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잠깐!”
용하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특별히 누가 들어주기를 바라고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다급해서, 이제 막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출발한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시공간 이동체를 세워야겠기에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터져 나온 것뿐이었다.
―치직칙!
관제실에서 시공간 이동체를 지켜보고 있었던지 무전기에서 곧 반응이 왔다.
[왜요, 관장님? 일단 시공간 이동체는 세웠는데, 무슨 일 있습니까?]조광연의 말에 용하의 시선이 빠르게 모니터로 향했다. 용하의 시야로 보이는 모니터 속의 화면은 마치 놀이동산에서 바이킹 타는 것 같았다.
“형님!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이상하다니, 뭐가?”
반쯤 누워 불량한 자세로 있던 인공이 부스스 상체를 세웠다.
“우리가 지금 시간 여행을 한 겁니까, 척박한 광야에서 개방으로 이동한 겁니까?”
“그게 다 무슨 소리냐? 내 귀에는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이상한 것이냐?”
바로 그 순간 모니터 속에 반가운 장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어!”
용두방주의 궁, 창의부흥원, 소희 낭자가 머무는 별채. 그 외에도 눈에 익은 것들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보였다.
―치직칙!
[관장님, 그건 제가 급히 시공간 이동체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급히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완충작용을 하느라 시공간 이동체의 시간 이동이 짧게 반복하고 있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를테면 관성의 법칙을 방해해 시공간 이동체의 쏠림을 막기 위해 시공간 이동체가 반작용을 일으킨 겁니다.]“그러니까 이게 사고가 아니고, 조 박사님이 해놓은 안전장치란 말씀인 거죠?”
[네, 맞습니다. 어려운 얘기인데 빨리 이해하시네요.]두 사람의 대화 속에 인공이 끼어들었다.
“조광연 박사님! 얘가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잔머리 굴리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놈입니다.”
[사범님!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하십니까? 저 말입니다. 천문우주학 권위자입니다. 그런 제가 해 놓은 과학의 집대성 앞에서 잔머리라뇨.]“아, 박사님.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무전기 성능이 안 좋아서 오해하셨나 보다.”
[무전기 성능이 안 좋다고요?]이번에도 조광연은 발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이런! 또 실수했나 보군. 이놈에 팔자는 왜 무림에만 오면…….’
“아, 박사님. 제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 이해 바랍니다. 저는 여기 무림에서 말입니다. 입만 뗐다 하면, 바로 실수로 이어지는 팔자인가 봅니다. 하여 지금부터 입을 닫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인공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마치 석상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조 박사님! 박사님이 이해하세요. 여기 무림은 말입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곳이라…….”
[아, 이해합니다. 이해하고 말고요. 사람이 물 위를 걷고, 허공을 날아다니고, 검이 자기 혼자 춤을 추는 곳, 무림!]“아,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적잖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무협지에 다 나오는 거 아닙니까. 저 말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천문우주학에 빠지기 전까지 무협지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만화방에 출근 도장 찍었고요. 무협지 읽는 게 제 일과였습니다.]“정말요?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박사님에게도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남들이 말하길, 그 시기를 제가 걸어야 할 인생의 어두운 터널 같은 때라고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어떻게 다른데요?”
용하는 염치 불고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 생뚱맞은 질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연했다.
“외람되지만 박사님 같은 분은 그 시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저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사람 다 거기서 거기죠. 단지 다른 사람이 어두운 터널이라고 하는 그 시기를, 저는 제 인생의 자양분이라고 생각합니다.]‘아, 다르구나!’
그 순간 용하는 조광연 박사와 저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았다. 누구나 겪게 되는 같은 상황.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이제 어떡하시겠습니까?]“…….”
[관장님! …김용하 관장님!!]그제야 용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 네, 박사님.”
[어떡하시겠느냐고요?]“조 박사님, 죄송하지만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여기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이곳에서 멈추면 말 일백 필을 몰고 그 험난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일을 다시 겪어야 하잖아요. 전 죽어도 못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바로 그 순간 인공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뗐다.
“용하야! 박사님과 대화 중에 미안하지만, 내 생각은 말이다. 장설 형님이 돌아가시기 사흘 전 정도가 어떨까 싶은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박사님! 잠깐만요. 형님하고 상의 좀 하고요.”
[네, 관장님. 잘 얘기 나눠 보십시오.]“형님! 사흘이라뇨? 그렇게 정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우리가 과거로 간들 연로하신 형님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느냐. 단지 형님의 임종만은 지키고 싶구나.”
“그러니까 임종은 장설 형님의 죽음을 지키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흘은 뭐냐고요?”
“그래야 내가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다. 형님을 무림에 두고 우리 둘만 21세기로 갔을 때 말이다. 그 심정이 어땠는지 아느냐?”
용하의 얼굴에 불현듯 참담한 표정이 엄습했다. 더는 말하지 않아도 인공이 어떤 심정인지 헤아려지는 순간이었다. 더없이 숙연한 분위기 속에 용하가 마침내 입을 뗐다.
“사흘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형님.”
그랬다. 인공은 장설과 회포를 푸는 사흘이라는 시간과 그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임종을 지켜 줄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광연 박사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이 두서없이 들리더라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대로 해 주십시오. 이유는 박사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문우주학계의 천재니까요.”
[아니 관장님!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제가 지금 논리 따지고 앞뒤 재고, 그럴 정신이 없어서 드리는 말씀이니, 토 달지 말고 제 뜻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용하의 말이 더없이 간절하게 들렸다. 그래서였을까, 조광연은 저도 모르게 짐짓 숙연해졌다. 그리고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저기 드넓은 잔디 정원에 세 개의 건축물이 보이십니까?”
[중세 유럽의 건축물처럼 생긴 거 말입니까?]“네. 지금부터 저기 보이는 세 개의 건물 중, 가운데 있는 건물을 살펴보시면, 우리와 함께 있는 허리가 구부정하고, 구릿빛 피부에 얼굴이 쭈글쭈글한 노인이 한 명 잡힐 겁니다.”
[잠깐만요…….]모니터에 여러 장면이 빠르게 탐색 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분 말입니까?]“네, 맞습니다.”
조광연의 물음에 대답하는 용하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인공의 눈에도 염도 높은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다음은요?]“그 노인을 스캔해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부터 10년 이내의 미래를 살펴보면, 같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 노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바로 사흘 전으로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약한 모습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용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유구한 역사 속의 길고 긴 시간 가운데, 사흘이라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찾아 정확히 맞춘다는 게, 어디 생각처럼 쉬운 일이랴.
[아무튼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죠.]용하는 흡족한 표정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인공 또한 용하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곧 바이킹을 타는 듯한 순간이 수차례나 반복됐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달리 얼핏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의 진동이 느껴졌다.
“박사님! 조광연 박사님!”
두어 차례 조광연을 불러 보았지만,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용하는 그늘진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속 바깥 광경은, 마치 수조에 담긴 물이 외부의 힘에 의해 출렁거리듯,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렸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불길한 예감이 물밀듯 엄습했다. 용하는 금세 울상이 되어 인공을 바라보았다. 인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용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으르르릉, 으르릉, 으릉!
유월이 또한 뭔가 심상찮음을 감지했는지, 계속 무어라 구시렁거렸다.
―멍멍! 멍멍!
“유월! 흥분하면 안 돼. 아직 착륙한 거 아니잖아. 얌전히 있어. 아무 일 없을 거야.”
―끄응, 끙!
유월이 턱을 고이며 자세를 낮췄다. 용하의 말에 순종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유월이 눈에 서리는 불안한 기색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불안감을 떨쳐버리려면 마음껏 짖어대야만 했지만, 유월은 용하를 배신하지 않으려고 짖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스스로 견뎌냈다.
그때였다.
―치직칙! 치직!
[관장님! 혹시 저분입니까?]용하와 인공은 거의 동시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속에 척박한 광야를 홀로 걷고 있는 등이 구부정한 장설이 보였다. 바로 그 순간.
“형님!”
용하와 인공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모니터 속 장설을 향해 외쳤다.
[좋습니다. 저분이 생을 마감하기 사흘 전 시간으로 착륙시키겠습니다.]“네, 그렇게 해 주십시오. 박사님.”
조급한 마음에 인공이 나서서 대답했다.
[사범님! 덤벙대지 좀 마십시오. 불안합니다.]“아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저 어린애 아닙니다.”
[어린애보다 더 위험해 보입니다. 걸어 다니는 가스통 같아요. LP가스!]인공은 입이 댓 발은 나와 한쪽으로 찌그러지며 들릴 듯 말 듯 구시렁거렸다.
“씨, 괜히 나만 가지고 지랄이야.”
―치직칙!
[다 들립니다.]무전기 속 조광연의 말에 인공은 움찔 수그러졌다.
[사범님! 사범님!]“…….”
[사범님, 대답하세요!]“네.”
인공은 내키지 않아 성의 없이 대답했다.
[혹시라도 재회의 감정에 휩싸여 천명을 거스르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천명을 거스르다니요? 알아듣게 좀 말씀해 주시죠.”
이게 말인지 욕인지, 구분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곱지 않은 말투였다.
[이를테면, 장설이라는 자에게 죽음을 미리 알린다거나, 죽음에 직면한 장설이라는 자를 살려낸다거나…….]“염려하지 마시오! 천재인 조 박사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나 역시 세상 이치를 좀 아는 늙은이라오.”
[네, 그 말씀 믿겠습니다. 사범님도 제 얘기 명심하셔야 합니다.]“…….”
[자, 그럼 착륙하겠습니다.]조광연의 말에 용하와 인공의 표정에 금세 긴장감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문자 한 통 확인할 만큼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오늘의 시간 여행을 마칩니다. 부디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띠릭!
마침내 교신이 끊겼다.
“뭐야, 벌써 착륙했다고?”
“그러게요! 21세기에서 왔을 때보다 훨씬 얌전하게 착륙한 것 같은데요.”
“씨, 괜히 긴장했네.”
―크릉크릉, 크르릉!
시공간 이동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트럭으로 변신했다.
“김용하, 스마트키하고 태블릿 PC 잘 챙겨!”
“아 네, 고맙습니다. 말씀 안 하셨으면 태블릿 PC 또 잊을 뻔했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태블릿 PC는 내가 보관하는 게 어떻겠느냐?”
“그럴까요? 아무래도 형님이 쌈박질도 잘하고 무공도 뛰어나니 그게 좋겠네요.”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문제 될 일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