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장설의 안색이 불현듯 싸늘해지더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안색이 달라진 이유는 검(劍)이 곧 법(法)인 무림에 검도관을 창립하겠다는 당치않은 말 때문이었다.
“어찌하여 그리도 발칙한 생각을 했단 말이냐? 이곳이 어디인 줄 그새 잊었던 게냐? 여긴 무림이 아니더냐? 강자만이 살아남는 곳!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강해지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제야 용하는 장설이 염려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돈을 받을 것입니다. 아무나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아주 비싼 수련비를 내야 합니다.”
“내 말을 끝내 못 알아듣는 것이냐?”
천지를 뒤흔드는 장설의 호령은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아직 수양이 안 된 자들이 무림의 강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그깟 구리동전 몇 푼 아낄 것 같으냐?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해올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나 검을 다룰 줄 알게 된다면, 강호의 질서가 어찌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
장설의 호통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기가 빨려 현기증이 다 느껴졌다. 용하는 잠시 틈을 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바로 장설의 말에 반박했다.
“구리동전이라뇨, 누가 그런 망발을 한 겁니까? 형님 말대로 검이 곧 법인 무림에서 검술을 가르치는데, 그깟 구리동전 받아서 어찌 검도관이 운영되겠습니까? 인공 형님은 잘 아시죠?”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던 인공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럼, 알고말고. 변두리 검도 체육관도 소홀찮게 비용이 깨지더구나.”
“형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지금 변두리 검도 체육관 얘기가 나오면 되는 겁니까?”
용하가 인공을 나무라자 노기충천한 장설이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어찌하여 네 녀석이 스스로 형이라 칭하는 인공을 나무란단 말이냐?”
장설이 예상치도 못한 반응을 보이자 경악한 사람은 용하가 아닌 인공이었다.
‘아니, 그사이 도대체 무슨 대화가 오갔기에 일이 이 지경이 됐더란 말이냐?’
인공이 울상을 짓자 장설은 다시 한번 호령했다.
“징징거리지 말라. 인공 네 녀석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네?”
인공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울상을 지었다.
“도대체 아우를 어찌 가르쳤기에 저 지경이 되고 만 것이냐? 돌이켜 보면, 용하 저 녀석이 그래도 창의부흥원에 원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예의범절이 남다르던 녀석이 아니었더냐?”
장설의 호통에 단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사이 21세기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형님. 다 이 아우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니, 형님께서 불쌍한 중생들을 널리 헤아리시어 노여움 푸십시오.”
비록 임시방편으로 둘러댄 말이었지만, 인공의 말이 장설의 귀에는 진심으로 들렸다.
그래서인지 장설은 극에 달했던 노여움을 풀며 화살을 다시 용하에게로 돌렸다.
“잘 보았느냐? 이것이 현실이다. 수양이 부족한 자에게 힘이 생기면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날 논쟁의 승리는 이미 장설에게로 기운 지 오래였다. 사실 용하는 무림검도관을 창립하겠다고 하면 모두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유로 발목이 잡힌 것이다. 게다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한 장설의 태도는 용하를 의아하게 할 따름이었다.
“형님!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용하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심기가 불편해진 장설은 매서운 눈을 치켜떠 용하를 훅 흘길 뿐 말이 없었다. 용하 또한 흘깃 장설의 눈치를 보았을 뿐, 물러설 의사가 없어 보였다. 장설이 섬찟한 눈으로 다시 한번 흘겼지만, 용하는 굴하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정신 수양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강호에서 보았듯이, 고수 소리 듣는다는 검객들 나이를 한번 보십시오. 평균 연령이 50대잖습니까?”
“당연한 얘기를 입 아프게 떠들어대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래서 제가 창립하게 될 무림검도관에서는 칼싸움을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검도관에서 칼싸움은 가르치지 않겠다고?”
“네.”
“그럼 무엇을 가르칠 생각인 게냐?”
“칼싸움이 아닌, 검도(劍道)를 가르칠 것입니다.”
“무어라! 검도?”
“네. 검도를 가르치기 전에 검도관 입관 때부터 인성이나 습관 등을 미리 파악해서 검도를 배워서는 안 되는 자들을 걸러낼 겁니다. 예를 들면 도적질을 하는 자에게 검도를 가르칠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검도라, 그런 수련법은 처음 듣는구나.”
“말 그대로 검을 휘두르기 전에 검을 대하는 도를 먼저 깨우치게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그걸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자들이 있겠느냐? 그것도 돈을 주고 말이다.”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지금까지 강호에는 극히 소수의 인원만이 검객이 될 수 있는 관행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를테면 무림을 장악한 아홉 정파와 오대세가에서 그들 가문의 비급을 전수한다는 명분으로 검술을 가르쳤습니다.”
“그 또한 당연한 말이거늘, 무엇 때문에 그리 입 아프게 떠들어대는 것이냐?”
장설의 짧은 말에 용하는 울화가 치밀었다. 이유는 그토록 오랜 세월, 깊이 수양이 잘된 장설조차 못된 관습과 선입관에 젖어 있는 꼴이 보기 싫어서였다. 하여,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 선을 넘고 말았다.
“지금 입 아프게 떠들어대냐고 했습니까?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합니다. 그런데 몇몇 특정 세력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따르라고 강요한다면, 보나 마나 그건 집단이기주의일 것입니다.”
목청을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로 장설의 말에 항변했다.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저 혼자 싸워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걸 아는 녀석이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는 것이냐?”
“제게는 장설 형님이 계시고, 인공 형님이 계시잖습니까? 게다가 개방의 용두방주 그리고 창의부흥원이 있지 않습니까?”
“18대 방주는 이미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의 뒤를 이은 19대 방주는, 왜 그러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철저하게 외지와 단절하고 자기들만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의 방주와 소통할 수 없다 해도 우리에게는 소희 낭자가 있지 않습니까?”
“소희 낭자! 그 아이도 자네와 인공이 무심하게 이곳 무림을 떠난 이후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어. 상황이 이러하여 그만하라는데, 어찌하여 망발을 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의 방주를 만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포악한 사람을 만나서 무엇 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명이라도 단축하고 싶은 것이냐?”
“형님! 저는 말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시작도 안 해보고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자네 고집대로 하려거든 그리하면 될 일이다. 괜히 우리까지 사지로 끌고 들어가려 하지 말게.”
“두 분 형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우리 도움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보나 마나 뻔한 싸움을 함께할 정도로 어리석은 노인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구나.”
“저와 함께 싸워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싸움은 저 혼자 할 것입니다. 다만 두 분 형님들은 무림검도관이 창립되고 나면, 관원들을 지도하는 사범님으로 추대되실 것입니다. 그러니 무림검도관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저를 도와 달라는 말입니다.”
“무어라! 사범!!”
그 순간 경악한 인공과 장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새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장설이 물었다.
“사범이 무엇이냐?”
장설의 질문에 옆에 있던 인공이 요사한 표정을 지으며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형님, 제가 사범 노릇을 잠깐 해 봤는데 말입니다. 그게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입니다.”
“괜찮다니, 무엇이 그리 괜찮다는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 수련생들만 많이 끌어모으면 돈벌이가 소홀찮게 좋습니다.”
“뭐라, 돈벌이?”
“네. 게다가 수련생들은 제 말이라면 신처럼 받들어 모십니다.”
“신처럼?”
인공의 말에 장설은 얼핏 혹하는 기색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용하는 때를 놓치지 않고 결정적인 말로 분위기를 뒤바꿔 놓았다.
“바로 그 점입니다. 일단 무림검도관이 창립되고 나면, 관원은 당연히 모여들 테고, 그들은 두 분 사범님들을 신처럼 모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무림의 사람들을 장악하는 것이죠.”
“무림을 장악한다? 악은 악을 낳고 또 그 악이 다른 악을 낳는다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이냐?”
“장악하고 나면 권력을 쥘 것이 아니고, 평등하게 만들 것입니다. 권력이 많은 사람에게서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아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나눠 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높은 곳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는 방식으로, 이 무림을 평평한 땅으로 만들 것입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용하가 쏟아낸 많은 말 가운데 어느 대목에 꽂혔던 걸까. 장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용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장설은 마침내 용하의 말을 알아듣고 흐뭇한 기색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 함께해 보자꾸나. 인공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저야 뭐, 형님이 하신다면야 무조건 따라가야죠.”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던 의형제의 재회. 그리고 그들의 의기투합은 성공적이었다.
‘아직 희희낙락하기에는 이르다. 적당한 시기에 형님들 눈을 피해 조광연 박사와 접촉을 시도해봐야겠어.’
용하는 조광연에게 장설이 어느 장소에서 어떤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 알아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 밤.
용하는 인공과 장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몸을 일으켜 야간 보행법으로 객잔을 빠져나왔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움직임을 작게 해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왔는데, 어느새 유월이 용하의 옆을 따라 걷고 있었다.
“유월!”
―멍멍!
용하가 절제된 목소리를 내서인지, 유월이 또한 절제된 소리로 짖었다.
“잘했어. 그러잖아도 유월이 네 도움이 필요했는데, 알아서 척척 해 줘서 고마워~”
―멍멍!
“자, 그럼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으로 갈까?”
―멍멍!
자신감 넘치는 유월의 반응에 용하는 한시름 놓은 기색이었다. 사실 태블릿 PC를 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인공이 하도 꽉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통에, 그냥 나올 수밖에 없어 불안하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만 소록소록 빛을 발했을 뿐, 대지는 코앞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만에 하나 유월이와 헤어지는 날엔 낙오자가 되고 만다는 생각에 몸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건 용하의 기우였다. 어둠이 짙을수록 유월의 눈동자가 더욱 밝게 불똥을 튀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유월의 후각이 절대 용하를 놓칠 리 없었다.
‘효― 괜한 걱정을 했어. 유월이에게 안전장치가 두 개나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유월이 든든하게 여겨졌다.
“유월!”
―멍멍!
“나 한번 안아줄래?”
―멍멍!
유월은 폴짝 뛰어 용하의 품에 덥석 안겨 얼굴을 마구 핥았다. 평소 조금은 귀찮게 여겼던 유월의 행동이 유난히도 따듯하고 푸근했다.
“유월아~”
―멍멍!
“그만 갈까? 형님들 잠에서 깨기 전에 볼일 다 보고 돌아가야 해.”
―멍멍!
유월이 앞장서 걸으며 가끔 뒤돌아보는 것으로 자기 위치를 용하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달이 동쪽 두 시 방향에 걸렸을 무렵.
―멍멍! 멍멍! 멍멍!
유월의 짖음이 연달아 들렸다.
“녀석, 트럭을 찾았나 보네?”
세상 그 어떤 소리보다 반가웠다. 용하는 유월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간 곳에, 조금은 을씨년스럽지만,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이 용하와 유월이를 처연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구나.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한 것이거늘, 어찌 이리도 사람 가슴을 설레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용하는 이렇게 소회를 말하며 유월을 내려다보았다.
―멍멍!
자시(子時)가 끝날 무렵 객잔에서 출발한 용하는, 축시(丑時)가 끝날 무렵이 돼서야 마침내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