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자, 이제 어찌할 생각이냐?”
용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인공의 물음에 머리가 온통 하얘졌을 뿐, 그가 왜 지금 이런 당치 않은 질문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왜, 대답이 없는 것이냐?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이냐?”
인공의 언성이 조금 올라가자, 용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네, 사실 모르겠습니다. …형님이 왜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허, 이런 얼치기를 봤나. 너는 어찌하여 그리도 띄엄띄엄한 것이냐?”
“뭐라고요? 띄엄띄엄……. 형님은 사람을 그렇게 깔아뭉개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어허, 그만 일로 알량함을 드러내는 걸 보니, 진정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게로구나.”
“네, 대체 무슨 말씀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사람 떠보려고 들지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적어도 야단칠 생각이 있다면, 가르칠 각오도 돼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물러설 곳이 없었던지, 용하는 죽을 각오로 제 생각을 피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느냐?”
“네, 정말 모르겠습니다.”
“네 녀석이 당연히 알아야 하는 말이거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건, 혹여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잘 들어보아라. 지금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복호사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아, 그야 장설 형님을 살리려고…….”
용하는 말을 하다 말고 돌연 입이 쑥 들어갔다. 조금 전 인공이 왜 생각이 띄엄띄엄하다고 호통을 쳤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꼴을 보니 이제야 내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좋다. 그럼 이제 무엇이 우선이겠느냐?”
“형님, 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장설 형님을 찾는 거죠.”
“음, 이제야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는 것 같구나. 그럼 어디로 가면 형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음, 생각할 겨를이 필요한 것이냐? 좋다. 그럼 협객은 어디 가면 만날 수 있겠느냐?”
인공의 질문에 지금까지 어눌했던 용하의 얼굴에 화색이 짙었다.
“아, 그건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저잣거리 국밥집에 있을 겁니다.”
“저잣거리 국밥집이라,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제가 거기 가서 기다리라고 했으니까요.”
“뭐라, 네 녀석이 기다리라고 했으니 저잣거리 국밥집에서 기다릴 것이다?”
“네, 형님.”
“무슨 근거로 그것을 확신하는 것이냐?”
“그건 제가 결투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형호제하기로 하였습니다.”
“네 녀석이 닌자술을 쓰는 협객과 결투를 벌여 이겼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귀신도 속인다는 닌자를 겨우 운동 삼아 죽도나 휘두른 용하가 이겼다니. 그 속에 숨겨진 속임수들이 인공의 머릿속에 한 번에 엄습했다.
“네, 그런데 왜…….”
인공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의 표정이 적잖이 착잡해 보였다. 인공이 다시 입을 떼기를 기다리는 용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공의 두 눈이 번쩍 열렸다.
“복호사로 가자꾸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공의 발걸음은 복호사로 향했다. 용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 걸었다.
“형님! 복호사엔 왜요? 아미파 여인들이 모두 금정사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왜, 우리도 금정사로 가야 한다는 것이냐?”
“금정사로 가든 저잣거리로 가든 해야지. 텅 빈 복호사에는 가서 뭐 하겠습니까?”
“복호사가 텅 비어? 누가 그러더냐? 복호사가 텅 비었다고.”
“아니, 꼭 누가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네 녀석 추측이 얼마나 적중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사실 추측으로 따지자면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고, 예상이 맞아떨어진 적도 없었다. 그러니 인공의 물음에 대답하기 민망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용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딸막거리자, 인공은 지긋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건 자신감을 얻기보다는 위험만 따를 뿐이다.”
용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러 가지 이유로 머리가 복잡해서였다. 그 가운데 사실 가장 궁금했던 건, 장설과 복호사 그리고 아미파 연인들, 이들의 삼각관계였다.
“그럼 형님 말씀은, 복호사에 누군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 순간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용하는 하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소스라쳐서 물었다.
“혹시 장설 형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일단 그렇게 생각되는구나. 물론 그것도 추측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꼭 그곳을 먼저 가보고 싶구나.”
“형님! 아미파 잔당들이 금정사로 이동했다고는 하나, 아직 복호사는 적의 소굴입니다. 다시 간다는 건 위험하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머무르는 이곳이 어디인지 그새 잊은 것이냐?”
“형님도 참,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나약한 말을 하는 것이냐?”
“저는 솔직히 장설 형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확신이 전혀 없어서입니다.”
“내 추측이 크게 빗나간 적이 없기에 그곳에 먼저 가보려는 것이다.”
인공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인공이 헛소리처럼 한 말도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저잣거리로 가려면 산에서 내려가야 하는데, 가는 길에 잠깐 복호사에 들리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어차피 가는 길인데 말이다.
“형님! 잘하면 복호사에서 장설 형님도 만나고, 유월이도 만날 수 있겠는데요.”
“어디 그뿐이겠느냐. 장설 형님만 그곳에 계신다면, 저잣거리 국밥집에 있다던 협객도 거기 있을 것이다.”
“거기라뇨, 복호사 말입니까? 협객이 왜요? 왜 복호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인공은 부지런히 걸음을 내디디며 지그시 뜬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닌자술 가운데 마지막 수가 무엇인지 아느냐?”
“모든 병법의 마지막 수는 줄행랑이니, 닌자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니! 닌자는 남의 눈을 가려야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마지막 수도 남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속임수!”
인공의 말에 용하의 뇌리를 스치는 건 오직 하나였다.
“그렇다면…….”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는 용하에게 인공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일 것이다. 서두르거라!”
두 사람은 고색창연한 오솔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인공의 말이 뇌리에 박혀서인지, 용하의 머릿속에는 장설이 협객에게 살해되는 장면이 마치 플래시 터지듯 자꾸 떠올랐다.
어느덧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복호사의 주문이 보였다.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온 용하와 인공은 쾌속으로 질주하던 자동차가 급브레이크 밟듯 출렁! 하며 멈춰 섰다.
“형님! 일주문 앞입니다.”
“일단 여기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 좀 해보자꾸나.”
“그런데 형님! 유월인 왜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까요? 혹…….”
용하의 표정이 갑자기 어눌해지자 인공은 고개를 내저으며 강한 부정을 표했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유월인 어지간한 사람보다 더 똑똑한 강아지다. 절대 아미파 계집들 따위에게 당할 녀석이 아니다. 그러니 절대 엉뚱한 생각일랑 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형님! 정말 우리 유월이 똑똑하죠. 네, 저도 그렇게 믿으니까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용하는 침착하려 애썼다. 지금 용하가 울음을 참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숨기는 것이 인공의 눈에 여실히 보였다. 감정을 숨기면서까지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고 애쓰는 용하가 안쓰러워 인공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아무렴! 더군다나 산에서는 야생 본능이 뛰어난 유월이 우리보다 더 잘할 것이다.”
“그럴… 까요?”
“아, 글쎄 그렇다는데 말이 많구나!”
“…….”
“아마 지금쯤 아미파 계집들은 따돌리고 한숨 돌리고 있을 것이다.”
비록 추상적이었지만, 인공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져 신뢰할 수 있었다.
“표정을 보니 한결 좋아진 것 같구나. 그럼 들어가 볼까?”
“네, 형님!”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은 발걸음을 성큼 내디뎌 일주문을 넘었다. 발끝에 닿는 기운이 왠지 서늘했다. 하지만 장설을 살리겠다는 일념이 통해서인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지금부터는 운기조식을 하여라.”
용하는 잠시 쉬고 내뱉는 숨으로 대답했다.
“네, 형님. 그리하겠습니다.”
대웅보전까지 가는 동안 두려움 따위는 꿈틀거리지 않았다. 다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장설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고조됐을 뿐. 용하는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느새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했던 탓인지 거리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형님! 협객 이 녀석은 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요?”
“용하야, 난 말이다. 그 녀석이 영원히 안 나타나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로 생각한다.”
“형님 말씀대로면 더는 엮이지 않는 게 좋죠. 하지만 닌자 하나 정도야 우리가 대적 못 할 리 없잖습니까? 정말 다행이죠. 7인의 협객이 뿔뿔이 흩어졌다니 말입니다.”
“난 말이다. 무엇보다 그 사실이 천우신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아직도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면 우리에게는 더 없는 위협이 됐을 것 아니겠느냐.”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막내가 어떤 속셈을 품고 있든 상관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녀석은 지금 혼자라는 거죠.”
“그럼 장설 형님만 무사히 구출하면 되는 것이냐?”
“그게 가장 큰 숙제죠. 장설 형님만 무사하다면 그다음 문제는 장설 형님이 다 알아서 하실 테니까요.”
“그 형님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는 걸 어찌 장담하는 것이냐?”
“그건…, 그 형님이 뭐든지 뛰어나니까요. 무공도 뛰어나고, 지략도 뛰어나고, 음…….”
“그럼 지금 우리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을 구하자고 목숨 걸고 예까지 온 것이란 말이냐?”
“형님!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해도, 자기의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나 보죠.”
무슨 항변인가 하려고 입을 크게 벌렸던 인공은 다시 입을 다물며 고개를 갸웃했다. 별것도 아닌 용하의 말에 설득당했다는 뜻이다.
‘음, 자기의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말을 되뇌는 인공은 웬일인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세를 낮추고 야간전술 보행으로 대웅보전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그런 행보를 얼마나 했을까. 용하의 손짓이 대웅보전의 어느 문 쪽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인공은 황급히 용하의 손길이 가리키는 쪽으로 바라보았다. 옅은 빛이 새 나오는 방문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두 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
두 사람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춘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공간 속에서 용하가 두 개의 손가락을 펴 보였다. 인공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상대를 짓누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던 자의 손이 검을 뽑는 그림자가 방문에 크게 드리워졌다. 더는 숨죽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용하는 전광석화처럼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