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목숨 걸고 막아낼 것이다. 장설 형님이 절대 그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장설이 죽기 사흘 전으로 시간 이동한 날로부터 3일째 되는 날이다.
이제 막 조광연이 보낸 이메일의 마지막 줄을 읽은 용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형님! 이 못난 아우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용하는 고이 잠들어 있는 장설을 결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설이 잠에서 깨어나 일상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정이 지날 때까지, 장설이 하겠다는 건 그것이 무엇이든 꺾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어떤 무례를 범하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미리 사과해 두었다.
용하는 감사의 뜻이 담긴 간략한 답장을 조광연에게 보내고 태블릿 PC를 껐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객잔의 아침이 밝았다. 이제 막 기지개를 쭉 켜며 잠에서 깨어난 장설을 예의주시하는 용하의 눈빛이 사뭇 날카로웠다.
장설이 흘깃 바라보며 꾸짖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 있었느냐? 사람 보는 눈빛이 어찌 그리 야멸찬 게야?”
하루를 여는 첫마디부터 범상치 않았다. 장설이 내보내는 기운이 어찌나 강했던지, 용하는 오금이 다 저려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장설 형님의 기운을 압도해야 하는데…….’
겨우내 꽁꽁 얼었던 고드름이 녹아떨어지듯,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자신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론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기운이다.’
용하는 인공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공 몰래 처리할 생각이었다. 입이 많아 좋을 리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때였다.
“아하암~”
이제 막 하품 소리와 함께 늘어질 듯 기지개를 켜며 인공이 잠에서 깨어났다.
“형님! 오늘도 하루 세끼는 먹을 수 있겠죠?”
용하는 이제 막 눈을 뜬 인공에게 생뚱맞은 말을 건네며 손가락 세 개를 펴서 흔들어댔다. 손가락 세 개를 강조라도 하듯 말이다. 누가 봐도 지금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용하의 행동에 인공은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녀석이 식전부터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건 분명 무언가 있다는 얘긴데……. 가만있자, 하루 세끼에 손가락 세 개라…….’
하루 세끼는 무슨 소리고, 저 손가락 세 개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용하가 그냥 지껄였을 리 없다는 건 눈치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용하의 눈에도 지금 인공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훤히 보였다.
‘가만있자, 저 형님에게 오늘이 어떤 의미인지 넌지시 알려 줄 방법이 뭐가 있을까?’
바로 그 순간 유월이 멍멍 짖었다. 거의 동시에 용하의 뇌리에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유월아~ 오늘은 아무 데나 막 돌아다니면 안 돼~ 그러다 잘못되면 비명에 죽을 수 있으니, 내 말 잘 들어야 한다고. 아니, 내가 아무 데나 가지 못하게 막을 거야. 알겠지?”
마지막 말에 힘을 주며 인공을 흘깃 바라보았다. 이제 막 용하와 눈이 마주친 인공은 비로소 용하의 말을 알아듣고는 옅은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혼자 힘으로 고집불통 장설 형님을 막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으랴.’
인공은 자기를 믿고 도움을 청한 용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법이지.’
두 사람의 눈빛이 오가는 것을 감지한 장설은 생각했다.
‘이제 일어난 두 녀석이, 저리 잦은 시선을 교환하는 데는, 필시 무슨 연유가 있으렷다.’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의 어설픈 행동은 오히려 장설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기만 했을 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객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장설의 발목을 잡아야 하는 오늘의 과제를 인공에게 알릴 방법이 달리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용하야, 이 객잔은 해우소가 어디에 있더냐?”
“해우소?”
용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용하와 눈이 마주친 인공은 녀석의 눈빛을 바로 알아차리고 대신 장설에게 대답했다.
“형님. 해우소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본 객잔의 중앙 홀 쪽으로 이어지는 대문과 대문 사이에 있습니다. 어떻게, 제가 안내를 할까요?”
“됐다, 인석아. 그 정도 얘기하면 나 혼자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어.”
장설이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 용하와 인공은 잘됐다는 듯 키득거렸다.
“형님. 오늘 말입니다. 장설 형님을 절대 복호사 아니, 아예 아미산 쪽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합니다.”
“아미산?”
“네, 아미산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장설 형님이 아미산에서 입적하시게 된답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구나. 아미파 요망한 것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처리했으니, 세상에는 알려졌을 리 없겠지.”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은 있는데 핑곗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디 한번 해보겠느냐?”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반을 들면서 술판을 만들 생각이다. 반주로 기분 좋을 만큼 마시게 한 후, 각자(閣子)로 자리를 옮겨 아가씨를 붙여주고, 환문 앞에는 거마차자(拒馬杈子)를 쳐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는 거야. 어때?”
“그걸로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요?”
“부족하다니, 뭐가? 점소이에게 은자 한 냥을 주면 거마차자를 쳐서 다른 손님들은 절대 못 들어오게 해 줄 테고, 아가씨들에게도 뇌물을 써서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장설 형님을 유혹해서, 그의 발목을 꽉 붙들어 놓으라고 하면 되지. …왜, 안 될 것 같으냐?”
인공이 제시한 방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용하는 옅은 한숨만 내쉬었다.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내 말대로 하자꾸나. 그러려면 지금 움직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일단 현재로서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장설 형님을 살리는 데만 집중해 주십시오.”
“알았다. 내 그리하마.”
인공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은 순간 화장실에 간다던 장설이, 문 앞에서 몰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다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리고 인공이 나와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윽고 점소이를 만난 인공은 그에게 은자를 내놓으며 물었다.
“이보게! 이 객잔 하루 매상이 얼마나 되는가?”
“그건 왜 묻습니까?”
“필요해서 그러니 군소리 말고 대답해 보게.”
“어지간한 저잣거리의 작은 주점 두 달 치 매상은 될 것이오.”
“그래서 얼마?”
“얼마겠습니까? 은자 100냥이지.”
“은자 100냥이라, 그거 내가 치를 것이니, 오늘 하루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환문 앞에 거마차자를 치게!”
“은자 100냥을 치르시겠다고요?”
“그렇다고 하지 않느냐.”
“그 말을 어찌 믿습니까? 은자 100냥을 한꺼번에 치르는 건, 오대세가의 공자님들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선 계약금으로 30냥 치르고, 나머지는 일이 잘 성사되면, 그때 치르도록 하겠네.”
“일이 잘 성사되면요? 만약 잘 성사가 안 되면 나머지는 입 싹 닦겠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사람을 이렇게 믿지 못해서야.”
“손님.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아시다시피 이곳은 무림입니다.”
“알겠네. 그리고 잘 들어. 내 말은 일만 잘되면 약조한 것보다 더 후하게 주겠다는 뜻이지 입을 닦을 생각은 추호도 없네. 다시 말해 아무리 일이 안 돼도, 주기로 했던 은자 100냥은 치를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무림에서는 드물게 신뢰감이 가는 말투였다. 사실 점소이가 하루 매상을 부풀려 대답해서 그렇지,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야 은자 30냥이면 하루 매상으로 충분한 금액이었다.
“알겠습니다. 기녀는요?”
“당연히 불러야지.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특히 말이오. 목석이나 다름없는 냉정한 사내의 마음도 녹일 만큼 살가운 기생으로 부탁 좀 드리리다. 수고비는 섭섭지 않게 더 쳐 줄 테니 말이오.”
인공은 은자 30냥을 점소이에게 건네며 당부했다.
“기녀들에게 우리 일행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장설 형님을 잘 모시도록 당부하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자시에서 축시로 넘어갈 때까지만 꼼짝하지 않고 방에 머물게 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은 얼마든지 따로 후하게 지급할 터이니, 부탁 좀 하겠네.”
“아이고, 그렇게만 해주신다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곳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명기로 대령하겠습니다.”
“특명이니, 반드시 지켜야 하오!”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점소이는 보기 딱할 만큼 허리를 깊이 조아리고 중앙 홀 쪽으로 총총히 멀어졌다. 점소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인공은 일이 썩 잘 풀렸다는 생각에 흡족했다. 그때였다.
“형님!”
뒤에서 용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공은 우쭐한 기색으로 슬그머니 뒤돌아섰다. 인공의 표정을 본 용하는 한달음에 다가오며 물었다.
“어찌 되었습니까? 표정으로 보아선 잘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일단 점소이에게 오늘 계획을 넌지시 얘기하고 작전을 일러두었으니, 나머지는 종업원들이 눈치껏 알아서 잘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형님, 정말 잘돼야 합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는 날엔, 우린 형님 한 분을 잃게 되고, 나아가 무림검도관의 사범 한 분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무림검도관이란 꿈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일단 한번 믿어보자고.”
“믿어보다니, 뭘요? 설마 무림에서 객잔의 종업원을 말입니까?”
“아니, 돈의 마력을!”
“돈의 마력? 대체 얼마나 퍼 준다고 했는데요?”
“오늘 하루 이 객잔 셔터 내리는 조건으로, 은자 300냥 달라는 거 100냥 쇼부쳤어.”
“네! 은자 100냥이라고요?”
“뭘 그렇게 놀래? 이만한 규모의 객잔 하루 빌리는 데 은자 100냥이면, 솔직히 좀 미안한 거지. 완전 거저야. 그나저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돈은 만들 수 있겠어?”
“은자 100냥요?”
“계약금으로 30냥은 먼저 치렀어.”
“형님이 돈이 어디 있다고 은자 30냥을 먼저 치러요?”
“그만한 돈은 나도 있어. 문제는 이제 알거지가 됐다는 얘기지.”
“형님! 장설 형님만 살리십시오. 그럼 은자 30냥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 정말?”
“표정 보니 자신 있으신가 봐요?”
“그럼, 자신 있고말고.”
“형님이 자신감을 보이시니, 저도 마음이 놓이는 게, 기분이 좋은데요.”
“나도 마찬가지야. 왠지 오늘 일이 잘될 것 같은 게, 기분이 막 좋아져.”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이 들떠있는 사이, 이제 막 화장실에서 나온 장설이 두 사람 쪽을 훅 흘기고는 2층으로 올라가는 광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형님! 그럼 저는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나갔다 오다니, 어딜?”
“돈 만들어야죠. 은자 100냥!”
“그 큰돈을 당장 어디 가서 만들겠다는 거야?”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늦어도 점심 무렵엔 돌아올게요.”
“생각이 있다니, 그럼 다녀오게. 난 자네를 믿으니까.”
“유월이 저와 함께 갈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장설 형님 절대 밖으로 못 나가게 하셔야 합니다.”
“그건 염려 붙들어 매. 객잔 종업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거니까.”
용하가 객잔을 나갔을 때였다. 텅 빈 객잔에 남은 인공은 휑한 객잔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이 객잔에 처음 오는 건 아니었지만, 사실 먹고 마시고 잠자기 바빴지, 여기저기 둘러본 적이 없어, 객잔에 대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오늘은 우리밖에 없으니, 이럴 때 객잔 구경이나 실컷 해 둘까.”
인공은 제 세상 만난 사람처럼 양손으로 뒷짐을 진 채, 유유자적 중얼거리며 어슬렁어슬렁 객잔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인공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사이 장설이 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빈방이었다.
“어허, 이 형님이 변비가 있으신가 보네. 화장실 간 지가 언제인데.”
홀로 빈방을 지키려니 괜히 심심했던지, 인공은 오랜만에 영춘권 입문 단계라 할 수 있는 소념두를 시전했다. 이자겸양마의 자세로 직권을 쭉 뻗은 다음, 손목을 감아 회수하는 동작을 몇 차례 반복했다. 나름 표정은 진지했지만, 불룩 튀어나온 배가 아래로 축 처져, 조금은 보기 민망했다. 하지만 그는 수십 년 전에 배웠을 소념두를 아직도 잊지 않고 정확히 해냈다.
“어허, 무도인 인공의 영춘권이 아직은 쓸 만하군.”
인공은 저도 모르게 자아도취 돼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형님이셔?”
장설이라 짐작했는데, 밖에서 들려온 소리는 뜻밖에 점소이였다.
“점소이입니다. 조반을 드리려 하는데 아침 식사할 준비는 되셨는지요.”
인공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막 2층 복도에 발을 내딛는 점소이가 보였다.
“일단 조반상은 방으로 들여주게.”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화장실 가신 형님이 아직 안 와서 그러니, 방에다 상 내려두고 다음 일정 진행하게.”
인공은 점소이와 눈도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