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장설의 국밥은 남달랐다.
이제 막 주모가 내온 국밥은 용하와 인공이 먹었던 것과는 현저히 달랐다. 흔히 자장면으로 치자면 보통과 곱빼기였다. 그것을 본 인공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주모! 이게 어찌 된 것이오?”
“어찌 되다니, 뭘 말입니까요? 손님.”
모른 척 능청을 떠는 건지, 그래도 될 만한 타당성이 있어서 저러는 건지. 아무튼 주모의 능청은 하늘을 찔렀다. 그런 주모를 바라보는 용하의 생각은 좀 달랐다.
‘혹시 주모가 곧 장설 형님에게 닥칠 일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장설에게는 이 국밥이 최후의 만찬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치솟았다. 용하의 표정이 달라졌다. 하지만 인공은 눈치 없게도 여전히 주책을 떨었다.
“어허, 주모 말투를 보아하니,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것 같구려.”
“대체 무엇을 알며 무엇을 또 모른 체한다는 겁니까? 손님.”
“딱 보면 모르시오? 이 국밥은 일전에 먹었던 국밥과는 눈에 띄게 다르지 않소?”
“그게 뭐가 이상한 일이라고, 이 난리를 치십니까? 손님.”
“그럼, 이게 지금 이상한 일이 아니란 말이오?”
“당연하죠.”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모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기주장을 굽힐 줄 몰랐다.
“좋소. 소리친 건 내 사과하리다. 그런데 내 말은 무슨 시비를 걸고자 하는 게 아니고, 왜 같은 국밥을 시켰는데, 이리 다르게 나오는 거냐고 묻는 겁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좀 들을 수 있겠소?”
“못 할 것도 없습죠. 그때는 손님이 시켰고, 오늘은 장설 어른께서 시켰으니까요.”
이번에도 주모는 너무나도 당당한 목소리였다. 더는 말이 안 통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인공은 용하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음, 정확히 말해 내 편 좀 들어 달라고 애원이라도 하듯.
“용하야! 이게 다 어찌 된 일인 게냐? 지금 주모의 말이 맞는 것이냐? 난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뭔가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용하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인공의 표정이나 말하는 본새로 보아, 용하가 바로 자기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듯 보였다. 하지만 용하는 즉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자 인공은 훅 치켜뜬 눈으로 흘겼다.
“아, 뭐 하고 있느냐?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네 녀석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느니.”
효― 용하는 옅은 탄식을 토했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하는가 싶더니 곧 입을 열었다.
“형님! 인공 형님이 양보하시죠.”
“뭐, 양, 양보?”
“네, 형님이 사과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양보라고 하는 걸 보면, 용하 네 녀석도 분명 내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렷다.”
그 순간 인공은 용하를 흘깃 살폈고, 용하는 인공의 말에 호응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더러 사과하라는 것이냐?”
“형님, 인공 형님. 제 뜻이 아니라, 장설 형님이 뜻이니 더는 거론하지 마십시오.”
용하의 말에 인공은 장설의 눈치를 흘깃 살폈다. 비록 장설은 묵묵히 국밥을 입에 떠넣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용하의 말마따나 인공이 양보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장서! 역시 현명한 사람이었다. 인공은 얼른 생각을 고쳐먹었다. 무엇이 우선인지를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지금은 주모와 국밥 양을 두고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허기진 속을 달래는 게 먼저인 상황이었다.
“주모! 이거 미안하게 됐소이다. 내가 주제넘게 선을 넘은 것 같소이다.”
“이제 아셨소? 국밥을 많이 주고 적게 주고는 주인인 내 맘이란 말이오.”
득의양양한 주모의 말에 인공은 목까지 타고 올라온 쓴소리를 꿀떡 삼켰다. 그 광경을 마냥 지켜보는 용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모를 향해, 한 소리 던져야 하는 순간을 수차례나 넘기며 두 사람은 국밥을 입에 퍼넣기 시작했다.
인공은 장설을 흘깃거리며 용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용하야, 저 미친년이 지금 장설 형님 믿고 까부는 거 맞지?”
용하 역시 인공의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럼, 저 믿고 까불겠어요?”
두 사람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장설에게 향했다.
조금 전 모습 그대로 국밥을 해적거리는 장설의 표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리 곱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용하와 인공은 거북이가 딱딱한 등짝 속으로 얼굴을 숨기듯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난데없이 주모를 흘깃거리며 주억거렸다. 그때였다.
“어서 먹어.”
짧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설이 던지는 경고의 소리에, 용하와 인공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찔 수그리며 대답했다.
“네? 아 네.”
장설은 변함없이 짧고 굵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세상 이치가 먹을 것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면 먹을 것이 없더구나.”
장설이 내놓은 의미심장한 말에 용하와 인공은 묵묵히 숟가락을 떴다.
‘아니, 저렇게 건강하신 분이 대체 무슨 일로 돌아가신다는 말인가.’
바로 그때였다.
―멍멍!
―멍멍!
유월이 용하와 인공을 향해 수차례나 짖어댔다. 그제야 용하와 인공은 아차 싶다는 눈으로 유월을 바라보았다. 유월은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대며 코를 온통 뒤덮을 듯 혓바닥을 내둘러 입맛을 다셨다.
용하는 장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인공은 용하에게 눈을 깜짝거렸다. 그렇게 빤히 사람을 쳐다보는 게 아니라는 눈치였다.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만 더 말아주시오, 온갖 맛있는 거 다 넣어서 특별히 말이오.”
“아, 누구 먹이려고 그러셔?”
“누군 누구겠어요? 장설 형님도 나도, 그리고 용하 녀석도, 다들 한 그릇씩 앞에 있는데, 우리 유월이 말이오.”
―멍멍! 멍멍!
이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월이 처음으로 인공을 향해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와락 덤벼들더니 인공의 얼굴 구석구석 마구 핥아대며 헉헉거렸다.
“유월! 그동안 미안했어. 이 못난 늙은이가 자네를 그저 저잣거리나 떠돌아다니는 허접한 누렁이쯤으로 생각했으니 말이야.”
―멍멍! 멍멍!
인공이 유월을 살갑게 대하는 것을 지켜보는 장설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축생을 제 몸처럼 여기는 것을 보니, 인공 네 녀석이 이제야 좀 사람답구나.”
“아, 형님. 왜 그러세요? 저 원래 사람다웠던 사람입니다.”
“부끄럽지도 않으냐?”
“네?”
“네 녀석 입으로 그리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글쎄요, 제가 부끄러울 만한 짓을 한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용하야. 네 귀에는 어찌 들리느냐? 인공이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는 것이냐?”
용하는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용하의 머릿속에는, 나한테 저런 걸 왜 묻는 거지? 라는 의문이 꽉 찼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용하의 눈에는 유월을 대하는 인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깟 국밥 한 그릇이 뭘 그리 대수라고! 평생 국밥을 떠먹여 줘도 모자랄 빚을 진 사람이 저 정도쯤이야.’
그때였다.
“인공! 네 녀석은 말 못 하는 짐승에게도 갚아야 할 빚이 있더란 말이냐?”
순간 용하는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뜨끔했다. 마치 알몸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제 속내를 그대로 들켜 버린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부끄러움 같은 거였다.
“아니, 형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곧 돌아가실.”
“헉!”
인공은 입술까지 나왔던 말을 회수해 집어삼켰다.
“왜 말을 하다 마는 것이냐? 돌아가실, 그다음 말이 무엇이냐? 하던 말은 마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 그게…….”
인공은 안절부절못하며 용하를 흘깃 쳐다보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의미였다. 하지만 용하의 판단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한 채였다.
두 사람이 서로 미루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장설은 처연하게 물었다.
“돌아가신다는 말이 죽는다는 말을 높여 한 말이 맞으렷다?”
평온한 목소리에 온화한 말투였다. 그런데 그 말이 용하와 인공을 더욱 옥죄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장설 형님. 인공 형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고, 국밥을 다 드시고 저잣거리를 벗어나면 곧 강호로 돌아가시지 않겠느냐, 뭐 그런 의미로다가…….”
“구차한 혓바닥이라 그런 것이냐? 말이 참으로 길구나!”
“…….”
“어차피 이승이란, 우리의 영혼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이 국밥집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잠시 쉬어 가는 이곳과 말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게, 정해진 현실이며 자연의 이치이거늘. 뭘 그리 어렵게 말을 돌려 하는 것이냐?”
“그야 그렇지만, 제가 드린 말씀은…….”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노인에게 곧 죽을 거라 한 말이 뭘 그리 이상하겠느냐. 한 치 앞을 모를 나이가 아니더냐. 그러니 미안할 일은 더욱 아니다. 하나, 내 눈에는 인공 자네가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조금도 주저치 말고 숨김없이 말해 주게.”
장설의 말에 인공은 숨을 크게 들이키고 다시 내뱉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그러고는 두어 차례의 헛기침으로 입을 뗐다.
“형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오늘내일 형님이 입적하게 될 거라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소리는 어디서 들었느냐?”
“정보를 판다는 어떤 소녀에게 들었습니다.”
“정보를 파는 소녀라, 요즘도 그런 아이가 있다더냐?”
예상치도 못한 장설의 물음에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18대 방주가 노환으로 죽고, 그의 딸이 19대 방주로 추대된 이후, 개방이 문을 닫았다.”
“문을 닫다니요? 얼핏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에게 그와 비슷한 말은 들었으나,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라는 생각만 했을 뿐 크게 괘념치 않았습니다.”
“개방이 문을 닫았다는 건 세상과 단절을 의미하며 더는 서역과의 교류도 없다는 뜻이다.”
장설이 하려는 말을 이미 눈치챈 용하는 움찔 몸을 수그렸다.
“누가 그런 첩보를 흘렸느냐?”
조금은 단호해진 목소리로 장설은 다시 추궁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저희가 저잣거리에서 형님의 소식을 알고자 수소문을 좀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듣게 된 이야기라 누구라고는 특정하기가 좀 그래서요.”
“그럼 내가 어떤 이유로 어디서 어떻게 죽었다고 하더냐?”
“저희가 들은 이야기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하여, 어찌하면 형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그것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어찌 사람이 막을 수 있겠느냐? 하늘이 이미 정해놓은 이치이거늘.”
장설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다. 용하는 예의 따위 안중에도 없이 제 생각을 밝혔다.
“형님! 하늘이 정했든 말든 저와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형님이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한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제가 무림에서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혹 창의부흥원과 관련된 일인 것이냐?”
“개방에 새로 추대된 방주가 외부와 철저히 단절한 지금, 창의부흥원이 제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걸 알면서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며,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무엇 때문에 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냐?”
“형님,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그걸 어찌 다 말로 하겠습니까? 저는 반드시 형님을 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길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끝내 말을 안 하겠다는 것이냐?”
“말씀을 안 드리겠다는 게 아니고, 제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면서, 그때그때 계획을 미리 설명하는 것으로 형님이 요구하는 사항을 대신하겠다는 것입니다.”
비로소 장설은 용하가 하려는 말을 알아듣는 기색이었다. 옆에서 용하의 열변을 듣고 있던 인공은 깊이 감동했던지 눈망울이 촉촉했다.
“좋다. 자세한 건 차차 알기로 하고, 한 가지만 더 물을 것이니,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하느니!”
“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무엇이든 이실직고하겠습니다.”
“최종 목표는 무엇이냐?”
용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곧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무림검도관(武林劍道館)입니다.”
용하의 대답은 적잖이 결의에 차 있었고 인공과 장설은 입을 모아 까무러칠 듯 외쳤다.
“뭣이라!”
“무림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