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어찌해야 장설 형님을 앞지를 수 있단 말인가.”
용하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장설을 앞지를 수 있을지.
한편 뒤늦게 아미산으로 출발한 인공은 어떻게 하면 용하와 만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을 고심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드넓게 펼쳐진 뜨거운 대지 위에는 아지랑이가 스멀거렸고, 그런 탓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거리감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장설은 금정사의 한 넓고 평평한 바위에 앉아 복호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 제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부좌를 틀어 앉은 장설의 자세는 처연했다.
유월을 앞세운 용하는 깎아지른 오르막을 기어올랐다. 아미산은 여기 사천성(四川省)에서도 산세가 험하기로 정평이 난 산이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이마에 구슬땀이 흘렀다.
“참 이상하네…, 짜증도 좀 나는 게…….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분명 이렇게 험준한 산이 아니었는데 말리야.”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그래서인지 용하는 여러모로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미산은 어느 쪽에서 입산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갈리는 그런 곳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런 추세로 복호사 주문까지 간다면, 늦게 출발한 인공이 먼저 도착할 확률이 짙어졌다. 그렇게 예단할 수 있는 이유는 한 번이라도 복호사에 더 가본 인공이 길을 더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내려가서 처음부터 다시 출발할까?”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르면 오를수록 산세는 더욱 험준했다. 바로 그때였다. 앞서 오르던 유월도 더는 힘겨웠던지, 걸음을 멈추고 흘깃 돌아보았다. 유월과 눈이 마주친 용하는 짠한 마음에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유월아, 미안한 줄 알면서 하나만 물어볼게. 혹시 말이야, 어떻게 하면 귀가 커지는 거야?”
용하는 차마 유월이 귀를 펄럭거려 저를 태우고 날아오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월은 용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산 아래를 향해 컹컹 짖었다. 용하는 유월의 시선을 따라 산 아래로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유월아, 혹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할 수 있다는 뜻이니?”
―컹컹!
유월이 역시 숨이 찼던지,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탁한 목소리로 짖었다.
“유월이 네가 사람인 나보다 낫구나.”
뒤늦게 유월이 왜 산 아래를 보고 짖었는지를 깨달은 용하는 고개를 떨구었다. 유월이 귀를 펄럭거려 하늘로 날아오르려면 도움닫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한걸음 옮기기조차 힘든 험준한 산을 오르며 귀를 펄럭거려 날아오르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래, 유월아. 내려가자. 내려가서 다시 시작하자꾸나.”
용하가 산 아래쪽으로 발을 내디디려 할 때였다.
―컹컹! 컹컹!
유월이 탁한 목소리로 수차례나 짖었다. 용하는 발길을 멈추고 유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월이 왜 짖는지 쉬이 알아차릴 수 없었다.
“왜 그래? 유월! 빨리 출발해야지. 시간 없다고.”
―컹컹! 컹컹!
이번에도 유월은 거침없이 짖으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제 등을 몇 차례 때렸다.
“유월아, 왜 그러는데? 왜 자꾸 사람 속상하게 하는 거니?”
용하가 아무리 달래도 유월은 내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하던 행동을 이어갔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저런 강아지가 아닌데…….”
용하는 차분히 유월이 전하는 신호를 정리해 보았다.
‘산 아래로 내려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합의했는데 유월은 도무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내려가려고 하면 수차례나 짖어대는 것으로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별로 좋을 일도 없는데, 제 등에 가서 닿을 만큼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있다.’
한동안 같은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였다. 용하의 뇌리에 반딧불만큼이나 작은 불꽃이 일며 무엇인가 떠올랐다. 급기야 용하는 무릎을 탁! 치며 유월을 얼싸 끌어안았다.
“고맙다, 유월아. 역시 유월인 유월이야.”
유월이 계획대로 따른다면, 용하는 고생도 덜하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었다.
―컹컹!
용하는 염치 불고하고 유월의 등에 덥석 올라탔다. 유월은 잠시 제 등에 닿아있는 용하의 엉덩이를 느끼는 듯하더니, 곧 뭔가 못마땅한지 탁한 목소리로 컹컹 짖었다. 그리고는 몸을 두어 차례 비틀어 어정쩡하게 앉은 용하를 제대로 안착시켰다.
“미안해, 유월! 답답했겠다. 그런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주인이라니.”
―컹컹!
그리고는 마치 괜찮다는 듯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월은 산 아래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머리카락 휘날리고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용하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췄고, 아직은 고운 유월의 털이 바람에 날려 그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가자, 유월!”
용하가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로 포효했을 때였다. 유월의 뒷다리가 팽팽하게 각을 세우더니 아미산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귀를 펄럭거려 아미산의 중턱을 크게 선회하고는 정상을 향해 까맣게 멀어져갔다. 지금 유월이 날아오르는 아미산 정상에는 금정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번 무림에 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지금보다는 험준하지 않은 등산길을 선택해 순조롭게 산을 오르면서 느꼈던 고색창연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월이 등에서 내려다보는 아미산은 덜컥 두려움을 느낄 만큼 험준했다. 뭐랄까, 장비 없이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암벽 같다고나 할까.
“유월아! 유월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어리석게도 저 험준한 곳을 오르겠다고 그 고생을 했다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게다가 저 길엔 복호사도 없어.”
용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유월이 주인인 저를 믿고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치솟았다.
“미안해, 유월! 주인 잘못 만나 네가 고색이 많구나.”
유월은 용하의 말에 무슨 대답이든 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여차 멍멍 짖기라도 하는 날엔 응집된 내공이 흩어져 추락하고 말 것 같아서였다.
―끄응~ 끙!
유월은 이를 악물었다. 단전에 응집시킨 진기가 자꾸 흩어지려는 걸 느끼며 말이다.
사실 한눈에 보기에도 귀를 펄럭거려 날아오르기엔 벅차 보였다. 유월은 산 중턱을 선회해 정상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몇 미터 날아오르면 반대 기류를 만나 절반 정도를 아래로 밀려야 했기 때문이다.
바람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미산 정상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장설의 눈에 요란스럽게 아미산 정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다름 아닌 유월이었다.
“아니, 저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강호 무림의 개라도 그렇지, 어찌 감히 개새끼가 아미산을 날아오르는 일이 발생하는가.”
용하와 유월을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노기에 찬 장설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넓고 평평한 바위를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라 기류에 몸을 실었다.
제 능력 밖의 행동을 한다는 건 누가 봐도 명을 단축하는 일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정상을 향해 귀를 펄럭거리며 날아오르는 유월. 그와는 달리, 바람의 흐름을 타고 유유자적 선회하는 장설은 누가 봐도 신선놀음이었다.
이제 막 장설이 유월이 근처를 지나갔지만, 유월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장설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였기 때문이다. 용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가 보아도 장설의 야멸찬 처사였다.
“다 큰 것들, 어제까지 참견하며 살겠는가.”
전혀 뒤틀린 생각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깨달음을 줬어야 했다. 이를테면,
“용하야! 잠시 후에 복호사 주문에서 보자꾸나.”
라고 시원스럽게 말이다.
하지만 장설은 그런 자비 따위는 베풀지 않았다. 유월은 아미산 정상으로, 장설은 복호사 쪽으로 각자 멀어져갔다.
한편, 이제 막 아미산 초입에 도착한 인공은 크게 눈을 들어 아미산을 둘러보며 어떡해야 가성비 좋게 복호사로 갈까 고심했다.
“산세가 워낙 요지경 같아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가는 괜히 고생만 하고, 아니지! 재수 없으면 아예 살아나오지 못할 수도 있지.”
인공은 저 혼자 횡설수설 지껄이더니, 말이 끝나는 부분에선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어디 보자. 괜히 서두르다가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는 곳이 바로 이 아미산이렷다.”
변함없이 중얼거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인공이 혹할 만한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두어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한 오솔길이었다. 혹 포천의 주금산 초입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만큼 낯설지 않은 게, 친근감이 느껴질 만큼 사람 마음을 사로잡았다.
“옳거니!”
인공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흡족해서 중얼거렸다.
“거, 사람 민망하게 너무 가까이 계시지 마쇼. 늘 지켜보고 계신다는 거 압니다.”
인공은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다름 아닌 행운의 여신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오솔길로 냉큼 발을 내디뎠다. 첫발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제집 텃밭을 밟았을 때처럼 푸근했다.
“후훗, 이거 뭐 어디가 21세기고, 어디가 무림인지, 구분이 안 되는구먼. 다― 내 집 앞마당 같으니 말이야.”
더없는 만족감을 표현하며 인공은 고색창연한 오솔길을 따라 아미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아미산 정상에 도착한 용하는, 왜 여기까지 올라온 건지 잠시 망각했다.
“유월! 미안한데, 여기 왜 온 거니?”
―멍멍!
유월은 혀를 날름거리며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지금 이 상황은 개가 생각해도 어찌나 황당했던지, 유월은 괜히 땅에 대고 킁킁거리며 용하를 핼끔거리며 째려보았다.
용하도 유월의 태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혼재돼 무엇 하나 제대로 떠올리거나 판단할 수 없었다. 험준한 산을 오를 때부터 차분히 되짚어 보았다.
“아무리 올라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잖아. 사찰은커녕 작은 움막 하나 보이지 않고.”
바로 그때였다.
“아! 생각났어.”
―멍멍!
그제야 유월이 용하를 원래 눈으로 쳐다보았다.
“유월아~ 아까 우리 산을 오르는 게 너무 힘들었잖아. 그래서 아예 위로 올라와서 아래로 내려가면 힘이 좀 덜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
용하의 말에 유월은 재채기하듯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는 생전 보이지 않던 태도를 보였다.
―으르렁, 으르렁…….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가 너무 한심해서였다. 유월이 저는 죽음을 각오하고 귀를 펄럭거려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주인이라고는 한다는 소리가. 하여 지금 반란이라도 일으키려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유월! 너 왜 그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유월의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으르렁!
“유월! 나 지금 좀 충격적이거든. 네 녀석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어떻게 나한테 이빨을 드러낼 수가 있느냐고. 이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으르렁!
유월은 여전히 이빨을 드러내며 얼마 전 날아오른 산 중턱을 내려다보았다.
“오호라! 그것 때문이었구나. 미안!”
그제야 용하는 유월이 왜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유월! 왜 화가 났는지는 알겠는데, 그냥 주인이 좋아하는 거 한번 해 줬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멍멍!
용하의 말이 통했던지, 저를 향해 멍멍 짖는 유월이, 한번 봐줄게, 하면서 미소 짓는 것으로 보였다.
“유월!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조심할 테니까, 유월이 너도 내 앞에서 절대 으르렁거리면 안 돼.”
―멍멍!
유월은 대답이라도 하듯 두어 차례 멍멍 짖고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유월! 그럼 복호사로 갈까?”
―멍멍!
용하와 유월은 아래로 향하는 능선을 타고 복호사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왔을까, 꽤 먼 거리를 걸었지만, 용하의 발걸음은 이제 막 출발한 사람처럼 경쾌했다. 유월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월! 괜찮아?”
―멍멍!
유월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마치 입이 귀에 가서 걸려있는 듯 보였다.
“저기, 문 보여?”
―멍멍!
“저기가 복호사 주문이야.”
―멍멍!
유월은 주문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용하가 잘 따라오는지 염려됐던지, 간혹 뒤돌아보며 멍멍 짖고는 하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용하는 유월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때였다. 유월을 향해 흔들던 용하의 손이 짐짓 멈췄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말이다.
“형님!”
용하의 눈에 띈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 막 주문 앞에 우뚝 멈춰서는 인공이었다.
거의 동시에 도착한 유월을 본 인공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용하를 발견하고는 해맑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조금 전 못 볼 꼴이라도 본 사람처럼 썩은 미소를 지었던 용하와는 달리 말이다.
“야, 김용하! 넌 왜 거기서 내려오는 것이냐?”
“그게 궁금하세요?”
“아니, 뭐… 꼭 궁금하다기보다는 지금 그렇게 한가할 때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그렇죠! 지금 한가할 때가 아니죠? 누구 때문에.”
“용하, 너 지금 날 원망하는 것이냐?”
“원망하는 게 아니고,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서 하는 소리입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입이 열 개여도 할 말 없다는 거 아니까, 이제 그만하자!”
“형님 같으면,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어요?”
분명 또 무슨 변명을 늘어놔야 직성이 풀릴 인공이었다. 그런데 입이 쑥 들어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용하는 생각했다.
‘훗,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현명하겠지?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괜히 찝쩍거려서 일을 만들 필요는 없는 거잖아!’
“알았어요. 그만할게요. 그건 그렇고 올라오다가 혹시 장설 형님 못 봤어요?”
“아니, 그걸 지금 나한테 묻는 것이냐? 그게 맨 마지막에 출발한 나한테 할 질문이냐고?”
인공의 반응에 용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는 복호사 주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인공 또한 용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주문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장설 형님을 보내드려야 한단 말이냐?”
“아뇨! 그러기엔 너무 허망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