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어떤 것이든 좋으니 속 시원히 말하라!”
협객은 용하의 호령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니, 오히려 보기 흉하게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협객의 이런 행위는 용하의 화를 돋울 뿐이었다.
―훌쩍!
협객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 훌쩍거렸다. 용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스스로 협객이라 자처한 놈이 아닌가. 그런 자가 이리도 쉬이 눈물을 보이다니.
“그것이 정녕 협객이라 자처한 자가 취할 태도란 말이냐?”
쐐기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이 사내에게 어떤 울림이 있었는지, 조금 전까지 훌쩍거리던 소리가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제 진정이 좀 된 것 같으니 묻는 말에 대답하라!”
심장이 서늘해질 정도로 단호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협객은 대답하려 들지 않았다.
“개기는 것이냐?”
이번에는 표정까지 단호하게 달라졌다.
“개기겠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그럼 무엇이냐?”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드릴 수 있는 대답이란 게, 대협께 아뢰기에 너무 졸렬하여 그냥 좀 넘어가 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러니까 네 녀석 말은 더는 쪽팔리지 않게 해달라 이것이렷다?”
“이를테면 그와 비슷합니다. 그러니 부디 부탁드립니다.”
석연치 않았다. 지금 용하에게 보이는 협객의 태도와 결과가 너무 달라서였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적어도 결과를 뻔히 알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용하는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한번 단호히 물었다.
“그리할 수 없다면 어찌하겠느냐?”
협객은 수차례나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 난감한 기색이었다.
“대답하라! 어찌하겠느냐?”
“정 그러시다면 대답해야 하겠지만,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용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협객의 태도로 보아 그리 불량해 보이지는 않아서였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느냐?”
협객은 솔깃한 기색으로 용하 곁으로 조금 다가왔다.
“어떻게 말입니까?”
“내가 묻는 말에 내 녀석은 대답만 하면 되는 것이다.”
“네, 그게 좋겠습니다, 대협!”
용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부터 던졌다.
“네 녀석이 장설 형님을 해하였느냐?”
협객은 질색하며 극구 부인했다.
“그럼 아니란 말이냐?”
용하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확연히 커졌다.
“외람되오나 왜 그리 생각하는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필시 무엇인가 알고 계신 듯하여 그럽니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찮은 녀석에게 천기를 누설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밤 장설 형님이 복면을 한 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
용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대협께서는 예지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꿈속의 복면한 자는 다름 아닌, 소협일 것입니다.”
“그 말은…….”
“실은 아미파의 사주로 제가 대협과 인공 형님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다음 두 분이 장설 형님을 찾아내면, 그 즉시 그 어른을 사살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악한 것들 같으니. 그런데 어찌하여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더냐?”
“아미파 여인들 누구 하나, 지금과 같은 얘기는 해주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그 말은 장설 형님을 아미파 여인들이 인질로 삼고 있는 것 말이냐?”
“그것도 아닌 듯 보입니다. 보셨다시피 도주하는 아미파 여인들 속에 장설 형님은 보이질 않지 않습니까?”
용하는 생각에 잠겼다. 무엇 하나 확실치 않은 지금, 조광연 박사가 보내준 영상 속 장설 형님을 살해하는 협객만 제거한다면. 용하는 차가운 눈으로 협객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자의 말투나 태도가 진실이라면 굳이 살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순간 용하의 눈을 바라보는 협객은 간담이 서늘했다.
“…어찌하여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내가 너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어디까지 믿어주면 좋겠느냐?”
“지금, 이 시간부터 대협께서는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적잖이 의아했다.
“제 모든 걸 털어놓지 않았습니까? 원래 닌자란 결코 자기를 내보이지 않습니다.”
“그럴듯하구나! 하나, 너희 같은 하수인은 의뢰인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자들이 아니더냐?”
용하의 말에 협객은 그 어떤 말로도 토를 달 수 없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용하의 표정이 불현듯 싸늘해졌다.
“대협! 그 말씀은…….”
“그렇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네 놈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야 마음이 놓이신다면 그리하십시오.”
뜻밖에 협객은 순순히 목을 내놓았다. 용하의 눈에 생각과는 달리 길고 하얀 협객의 목이 보였다.
“검고 굵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봐온 녀석과는 전혀 다른 상황 앞에 용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한 가지만 묻겠다.”
“네, 말씀하십시오. 대협!”
“네 놈은 원래 그렇게 피부가 하얀색이더냐?”
“일찍이 닌자가 되어 햇빛 볼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부색이 태어날 때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다.”
“네, 대협! 얼마든지요.”
“너는 어찌하여 협객답지 않게 목이 그리도 가느다란 것이냐? 꼭 계집의 목 같구나.”
“원래 닌자란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골격이 가느다랗습니다.”
“왜 그런 것이냐?”
“그래야 몸을 최대한 작게 해 은폐하기 쉽고, 어디든 숨어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의외이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이런 일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왠지 협객의 생김새가 용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 그냥 산에서 잡은 들짐승 하나 풀어주는 셈 치고 놓아주자.’
용하는 이미 이렇게 결심하고 협객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대협!”
협객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목소리로 용하를 불렀다. 널리 헤아려 달라는 의미가 담긴 마지막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녀석을 믿어볼 것이다. 지금 당장 아미산에서 내려가 저잣거리로 가거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저잣거리 국밥집 주모의 일을 거들면서 우리가 갈 때까지 그곳에 머물도록 하라.”
“네, 알겠습니다.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한시도 주모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웃는 얼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네!”
협객은 용하 앞에 납작 조아렸다.
“시간 없다. 어서 서두르거라!”
“네, 대협!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무사하셔야 합니다.”
마지막 말을 남긴 협객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산 아래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시간이 없다. 서두르거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어서였을까. 협객의 걸음이 무거워 보이자, 용하가 목소리를 높여 한 말이었다. 용하의 말에 협객은 비호처럼 몸을 날려 순식간에 용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협객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용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대체 장설 형님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용하는 황급히 몸을 움직여 아미산 정상을 향해 달렸다. 아미파의 여인들이 금정사 입구에 닿기 전에 인공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약 아미파의 여인들이 먼저 도착한다면 한바탕 격전이 벌어질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서둘러야 한다. 만약 내가 아미파의 여인들보다 먼저 금정사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피를 보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바로 그때였다. 골짜기에서 올라온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아미산의 정상을 향해 휘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유월이 저 바람을 타고 별로 어렵지 않게 정상까지 날아오를 수 있었던 거야.”
200근에 가까운 인공을 등에 업고 날아오를 수 있을 만큼 센 바람이라면, 용하 저 하나쯤 정상까지 밀어 올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한번 해보자. 설령 실패한다 해도 죽기밖에 더 하겠냐. 내 몸 하나 건사하자고 들었다간 인공 형님을 잃을지도 모를 일.”
용하는 도포를 벗어 최대한 넓게 펼쳤다. 그리고 골짜기에서 바람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휘휘휘휘휘히잉~
바람이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발끝이 서늘하다고 느껴졌을 때였다. 용하는 미련 없이 바람에 몸을 실었다. 예상은 어김없이 적중했고, 용하는 아미산의 정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야호~ 지금처럼만 순조롭다면, 금방 따라잡을 것 같은데. 기다려라, 여승들아!”
휘휘휘휘휘히잉~
정상을 향해 불어주는 곡풍(谷風)은 기대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저만치 아래 아미파 여인들이 산을 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본 그들 무리에 여전히 장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용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장설 형님은 대체 어디 계시는 거람?”
어느새 금정사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고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인공과 유월이 보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어떻게든 곡풍(谷風)을 피해 금정사 입구에 내려앉는 일이었다.
“이를 어쩐다……. 급한 마음에 일은 저질렀는데……. 이게, 이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유월이 불현듯 떠올랐다.
“유월은 어떻게 계곡풍에서 벗어나 저기 저렇게 내려앉았을까?”
엉뚱하게도 용하의 머릿속은 온통 유월이 비행하는 모습으로 가득했다.
“우선 금정사 입구에 내려앉기 위해 그보다 더 높이 날아 올라가야 했겠지? 그리고 커진 귀를 작게 해 공기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고, 그다음은 안전하게 착지하기 위해…….”
여기서 꽉 막혀 더는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용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한 가지.
“아뿔싸!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망각했구나. 내게 선택의 여지 같은 건 없는데 말이다.”
용하는 마른침을 꿀떡 삼키고는 어금니를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잇새로 새 나오는 결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선 금정사가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날아오르자.”
휘휘휘휘휘히잉~
때맞춰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용하의 몸을 세차게 때려주었다. 그 힘을 받은 용하는 더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나 현기증 나는 비행을 했을까, 손바닥만 한 금정사가 아득하게 눈에 들어왔다.
“헉! 너무 많이 날아올랐나?”
그 거대 사찰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니 인공과 유월이 보일 리 없었다.
용하는 몸을 움츠렸다. 바람의 저항이 눈에 띄게 작아졌다. 거세게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 탓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곧 금정사 입구에 내려앉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됐다! 이제 계곡풍에서 벗어나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바로 그때였다. 금정사 입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난 아미파의 여인들이 보였다.
“아니, 어느새!”
아미파 여인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기 시작하자, 용하는 조급해진 나머지 제 몸은 어찌 되든 개의치 않고 펼쳤던 도포를 접어 품 안에 넣었다. 잠깐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나름 위기를 잘 모면했다.
“어! 어어!”
마침내 계곡풍에서 벗어난 용하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아미산 정상 금정사 쪽으로 착륙할 준비를 서둘렀다. 아니, 정확히 말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 으악! 이대로 땅에 닿는다면 몸이 견디질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용하는 서둘러 접었던 도포를 다시 펼쳤다.
추락하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