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그런데 용하야! 유월이 몸이 커진 만큼 반대로 냄새 맡는 재주는 잃은 것이냐?”
갑작스러운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내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유월이 드라이클리닝 냄새를 맡고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곧 찾을 것 같더니, 왜 여태 이 지경인 게야?”
“저도 실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적잖이 비관적이었다.
“그럼, 내가 잠든 사이 일이 더 꼬인 것이냐?”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웬일인지 용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겨우 인공의 물음에 대답했다.
“살갗에 닿는 태양열이 서서히 식어 가는 걸 보니, 해가 기울기 시작했을 테고, 그 말은 꽤 시간이 흘렀다는 얘긴데, 아직도 이 척박한 광야 한복판인 걸 보니, 일이 꼬여도 아주 단단히 꼬인 게로구나.”
인공이 이토록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이유는, 용하가 꾸지람을 듣고 있다는 생각이라도 할까, 하는 우려의 마음 때문이었다.
“형님, 이제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찾아봐야지. 그건 그렇고 유월이 녀석은 또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이냐? 생긴 건 수사자같이 생겨서 덩치는 말 만해졌으니 말이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두말하면 잔소리! 지금은 우리를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도움을 받아야 하는 때일 것이다.”
명쾌한 대답이었다. 사실 용하는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송골매의 도움이 절실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송골매라면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이 있는 곳을 한눈에 알아낼 것 같아서였다.
“송골매?”
바로 그 순간 용하의 뇌리를 강렬하게 스치는 게 있었다.
“형님! 만약에 드넓은 창공을 가르는 날짐승들이 땅 위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땅 위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면? 음, 그 무엇인가라는 게 만약 먹이라면, 그쪽으로 개떼처럼 아니, 새 떼처럼 몰려들겠지?”
“새 떼처럼 몰려들 것이다! 그럼 다시 여쭐게요. 무리를 짓는 새가 아니고, 각개전투 뛰는 송골매라면요?”
“음, 그야 뭐 목표물의 상공을 맴돌면서 다른 포식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며 기회를 노리겠지?”
“그렇죠! 분명 그렇게 하겠죠?”
오랜만에 용하의 목소리에 희망이 실렸다.
“그러니까 네 생각은 송골매가 맴도는 하늘 아래 트럭이 있을 확률이 있다는 것이냐?”
“네, 맞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송골매는 어디에 있느냐?”
인공의 물음에 용하의 입이 쑥 들어갔다.
“이곳 중경에서 송골매를 본 적이 있느냐?”
단호한 인공의 물음에 지청구를 들을 각오로 대답했다.
“이제 찾아봐야죠.”
“어허, 걱정이로구나. 어느새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익숙해졌다니, 뜻 모를 말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익숙해졌다뇨, 저한테 하신 말씀입니까?”
분명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아,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나한테 했겠느냐? 처음 트럭 세워 둔 곳이 어딘지 몰랐을 때를 생각해 보아라. 그때 심정이 어땠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곧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그런데 지금은 어떠하냐?”
그제야 용하는 인공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또다시 입이 쑥 들어갔다.
“인간이란 말이다. 적응력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물이거든. 너도 그냥 그럭저럭 사는 데 적응하고 만 거야. 자기 자신도 모르는 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이 척박한 대지에.”
어떻게든 부인해야 했다. 그래야만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범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아뇨, 그럴 리가 없어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방법을 찾을 때까지 버티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더냐. 자네는 버티는 것에도 익숙해진 거야.”
아까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유월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엔 말이다. 자꾸 요행수만 바랄 게 아니라, 일을 순서대로 다시 해보는 게 옳을 것 같구나.”
“순서대로라뇨, 어떻게 말입니까?”
“모든 걸 잊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선 숲을 찾는 것이다.”
“형님도 참, 끝이 보이지 않는 이 드넓은 대지에, 숲이 어디 한두 군데겠습니까?”
“백 군데건, 천 군데건, 만 군데건!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찾아서 확인해야지.”
백번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조급함 때문인지, 인공의 말에는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았다.
“제 귀에는 말입니다. 지금 형님이 하시는 말씀은 아프리카의 한 부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부족이 있다더냐?”
“네, 확률 100%라고 하더라고요.”
“확률이 100%라. 거, 참으로 신통하구나.”
“그리 신통한 일도 아닙니다. 그냥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올리는 것이니 말입니다.”
“오호라, 트럭을 찾을 때까지 숲을 뒤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트럭을 찾을 수 있다고 한 내 말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렷다.”
“그러니 그걸 어느 세월에 다 뒤진단 말입니까?”
“망망대해와도 같은 이 척박한 광야에서, 막연히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낫지 않겠느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건 운에 맡겨야 할 일이고 말이다.”
그릇된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용하는 탐탁잖은 기색을 드러냈다.
“첫 번째 숲에서 나오면 운이 좋은 것이고, 마지막 숲에서 나와도 찾았으니 좋지 않겠느냐? 다시 말해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그편이 낫다는 말이다.”
마지막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헤이, 유월! 숲을 찾을 수 있겠니? 풀냄새, 나무 냄새 그리고 여기처럼 척박한 대지 말고, 나무가 자라고 풀이 자라는 기름진 흙냄새를 맡을 수 있겠어?”
―컹컹!
유월이는 자신감이 넘쳐 꼬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발을 동동 굴러 가며 조바심을 드러냈다.
“형님! 숲을 찾는 건 유월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맡겨보죠?”
“저 녀석이 할 수 있겠어?”
유월을 흘깃거리며 미심쩍어하자, 유월이 그를 올려다보며 컹컹 짓는가 하면, 주억거리며 곁눈질을 해댔다.
“지난번에 보니까 일은 똘똘하게 잘하는데, 끈기가 없는 것 같더구나.”
―컹컹!
“개 하면 충성심! 충성심 하면 개잖아. 개들은 충성심이 강해 주인이 좋아할 때까지 죽기 살기로 하거든. 그런데 유월은 그런 개는 아닌 것 같아서, 믿고 맡기기엔 좀 그렇구나.”
“달리 방법도 없잖습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흩어져서 찾아보는 건데, 만약 우리 중에 누가 트럭을 먼저 찾았다 해도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느니…….”
바로 그때였다.
“형님!”
용하의 눈이 햇살은 담은 듯 초롱초롱 빛을 띠었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게냐?”
“형님,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지필 줄은 아시죠?”
“뭐, 돌을 부딪친다거나, 나무에다 마찰을 일으켜서 불붙이는 거 말이냐?”
“네,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됐습니다. 우리 흩어져서 찾아봅시다. 만약 우리 중에 누군가 트럭을 찾으면 불을 지펴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겁니다.”
“그렇게라도 해보자꾸나.”
“유월은 형님이 데리고 가십시오. 도움이 될 겁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고요.”
인공과 한 팀이 되는 게 싫었는지, 유월은 낑낑거리며 용하 주변을 맴돌았다. 그뿐 아니라 인공이 있는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헤이, 유월! 형님 너무 미워하지 말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있는 힘껏 짖어. 내가 도착할 때까지 말이야. 알겠지?”
―컹컹!
그제야 유월은 마지못해 인공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무겁게 꼬리를 흔들었다.
“형님! 다시 만날 때까지 무탈하셔야 합니다.”
“자네도 무탈하게 다시 만나세.”
그렇게 두 사람은 트럭을 찾아,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핏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이는 용하. 하지만 한꺼번에 밀려오는 불안감으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늘 붙어 다니던 단짝이나 다름없었던 인공과 한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기까지 했다.
“형님…….”
힘겹게 입을 뗐지만, 입술이 떨려 더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인공과 헤어진 지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기도 모르게 푸르른 창공으로 잦은 시선이 갔고, 사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뿐 아니었다. 괜히 먼 곳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참새가 짹짹거리며 지나가기만 해도 유월이 컹컹 짖어대는 소리로 착각했다.
한편 인공은 유월이 등에 다리를 포개고 누워, 풀피리를 불며 출처 모를 곡을 흥얼거리는가 하면, 간혹 유월이 녀석의 심사를 찝쩍거리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유월아~ 잘 찾고 있는 것이냐~ 트럭을 찾는 게 네 녀석이 밥값 하는 것이다. 알겠느냐~”
나름 신경 써서 부드러운 음색을 낸다는 게 오히려 유월이 녀석의 심사를 뒤틀어 놓았다.
―킁킁! 킁킁!
유월은 더 열심히 숲을 찾는 척하며 인공은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유월아~ 내 말 듣고 있는 것이냐? 주인 말에 대답을 잘하는 게 밥값 제대로 하는 것이니, 내 말 알아들었으면 어디 한번 대답해 보아라.”
인공의 말에 유월은 생각했다.
‘이번에도 저 늙은이의 말을 씹으면 더 귀찮게 하겠지? 내키지는 않지만 듣기 좋은 말로 저 노인의 입을 막아버려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유월은 인공이 들으라는 듯 서너 차례 우렁차게 짖었다.
―컹컹! 컹컹!
유월의 반응에 인공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옳거니! 용하 녀석이 범상치 않다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적잖이 흡족한 나머지 인공은 유월의 엉덩이를 토닥거려주었다. 그러자 유월은 짐짓 놀란 기색으로 몸을 움츠리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런 변태 같은 늙은이를 봤나. 허락도 없이 남의 엉덩이를 제 것처럼 주물럭거리다니.’
―으르릉~
‘이 노인네 호작질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려면, 주인님이 찾는 그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인가 뭔가를 서둘러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킁킁! 킁킁!
유월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아, 인석아! 왜 갑자기 걸음이 빨라진 것이냐? 그렇게 빨리 걸으면 몸이 흔들리잖아. 아주 천천히, 천천히 걸어. 흔들리지 않게 아주 천천히.”
속도를 줄일 수는 없었다. 인공의 성화에 유월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 대신 발목에 힘을 주었다. 몸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발목 인대를 팽팽하게 세운다는 건 그만큼 체력이 두세 배 더 소모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 안 가르쳐도 알아서 잘하네. 이렇게 잘하면서 꼭 입을 대야 알아들어요. 용하 녀석 말대로 하나를 가르치니 둘을 헤아리는구나.”
칭찬인지 지청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유월은 몸이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걸으며 트럭을 찾는 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간혹 용하가 그리울 때면 그가 갔던 방향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용하를 떠올리고는 했다.
―컹컹! 컹컹!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은 잘 찾고 있는 것이냐?”
유월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직 감도 못 잡은 것이 아니냐?”
얼핏 호통치는 듯한 목소리였다. 유월이는 울화가 치밀어 펄쩍 뛰었다. 그러는 통에 땅으로 내동댕이쳐진 인공은 허리를 움켜쥐고 엄살을 피우며 아우성을 쳤다.
“아니, 이 망할 놈의 개가 사람을 잡네그려. 등에 사람을 태우고 있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펄쩍 뛰면 대체 어떡하자는 거야. 그러다 내가 잘못 떨어져서 죽기라도 하면 살인이야, 알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유월이는 어금니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는 곁눈질을 했다.
‘이 노인네 좀 봐라! 대체 뭐라는 거야? 개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미필적 고의는 뭐고 살인은 또 뭐래, 먹는 건가? 무림에서는 검이 곧 법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얼치기를 여태 등에 태우고 다닌 거야?’
트럭을 하루속히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유월의 마음은 그저 조급해질 따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유월이 콧구멍이 눈에 띄게 벌름거렸다.
“왜, 무슨 연유로 코를 씰룩거리는 것이냐? 어느 집 아궁이에 불씨라도 지피는 것이냐?”
이번에도 유월은 인공의 말 따위 들은 체도 않고, 더 깊이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이 냄새는 주인님 손에서 맡았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