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형님, 속은 것 같습니다.”
1,200문이나 주고 사 온 녀석이 남의 개 같다. 장사치가 입이 닳도록 자랑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냄새라고는 밥때 되면 자기 밥그릇 찾을 때만 맡고, 꼬리를 흔들며 따라다녀서 영리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알고 보니 개는 원래 다 그렇단다.
“이거 아무래도 짐만 될 것 같은데요.”
“개가 제구실 못 하면 그냥 짐이 아니고, 밥까지 축내는 골칫덩어리지.”
“어떡하면 좋죠? 지금이라도 가서 물릴까요?”
“예끼! 이름까지 지어 놓고 물린다는 건 상도덕이 아냐.”
“그럼 저거 어떡합니까? 죽이지도 못하고…….”
“그냥 정주고 키우다 보면, 가끔은 제구실을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정주고 키우다 보면, 이라는 말에 용하는 멈칫했다.
‘정주고 키우다 보면?’
용하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유월이 쪽으로 흘렀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연신 코와 입을 핥아대는 녀석이 귀엽기는 했으나, 지금은 그런 귀여움보다는 냄새 잘 맡는 게 더 귀엽고 사랑스러울 것 같다.
“예다! 이거나 먹어라. 말 못 하는 짐승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니?”
용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지, 객잔에서 몇 개 꼬불쳐 두었던 건어물을 유월이에게 던져주었다. 유월이는 눈 깜짝할 새 먹어 치우고는 꼬리를 흔들어대며 용하를 쳐다보았다. 마치 먹이를 더 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혓바닥을 연신 날름거리며 콧등과 입을 닳아 없어져라, 핥아댔다.
“인석아! 먹는 것만큼 냄새 맡는 것도 좀 밝혀보아라.”
이번에도 변함없이 측은한 마음으로 유월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때였다. 먹이를 달라고 졸라대던 녀석이 갑자기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더니 용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녀석의 눈이 무엇인가 말을 하는 듯했다.
―멍멍! 멍멍!
좀처럼 짖지 않던 유월이 녀석이, 웬일인지 수차례나 짖어대며 용하의 손으로 잦은 눈길을 보냈다. 용하는 유월이의 눈길을 따라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유월아. 내 손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는 거니?”
―멍멍!
용하는 손을 꺼내 할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으로 코에 가져다 댔다.
바로 그 순간 용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아이, 깜짝이야! 살살 불러 인석아. 심장 떨어지겠어.”
용하는 인공의 역정 따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잘하면 유월이 녀석이 밥값 하겠는데요.”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용하의 말에, 인공의 눈이 조금은 커졌다.
“유월이가 밥값을 할 것 같다고?”
“네, 형님.”
인공은 용하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유월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인석이 어떻게 밥값을 할 것 같으냐?”
용하는 대답은 하지 않고 대뜸 손을 인공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이제 막 인공의 코에 닿은 용하의 손에서 얼핏 세탁소 드라이클리닝 냄새가 났다.
“어! 이 냄새가 어찌하여 네 녀석 손에서 나는 것이냐?”
“아마도 상단에서 패딩점퍼 넘길 때 밴 것 같습니다. 제가 객주에게 패딩점퍼의 기능들을 설명하느라 옷을 만지작거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옳거니! 그때 드라이클리닝 냄새가 밴 거로구나.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길들여야죠.”
“먹을 것만 밝히는 저 녀석을 어떻게 길을 들인다는 말이냐?”
“그래서 가능할 것 같다는 말입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잖아요. 다행히도 녀석이 먹는 걸 무지 밝히니, 먹을 것으로 교육을 한번 시켜 볼까 합니다.”
“생각은 기특한데, 그게 말처럼 되겠느냐?”
인공의 말투가 무슨 수작이라도 걸려는 듯 간교하게 들렸다.
“네,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먹이 냄새를 맡게 한 후, 앞쪽으로 던져주고 먹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몇 차례 하면서 먹이를 따라 이동하게 한 다음, 이번에는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맡게 하고 저만치에서 냄새를 따라오게 해서, 생각대로 잘 따라오면 먹이를 주는 겁니다. 녀석의 머릿속에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따라가면 먹이가 있더라, 하는 인식이 심어질 때까지요.”
“오호라! 거, 들을수록 기가 막힌 방법이구나. 잘하면 유월이가 훌륭한 탐색견으로 거듭날 수도 있겠는걸.”
“유월이가 탐색견으로 거듭나는 것도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가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게 된다는 더 큰 축하할 일이 생기는 겁니다.”
모처럼 두 사람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드리워졌다.
그날부터 용하는 유월이 천재견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교육을 시작했다.
“헤이, 유월!”
유월을 불러 먹이 냄새를 맡게 하고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니, 유월이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옳거니!”
용하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먹이를 던져주었다.
인공은 서너 걸음 뒤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처음엔 녹슨 기계 같았던 유월의 움직임이 몇 차례 같은 교육을 반복하자, 눈에 띄게 움직임이 빨라졌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관망하던 인공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기까지 일주일쯤 걸린 것 같았다.
다음 단계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헤이, 유월!”
용하는 유월을 부르고, 패딩점퍼의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알려주기 위해 유월이 코에 손을 가져다 댔다.
―킁킁!
처음 맡는 냄새가 낯설었던지, 유월은 마치 코를 풀 듯 킁킁거리는가 하면, 코를 핥으며 용하를 쳐다보았다. 그뿐 아니라, 꼬리를 흔드는가 하면 멈추고, 그러기를 수차례나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월이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맡게 했는데 웬일인지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꼬리를 흔들었다.
“형님! 유월이 녀석이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거부하지 않아요.”
“오호, 그래? 공들인 보람이 있구나.”
“2, 3일 안에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좋아하게 만들어 볼게요.”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형님! 유월이 좀 보세요.”
유월을 내려다보는 인공의 얼굴에 큰 기대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헤이, 유월!”
이제 막 유월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용하는 저만치 앞으로 달려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좀 먼 거리였다. 바로 그 순간 별 기대감도 없던 인공의 두 눈이 커지며 유월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 유월이 녀석이 기다릴 줄도 아네.’
그때였다.
“유월!”
마침내 용하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둔한 줄로만 알았던 유월이, 아자와크처럼 날렵한 자세로 달려와 용하 앞에 멈춰 서더니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았다.
“옳거니, 우리 유월이~ 잘~~했어요.”
용하는 과도하다 싶을 만큼 칭찬을 하며 먹이를 던져주었다.
―짝짝짝짝!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인공이 크게 박수를 보냈다.
“김용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죠?”
“아니, 자기 하나도 제대로 감당을 못하는 얼치기가 어떻게 말 못 하는 짐승을 가르칠 수가 있느냐고.”
“그러게, 말입니다. 불가능이 가능해질 때도 있네요. 무림이라서 가능한 건가요?”
“그렇지. 무림이니까 가능한 거지. 21세기였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
“호호, 자! 그럼 출발해 볼까요?”
“새털만큼이나 많은 날, 서두를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어찌하겠습니까, 새털만큼 많은 날을 걷고 또 걸어야 하니 서두를 수밖에요.”
“허허, 그럴싸한 말이로구나. 사나이 가슴에 품은 원대한 포부로 어디 한번 해보자꾸나.”
오랜만에 듣는 인공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용하, 인공, 유월. 셋은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기 위한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 * *
―킁킁! 킁킁!
어제부터 유월이 유독 집요하게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한시도 땅에서 코를 떼지 않고 킁킁거리며 촘촘하게 탐색했다. 얼핏 보기에 좀 더디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탐색하는 능력이 섬세해졌고, 능동적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헤이, 유월! 옜다.”
이제 용하가 할 일은 간혹 먹이를 던져주는 게 전부였다.
“형님! 저 말입니다. 실은 유월이 전 주인인 장사치가 무척 원망스러웠습니다.”
“고작 원망스러운 게 다였느냐? 난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죽이고 싶었는데.”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이는 건 안 되죠. 그건 범죄잖아요.”
“뭐, 범죄? 여긴 무림인데?”
“아, 정정할게요. 범죄가 아니고 살상! 사람을 죽이는 건 살상이잖아요. 그러니 불제자이신 형님은 절대 살상을 일삼아선 안 되는 거잖아요.”
용하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논리정연한 녀석의 반박에 인공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멍멍!
유월이가 걸음을 멈추고 꼬리를 흔들며 용하를 올려다보는가 하면, 또 짖기를 반복했다.
―멍멍!
유월이 용하에게 보이는 모습은 ‘야, 주인! 네 녀석이 찾는 거 그거 말이야. 내가 찾은 것 같아.’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유월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인공이 빠르게 용하 곁으로 다가왔다.
“왜, 무슨 일 있어?”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보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맞지?”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커진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허허, 맞네. 맞아! 우리 유월이 끝내 해냈어.”
인공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유월이 얼굴을 움켜쥔 채 거칠게 만지작거리는가 하면, 마구 흔들어댔다.
―깨갱깽깽~
“형님! 지금 예뻐서 칭찬하는 겁니까? 왜 이제 찾았느냐고 해코지를 하는 겁니까?”
“당연히 칭찬이지. 이게 어딜 봐서 해코지로 보이는 게야?”
“그냥 딱 봐도, 해코지인데요.”
“아닌데!”
“나이 드실 만큼 드신 양반이 이러시면 안 되죠.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그렇게 막 대하다 큰코다칩니다.”
“하, 이게 살짝 띄워줬더니, 또 시건방을 떠네.”
“지금은 좀 그래도 되지 않나? 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봐도 건방을 떠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밉지 않았다. 사실 인공이 아까부터 용하에게 까이면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은 이유가 다름 아닌 이 때문이었다. 밉게 보이지 않아서.
“알았다, 인석아! 내 오늘은 눈감아 줄 테니, 맘껏 시건방을 떨어 보아라.”
“호, 역시 형님은…….”
웬일인지 용하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왜 말을 하다 마는 것이냐?”
인공이 흘깃 쳐다보며 던진 말에, 용하는 그제야 하던 말을 이어 갔다.
“그거야, 그거!”
“그거라니, 말을 하려거든 똑바로 이 녀석아.”
“그거라니까, 그거. 대로 시작해서 배로 끝나는 그거!”
그날 용하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끝내 대. 인. 배. 라는 세 글자를 말하지 못했다.
“형님! 만약 유월이 정말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은 거라면, 앞으로 이 무림에서 우리의 앞길은 거칠 게 없습니다.”
“거칠 게 없다니, 그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
“무슨 소리겠어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란 말이지.”
“그럼 혹시, 네 녀석 시건방진 것도 끝인 게냐?”
“흠, 흠흠, 그…건 아직 좀…….”
“난 말이야. 고생보다 그게 먼저 좀 끝났으면 좋겠다.”
인공의 말끝은 늘 그랬듯 떨떠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