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멍멍!
“우리 여기서 형님 좀 기다려줄까?”
―멍멍!
유월은 마치 용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두어 차례씩 짖어댔다. 이렇게 말 잘 듣는 강아지였다니, 꼭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용하는 유월을 덥석 들어 올려 꼭 감싸 안았다.
“아이고 예뻐라, 우리 유월이.”
그 순간 유월이는, 용하의 말을 알아듣고 공감이라도 하는지, 용하의 얼굴을 마구 핥아댔다.
“형님! 쉬엄쉬엄 오셔도 좋으니, 포기하지만 마십시오. 지금 포기한다는 건 무림의 미아가 되겠노라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유월은 용하의 말에 동의라도 하려는지, 인공이 널브러져 있는 쪽을 바라보며 수차례나 짖어댔는데, 마치 용하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처럼 리듬을 탔다.
―멍멍! 멍멍! 멍멍멍!
인공은 무림의 미아가 된다는 말에, 땅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다 죽어가던 인공이 벌떡 일어서자, 용하는 놀람을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공은 기대와는 달리 그 자리에 다시 푹 주저앉고 말았다.
“형님!”
용하가 유월을 내려놓고 경악해서 달려 나가자, 유월이 또한 용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마침내 용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인공 앞에 섰다. 그리고 물었다.
“형님!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왜 갑자기 기력이 이렇게 쇠하신 겁니까?”
인공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일전에 왔을 땐 경공술도 하고 싸움도 곧잘 했는데, 이번에는 영 그런 기연을 찾아볼 수가 없구나.”
“형님! 업히십시오.”
당장이라도 고꾸라지고 말 것만 같은 인공을 향해 기꺼이 등을 내주는 용하. 하지만 인공은 고개를 내저으며 용하의 등을 떠밀었다.
“아니다. 그냥 가거라. 이러면 우리 다 같이 죽자는 거야. 자네라도 뜻한 바를 이뤄야지.”
“형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 어서 업히세요. 의형제가 대체 뭡니까? 장설 형님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형님마저 잃을 수는 없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수차례나 울리고 또 울려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제발 그냥 가!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
웬일인지 인공의 목소리는 삶을 포기한 채 작별을 고하는 사람 같았다.
“형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형님에게 인생이란 이런 것이었습니까? 이렇게 허망하게 포기해도 되는 게 인생이었냐고요?”
“…….”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을 형님으로 모셨다니…….”
얼핏 포기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용하는 인공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를 둘러업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00kg이 넘는 인공을 업고 걷는다는 게 만만치는 않았다. 몇 미터 가지도 못해 용하의 걸음은 마치 산란을 위해 백사장으로 올라온 바다거북 같았다.
―멍멍!
―멍멍!
유월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용하를 쳐다보며 걸었다. 간혹 응원이라도 하듯 짖어대고는 했다. 그렇게 뜨거운 대지를 얼마나 디뎠을까. 유월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용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하면,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지 낑낑거렸다.
“헤이, 유월! 왜 그래?”
유월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용하가 유심히 내려다보며 물었을 때였다. 유월은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용하를 올려다보며 수차례나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짖어댔다.
그렇게 용하의 관심을 사려고 애쓰던 유월, 더는 용하가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자, 아득히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유월아, 왜 그래? 혹시 트럭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 거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용하의 목소리에 청량감이 느껴졌다. 유월의 달라진 행동이 어쩌면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아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용하는 남은 힘을 모두 쏟아부어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유월이 뒤를 따라 얼마나 부지런히 달렸을까. 아니, 달렸다기보다는 조금 빨리 걸었을까. 등에 업힌 인공이 축축 늘어지는 통에, 더는 느린 걸음조차도 내디딜 수 없게 되었다.
“못 해, 못 해. 더는 못 해. 서 있는 것도 힘든데, 유월을 따라 달린다는 건.”
용하는 고개를 내저으며 진저리를 쳤고, 결국 터덕터덕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반면 지칠 줄 모르고 달려 나간 유월은, 보란 듯 용하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아니, 저 녀석이!”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못 보게 될 것만 같았다. 용하는 무거운 몸을 움직여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헤이, 유월!”
용하의 목소리가 유월의 귀에 닿지 않았던지,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유월아! 아니, 저 녀석이 귀가 먹었나?”
용하와 유월이 사이의 거리는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다면 같은 목소리로 불렀을 때, 당연히 용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돌아봐야 했다. 그런데 유월은 용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앞만 보고 달렸다.
“이상하네. 저런 강아지가 아니었는데.”
용하는 조금 전보다 눈에 띄게 목소리를 높여 다시 불렀다.
“헤이, 유월!!”
목이 터지라 소리쳐 불렀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언제부터인가 유월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음, 뭐랄까.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 같다고나 할까?
용하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재조명해 보았다. 유월이 저렇게 달린다면 원근감 때문에 점점 작아져야 했다. 그런데 유월이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의 보는 감각에 문제가 생겼거나, 다른 하나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유월이 달리는 속도로 보아 용하와의 거리가 눈에 띄게 멀어져야 했다. 그런데 둘의 간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월이 속도 변화 없이 달렸다고 가정하면, 몸집이 점점 작아져야 했다. 그런데 유월의 몸집이 그대로라는 건, 거리만큼이나 유월의 몸집이 커지고 있다는 뜻인데, 그건 사실 동화책 속에나 나올 법한 얘기여서 패스!
“사람의 눈으로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드넓은 평야여서일까?”
용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내저었다. 혹시 착시라도 일으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참 이상하네. 언제부터인가 원근감이 느껴지질 않아. 감각에 이상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바로 그 순간. 이대로 두었다간 유월이 저 멀리 달아나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용하를 불안하게 했다.
“헤이, 유월!”
유월의 귀에 닿을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해 목이 터지라 소리쳤지만, 유월의 귀에 닿기엔 턱없이 작은 목소리였다.
“하, 이를 어쩐담!”
다시 한번 불러 볼 요량으로 입을 크게 벌렸을 때였다. 멈출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유월이 언제부터인지 걸음을 돌려 용하에게로 성큼성큼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던 건, 유월이 점프할 때마다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드넓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 아래 조금씩 형체를 드러내는 용하.
뜨거운 대지 위로 스멀거리는 아지랑이 속에 파묻혀 있어서인지, 아직은 용하의 이목구비가 묘연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면 어디서 구했는지, 말 한 필과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말 등에는 축 늘어진 인공이 커다란 봇짐처럼 실려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용하의 얼굴이 또렷해졌을 때였다. 그의 옆에 따라 걷던 말의 모습 또한 분명해졌는데, 자세히 보니 말이라고 하기에는 얼굴이 너무 짧았고, 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몸집이었다.
“걸을 만해?”
―컹컹!
용하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을 때, 옆에 나란히 걷던 동물의 반응은 말 울음소리가 아닌, 개 짖는 소리였다.
“조금만 견디자, 유월!”
―컹컹!
이 정도 무더위면 혀를 길게 빼물고 숨을 헐떡이고도 남았을 텐데, 유월은 조금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쌩쌩해졌다.
‘남미 사람들이 뜨거운 태양열을 막기 위해 앙고라로 만든 코트를 입는다더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무더운 나라에서 앙고라 코트를 입는다니. 그땐 그 말을 절대 곧이듣지 않았다. 그런데 유월이 하는 걸 보니, 비로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월의 몸을 뒤덮고 있는 무성한 털이 유월이 몸에 직접 열기가 닿지 않도록 보호해주어, 녀석은 살갗이 익어가는 뙤약볕 아래를 그렇게 걷고도 멀쩡할 수 있었다.
“형님은 좀 어떠세요?”
“…갈 길도 바쁠 텐데 미안하네. …어디 그늘이라도 좀 찾아봐 주게나.”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꼴이 산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용하는 인공의 얼굴 가까이에 귀를 가져다 댔다.
“형님,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요.”
“…제발 한 번에 좀 알아들어. 나 지금 죽을 지경이야. 숨도 쉬기 힘들다고.”
여전히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목소리였지만, 귀를 기울인 덕에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갈 길 바쁜 건 알겠는데, 어디 그늘진 곳에서 쉬었다 갔으면 좋겠구나.”
그제야 인공의 말을 알아들은 용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형님, 지금 이 상황을 보고 그런 말이 나옵니까?”
“…이 상황이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냐?”
“고개를 들고 여길 좀 보세요. 풀 한 포기 없는 이 척박한 광야에서 그늘진 곳이라뇨?”
용하의 말은 성화로 시작해 하소연으로 끝났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인공이 고개를 겨우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그렇게 걸었는데, 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이냐?”
“실망스럽게도, 그렇네요. 아무리 걸어도 뷰가 그대로인 걸 저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그런데 용하야. 진작 걸음은 멈췄는데, 땅은 계속 일렁거리니 이게 다 무슨 조화냐?”
“땅이 계속 일렁거린다니요?”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으려다 말고 용하는 이마를 탁! 쳤다. 바로 그 순간.
“인석아! 땅이 계속 뒤로 흐른다는 건, 내가 아직 걷고 있다는 뜻이지 않으냐?”
“그건 형님이 걷고 있어서가 아니고, 유월이 멈추질 않아서입니다.”
“유월이 멈추질 않아서라니, 그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 게냐?”
엉뚱하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강아지와 땅이 움직이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조금 전 용하가 했던 말에 인공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던지, 있는 힘을 다해 상체를 일으킨 인공은 사방을 크게 둘러보았다. 그 순간 그의 시야에 보이는 거라고는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광야뿐이었다.
인공은 개탄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이 지긋지긋한 무림…….”
또다시 무림에 갇혔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어느 세월에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인공은 적잖이 실망스러운 얼굴로 눈을 내리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수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키는 털이 무성한, 한 짐승의 커다란 대가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용하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것은 다 무엇이냐? 말인 게냐, 낙타인 게냐?”
비록 격앙된 목소리를 냈지만, 실은 기운도 없고 영문도 알 수 없어, 확신이라고는 조금도 엿볼 수 없는 그저 그런 목소리였다.
“형님! 말 아니고요. 낙타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 이 털북숭이 짐승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괴물입니다. 유월이란 이름을 가진 징글징글한 괴물!”
―컹컹!
유월의 짖음이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들렸다. 뭐랄까, 화를 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컹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