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카랑한 비명이 길게 들려왔다.
예상치도 않았던 소리에, 인공은 놀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엇을 보았는지 별안간 형형해진 인공의 두 눈이 조금씩 커져만 갔다. 그런 인공의 얼굴을 뒤덮는 검은 그림자. 그리고 급박하게 들려오는 절체절명의 소리.
“형님! 비키세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네 녀석 정체가 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아는 체하는 것이냐?”
인공이 숨도 안 쉬고 내던진 호통이었다. 인공의 물음에 용하 역시 숨넘어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용하입니다. 변두리 검도 체육관 김 관장이요!”
“용하! 아니, 이 녀석이…, 그럼 네 녀석이 비켜 가면 되지 않느냐.”
“형님! 저는 지금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뭐 하나 제 맘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 짧은 시간에 나눴다고 하기엔 꽤 긴 대화였다.
우당탕!
급기야 인공을 덮치며 땅으로 떨어진 용하. 찰나에 불과한 시간에 벌어진,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기막힌 사연이었다.
“아이고, 이놈이 끝내 사람을 잡네그려. 잡아도 아주 지능적으로 교묘하게 잡아!”
엄살인지 진짜 아픈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배를 어루만지며 고통을 호소하는 인공은 반면, 용하는 무사히 착지한 것을 자축이라도 하듯 입이 귀에 가서 걸렸다.
‘후후! 탁월한 선택이었어. 쿠션이 웬만한 에어매트 뺨쳤다니까.’
한동안 정신이 엉뚱한 데 팔려있던 용하가 급기야 무엇인가 떠올리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형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피하다니, 갑자기 왜?”
“곧 아미파 여인들이 이곳에 당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피해? 여태 그것들 기다리느라 목이 다 빠졌는데.”
“아, 그게 말입니다. 작전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작전을 바꾸다니, 왜?”
“그들 무리 속에 장설 형님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계셨습니다.”
“그건 또 뭔 소리냐? 그럼 형님은 대체 어디 계신다는 거야?”
“아직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몸을 피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아미파와 정면승부를 걸어 형님이 계시는 곳을 알아내야 하지 않겠느냐?”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미산으로 온 것도, 아미파 여인을 상대로 작전을 짠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용하는 제 생각이 짧았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 말이 알량하게도.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시비를 걸어야 뭐라도 얻을 수 있겠네요.”
“앞으로 시비라는 말은 쓰지 말도록 하라!”
“왜요?”
“이곳 무림에서 사용하기엔 더없이 천박한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천박하다고요? 그럼 뭐라 그래요?”
“승부수!”
아,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 짧고 간결한 말이 순식간에 가슴에 와닿을 줄이야.
“알겠습니다, 형님. 앞으로 그리하겠습니다.”
공감대가 어찌나 컸던지, 용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울려 대답했다.
“좋다. 명심할 것으로 믿겠다. 그럼 어디 슬슬 승부수를 던져볼까?”
의미심장한 인공의 말에 용하의 결연한 시선이 저 아래 보이는 아미파 무리에게로 흘렀다.
“어찌할까요, 형님! 한달음에 달려가 승부수를 던질까요? 아님, 예서 기다렸다가 칠까요?”
“굳이 이만한 싸움에 체력 소모할 필요 있겠느냐? 그물을 치자꾸나.”
“그물이요?”
“지금 물은 산 아래에서 정상을 향해 흐르고 있지 않으냐? 여기에 그물을 치고 기다리면 다 걸릴 걸 뭐하러 체력을 소모하려 드는 것이야.”
사람이 가는 길이 물의 흐름이라는 말을 용하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유월아, 넌 예서 저들을 유인하거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형님! 형님은 저쪽에 몸을 은폐하십시오. 저는 이쪽에 있다가 아미파 잔당들이 긴장감이 좀 풀렸다 싶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급습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용하야. 한방에 제대로 보내려면 너 혼자 해서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왜 저 혼자예요? 형님하고 같이 쳐야죠.”
“너, 방금 그러지 않았느냐. 아미파 잔당들이 긴장감이 좀 풀렸다 싶을 때 치겠다고.”
“네! 그랬죠.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아미파 잔당들이 긴장감이 풀렸는지 아닌지를 측정하는 건 각자의 주관 아니냐?”
“그렇지요.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 다르니 말입니다.”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적어도 둘 이상의 인원이 공동 작전을 펼치는데 주관이란 있을 수 없다.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것으로 기준을 잡아주었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유월이 반응을 기준으로 잡는 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다. 그럼 유월이 행동 중에 가장 객관적인 게 무엇이겠느냐?”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곧 입을 뗐다.
“형님! 유월인 아마도 그 많은 여승을 한 번에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태어난 지도 얼마 안 됐고 줄 저잣거리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현재로서는 유월이 반응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미파 잔당들을 보면 왕왕! 짖어댈지, 겁에 질려 슬금슬금 물러설지.”
이 말을 하는데 왜 그렇게 유월이 안쓰럽게 느껴지던지, 당장에라도 불끈 안아주고 싶었다.
“유월! 너는 이 오빠가 지킨다. 오빠 믿지?”
―멍멍!
유월이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유월! 조금 있으면 한 무리의 여자들이 여기 나타날 거야. 절대 겁먹지 말고 크게 짖어~ 그럼 이 오빠가 우리 유월이 위험에 처했구나! 하고 생각해서 바로 구출할 거니까.”
―멍멍!
이번에는 웬일인지 꼬리를 세게 흔든다거나 하지 않았다. 다소 겁을 먹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형님! 지금 유월이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미파 잔당들을 보면 짖을 것입니다. 크게 짖든 작게 짖든, 그건 개의치 마시고 유월이 열 번 짖으면 그때 치는 걸로 통일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그렇게 객관적인 약속이어야 착오가 없는 것이다. 알겠느냐?”
“네, 형님. 그럼!”
용하와 인공이 전광석화처럼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이 모습을 감추자 유월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땅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는가 하면, 연신 낑낑거리며 오줌이라도 참는 강아지 같았다.
그때였다. 비단옷이 풀잎에 쓸리는 소리가 난무했다.
―멍멍!
유월이 짖는 소리를 들은 용하는 생각했다.
‘두 번 짖었다.’
한편, 인공은 또 다른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아뿔싸! 이렇게 연달아 짖으면 이걸 한 번으로 치는지, 두 번으로 치는지, 그를 확실하게 해야 했는데 깜박했네! 그려.’
때늦은 후회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인공은 생각을 고쳐먹고 유월이 짖는 것보다는 용하가 숨어 들어간 숲 쪽을 예의주시했다. 풀잎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용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것을 신호로 아미파 잔당들을 급습하겠노라 마음을 정했다.
―멍멍!
이번에도 유월은 두 번을 짖었다.
“이번이 두 번째야, 네 번째야?”
인공은 입이 댓 발은 나와 구시렁거리면서도 용하가 몸을 숨긴 숲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같은 시간, 용하도 인공의 고민을 답습하고 있었다.
“아니, 저 녀석이……. 녀석의 짖는 습관을 미처 생각지 못했네! 인공 형님은 유월이 녀석이 연달아 두 번 짖는 걸 어떻게 세고 있을까?”
난색이 된 용하는 인공이 숨어 들어간 숲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입엣소리로 중얼거렸다.
“달리 방법이 없잖아. 형님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제아무리 귀신처럼 움직여도 나뭇잎 하나 정도는 팔랑거리겠지?”
그러는 사이, 아미파 여인들이 몇 걸음 앞까지 거리를 좁혀왔다. 누가 보아도 지금쯤이면 여인들을 급습해야 했다. 그런데 용하와 인공이 숨어 들어간 숲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왕왕왕왕, 왕왕왕왕……!
오직 유월이 숨넘어갈 듯 짖어댔을 뿐.
한편 용하는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자세로 생각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야? 모습을 나타내도 진작 나타냈어야 하는 거 아냐?’
거의 동시에 용하가 숨어 있는 숲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인공이 구시렁거렸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왜, 정면승부는 위험부담이 있으니까 뒤에서 치려고?”
유월이 더는 물러설 곳이 없자, 용하와 인공이 숨어 들어간 숲을 번갈아 보며 더 크게, 더 숨넘어갈 듯 짖어댔다.
―왈왈왈왈왈, 왈왈왈왈왈……!
산속에 버려진 강아지쯤 여기고 별 개의치 않던 보현이 마침내 단호히 입을 뗐다.
“저것의 입을 막아라!”
보현의 말에 바로 뒤를 따르던 아미파의 여인 하나가 검을 빼 들었다.
씨~엥!
서슬이 시퍼런 검 끝이 유월의 목을 정조준한 일촉즉발의 상황, 보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검을 거두어라! 신성한 금정사 앞에서 개 피를 보고 싶지는 않구나!!”
보현의 말에 유월이 목을 겨누고 있던 서슬이 시퍼런 검이 즉각 검집으로 들어갔다.
스르륵!
그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인공과 용하는 거의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어찌하면 좋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용하는 그저 인공의 숨어 있는 숲만 바라보았다.
같은 순간, 인공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며 용하가 숨어 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제발 녀석이 의욕을 좀 자제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사실 인공은 이대로 아무런 교전 없이 그냥 넘어가기 주기만을 내심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금 저들과 싸운다는 건 아무런 명분이 없다. 형님이 저들 무리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월이 해를 당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인공은 용하도 같은 생각을 해주기를 바라며 숨을 죽였다. 지금 아미파 여인들이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어서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용하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형님! 저는 형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어금니 사이로 새 나오는 말로 결의를 다지며 굳게 감아쥔 손은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슬금슬금 물러서던 유월이 갑자기 몸을 돌려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용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저 녀석이 대체 어쩌려고?”
같은 광경을 본 인공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하, 녀석! 키운 보람이 있네. 용하하고 내가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아미파 잔당들을 유인해 줄 줄이야.”
유월은 정말 인공의 생각대로 하는 것 같았다. 줄행랑치면서 하염없이 짖어대는 걸 보면.
―왕왕 왕왕 왕왕 왕왕…….
유월이 짖어대는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조용해졌다.
숲속에 몸을 숨겼던 용하와 인공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숲에서 빠져나왔다.
“형님! 이제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유월이 녀석도 생각이 있어 그리했겠지.”
“생각이라뇨. 생각 있는 녀석이 그 중요한 순간에 줄행랑을 칩니까? 유월이 이제 태어난 지 겨우 육 개월 된 강아지입니다.”
“태어난 지 육 개월 된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용하 네 녀석은 유월이 줄행랑을 쳤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니면요?”
용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인공은 등을 돌려 금정사 쪽을 바라보며 처연하게 입을 뗐다.
“유월인 우릴 살리려고 아미파 잔당들을 유인한 것이다.”
인공의 말을 듣는 순간, 용하는 미간을 좁히며 눈에 힘을 주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한 게 미안해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해서였다.
“형님…….”
“왜, 몰랐던 것이냐?”
“…….”
용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형형한 눈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