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
12화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오직 쫓는 자들뿐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옥죄는 듯한 포위망이 눈에 띄게 빠르게 다가왔지만, 정작 쫓기는 자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긴장을 늦췄다.
“스님, 만약에 인터넷이 된다면 뭐부터 하고 싶으세요?”
인공이 대답할 틈도 없이 장설이 먼저 끼어들었다.
“인터넷? 그 요상한 이름의 물건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오?”
장설의 물음에 답하려고 용하가 입을 떼려고 할 때였다. 인공이 용하의 입을 틀어막기라도 하듯 어색한 톤으로 말을 가로챘다.
“허허, 그게 말이오. 요즘 말로…….”
하더니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음, 요즘 말로… 그래, 파발! 파발이라는 것이오. 파발이 무엇인지는 알 것 아니오. 파발이 무엇이오? 또 내가 대답해야 하는 것이오. 파발이란 신속하게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오.”
횡설수설 지껄여 대는 인공의 말에 장설은 수긍하는 기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갸웃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용하는 발언권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아직도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인공이 나서지 않았다면, 용하의 설명은 장황해졌을 것이다.
“조금 전에 말한 인턴인가 뭔가 하는 건 언제 쩍 말이오?”
장설이 고개를 갸웃했던 이유다. 장설은 인공이 한 말 가운데 [요즘]이란 단어에 주목했던 모양이다. 아는 체하고 나섰으니 마무리도 인공의 몫이었다.
“아, 인턴이 아니고 인터넷. 음, 그건… 그… 서역의 말인데, 그러니까 말은, 그리이스 시대? 아님, 로…마…?”
대충 얼버무리려 드는 인공. 그가 펼치는 비굴의 코미디는 보는 이들로 하여 적잖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장설은 혀를 끌끌거렸고, 용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됐으니, 그만하시고 어디 가서 좀 쉬면서 소진된 기운이나 다스리는 건 어떠시오?”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그러잖아도 술시가 아닌가 싶던 차에.”
“방금 반갑다 하셨소?”
“왜요?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나라고 좋아서 하산하자고 하겠소. 그것이 아니외다.”
“그럼요? 그게 아님…….”
“거듭 밝히지만, 나는 쉬고 싶어서도, 술이 고파서도 아니오. 단지 이곳 기운이 하도 흉흉하여, 잠시 피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안했던 것이오.”
장설의 말에 인공은 짐짓 놀라는 기색으로 순식간에 의기소침해졌다.
“알겠소, 알았으니 그리합시다. 그리고 참, 사람 면박 좀 그만 주시구려. 어린 것 앞에서 내가 아주 민망해 죽을 지경이오.”
“됐으니, 서둘러 내려가는 것이 좋겠소.”
“어디 정해 두신 곳이라도 있으신 게요?”
“우리처럼 오갈 데 없는 떠돌이가 갈 곳이 정해져 있을 리 없지 않소. 어디 잔돈푼으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객잔이라도 좀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오.”
“아, 객잔…….”
인공은 술이 땡겼던지 입꼬리를 꼼지락거렸다.
* * *
어스름한 밤길을 걷는 세 개의 그림자.
누구 하나 뒤처지는 사람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팽팽했다.
“제법이구나!”
인공이 용하를 향해 툭 내뱉듯 한 말이다.
“제법이라니, 뭐가요?”
“요즘 녀석들치고는 잘도 따라 걸어서 하는 말이다.”
“이게 다 대리 뛰면서 단련된 것입니다.”
“대리 뛰면서?”
인공은 적잖이 의아해서 물었다.
“생각해 보세요. 고객들 집에 데려다주고 번화가까지 어떻게 빠져나오겠어요?”
“아, 그야 뭐…….”
하더니 벌렸던 입을 닫아 버렸다.
“왜요? 하던 말씀 마저 해 보세요.”
“아, 그야 뭐 택시를 타거나…….”
“대리 한 콜 타면, 몇 푼이나 받을 것 같아요?”
“아, 그야 뭐…….”
“대충 계산 되죠? 그러니 몇 푼 번다고 택시를 타겠어요.”
“그럼, 혹시…….”
“네, 맞습니다. 정처 없이 걷는 거죠. 대략 하루에 평균 10km 이상 걸을 걸요. 그러니 보통 사람은 우리하고 붙으면 쨉이 안 되죠.”
“알겠다, 무슨 말인지. 허나 이곳에선 그런 자랑은 절대 해서는 아니 되느니.”
“왜요? 특별한 이유라도…….”
“잊었느냐? 이곳은 무림이다. 걸음마 떼면 바로 배우는 게 경공술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저는 그저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용하는 눈치 없이 징징거렸고, 인공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인공이 무슨 뜻으로 이렇게 바라보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용하는 그저 하소연이라도 하듯 제 할 말만 주절거렸다.
“하루하루가 낯설고, 어색하고, 두려워서 살 수가 없다고요.”
* * *
저만치에 어스름한 달빛을 타고 객잔 하나가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규모가 느껴지는 외관이었다. 그 광경을 보는 세 사람은 적잖이 위축됐다.
“좀 작은 데를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소?”
조심스럽게 내뱉는 인공의 말에 장설은 훅 치켜뜬 눈으로 대답했다.
“산에서 내려와 얼마나 걸었는지 아시오? 그렇게 걸었는데 이제야 겨우 객잔 하나가 눈에 들어왔소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오? 이 시간에 다른 곳을 찾다가는 날이 새고 만다는 뜻이오.”
그제야 인공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저 눈빛! 어디에선가 본 듯하지 않은가.’
잠시 기억을 거슬렀다. 객잔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리고.
‘옳거니!’
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치켜떴다.
객주를 자처했던 여인이 인공에게 얼핏 곁눈질을 하고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덩치가 산적만 한 수문장이 세 사람의 앞길을 막아섰다.
“세 분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뭐야? 들어갈 수 없다고? 입벤(입장 벤치) 당한 거야? 내가? 이건 말도 안 돼. 홍대 클럽에서도 입벤 당한 적이 없는 나란 말이야. 그것도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그런데 이런 촌구석 객잔인가 포찬가, 뭐 이런 거지 같은 데서 입벤이라니. 전적에 큰 흠집으로 남겠는걸.
이런 생각이 앞서서인지 용하는 불끈 화가 치밀었다.
“왜죠? 왜 우린 들어갈 수 없다는 거죠?”
“객주께서 손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뭐라고요? 뭐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여기가 무슨 삼거리포차쯤 되는 줄 아나 봐.”
“이곳은 중원의 객잔이오. 말씀 함부로 하다가는 큰코다칠 것이오.”
“중원의 객잔이 뭔데요? 내 눈에는 변두리 백반집 같은데!”
용하가 계속해서 수문장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그는 헛기침을 해가며 절대 말려들지 않아, 라고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인내심을 보였다.
“그나저나 이유가 뭐죠? 입벤 당할 때 당하더라도 이유라도 좀 압시다!”
21세기에서 몸에 밴 습관 그대로였다. 물론 학창 시절 이야기지만.
수문장이 넌지시 인공 쪽으로 턱짓을 해 보였다. 용하는 물론, 장설조차 알아본 수문장의 턱짓을 정작 당사자인 인공만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죠? 저 아니죠. 괜히 노인네들하고 싸잡아 객잔 쓰레기 될 뻔했네.”
대충 실랑이는 마무리되는 듯했다.
“알아들은 것 같으니, 소인은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비록 예의에서 벗어남은 없었으나 그의 뒷모습은 적잖이 야멸찼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던지, 용하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수문장을 불러 세웠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려 하자, 용하는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제야 우뚝 멈춰선 수문장은 두 눈을 치켜뜨며 돌아보았다. 핏발이 선 그의 눈은 누가 보아도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힌 게 분명했다.
헉! 사람의 눈 맞아? 갑자기 눈이 왜 저래.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보다 못한 인공이 나지막한 소리로 용하를 꾸짖었다. 현재로서는 자기 편을 헐뜯어서라도 분위기를 전환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만하거라. 저자의 손목을 보거라. 네 녀석 정도는 입김만으로도 손 하나 까딱 못 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느냐?”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말 그대로 수문장의 팔뚝은 황소의 도가니처럼 굵고 야무졌고, 그는 인공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우쭐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던 용하의 입이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슬금슬금 인공의 뒤로 발을 끌었다.
“스님, 그것은 또 언제 보셨습니까? 아무튼 귀신이라니까, 염탐하는 덴.”
“어허,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한마디만 더 하면, 그 주둥아리를 확 뭉개버릴 테니, 그리 알고 입 다물라.”
두 사람이 입엣말로 언쟁을 벌이자 장설이 헛기침으로 인공과 용하의 말문을 막았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세 사람이 대립각을 세우자 수문장은 의아해하며 난색을 지었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살폈다.
그때였다.
“아직도 쓰레기 청소가 안 되었느냐?”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조금 전 매정하게 등을 돌려 들어간 객주였다. 전반적으로 차가운 인상이 짙은 객주의 눈에 얼핏 살기가 엿보였다.
“이런 덜떨어진 것 같으니! 이런 쓰레기도 하나 처리 못 하면서 밥이 입에 들어가느냐?”
객주 앞에 넙죽 조아리는 수문장은 마치 천적을 만난 듯 바들바들 떨었다.
“명심하거라! 문 지키는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면, 그다음은 어찌 될지 그것은 네놈이 알아서 판단하거라.”
객주의 호통에 수문장은 다시 한번 조아렸다.
“명심하겠습니다, 객주 어르신!”
정적이 흘렀다.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객주는 싸늘하게 등을 돌렸다.
“잠깐!”
장설이 객주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잠시 말을 아낀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무엇이오?”
객주의 목소리는 살얼음장 같았다. 장설이 마른침을 삼키고 마침내 입을 뗐다.
“두 가지만 묻겠소. 내 물음에 대답을 하는 것이 장사치의 도리일 것이오.”
장사치의 도리라는 말은 사전에 상대를 묶어 두기 위한 전술이었다.
“무어라! 그건 객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을 때 얘기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소. 객으로서의 자격은 무엇이오?”
“그야 뭐, 진정 그것을 몰라서 묻는 것이오?”
딱히 할 말이 없었던지 객주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승부는 이미 끝난 듯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흥분한다는 건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장설은 내심 쾌재를 질렀다.
“진정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외다.”
너무나 처연한 장설의 태도에 객주는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었다.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늙고 구부정한 노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함…….’
“음, 일단 용모가 마음에 들지 않소.”
“용모가 어때서 그러는 게요?”
“일단 지저분하잖아요. 노숙자도 아니고 옷차림이 그게 뭡니까? 남루하게.”
“지저분하니 비용 들여가며 객잔에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오.”
객주는 말문이 막혔다.
“어떠시오, 객으로서의 자격에 대한 답이 되었소?”
“조, 좋아요 뭐, 그건 됐고… 돈은 좀 있으시오? 여기 숙박비가 만만찮은 곳인데.”
“숙박비가 만만치 않다… 그럼 욕간도 있는 게요?”
“당연하죠… 한적한 곳에 있으니까. 싸구려 객잔으로 보신 모양인데… 시설은 저잣거리 1종 시설에 버금가는 곳이오.”
“알겠소. 비용을 치를 터이니, 방을 주시오. 이 객잔에서 제일 크고 비싼 방으로.”
바로 그 순간 인공이 장설의 뒤에 바짝 붙으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어찌하려고 이러는 게요?”
잔뜩 수그린 인공의 물음에 장설은 처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알았으니, 책임지시오.”
객주가 싸늘한 눈길로 장설을 훑었다. 강한 의구심에서였다. 장설은 진작부터 객주의 눈길을 알고 있었지만, 못 본 체하며 득의양양한 척했다.
‘저 근자감! 괜히 나오는 건 아니겠지? 지나치게 자신만만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장설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의 눈에 비친 객주의 표정에, 조금 전까지 어둡게 드리워져 있던 의심은 온데간데없고 온기로 가득했다. 그 순간 장설의 뇌리에, 객주 역시 빨간 피가 흐르는 사람임엔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안으로 모시거라!”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 객주의 눈에 또다시 살의가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