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애타게 무전기에 매달리는 용하. 그의 간절한 심경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무전기는 잡음 하나 들려주는 것조차 인색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그러니까 무전이 잠시 끊긴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 길어지는 듯했다. 마치 무전기가 고장이라도 난 듯 말이다. 용하는 무전기를 하릴없이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런 용하의 행동이 인공의 눈에는 그저 한심해 보일 따름이었다.
무전이 다시 연결되기만을 기다리는 용하의 얼굴에 지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용하를 바라보는 인공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순간에도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으니 말이다.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응답이 없다는 건 비관적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무전이 영영 끊겨 버렸다고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런데 용하에게서는 조금도 그런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적막감이었다. 용하도 인공도 응답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어서인지, 적막감은 깊어만 갔다. 어느덧 적막감은 서서히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또 무림의 미아가 되고 마는 것인가.’
부정적인 생각이 물밀듯 다가왔다. 용하는 저도 모르게 얼굴에 드리워지는 약간의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 역력하게 보이는 각자의 불안감.
맨주먹으로 무림에서 살아 돌아간 용하와 인공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용하는 용하대로, 인공은 인공대로, 각자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보세요, 조 박사님! 조광연 박사님! 제 말 들리세요?”
간절한 목소리였다. 실낱같은 희망마저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다고 생각하니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용하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무전기에 대고 하염없이 조광연 박사를 불러 보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박사님! 조광연 박사님!”
―치직칙~ 칙칙!
무전기는 비웃기라도 하듯 연신 잡음만 토해냈다. 용하도 인공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칙칙!) 네, 들들들, 들립니다. 지지지, 지금 새, 새로운 탑승자를 등록하기 위해 매뉴얼을 일부 수정하는 중이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무전기에서 새 나오는 조광연 박사의 목소리는 희망을 전하는 한 줄기 메아리 같았다.
“에효~”
그제야 용하는 길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웬일인지 용하의 목소리에 기쁨보다는 허탈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그리고 1분 1초도 아까운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칙칙! 치직칙~
[관장님!]마침내 정적을 깨며 조광연이 무전을 보냈다. 더없이 반가운 목소리였다.
“네, 조 박사님.”
[다시 말씀드립니다.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성실히 대답해 주세요.]드라마나 영화에서 들어본 듯한 조광연의 말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기분이 들게 했다.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하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하며 질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용하는 마른침을 꿀떡 삼키는 것으로 속내를 숨기고 간절히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박사님.”
[탑승자 이름이요?]무전기 속에서 새 나오는 말이 왠지 ‘피의자 이름은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네, 유월입니다.”
무슨 리허설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용하는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동화돼 진짜 피의자가 된 것처럼 대답했다.
[사월, 오월, 유월! 할 때 그 유월이요?]분위기 탓인지 조광연의 목소리는 마치 조사관이나 된 듯 점점 더 무르익었다.
“네, 맞습니다. 때 이른 장마가 시작되는 유월…….”
[나이는요?]“아, 그게… 음… 한 살 미만입니다.”
[아직 강아지군요? 그러면… 그냥 나이는 한 살로 입력합니다. 괜찮겠죠?]“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강아지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 순간 무전이 잠시 끊긴 듯했다. 용하의 말이 조광연에게는 달갑잖게 들렸다는 뜻이다.
[몸무게는요?]“글쎄요, 몸무게는 대략 두 근쯤 될 것 같습니다.”
풋! 이번에는 얼핏 웃음이 새 나왔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행이네요. 그 정도 무게로는 시공간 이동체가 비행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아,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탑승자 명단에 올려놔야겠지요?]“그건 박사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런데 박사님!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음, 시공간 이동체의 비행에 영향을 미치는 몸무게는 어느 정도쯤 되겠습니까?”
[그건 왜요?]“그냥 뭐 좀 참고해야 할 게 있어서요.”
[10kg이 넘으면 영향을 미칩니다.]“영향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10kg이면 이동체가 약간 흔들리는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추락입니다.]망망대해 같은 우주 속으로 추락이라니, 말만 들어도 섬찟했다.
“음, 그러면 말입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탑승자 정보 가운데 몸무게는 좀 넉넉하게 입력해두는 건 어떨까요?”
[넉넉하게 입력해 두자…….]무전기 속 조광연의 태도는 뭐가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사정이 좀 있어서 그러니까, 크게 곤란한 문제 아니면, 그렇게 좀 해 주십시오.”
언제부터 을이 되고 만 건지, 용하는 이번에도 간절하게 매달렸다.
“휴우~”
용하는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소리는 무전기를 타고 조광연 박사에게 전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소리라니,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까? 저는 들은 게 없어서요.”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조금 전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아, 그건 여기 풍광이 너무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워, 저도 모르게 그만 휘파람이…….”
[조금 전 그 소리가 휘파람 소리였습니까? 그럼 제 방귀는 색소폰 소리겠네요.]분명 웃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닌, 천문우주학의 권위자 입에서 새 나온 탓일까, 웃음은커녕 냉기만 감돌았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옆에서 줄곧 듣고만 있던 인공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냥 웃어 줘. 안 그러면 이런 사람은 금세 삐져.’
용하 또한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네, 형님.’
“푸헿, 푸헤헤헤헿~”
누가 들어도 가식적인 웃음이었다. 그 사실을 조광연 박사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꽤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치직~칙!
[제 농담이 좀 세요. 학생들도 눈물을 다 찔끔거릴 정도이니 말입니다.]아직 냉기도 채 가시기도 전인데, 소름 끼치게 서릿발까지 내렸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몸서리를 쳤다.
[남들보다 수가 높은 제 개그를 금방 알아들은 것에 대해 사은품을 드리겠습니다.]“사은품이요?”
어떤 사은품일지는 모르지만, 공짜라는 생각에 살짝 설레었다.
[앞에 대시보드 오른쪽 아래 트렁크가 하나 있을 겁니다.]“잠깐만요.”
용하는 대시보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반 승용차하고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이를테면 조금 큰 장롱 아래쪽에 있는 서랍만 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리 어렵지 않게 트렁크를 찾았다.
“아, 여기 있네요!”
[그 안을 보면 태블릿 PC가 있을 겁니다.]“태블릿 PC요?”
의아했다. 무림에서 태블릿 PC가 무슨 소용 있다고. 그런데 만약 조광연 박사의 마술이 태블릿 PC에 적용되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오른 탓에, 용하 얼굴이 경악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곧 경악을 애써 삼키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박사님! 여기 14세기 중세입니다. 여기서 태블릿 PC는 고추부서(孤雛腐鼠)라고요.”
[물론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준비한 이유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시공간 이동체를 어디에다 보관해 두었는지 오리무중이라면 큰일 아닙니까?]그 순간 용하는 저도 모르게 찔끔했다. 옆에 있던 인공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질색해 있을 때였다.
―치직!
[그래서 시공간 이동체와 태블릿 PC 사이에 무선주파수를 설정해 두었습니다.]“무선주파수?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스마트키로 트럭 문 열었죠? 그 말은 스마트키와 시공간 이동체의 주파수가 같다는 얘기잖아요.]“그건 알겠는데, 그게 태블릿 PC와 무슨 상관인 거죠?”
[스마트키가 공유기 역할을 해 줄 겁니다. 다시 말해 스마트키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태블릿 PC와 시공간 이동체가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역시 박사님은 박사님이시다.”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알려드리면, 그걸 다 받아들이기 혼란스러울까 봐.]“잘하셨습니다. 아마 한꺼번에 쏟아놓으셨다면, 하나 기억하기도 벅찼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과학이라고는 자동차밖에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이제부터 14세기에서 지내는 동안 관장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물건이 될 겁니다.]“알겠습니다. 나보다 더 소중하게 지키겠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이왕 하시는 김에 박사님과 소통도 할 수 있도록 뭔가 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용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기며 말꼬리를 흐렸다. 바로 그때였다.
―치직!
[관장님, 제가 누굽니까? 저, 천문우주학의 대가 조광연입니다.]안 봐도 눈에 선했다. 지금 조광연이 우쭐해 있는 모습이.
“네? 아 네, 당연한 말씀을! 박사님 훌륭하신 거야, 대한민국이 알고 아시아가 알고 세계가 아는 사실 아닙니까.”
[홋, 그래서요! 그래서 그것도 물론 해 두었습니다. 음성은 현실적으로 좀 곤란하고 문자로 할 수 있게 말입니다.]조광연의 말에 용하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뛸 듯 기뻐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무슨…….]“박사님~ 이제 방법을 가르쳐 주셔야죠. 태블릿 PC 사용 방법!”
용하의 얼굴에 벌써 기대감이 묻어났다. 1분 1초를 기다리는 것조차 조바심이 느껴질 만큼.
[관장님, 태블릿 PC도 컴퓨터입니다. 다시 말해 일반 컴퓨터나 노트북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죠. 부팅하고 필요한 앱 터치하고 그냥 하고 싶은 짓 하면 됩니다.]조광연은 너무 쉽게 말했다. 사실 용하의 머릿속은 새하얀데 말이다.
‘이 정도 해 두자.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대답했다. 아주 가볍게,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아 네, 별것도 아니었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시간 여행 좀 하겠습니다. 10년 더 과거로!]조광연 박사가 시간을 설정하는 사이, 용하는 트럭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낑낑~ 끙끙~
시공간 이동체의 장쾌한 변신에 유월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놀란 탓에 얼핏 몸에 변화를 일으켰다.
“안 돼! 유월. 대책 없이 커지면, 너 못 데리고 가.”
용하의 격앙된 목소리에 유월은 우뚝 변화를 멈추더니, 서서히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치직칙!
[준비됐습니까?]“네. 적잖이 긴장은 되지만, 이 정도쯤이야. 7세기를 끄떡없이 거슬러 왔는데…….”
[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잠깐만 기다리세요.]이것으로 조광연 박사와의 교신이 끝나고, 시공간 이동체는 용하가 원래 가고자 했던 때로,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용하야! 혹시 말이다. 조광연 박사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인 게냐?”
인공은 민망한 질문이라 생각했던지, 연신 용하를 향해 곁눈질로 핼끔거렸다. 그런 질문에 고분고분 대답해 줄 용하가 아니었다.
“그건 왜요?”
듣기 좋은 말투는 아니었다.
“아까 보니까,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안 하는 것 같더구나.”
“그래서, 궁금한 게 뭔데요?”
“아이 뭐, 꼭 궁금하다기보다는…….”
예상대로 대답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닐 듯 보였다. 그래서 포기하고 물러서려는 순간.
“아, 그거요? 실은 그게 말입니다. 왠지 무림의 세계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될까 봐,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네 말은, 무림을 대하는 조광연 박사에게 신비감이나 환상 뭐,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주고 싶었다! 그런 얘기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