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치지직!
―치직치직!
악을 쓰며 대드는 아미파 여인들. 용하와 사내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그들을 대적하고 있는 사이, 인공은 마치 장난감 가지고 놀듯 전기충격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후훗, 근접 무술을 하는 내게는 아주 제격이란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주로 검이나 창을 절기로 하는 문파를 상대로 하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무기였다. 하지만 인공처럼 최대한 적에게 근접해 신속하게 공격과 방어를 하는 무술을 구사하는 무도인에게 전기충격기는 유사시에 한 번씩 요긴하게 쓸 만한 무기였다.
기대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용하는 용하대로 협객은 협객대로, 게다가 유월인 유월이 대로, 저마다 제 몫을 충실히 해준 덕에 아미파의 여인들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관조적으로 지켜보는 인공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어허, 이거 기대 이상인걸.”
인공은 서슬 같은 칼날이 교차하는 그곳으로 팔자걸음을 내디뎠다.
“큼큼. 그럼 난 슬슬 설거지나 해 볼까~”
수세에 몰린 아미파 여인들은 혼비백산 줄행랑치기 바빴다.
“아니, 저년들이 끝내 본색을 드러내고야 마는군. 간교한 것들…….”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결과였다. 아무리 협객이 가세했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용하가 작대기 아니, 삼단봉 하나로 아미파 최일선 수비대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인공은 무거운 걸음을 성큼 내디뎌 달아나는 아미파 여인들을 추격하려 들었다.
“형님!”
용하는 전광석화처럼 인공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왜 그러느냐? 저것들 발을 묶어놔야 장설 형님을 살릴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느냐?”
“그만 고정하십시오. 장설 형님을 살릴 복안은 따로 있습니다.”
그 순간 인공은 형형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하야. 혹시 장설 형님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냐?”
인공은 마른침을 삼키며 용하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용하는 끝내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용하야…….”
간절했다. 하지만 용하는 변함없이 냉담했다. 인공은 용하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다 결국 체념하고 말았다.
“좋다!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장설 형님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인 용하는 흡사 신의 소리를 듣는 듯했다.
“형님! 그건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압니다. 지금부터 오늘 자정까지는 형님을 돌볼 수 없을 것이니, 그리 알고 스스로 힘으로 일신을 건사하십시오.”
“내 걱정은 말고 우리 네 사람 무사히 다시 만날 때까지 신의 가호를 함께 하길 다 같이 빌어보자꾸나.”
―넵!
7인의 협객 중 막내인 사내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용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인공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말을 흘렸다.
“우리 네 사람…, 이라고요!”
용하는 한 걸음 다가서며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한껏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인공은 얼핏 용하에게 알아채기 애매한 신호를 보내며 물었다.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느냐?”
용하는 다시 한 걸음 물러서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예서 다시 만난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을 뿐입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 말이 왜 이상하게 들린 것이냐? 우리는 다 함께 힘을 모아 장설 형님을 구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흩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리 말한 게, 그리도 이상했더냐?”
“아닙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갑자기 말을 바꾼다는 건 분명 뭔가 있었다. 바뀌기 전 말이 맞는지, 바뀐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용하의 눈길이 예리하게 사내 쪽으로 잠시 흘렀다 돌아왔다.
용하와 인공이 보내는 의심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협객은 달아나는 아미파 여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까치발을 들어가며 끝까지 지켜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퇴각하는 적에게 저리도 집착한단 말인가.’
용하도 인공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절대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가야 합니다.”
용하와 인공 그리고 협객, 세 사람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금니를 꽉 깨무는 것으로 결의를 다지고 대웅보전을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아미파 수비조가 몇 겹이나 더 남았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구나.”
“형님!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가장 센 최일선 수비조를 우리가 작살 내지 않았습니까?”
한마디쯤 거들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협객은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뿐이었다.
“형님! 제 생각엔 말입니다. 쪽팔려서 어디 가서 입도 벙끗 못할 것 같은데요.”
“허허, 그런데 입은 벙끗 못 할지언정, 이 상황을 윗선에 보고는 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
“아, 보고!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 그럼, …결국 우리가 복호사에 숨어든 걸 알게 되겠네요.”
“예끼, 인석아! 숨어들긴 누가 숨어?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라. 이보다 더 당당할 수 있는지.”
“아이 형님도 참……. 사실 우리가 좀 당당하긴 하죠?”
이제 겨우 한고비를 넘겼을 뿐인데, 전쟁에서 이긴 병사들 같았다.
“그나저나 형님! 장설 형님은 어디 계시는 걸까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느냐?”
“네? 그럼 누구한테 물어요?”
“형님의 마지막을 본 게, 네 녀석 아니더냐?”
“그렇긴 하지만, 제가 뭘 본다고 아나요? 그래서 전, 아무래도 형님이 복호사에서 꽤 지낸 적이 있으니까, 짐작이라도 하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겁니다.”
“용하 네가 생각하는 거와는 좀 달라. 그때 난, 염탐이나 하겠다는 계산으로 일부러 포로가 됐던 거였잖아. 그러니 복호사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와는 상관없었거든.”
“염탐하러 간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었다고요?”
“아, 내 관심사는 따로 있었거든.”
“혹시 여자 때문에 갔던 거 아니에요?”
용하의 말에 정곡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찔끔한 기색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실감 나게?”
“이 녀석 좀 보게! 얼렁뚱땅 사람을 치한으로 몰아가네.”
“에이, 제가 그럴 리가요? 그래도 형님이 무도인이며 불제자인데.”
인공은 용하를 핼끔 쳐다보며 주억거렸다.
“내 비록 땡추라 손가락질을 받지만, 그래도 부처님을 섬기는 불가의 사람이 아니더냐.”
“그 말씀은, 그러니 추호도 부끄러울 짓 한 거 없다! 뭐 그런 말씀인 거죠?”
얼핏 비꼬는 듯했다.
“부끄러울 짓 한 거 없다? 아니, 아니! 부끄러운 짓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은 게지.”
“그 말씀은 노력만 했을 뿐 부끄럽게 살았다는 뜻인 거죠?”
“후, 용하 너, 묘하게 사람을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는 재주가 있구나?”
“뭐, 형님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지만, 평소 그 사람 하는 꼴을 보면 알 수 있죠.”
“저, 저!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왜요? 저는 그저 보편적인 말을 했을 뿐인데, 발끈한 건 형님이죠.”
“뭐? 발, 발끈!”
“네. 발끈하는 걸 보니…….”
용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 표정이 상대를 약 올리는 것 같았다.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더니. 예쁘다, 예쁘다 해줬더니, 어른 상투를 잡고 놀려고 드는구나.”
“아, 눼눼! 죄송합니다. 머리카락도 몇 가닥 안 남았으면서, 상투는 무슨!”
“아니, 그래도 이 녀석이! 대체 뭐라고 구시렁대는 것이냐?”
인공이 한 대 쥐어박을 기세이자, 용하의 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지금 도망치는 것이냐?”
용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광경을 관조하는 협객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막 용하를 뒤쫓던 인공이 빠르게 협객의 오른쪽을 지나치며 왼쪽으로 곁눈질했다.
“야, 김용하!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괜한 일로 체력 소모하지 마!”
“데헤헷, 형님도 참. 이 김용하 체력이 그렇게 저품질인 줄 아세요? 형님! 벌써 잊으셨나 본데, 이 몸이 말입니다, 20년 넘게 오직 외길 검도만을 수련해온 검객의 피로 채워진 단단한 체력이란 거 아닙니까? 변두리 검도 체육관 주인, 김 관장!”
용하의 말에 협객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검(劍)으로도 모자라 도(刀)까지!’
검도(劍道)를 칼의 칼, 검도(劍刀)로 이해한 협객은 용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 용하에게 보내는 협객의 시선은 누가 보아도 강한 적개심이었다.
‘노인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협객은 옷자락 속 폭약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인공은 협객의 작은 동작 하나조차 놓치지 않았다.
‘녀석이 용하를 노리는군. 도검류 아니면 표창이겠지. 아니, 표장은 중거리용 살상 무기이니 무용지물일 테고, 그렇다면 도검류!’
협객을 의심하기 시작한 인공은 그를 예의주시한 탓에 일거수일투족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은 함께 싸워줄 동지 하나가 소중한 때다. 일단 아미파 소굴에서 장설 형님을 구해낼 때까지는 모른 척하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대웅보전에, 웬일인지 아미파 여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형님! 아까 퇴각한 아미파 여인들이 이미 보고를 한 것 같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자기들이 수세에 몰렸음을 한시라도 빨리 알리려는 게 조속히 퇴각을 결정한 이유 아니었겠느냐?”
용하는 난색을 지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하느냐? 쫓고 쫓기는 게 무림의 일상이거늘.”
“쫓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무엇을 단서로 그들을 쫓는단 말입니까? 형님도 보시다시피 지금 이 복호사 전체를 둘러본들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아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참이냐? 추격이 어려운 상황이면 추적을 해야지.”
―추적!
용하는 그 말이 그 말 같은 두 낱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형님 추격과 추적이 뭐가 다릅니까? 제가 보기엔 뒤에 글자만 다른 것 같아서요.”
“추격은 방금 네 녀석이 말했듯이, 눈에 보이는 것을 공격하며 뒤쫓는 것이고, 추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의 흔적을 뒤쫓는 것이다.”
“아, 그럼 흔적을 찾으면 되겠군요?”
용하의 반응에 인공은 뜻밖이라는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생각보다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구나. 일단 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몰려갔을 것이니, 대웅보전 정원에 잘 다져진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자꾸나.”
첫 번째 흔적을 찾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협! 이곳입니다.”
아미파 여인들이 몰려간 흔적을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협객이었다.
‘음, 역시 닌자술을 쓰는 자답게 금방 찾아내는군.’
“그들의 발자국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져 있느냐?”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이대로 올라간다면 금정사에 닿을 것입니다.”
협객의 대답에 인공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아직은 쓸모가 있어.’
장설이 없는 지금, 무림의 지형을 저렇게 잘 안다는 건 큰 도움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다음 흔적을 찾을 때까지 서두르자꾸나!”
“네, 형님.”
―멍멍!
유월이 앞장서 달려 나갔다.
“형님,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겠는데요.”
“그리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
“유월이 무슨 냄새라도 맡은 게 분명합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곧 입을 뗐다.
“향내가 아니겠느냐?”
“향내요?”
“이곳 대웅보전에 줄곧 머물렀으니, 사찰 특유의 냄새가 몸에 뱄겠지.”
“형님! 생각보다 쉽게 뒤쫓을 수 있겠는데요.”
용하의 말에 비록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고갯짓이었지만, 분명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유월을 따르라!”
인공의 고함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유월의 발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