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서산으로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형님! 서둘러야겠습니다.”
“나도 보고 있었다.”
“형님, 아미파 여인들과 부딪치지 않고 장설 형님만 몰래 빼낼 방법이 없을까요?”
웬일인지 인공은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왜요? 무슨 문제라고…….”
“아미파의 여인들과 교전 없이 형님을 빼낸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구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형님이 아미파 여인들에게 잡혀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요?”
“그런 여인네들이 수백 수천이 한꺼번에 덤벼도 끄덕하지 않을 형님이시다.”
인공의 말에 용하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장설은 누구에게 유해를 당해 입적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형님! 장설 형님이 어떤 이유로 오늘 입적하시게 되는 걸까요?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선…….”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찌한단 말이냐? 형님의 입적을 본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네 녀석이 아니더냐?”
“형님, 제가 본 건 장설 형님이 입적한 걸 본 것이지, 왜 입적하는지를 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로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의 모습을 네 녀석이 본 것이고.”
“그렇다면 말입니다. 장설 형님이 아미파 여인들을 믿는다는 겁니까?”
“왠지 나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웬일인지 두 사람은 말을 아끼고 한동안 묵묵히 걸음만 내디뎠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몹시도 궁금해진 용하가 먼저 입을 뗐다.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 무슨 이유로 장설 형님이 아미파 여인들을 믿을 거고 생각하는 겁니까? 형님 말씀대로면 지금 장설 형님은 긴장을 놓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음, 그럴 수도…….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추측이니, 더는 묻지 말았으면 하는구나.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최대한 서둘러 형님을 아미파의 여인들에게서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의 말에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더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용하 녀석도 장설 형님이 사성 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리 물어보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공은 석연찮은 눈으로 용하를 흘깃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잘못 아는 건가? 내가 아는 걸 저 녀석이 모를 리 없지 않은가.’
다시 한번 용하를 흘깃 바라보았다. 마음 같으면 녀석의 소매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답답한 인공의 마음일 뿐.
‘그런데 왜 나는 저 녀석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인공의 걸음이 조금은 빨라졌다. 그는 그렇게 걸어 용하 옆으로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넌지시 물었다.
“용하야! 형님이 누구 손에 변을 당하는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겠느냐?”
“형님! 그걸 알 방법이 있었으면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용하의 표정으로 보아, 왠지 시치미를 떼고 있는 듯했다. 인공은 뭔가 미심쩍었던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은밀하게 물었다.
“얘, 용하야. 혹시 말이다. …조광연 박사에게 한번 물어 봐줄 수는 없겠느냐?”
“그게 말입니다. 제가 아는 것과 조광연 박사가 아는 게, 별다를 게 없을 겁니다.”
“왜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 장설 형님이 아미파의 여인들에게 환대를 받는 듯한 영상에서 바로 입적한 모습으로 넘어가서요.”
뒤늦게 털어놓는 용하의 말에 인공은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그게 다 무슨 말이냐? 누가 그 중요한 부분을 삭제라도 했다는 것이냐?”
“형님! 그게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비유는 들 수 있겠죠. 네 맞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그 부분만 편집된 것처럼 깨끗이 지워졌습니다. 하나, 그건 사람이 인위적으로 찍은 영상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담은 것입니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지워졌을 리도 없지 않습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이었다.
“혹시 말이다. 형님이 입적한 장소가 어딘지는 보았느냐?”
“정확히 어디라고 말씀드릴 순 없으나, 사찰이 아니었나 하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무어라, 사찰?”
“네, 그래서 저는 복호사에서 입적하셨을 거로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인공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왜요, 형님? 짐작 가는 곳이라도 떠올랐습니까?”
“이 길로 쭉 가면 도착하게 되는 사찰은 한곳이다. 금정사!”
결연히 대답한 인공은 눈을 들어 아미산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방법은 한가지 뿐인 것 같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형님이 금정사에 닿기 전, 아미파 무리로부터 형님을 구해내는 것이다.”
“그럼 서둘러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이다. 자네와 유월은 서둘러 금정사 입구로 가서 그곳을 철저히 지켜 주게.”
그리고는 협객을 바라보며 입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저 녀석과 아미파 뒤를 쫓을 것이다.”
“아뇨! 전략은 좋은데, 조 편성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무어라, 조 편성이 잘못됐다?”
“네, 그렇습니다. 형님이 유월이 등에 업히세요. 그러면 어렵지 않게 저들을 앞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자네는 어찌할 생각이야?”
“저는 협객과 함께 아미파 뒤를 치겠습니다.”
용하를 협객과 단둘이 둔다는 게 왠지 불안했다. 인공은 근심으로 얼룩진 시선을 용하에게 던지며,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가늘게 흔들었다. 보일 듯 말듯 아주 작은 동작이었지만, 용하는 인공의 속내를 금세 알아차렸다.
‘형님. 형님의 뜻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자를 믿을 수 없기에 형님과 단둘이 둘 수 없어, 제가 나서는 것입니다. 장설 형님만큼이나 형님도 제게는 소중하니까요.’
짧은 시간 시선이 오갔을 뿐인데, 인공은 용하의 생각을 찰떡같이 간파해냈다. 용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해해다오. 지금으로선 방법이 그것뿐이라 생각하네. 다행히 용하 자네가 협객을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으니, 한번 해볼 만한 작전일 것 같구나. 부디…….’
바로 그때였다. 용하와 인공이 단둘이만 속닥거리자, 이를 이상히 여긴 협객이 두 사람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을 눈치챈 용하가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형님! 여기는 제게 맡기고 어서요. 유월아!”
―멍멍!
유월은 인공을 향해 등을 내주었다. 유월이 등에 업힌 인공의 자세는, 누가 보아도 민망할 만큼 어정쩡했다.
“유월아! 부탁할게. 형님을 아까 보았던 금정사 입구에 내려드리렴.”
―왕왕! 왕왕!
유월은 힘차게 정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무거운 인공을 업은 탓에 안쓰러울 만큼 힘겨워 보였지만, 유월은 영리하게도 얼마 달리지 않아, 나뭇잎들이 위로 흩날리는 곳에서 몸을 허공으로 날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용하가 환호했다.
―야호!
유월은 골짜기에서부터 부는 바람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산 정상으로 날아올라 갔다.
그 광경을 경악해서 바라보는 협객은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머릿속이 다 하얘지는 바람에 조금 전 용하와 인공을 의심했던 순간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것이란 말이냐?’
“뭘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요? 우리도 어서 갑시다.”
바로 그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용하의 귀를 때렸다.
“나는 누구의 명령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다름 아닌 협객이었다.
“왜 그리 말을 하는 것이오?”
“아무리 우리가 같은 편이 됐다 해도 내게 명령하지는 말라는 소리다.”
협객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위협적이었다.
“좋아요. 내가 사과할게요. 대신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시오.”
“대답하고 안 하고도 내가 결정하는 것!”
“네네, 그렇게 하세요. 조금 전에 말입니다. 같은 편이 됐다고 했는데, 그럼 그 말은 믿어도 된다는 말이오?”
협객은 즉답을 내놓지 못했다.
‘역시 그랬군!’
용하의 눈빛도 서서히 변해갔다. 바로 그때였다.
“그 말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나는 서열 싸움에서 밀리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었다. 누가 앞선 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알겠소. 인공 형님이 선택한 형제이니 빨리 친해지도록 노력해 보겠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막혔다.
‘참자! 장설 형님을 무사히 구해내고 아미산을 내려갈 때까지만 참고 기다리자.’
용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결의를 다졌다.
“말이 많구나! 지금 그리 한가한 줄 아느냐? 서둘러라!!”
“알겠소.”
대답은 그러겠노라고 하면서 걸음을 성큼 내디뎠지만, 내심 어금니를 깨물었다.
‘너! 이 순간부터 어떤 명분도 남겨선 안 될 것이다. 만약 실수로 작은 명분이라도 흘리는 날엔, 내 삼단봉이 즉각 네 녀석의 목을 칠 것이다.’
용하는 어금니를 으득! 깨물며 당장에라도 용암을 분출하고야 말 것 같은 분노를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얼마나 아미파 여인들의 뒤를 쫓았을까. 마침내 먼발치에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설이 보이지 않았다.
용하는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했다.
‘장설 형님이 보이질 않아. 형님은 대체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형님이 저들과 함께 계시지 않으면, 굳이 시간을 낭비해가며 이 고생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폭을 맞춰 오던 협객이 호통을 쳤다.
“왜 그러느냐? 아직 갈 길이 멀건만 어찌하여 네 녀석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냐?”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었다. 7인의 협객 중 막내였다면, 나이로 보나, 무술 인생으로 보나, 용하 저보다 한참 동생뻘일 것 같아서였다.
‘근데 이 자식이 왜 꼬박꼬박 반말일까?’
용하는 자기 가슴을 쾅쾅! 내리쳤다. 그렇게라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겨우 이 정도 올라온 걸 가지고, 고산병이라도 걸린 것이냐?”
고산병이라, 용하는 어리둥절했다.
‘고산병? 그건 에베레스트나 낭가파르바트 같은 8,000m 이상 되는 고산에서 산소부족으로 생기는 정신 착란 증세잖아. 그렇다면 이 자식이 날 지금, 미친놈 취급한다는 거야?’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마침내 울분을 터뜨렸다.
“너, 지금 뭐라 그랬냐?”
어차피 장설 형님이 어디 계시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뭐, 너? 죽고 싶냐? 여기 너 도와줄 사람이 있을 것 같으냐?”
“자식이! 내가 할 소리를 잘도 시부렁거리는구나.”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협객의 오른쪽 손이 검을 뽑으려는 순간, 용하가 휘두른 삼단봉이 전광석화처럼 날아가 그의 손목을 강타했다.
―악!
이미 승부는 갈린 듯했다. 용하는 비장한 각오로 대적할 자세를 취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협객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이 자식이 귀엽게 봐주려고 했더니만.”
협객을 단숨에 몸을 날려 용하를 공격하려 했는지,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바로 그 순간 용하는 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협객의 무릎을 강타했다.
―악!
몸이 솟구치기는커녕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협객. 그 앞에 우뚝 서는 용하를 쳐다보며 협객을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 녀석 정체가 무엇이냐? 일부러 약체로 보였던 것이냐?”
“아니! 난 원래 내 모습대로 처신했을 뿐, 조금의 눈속임도 없었다.”
“거짓말!”
“그럴 리가 있느냐. 네 녀석이 경솔하여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을 뿐이다. 네 녀석은 어찌하여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것이냐?”
그제야 협객은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워했다.
“그 표정은 인정한다는 뜻으로 생각해도 되겠느냐?”
협객은 고개를 깊이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좋다. 한 가지만 물을 것이니, 거짓 없이 고하도록 하라.”
이번에도 협객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장설 형님을 찾는데 왜 끼어든 것이냐?”
“긴장감을 풀게 한 후 살해할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중차대한 일을 어찌하여 막내가 도맡은 것이냐?”
“우리 일곱 형제는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럼, 네 녀석은 누구의 명령으로 장설 형님을 해하려 했단 말이냐?”
“그것은…….”
웬일인지 협객은 울먹거리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