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웅보전으로 통하는 일주문이 보였다.
“형님! 대웅보전 앞입니다. 여기서 잠깐 한숨 돌리고 들어갔으면 합니다.”
“왜, 아미파 여인들이 코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되는 것이냐?”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전열을 좀 가다듬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이 됐든 예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몸을 숨기자꾸나.”
두 사람이 일주문 몸을 숨겼을 때였다.
뜻밖의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일주문 앞에 우뚝 섰다.
“엥! 저것은 또 무엇이냐?”
인공이 낮은 소리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무엇을 보고 하는 말입니까?”
경망스럽게 앞에 나선 용하의 눈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헉!
검은 그림자를 본 용하는 기겁해서 인공의 뒤로 몸을 숨겼다.
“형님! 저건 또 뭡니까?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예요?”
“아무래도 우릴 뒤쫓고 있었던 것 같구나.”
“우리를 왜요?”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 뒤를 따라온 게야.”
“그러니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왜 우리 뒤를 따라온 거냐고요.”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느냐. 짐작하건대 우리가 갑자기 사라지니 놀라서 저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알았으니까, 어서 저자가 누구인지, 우리를 왜 따라왔는지, 그거나 빨리 알아보세요.”
용하의 말에 인공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펄쩍 뛰었다.
“그걸 나보고 알아보라고? 저 득달같은 인간을 이 늙은이 보고 상대하라고?”
“형님이 아니면 누가 해요? 그런 건 원래 어른이 하는 거 아닌가요?”
“아이참, 나는 말이다. 어른이 아니고 늙은이라니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
“그러니까요. 살 만큼 산 형님이 나서야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제가 할까요?”
“이런 위험한 일은 젊고 기력 좋은 네 녀석이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
“위험한 일일수록, 내일 죽어도 억울할 일 없는 형님 같은 분이 나서야죠.”
아이참! 생각할수록 난감할 따름이었다. 사회통념 상 용하의 말이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알았다. 내가 처리하마. 아무래도 살 만큼 산 내가 나서는 게 보기 좋겠지?”
“…….”
인공의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차마 그럴 염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용하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인공은 어느새 검은 그림자의 사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헉!
“형님!”
뒤늦게 인공을 불러봤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저를 향해 처연하게 다가오는 인공을 본 검은 그림자의 사내는 한달음에 몸을 날렸다.
―아!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용하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리 준비해온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척!
―휙! 휘!
용하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는 전광석화처럼 몸을 날려 인공과 대치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의 사내 앞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때까지 아무 일 없이 대치 상태였던 인공과 검은 그림자의 사내 사이에 별안간 냉기가 흘렀다.
“네 이놈!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인공의 호령이 아미산 전역을 뒤흔들었다. 검은 그림자의 사내를 향해 삼단봉을 쭉 뻗었던 용하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용하를 향해 검(劍)을 뽑아 들기 직전이었던 검은 그림자의 사내도 시간이 멈춰버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용하에게 몇 가지 묻겠다.”
인공의 호령에 용하는 자세를 고쳐 예를 갖췄다.
“네, 형님.”
“내가 너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없었습니다, 형님.”
“그런데 어찌하여 저자와 나 사이에 끼어든 것이냐?”
“형님이 위험에 처할까 우려되었습니다.”
“우려돼서 그랬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까는 이런 일에는 세상 살 만큼 산 늙은이가 나서야 한다고 하였느냐?”
“그건…….”
“어찌하여 대답을 못 하는 것이냐?”
인공의 언성이 조금은 높아졌다.
“그건…, 설마 진짜 나서지는 않을 줄 알았습니다. 죽여주십시오.”
용하가 절규하듯 목소리를 높이며 조아리자, 옆에 있던 검은 그림자의 사내도 덩달아 납작 조아렸다.
‘엥! 이건 또 뭐람. 얘는 왜 조아리는 거야?’
용하는 검은 그림자의 사내를 흘깃 바라보았다. 용하와 잠시 눈길이 마주친 사내는 미간을 좁혔다.
‘딱 보기 싫은 저 눈빛! 에이그, 지긋지긋해.’
바로 그때였다.
“네 녀석 정체를 밝혀보아라!”
인공의 우렁찬 목소리가 사내의 귀청을 때렸다.
“네,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소인은 일전에 대인을 비롯해 대인이 일행에게 유해를 가하려 했던 7인의 협객 중 하나입니다.”
사내의 말에 인공도, 용하도 소스라쳤다.
―뭣이라!
“그것을 어찌 입증하겠느냐?”
그 말에 사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슴에 품고 있던 폭약과 표창 그리고 석궁을 인공 앞에 내놓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대 무림에서 닌자술을 쓰는 자들은 그들, 7인의 협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묻겠다.”
사내는 무겁게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를 뒤쫓은 이유가 무엇이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찾아다녔습니다.”
“오랫동안?”
사내의 말에 인공은 물론 용하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연유로 어찌하여 찾아다닌 것이냐?”
“그건…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사악한 마음으로 찾아다닌 건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이쯤에서 사내의 심경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갑자기 사내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의문으로 남았다. 인공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끝까지 추궁해야 하는가,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인공은 오랜 고민 끝에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마음을 정했다. 괜히 별것도 아닌 일로 물고 늘어지려다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해두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알았다. 그쯤 했으면 됐다. 그럼 가방모찌라도 하겠느냐?”
사내는 인공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인공은 바로 말을 바꿔 다시 물었다.
“다시 말해 주마. 우리 의형제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허드렛일이라도 하겠느냐는 말이다.”
사내는 넙죽 조아리며 화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무엇이든 못하겠습니까.”
“알았다. 더는 아무것도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 네 녀석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을 것이니, 추호의 의심도 사는 일 없도록 항상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도록 하라!”
“네, 대인!”
사내는 우렁찬 목소리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가자꾸나!”
인공의 말에 용하와 사내는 대웅보전이 보이는 쪽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그 순간 세 사람 앞에 한 송이 목련처럼 새하얀 베일을 두른 몇몇 여인들이 막아섰다.
인공과 사내는 여인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리고 한걸음 물러서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형님! 이것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용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저리 물러나 있거라.”
용하는 마지못해 두어 걸음 물러서는 체했다.
바로 그 순간 짧은 기합과 함께 인공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의 공격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여인들의 손에 연검(軟劍)이 들려 있었다.
“아니, 저것들은 아미파 계집들!”
그때였다. 일각에서는 치사하게 여러 년이 한꺼번에 사내에게 달려드는 광경이 보였다.
“저런! 치사한 계집들을 봤나.”
용하는 몸을 날려 사내 앞에 우뚝 섰다. 아미파의 여인들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으득!
용하는 어금니를 으득 깨무는 것으로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는 여인들을 향해 삼단봉을 쭉 뻗었다. 동시에 인공의 귀에다 은밀하게 속삭였다.
“형님! 제 오른쪽 뒷주머니를 좀 보십시오.”
“오른쪽 뒷주머니?”
인공은 조심스럽게 용하의 오른쪽 엉덩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무엇인가 손에 만져졌다.
“이것이 무엇이냐?”
“꺼내 보십시오.”
인공은 여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용하의 오른쪽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광경은 지켜보는 아미파의 표정이 얼핏 혐오스럽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인들을 본 용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저것들 표정이 왜 저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렇게 야릇한 표정으로 보는 거야?’
잠시 용하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던 인공의 손이 급기야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생뚱맞게도 전기충격기였다. 인공은 다소 놀란 기색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이냐?”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이것은 테이저건이 아니냐?”
“정확히 말해 테이저건은 아니고, 전기충격기입니다.”
“어디서 털었느냐?”
다짜고짜 들이대는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펄쩍 뛰었다.
“털다니, 뭘 말입니까?”
“어느 지구대에서 털었느냔 말이다.”
“아이참,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 녀석은 그걸 털어서 얼마나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네 녀석에게 테이저건을 털린 지구대 경찰들은 그 책임을 지느라, 난리가 나지 않았겠느냐?”
“형님! 털지 않았거든요. 이거, 메이드 인 용산입니다. 호신용이라고요.”
인공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테이저건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조금은 겸연쩍게 말했다.
“음, 그러고 보니 노란 선이 없는 게, 포돌이가 쓰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구나.”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테이저건 아니고, 전기충격기거든요. 형님도 제발 그 넘겨짚는 버릇 좀 고치세요. 형님 말대로 검이 곧 법인 이 무지막지한 곳에서, 내 몸 하나 건사할 방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뭐라 했느냐?”
“그래서 이것저것 호신용 무기를 좀 준비했습니다.”
“용하야…….”
뭉클했다. 그런 인공을 보는 용하는 괜히 불안했다. 인공이 난데없이 울먹이고 있어서였다.
‘아이참, 저 노인네가 왜 또 청승이람. 저 노인네 저럴 때마다…….’
형형한 눈으로 인공을 보는 용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용하와 인공을 직시하는 검은 그림자의 사내 눈언저리가 가늘게 떨렸다.
―얏!
―얍!
두 개의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첫 번째 합이 상충했다.
연검과 부딪치는 사내의 검은 무겁고도 날카로웠다.
―휘히잉~
이제 막 사내의 검과 부딪친 연검 하나가 악기라도 연주한 듯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여러 명의 아미파 여인들이 사내에게로 몰려들자, 용하는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빛처럼 빠르게 삼단봉을 휘둘러 연검을 막아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인공은 흐뭇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의 모든 무예는 하나로 통한다고 하였다. 검도를 20년 넘게 연마하였으니, 마치 칼이 아니, 삼단봉이 춤을 추듯 상대의 검으로 날아가 부딪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