍼 팔아먹으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냐?”
“형님! 제가 패딩점퍼 팔려는 이유를 그새 잊은 겁니까?”
용하의 말에 인공은 순간 띵한 표정이었다.
‘어! 뭐였지? 저 녀석이 왜 갑자기 패딩점퍼를 팔겠다고 난리를 치는 거였더라.’
점점 깊어지는 인공의 표정을 뒤늦게 간파한 용하는 마지막 일격이라도 가하듯 입을 뗐다.
“형님! 형님 대신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기 위해 개를 한 마리 사려고 하니, 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부랴부랴 이렇게 패딩점퍼라도 팔아 보겠다고 저잣거리로 나온 거 아닙니까? 지금 시간이 없다고요.”
“나 대신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을 개를 사겠다고?”
“네, 형님. 그러니까 빨리…….”
“알았다. 서둘러 상단으로 가자꾸나.”
인공은 상설 장이 서는 쪽으로 황급히 걸음을 내디뎠다. 용하는 얼떨결에 하드 케이스 여행 가방을 끌며 겨우 뒤따라갔다.
이윽고 저잣거리 중간쯤에 사람이 가장 북적거리는 상설 장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용하야! 너는 예서 잠깐 기다리도록 하라.”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라도 옆에 있어 드리는 게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요?”
“그럼 너는 예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당할 때 바쁜 척 들이닥쳐서, 내가 하라는 말만 하고 옆에 가만히 있도록 하라.”
“네, 형님. 그리하겠습니다.”
인공은 용하의 귀에다 은밀하게 무어라 속삭였고, 듣고 있는 용하의 표정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향고래를 본 우변(우영우 변호사) 같았다.
귓속말을 끝낸 인공은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상설시장 안으로 들어갔고, 용하는 인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형님. 설령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으니, 부디 몸이 상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윽고 용하는 상설시장 앞을 서성거리며 인공이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을 떠올리며 적당한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
‘지금쯤 물건에 관한 이야기는 대충 던졌을 테고, 곧 가격 흥정이 시작되겠지.’
하나… 둘… 셋…….
용하는 정확히 열을 세고는 숨을 헐떡거리며 들이닥치듯 상설시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르신! 인공 어르신! 저 용하이옵니다. 혹시 안에 계시면 잠깐만 나와 보십시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러니 제발…….”
용하의 외침이 끝나고 정확히 삼 초가 지났다.
“어허,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예가 어디라고 감히!”
제법 무직한 인공의 목소리였다.
“송구하옵니다. 하나 너무 급한 나머지…….”
“그래 어디 말해 보아라!”
“작은 상단이기는 하나, 어르신이 제시한 값에 물건을 사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아까는 조금만 깎자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잖아도 그 문제로 사과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시세를 모르면서 시건방을 떨어서 죄송하다고 말입니다.”
“그쪽 상단에서 그리 말을 하더냐?”
“네, 어르신.”
“여기 상단 객주 어르신과 하던 얘기가 남았으니, 잠시 들어와서 기다리겠느냐?”
“네, 그리하겠습니다. 어르신.”
용하는 하드 케이스 여행 가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인공이 시킨 대로 일부러 객주 보란 듯 문 앞에 세워 뒀다. 예상대로 객주의 눈길이 여행 가방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대인! 혹시 결례되지 않는다면, 물건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어허, 물건은 봐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미 저쪽 상단에서 좋은 조건에 사들이기로 마음을 정한 것 같은데 말이오.”
“대인! 이 상단이란 곳을 말입니다. 물건을 입으로 사는 곳이 아닙니다.”
“입으로 사는 곳이 아니라니, 그럼 무엇으로 사는 곳입니까?”
“물건은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지요.”
“허허, 백 번, 천 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물건이란 모름지기 현금이 오가야 제맛이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대인께서는 말로만 사겠다던 상단에 팔겠다고 마음을 정하신 것입니까?”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객주 어른보다는 비록 말로 의사를 전하긴 했으나, 사겠다고 저리 매달리는 저쪽 상단에 마음이 가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저쪽 상단에서 사겠다는 금액이 얼마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상도덕은 아닌 줄 아나, 아직 구두로만 얘기가 오간 것이니, 말씀드리지요.”
바로 그때였다.
“어르신! 아니 되옵니다.”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며 용하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용하의 이런 행동은 계획에는 있지도 않은 돌발상황이었다. 인공이 얼핏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뿔싸! 결정타를 날릴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저쪽 상단에서 두 배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용하의 말을 들은 객주는 회심을 지었다.
“그럼 저는 세 배를 드리면 되는 겁니까?”
너무 쉽게 일이 진행되었다. 용하는 의아해서 인공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제 막 잠시 용하와 눈이 마주친 인공의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저 표정은?’
그때였다.
―툭!
인공의 앞으로 동전 꾸러미 여섯 개가 널브러지듯 놓였다.
‘200문짜리 꾸러미가 여섯이라, 1,200문!’
사실 용하는 끽해야 500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횡재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인공의 생각은 달랐다.
용하는 서둘러 하드 케이스에 든 패딩점퍼를 내주고, 구리동전을 챙겨 여행 가방에 넣었다.
“그만 일어나시지요. 어르신.”
이번에도 인공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조급한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용하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협상의 기본도 모르는 녀석 같으니.’
그렇게 상설시장을 빠져나온 용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개를 팔겠다던 장사치가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설시장을 빠져나온 인공은 용하를 찾느라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저만치 줄행랑치듯 내달리는 용하를 발견하고 꽁지가 빠지게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용하야, 김용하! 뭐가 그리 바빠서 숨을 헐떡거리며 뛰는 것이냐?”
“형님, 빨리 오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돈이 억만금이 있으면 뭐 합니까? 장사치가 약속 어겼으니, 안 팔겠다고 하면 그만 아닙니까?”
그제야 인공은 장사치와의 약속을 떠올리고는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한편 장사치는 자기 매대 앞을 서성거리며 시간을 재고 있었다.
“아홉… 여덟… 일곱…….”
이제 막 장사치가 둘에 이어 ‘하나!’라고 외치는 순간.
용하는 숨을 헐떡거리며 그 앞에 섰다.
“예 있소이다. 1,200문! 이게 내가 반 시진 동안 만들 수 있는 돈이오.”
“1,200문?”
장사치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사실 장사치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값은 300문 정도에 불과했다.
“개 이름이 무엇이오?”
용하의 물음에 장사치는, 아직도 들뜬 가슴을 달래지 못한 채 대답했다.
“아직 이름이 없으니, 근사한 거로 하나 지어 주십시오.”
우여곡절 끝에 제법 영리해 보이는 개 한 마리를 장만한 용하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길을 나섰다.
“형님! 그런데 이 녀석 이름을 뭐라고 지으면 좋겠습니까?”
“오뉴월 더위에 개를 샀으니, 유월이라고 하는 건 어떻겠느냐?”
“유월? 유월… 유월아!”
개를 부르는 특유의 톤으로 이름을 불러 보았을 때였다.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던 개가 불현듯 꼬리를 흔들며 반응을 보였다.
“형님! 얘 좀 보십시오. 이름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이름을 내가 지었지만, 나도 마음에 드는 게, 왠지 운명적인 것 같구나.”
“사실 저는 1,200문이라고 지으려고 했거든요. 왜, 1,200문에 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 값을 이름으로 짓는다는 건…….”
“그래야 저 녀석도 제값을 톡톡히 할 거 아닙니까?”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로구나. 허허.”
“그건 그렇고 형님! 아까 상단에서 말입니다. 왜 제게 인상을 썼던 겁니까?”
“아, 그거! 말도 꺼내지 말아라. 생각하면 괜히 울화통만 터지는구나.”
“울화통이 터지다니, 왜요? 괜히 더 궁금해지는데요.”
“5,000문 불러 놨는데, 네 녀석이 산통을 깼으니.”
“뭐라고요? 열 배를 불렀다고요?”
“그 정도는 있어야 며칠 쓸 거 아니냐?”
“그렇게 많은 돈이 왜 필요합니까? 무림에서 돈 쓸 일이 뭐가 있다고.”
“아, 인석아. 잠은 객잔에 가서 자야 할 거 아냐. 길바닥에서 잘래?”
이렇게 모든 게 일사천리로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