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유월이 녀석에게 뭘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정말 형님을 찾은 거였으면 좋겠구나.”
황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것이어도 좋으니, 유월이 장설을 찾았다는 소식을 가져다주기만을 간절히 기대하며 유월이 땅에 내려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조금은 어설픈 자세로 유월이 척박한 대지에 요란하게 착지했다.
―철퍼덕!
―깨갱―깽!
흙먼지 속으로 내던져지듯 떨어진 유월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잠시 아파하기는 했지만,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만약 사람이 저렇게 떨어졌다면, 적어도 몇 군데는 부러졌을 것이다.
“괜찮아, 유월!”
용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와락 달려들자, 유월은 앞발로 제 눈을 몇 차례 비비적대더니 와락 달려들어 얼굴을 요리조리 핥았다.
―멍멍! 멍멍!
“유월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반가움을 표하던 유월은 곧 용하에게서 뛰어내리더니, 온몸을 흔들어 몸에서 흙먼지를 떨어냈다. 그리고 용하를 바라보며 빗자루질하듯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멍멍! 멍멍!
―학학학학학! 헥헥헥헥헥!
유월은 환희와 조바심이 교차하는 감정을 표하며 북동쪽 두 시 방향을 바라보며 짖었다.
“유월! 거기서 뭘 본 거니? 혹시 장설 형님이라도 본 거야?”
용하의 물음에 유월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사람이나 개나 질문은 알겠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연할 때 보이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월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멍멍! 멍멍!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유월이 마침내 답을 내놓았다.
용하를 바라보며 두 번. 그리고 인공을 바라보며 수차례나 멍멍 짖어댔다.
그런 유월이 태도에 용하와 인공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멍멍! 멍멍멍멍멍―
잠시 고민에 빠졌던 용하가 급기야 다시 물었다.
“유월아~ 정말 장설 형님을 본 거야?”
―멍멍! 멍멍! 멍멍!
유월은 용하에게 분명히 대답하고 있었다. 그제야 유월이 대답을 알아들은 용하는 화사하게 인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유월이 장설 형님을 찾은 것 같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조금 전 유월이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까?”
“유월이 대답해 주었다니, 그게 다 무슨 해괴한 소리더냐?”
“네. 제가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을 때, 분명 저를 보고 두 번 짖었습니다. 그 말은 사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잠시 조금 전 상황을 상기하는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다음 형님을 바라보며 수차례나 짖었다는 건, 자기가 본 사람이 형님처럼 늙은이였다는 뜻일 겁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말은 그럴듯하구나. 그러니까 용하 네 녀석 말은, 사람을 보았는데 늙은이였다?”
“그렇지요. 형님이 지금 한 말이 정확합니다. 늙은 사람! 우리가 찾는 장설 형님과 공통점이 있잖습니까, 늙은 사람. 그러니 아무것도 몰랐을 때보다는 훨씬 희망적이잖아요.”
“백번 맞는 소리구나.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으냐? 어서 가보자꾸나.”
“알겠습니다. 형님! 가자, 유월!”
―멍멍!
용하의 명령에 유월은 두 시 방향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형님! 북동쪽입니다.”
유월을 놓칠세라, 용하 또한 황급히 뒤따라 달렸다.
“그렇게 빨리 가면 따라갈 재간이 없어.”
“형님! 예전에 왔을 땐 경공술도 쓰고 그랬잖아요. 그거 다 어디 간 겁니까?”
“글쎄,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힘든 세상을 살겠느냐? 나도 죽을 맛이구나.”
“형님, 이렇게 꾸물거리다 유월이 놓치면 장설 형님을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용하야! 나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 그 대신 가끔 유월이 보고 크게 짖으라고 해. 그러면 내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찾아갈게.”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알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할게요. 형님, 몸은 썩었는데 머리는 아직 잘 돌아가네요. 호.”
“인석아! 염장 지르지 말고 어서 가.”
“태블릿 PC, 잘 보관하셔야 합니다.”
그 순간 인공의 뇌리에 빠르게 스치는 게 있었다.
‘아, 태블릿 PC가 내 손에 있는 한 녀석이 날 포기하는 일은 없겠군.’
믿는 구석이 생겨서인지, 갑자기 인공의 태도가 느긋해졌다.
‘녀석이 장설 형님을 찾으면 그다음은 날 찾는 게 과제가 될 것이다. 호.’
인공은 저를 찾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런 생각에 저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헤어진 지도 어느덧 하루가 지났다.
“이제 이틀 남았다. 아무리 늦어도 오늘 중으로 반드시 장설 형님을 만나야 한다.”
어금니 사이로 새 나오는 용하의 목소리는 결의에 차 있었다.
한편 어딘지도 모를 척박한 광야를 걷는 인공은, 한여름 뙤약볕에 널어놓은 바짝 마른 아귀 같았다.
“아이고, 용하 이 녀석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기에 감감무소식이야. 말로는 뭐 당장 찾을 것 같더니만 벌써 하루가 날아가 버렸는데.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러다 송장하고 재회하겠어.”
인공의 목소리나 표정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 것만 같았다.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얼마 걷지 못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인공은 정신력 하나로 홀로된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지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헤헷, 헤헤헤.”
이미 원근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드넓게 펼쳐진 척박한 광야 끝 어딘가에 있을 지평선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이 보였다. 군데군데 작은 섬처럼 떠 있는 숲속에는 청량감을 주는 오아시스가 있을 것만 같았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지만 다시 균형을 잡으며 아슬아슬하게 걸음을 옮기는 인공. 손을 뻗어 무엇인가 잡으려 애써 보지만, 그의 빈손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그때였다.
―컹컹! 컹컹!
“정신도 혼미해 헛소리가 다 들리네그려.”
분명 유월이 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컹컹! 컹컹!
유월의 짖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인공은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환청이라는 생각에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서였다.
―컹컹! 컹컹!
유월이 전하는 신호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제야 인공은 멈칫하더니 유월이 짖어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은 긴가민가한 기색이었다.
―컹컹! 컹컹!
바로 그 순간 또 한 차례의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인공은 초점을 잃었던 눈을 바로 잡으며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어디에선가 인공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유월이 또 한 차례 짖어주었다.
―컹컹! 컹컹!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월…아…….”
계속해서 짖어주는 유월의 소리가 인공의 귀에는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들렸다.
인공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조금 전 유월의 짖음이 들렸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몸은 변함없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유월의 끊임없는 독려 덕분에 억척스럽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컹컹! 컹컹!
“착한… 우리… 유월이…….”
그 순간 인공은 기억을 거슬러 유월을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그때부터 시간의 흐름을 따라 그동안의 일들을 돌이켜보니, 유월이에게 모질게 대했던 기억들만 무성했다. 그것이 미안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컹컹! 컹컹!
유월이 계속해서 목이 터지라 위치를 알려주었다. 인공은 고마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으로 가려고 걸음을 옮겼다. 아지랑이가 스멀거리는 대평원이 좌우로 흔들렸다. 대지의 열기가 얼굴을 후끈 달구고 멀어졌다.
그러기를 수차례나 반복했을 때였다.
―컹컹!
유월이 소리가 아까보다 확연히 가까이 들렸다. 인공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유월아!”
―컹컹! 컹컹! 컹컹!
숨 막히게 짖어대는 유월이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때였다.
“형님!”
인공을 향해 외치는 용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광야를 울렸다. 바로 그 순간 꽉 조였던 긴장감이 풀렸던지, 인공은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컹컹! 컹컹!
유월의 짖음이 점차 가까워졌다. 그렇게 몇 분이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유월이 모습을 나타냈다.
―컹컹! 컹컹!
이글거리는 대지 위에 부목처럼 널브러진 인공을 발견한 유월이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린 채 미친 듯 거리를 좁혀 왔다. 그 뒤에 보이는 두 개의 생명체는 아직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다.
―컹컹! 컹컹!
마침내 인공의 곁에 도착한 유월은 저 힘든 줄 모르고 인공의 안위를 걱정해 마구 핥았다.
―컹컹! 컹컹!
어느 정도 거리를 좁혀 온 두 개의 생명체가 드디어 형체를 드러냈다. 다름 아닌 인공과 장설이었다.
“형님!”
“인공!”
한달음에 달려온 장설이 인공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이보게, 인공. 어찌하여 이런 몰골이 된 것인가.”
“끙!”
인공은 옅은 신음으로 반가움을 표했다.
“형님!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장설 형님이십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려 장설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이보게, 인공!”
꺼져가는 듯한 인공의 눈에 장설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기운이 넘치는 장설의 눈. 인공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저리도 강렬한데 어찌 죽음을 이틀 앞둔 사람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공은 장설의 눈동자에 비친 저를 보며 생각했다.
‘내일모레 죽을 사람은 형님이 아니라 나로구먼. 내가 오히려 죽기 직전의 몰골이야.’
그때였다.
“용하야! 혹시 작은 돌멩이를 좀 구해 볼 수 있겠느냐?”
“그럼요. 이 광야엔 의외로 작은 돌이 많더라고요.”
용하는 말을 내뱉기 무섭게 몸을 움직여 손아귀에 잡힐 만한 돌 두 개를 구해왔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장설은 급히 등에 졌던 봇짐을 풀어 몇 뿌리의 약초를 꺼냈다. 약초는 아직 습기를 머금은 채였다. 약초를 보는 순간 용하는 장설이 무엇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장설은 아직 습기가 남은 약초를 작은 그릇에 담아 용하가 구해 온 돌로 쾅쾅 찧었다.
“우선 이렇게라도 기력을 차리게 하고, 저잣거리로 가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이자꾸나.”
“네, 형님.”
장설이 있어 용하는 든든했다.
그리고 반 시진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유월을 앞세운 세 사람은 저잣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유월이 녀석에게 아무도 무슨 말을 한 적 없는데, 녀석은 코를 땅에다 박고 킁킁대며 국밥집으로 향했다. 그것을 본 장설이 입을 뗐다.
“보기 드물게 영리하구나.”
“네, 형님. 값어치는 하는 것 같아요.”
용하가 겸손의 뜻으로 한 말에 인공이 펄쩍 뛰며 거들었다.
“어디 값어치만 하더냐. 내가 보기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견이야.”
인공의 말에 유월의 눈동자가 빠르게 그에게로 향했다. 용하 또한 의아한 눈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웬일이세요?”
“웬일이라니, 뭐 말이냐?”
“방금 한 말은 칭찬이잖아요.”
“그래서, 그게 뭐? 칭찬할 만해서 했는데,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
인공의 말에 용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고 의아한 표정이 가신 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국밥은 유난히 맛있겠는데요. 호호.”
국밥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장설을 본 주모가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장설 어른 아니시오?”
장설을 알아보는 주모.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용하와 인공은 의아했다.
‘뭐야, 주모가 장설 형님을 한눈에 알아보네?’
장설은 주변 상황은 개의치 않은 채 평상에 여장을 풀고 앉았다.
“주모! 여기 국밥 세 개만 푸짐하게 말아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장설 어른!”
주모는 부엌 쪽으로 종종걸음쳤다.
잠시 틈이 생기자, 용하는 인공 가까이 다가가 나직하게 물었다.
“형님, 일전에는 모르는 눈치 아니었던가요?”
“그러게, 말이다. 주모가 저렇게 한눈에 장설 형님을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두 사람을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