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형님! 형님!
애간장을 태우는 인공의 목소리가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두 눈이 뒤집힌 인공이 객잔을 샅샅이 뒤졌지만 장설은 보이지 않았다. 점소이와 종업원들이 합세해 사람이 몸을 숨길만 한 곳은 빼놓지 않고 살펴봤지만 끝내 객잔 어디에서도 장설을 찾을 수 없었다.
“아이고, 형님!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게 무슨 잘못이 있으면 그냥 꾸짖으시면 될 것이지 왜 이리 애간장을 태우는 것입니까. 용하 녀석이 오면 난리가 날 텐데,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인공이 울상을 지어가며 넋두리를 하자 점소이도 덩달아 읍소를 했다.
“아이고 손님! 이 점소이를 죽이려는 겁니까?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겁니까. 기녀들 말입니다. 낮에는 일 안 한다는 걸 억지로 대기시켰는데 어쩌면 좋습니까. 더군다나 중원을 통틀어서 제일 잘나가는 기녀들로 보내라고 엄포까지 놨는데 말입니다.”
점소이가 쏟아내는 하소연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인공은 사태가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말았다는 판단이 서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점소이도 따라 울음을 터뜨렸는데, 서로 흘깃흘깃 눈치를 살펴 가며 누구 울음소리가 더 큰지 내기라도 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때였다.
“형님!”
환문 앞에서 들리는 용하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그냥 목소리가 아닌, 맑고 경쾌한 게 금방 날아갈 듯한 청량한 음성이었다.
녀석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다는 건 은자를 쉽게 구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뻐서 펄쩍 뛰어야 했지만, 지금 인공의 처지가 그렇게 즐거울 수만은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녀석이 벌써 돌아왔군! 이를 어쩐다. 음―”
그 순간 인공의 머릿속에 번득인 건, 일단 시간을 좀 벌자는 생각이었다.
“이보게, 점소이! 이렇게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으면 괜히 의심만 살 것이니, 일단 흩어져서 각자 할 일을 하세. 나는 우리 용하 아우께서 은자를 구해왔는지 알아봐야 할 것이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간략하게 예를 갖추고 종업원들은 해산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괜히 말끔한 객잔 바닥을 쓰는 체하며 빗자루를 들고 어슬렁거렸다.
대충 위기는 모면할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용하가 득의양양 중앙홀로 들어서며 은자가 든 제법 묵직한 자루를 흔들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인공이 어색한 미소로 용하를 맞이했다.
“형님! 그런데 환문 앞에 쳐놓은 거마차자가 왜 저리된 겁니까?”
“거마차자가 저리되다니, 그게 다 무슨 소리냐? 대체 거마차자가 어찌 되었다고.”
점소이도 하던 일을 멈추고 궁금한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점소이의 시선이 닿은 곳은 용하의 얼굴이 아닌, 손에 들린 은자가 담긴 자루였다.
“그게 말입니다, 형님. 성격이 몹시도 지랄 맞고 인성이 저품질인 취객이, 지금 자기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흔적이라도 남기듯, 확 밀치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의 뇌리를 불현듯 스치는 것들.
‘성격이 지랄 맞고 인성이 저품질이라면, 그건 분명 장설 형님인데! 게다가 기분이 더러워서 그런 짓을 했다면, 기분이 몹시 상한 장설 형님이 분풀이라도 하듯 거마차자를 밀치고 환문을 통해 객잔을 나갔다는 말이 아닌가. 음, 이를 어쩐다? 뭐라고 둘러대야 저 녀석이 내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그런데 형님은 왜 내려와 계셨어요?”
“아, 그게 말이다…….”
어떻게든 얼버무리려고 하는데,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비록 임시방편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용하야! 오는 길에 혹시 장설 형님을 못 보았느냐?”
“장설 형님을요?”
용하는 의아한 눈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두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장설 형님이 밖으로 나갔단 말입니까?”
“왜 그리 놀라느냐? 저잣거리 좀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그게 그리도 놀랄 일이더냐? 장설 형님은 여기 지리에 밝으니 문제 될 게 뭐가 있다고 그리 놀라는 것이냐?”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떨리는 가슴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형님! 지금 중요한 건, 장설 형님이 이 객잔 안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없다는 거라고요. 장설 형님은 오늘 자정이 완전히 지날 때까지,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해도 우리 눈앞에 계셔야 한다고요.”
용하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서실 그대로 말할 용기가 차마 생기질 않았다. 장설이 제 발로 객잔을 나가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고.
“그건 그렇고 용하야! 그 많은 돈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마련한 것이냐?”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질문이라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 또 용하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희석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시공간 이동체에서 나올 때, 팔면 돈 될만한 걸 좀 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무리 무림이어도 돈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다못해 국밥 한 그릇을 먹어도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주절주절 잘도 털어놓는 걸 보니, 일단 인공의 작전은 성공한 것 같았다.
―앗싸!
이제 겨우 능선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인공의 가슴 속에선 벌써 쾌재가 울렸다.
“형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장설 형님이 저잣거리 다녀오신다고 한 거 맞죠?”
“음―, 아―, 그게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고 나갔는데…, 글쎄…, 딱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장설 형님이 돌부처도 아니고, 한자리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인공의 말투는 정치하는 사람이나 관공서 고위직 공무원 또는 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말을 빙빙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못 나가게 했었어야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겁니까?”
적잖이 울화가 치밀었다.
“유월이 어디 있습니까?”
“아, 유월은 왜?”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장설 형님이 생각보다 멀리 가셨으면…….”
“유월인 방에 가둬놨는데, 데리고 올까?”
“데려올 것까지는 없고 방문만 열어 놓으세요.”
“알았다. 그리하마.”
인공은 잽싸게 돌아서서 객실이 있는 안채 쪽으로 걸어가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막 인공이 중앙홀 뒷문을 지나 안채로 사라졌을 때였다. 용하는 환문 쪽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환문을 지날 무렵 큰소리로 외쳤다.
“유월!”
―멍멍!
어느새 유월이 중앙홀에 모습을 나타내더니 환문 쪽으로 거리를 좁혀왔다. 그런 유월을 본 용하는 급기야 대지를 박차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자, 유월!”
―멍멍! 멍멍!
유월이 귀를 펄럭거리며 용하의 뒤를 따라 달렸다. 앞서 달려가는 용하의 걸음이 방향감각 한번 흔들리지 않고 저잣거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유월이 용하를 앞질러 달리고 용하는 유월이 뒤를 따라 달렸다.
유월이 길 안내를 자처해서인지, 저잣거리로 가는 길이 동네 편의점 가는 길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고마워, 유월!”
―멍멍!
그렇게 한달음에 달려 저잣거리에 도착한 용하는 초입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몰려든 인파 때문이었다.
“조금 전 돈을 만들기 위해 왔을 때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용하가 난색으로 중얼거리자 유월이 올려다보며 컹컹 짖었다.
“유월아~ 일전에 찾아낸 할아버지 냄새, 아직 기억하니~”
―멍멍!
“그 냄새로 할아버지 찾을 수 있겠어?”
―멍멍! 멍멍!
“그럼 어디 한번 찾아보련~”
―멍멍!
유월은 분명 찾을 수 있겠다고 대답했으면서 저잣거리 반대 방향으로 킁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월! 지금 뭐 하는 거야? 할아버지 찾으라니까.”
용하의 성화에도 유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월이 자꾸 저잣거리에서 멀어지자, 용하의 성화도 극에 달했다.
“야, 유월! 이 똥강아지야. 왜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거야? 너, 할아버지 모르니? 인공 형님하고 내가 형님으로 모시는 큰형님 말이야.”
―킁킁! 멍멍!
유월이 용하의 물음에 대답하랴, 장설의 체취 맡으랴,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용하는 아직도 저잣거리에 미련이 남아 수차례나 뒤돌아보며 성화를 부렸다.
“야, 유월! 조금만 더 가면 저잣거리가 안 보일 텐데, 어떻게 할 거니? 길 잃어도 난 몰라.”
―멍멍! 킁킁! 킁킁!
용하가 아무리 투덜거려도 킁킁 냄새를 맡으며 꿋꿋하게 가던 길을 고집하는 유월. 마침내 저잣거리가 용하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였다. 그제야 용하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아! 그러니까 장설 형님은 저잣거리로 간 게 아니고, 다른 곳으로 간 거야. 장설 형님이 간 곳은 지금 유월이 향하는 곳! 그런데 왜 인공 형님은 저잣거리로 갔다고 한 걸까?”
―멍멍! 멍멍!
유월은 반갑게 짖어대며 꼬리를 가열하게 흔들었다. 아마도 자기 마음을 용하가 지금이나마 헤어린 것이 기뻐서였을 것이다.
“설마 복호사로 간 건 아니겠지?”
정말이지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랐지만, 유월이 가는 쪽이 자꾸 아미산으로 향했다.
‘유월아, 제발…….’
한편, 인공은 자기가 거짓으로 둘러댄 말 때문에, 지금쯤 용하가 저잣거리를 헤매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용하 녀석이 돌아오기 전에 장설 형님을 찾아서 여기로 모시고 와야만 한다.’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래서 오후부터라도 기녀들과 뒤엉켜 향연을 시작해, 그대로 자정만 넘길 수 있다면 모든 게 완벽했다.
“가자! 가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장설 형님을 찾아서 여기로 모시고 오자.”
인공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는 결연히 객잔을 나섰다.
“일단 아는 곳부터 샅샅이 뒤지자. 개방은 가기도 어려울뿐더러, 간다손 쳐도 외부 사람을 배척한다고 하니, 1순위로 패스! 쳇, 무림에서 아는 데라고는 저잣거리와 개방 그리고 복호사, 이렇게 세 군데뿐인데, 저잣거리와 개방을 빼면 남는 건 복호사뿐이네!”
복호사! 그나마 무림에서 가장 자신 있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일전에 작전상 포로가 됐을 때도, 아미파 여인들은 비교적 우호적으로 대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았는데, 그깟 7인의 협객들 때문에…….”
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그들만 아니었으면 주화입마에 들 이유도 없었잖아.”
작은 것 하나도 예단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인공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누가 보아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불안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복호사 주문에서 기다리면 빠져나가지 못하겠지.”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장설보다 인공이 먼저 복호사에 도착했을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여건상 인공이 장설보다 복호사에 먼저 도착할 일은 없었다.
“만약 형님이 먼저 주문을 통과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만에 하나 인공이 마지노선인 주문에서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장설을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용하 녀석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녀석은 분명 내가 한 거짓말을 믿고 장설 형님을 찾아 저잣거리를 헤매고 있을 텐데.”
인공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의 위치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오전엔 태양을 기준으로 열 시 방향에, 오후엔 두 시 방향에 아미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늦은 오전이기니 해도 아직 오전임은 틀림없으렷다.”
인공은 열 시 방향이 아닌, 열 한시 방향으로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어차피 죽으면 썩을 몸. 장설 형님을 살리는데, 이 한 몸 하얗게 불태울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무서운 힘이 솟아나는 것인가. 인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아미산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같은 시각.
용하는 아미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유월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아미산이 보여서인지, 용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도를 서서히 늦추었다. 그리고 앞서 달려가는 유월을 향해 외쳤다.
“유월! 일단 아미산 초입에서 멈춰.”
앞서 달리던 유월이 알겠다는 듯 컹컹 짖었다. 이윽고 용하의 숨소리가 가지런하게 들렸을 때였다. 유월이 아미산 초입에서 용하를 바라보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유월! 할아버지 냄새가 어느 쪽에서 나는지, 그쪽을 바라보고 짖어봐.”
용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유월이 아미산을 향해 컹컹 짖었다.
“이를 어쩐다! 유월이 아미산을 바라보며 짖는다는 건, 이미 장설 형님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뜻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