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검을 뽑아 어깨까지 들어 올린 협객의 손이 부르르 떨었다.
일격필살을 다짐하는 동작이었다. 거의 동시에 인공 또한 허리춤을 고쳐 맸다.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춘 두 사람은 서로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일지는 모르지만 여차하면 바로 튀어 들어가겠다는 각오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부우웅~
용하의 몸이 허공을 가르는가 싶었다. 그리고 곧 장설과 협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방문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광경을 본 인공은 짐짓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곧 빠른 야간전술 보행으로 용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스사삭!
“야, 김용하. 뭘 하려거든 신호를 좀 주든가 해야지, 그냥 막 움직이면 어떡해.”
“형님. 지금은 비상 상황입니다. 눈치껏 알아서 하셔야죠.”
멈춰버린 시간 속처럼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형님. 뭔가 좀 이상합니다.”
“왜 또, 뭐가?”
“조광연 박사가 보내준 장설 형님의 마지막은 이렇게 어둡지 않았습니다.”
“어둡지 않았다고! 그럼?”
“장설 형님과 협객의 얼굴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밝았습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난색이 되었다.
“이게 다 어찌 된 일이야?”
인공의 목소리에서 얼핏 절망감이 엿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용하는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힘줘 말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일단, 장설 형님부터 살리고 보는 겁니다. 장설 형님만 살아계신다면, 그 형님이 다 알아서 할 것입니다.”
“너 아까 협객을 이겼다고 했었느냐?”
“네, 삼단봉으로 몇 차례 가격했더니, 거꾸러지던데요.”
“아니, 아니! 그렇게 거꾸러질 녀석은 아니다. 일단 저 녀석을 제압하고 나면 장설 형님은 안전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작전이 좀 필요할 것 같구나.”
“뭐, 염두에 두고 계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몸싸움은 내가 좀 나으니까, 일단 네 녀석이 이걸 가지고 있거라.”
인공이 건넨 건 다름 아닌 전기충격기였다.
“아니, 이걸 왜 제게…….”
“내가 녀석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그것으로 녀석을 기절시키거라. 그리고 장설 형님과 최대한 멀리 달아나자꾸나.”
“협객은요?”
“형님만 구하면 됐지, 굳이 살상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지만 협객은 위험한 자입니다. 언제 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지 모르잖아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 예전에 7인의 협객들이 추격해준 덕분에 우리는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그래서 무사히 개방으로 갈 수 있지 않았더냐.”
바로 그때였다.
“얍!”
단말마와도 같은 절제된 기합 소리가 들렸다. 거의 동시에 인공이 방문을 부수고 방안으로 급습해 들어가 협객을 덮쳤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날랜 동작이었다.
뒤따라 들어간 용하의 눈에 협객의 손에 아직 여전히 들려 있는 서슬이 퍼런 검이 보였다. 누가 봐도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협객의 손이 어느 것에도 제약받지 않고 자유로워서였다. 용하는 황급히 전기충격기를 검을 든 협객의 팔에 가져다 댔다.
찌직! 지직―지직!
협객은 손에서 칼을 놓쳤지만, 정신은 멀쩡해 보였다.
“뭐야, 왜 약발이 안 먹히는 거야?”
인공이 목청껏 외쳤다.
“경동맥이 흐르는 곳에다 대야 혼절시킬 수 있어.”
“경동맥! 아, 알겠습니다.”
용하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뒤엉킨 인공과 협객의 주위를 맴돌며 틈을 엿보았다.
“형님! 경동맥이라면 저 녀석 왼쪽 목을 노리라는 거죠?”
“그럴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목뒤를 노려봐.”
“알겠습니다, 형님!”
치직!
치직!
치지직!
수없이 시도했지만, 매번 불발이었다. 보다 못한 인공이 외쳤다.
“이리 줘! 내가 해볼게.”
용하는 저를 향해 쭉 뻗은 인공의 손에다 전기충격기를 쥐여주었다.
이제 막 전기충격기를 건네받은 인공은, 안정적인 자세로 협객의 목에다 대고는 있는 힘껏 버튼을 눌렀다.
찌지직거리며 파란 전기 스파크를 일으켜야 할 전기충격기가 죽은 듯 잠잠했다.
“용하야! 이게 다 어찌 된 일이냐?”
“형님! 제가 너무 많이 눌러서 방전됐나 봅니다.”
“방전? …그게 뭔데?”
“아, 방전이 뭔지 모르시는구나! 음, 그게 말입니다. 한마디로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는 말과 비슷한 겁니다.”
“그 말이 더 어렵다, 인석아! 아무튼 안 된다는 말이지?”
“당연하죠. 배터리가 없는데 무슨 수로 되겠어요?”
“그럼 이제 어떡하면 좋겠느냐?”
“형님은 지금처럼 상체를 공략하세요. 저는 녀석의 아랫도리를 공략하겠습니다.”
“알았다, 내 그리하마. 대신 아랫도리는 확실히 네 녀석이 책임져야 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공은 몸을 조금씩 협객의 머리 쪽으로 움직여 녀석의 머리가 허리쯤 왔을 때 두 다리로 녀석의 목을 휘감아 트라이앵글 초크를 시도했다. 다리가 풀리자 협객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아등바등했다.
“용하야! 어서 녀석의 다리를 제압하거라.”
“네, 형님!”
용하는 서둘러 삼단봉을 척! 펼쳤다. 그리고는 마치 쌍절곤 돌리듯 빠르게 삼단봉을 휘둘러 단번에 녀석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 놓았다. 온몸이 축 늘어진 협객은 간헐적으로 팔다리에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침내 눈동자를 허옇게 치켜뜨며 최후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 광경을 본 용하가 소스라쳐서 외쳤다.
“형님! 그만두십시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살상할 의사가 없다면 그만 놔주십시오.”
다소 격분한 탓에 협객이 죽어가는 것조차 몰랐던 인공은 그제야 짐짓 놀라며 협객의 목을 휘감았던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는 협객의 코에다 손을 가져다 댔다. 잠시 민감해진 표정으로 무엇인가 감지하려고 애쓰던 인공이 마침내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용하는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형님! 장설 형님을 깨울까요?”
“아니, 이 난리를 쳐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냥 둘러업고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아네, 형님! 그게 좋겠네요.”
용하는 부서진 방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용하의 행태를 잠시 지켜보던 인공은 더는 못 봐주겠던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리쳤다.
“인석아! 벌써 긴장을 늦춘 것이냐? 어른이 입 밖으로 한마디 말을 내뱉으면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하거늘, 어찌하여 능청을 떨고 있는 것이냐?”
“능청이라니,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 말씀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깨우지 말고 둘러업고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면요.”
“그럼 냉큼 둘러업어야지 어찌하여 방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냐?”
인공의 말에 용하는 일순 뜨악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저보고 업으라고요?”
“그럼 이 늙은이가 업으랴.”
“아니, 그래도 조금이라도 힘이 센 형님이 업으셔야지, 작대기 없으면 맥도 못 추는 제가 업어야 하겠습니까?”
두 사람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멍멍! 멍멍!
들릴 듯 말 듯 개 짖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형님! 들으셨습니까?”
“듣다니 뭘? 괜히 밀리니까 꼼수 쓰려고 염병 떠는 거 아냐?”
“아이참, 이 형님이! 염병이라뇨?”
“어디 한두 번이야? 걸핏하면 염병 떨고 지랄하고!”
그때였다.
―멍멍! 멍멍!
개 짖는 소리가 조금은 커졌다. 그제야 인공의 귀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들렸던지, 그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용하의 표정 또한 확신에 찬 듯했다.
“유월이 아니냐?”
“유월이 소리 맞아요!”
“녀석이 때맞춰 와주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이제 형님하고 제가 옥신각신할 일은 없어진 거죠?”
“그걸 말이라고! 우리가 언제 심심해서 입씨름한 적이 있었느냐. 유월이 오면 잘 구슬려서 형님을 업고 저잣거리 국밥집으로 가자고 청해보아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우리 유월이 영리한 아이여서 알아서 잘할 겁니다.”
“그럼 나부터 슬슬 내려가 볼 것이니 천천히 내려오도록 하라.”
“네, 형님. 바로 뒤따라 내려가겠습니다.”
인공은 빠른 걸음을 내디뎌 고색창연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복호사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용하는 복호사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협객을 흘깃 바라보았다.
“아직 실신해 있는 거 맞지?”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덜어주는 건 비록 잠에 취해 있기는 하나, 장설이 곁에 있다는 사실과 유월이 지금 자기를 향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용하는 실신한 협객에게 다가가 볼을 톡톡 두들겨 보았다.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장설 형님만 스스로 깨어나 움직여주면 좋겠는데.”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장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그의 눈을 벌려보았다. 눈동자에서 조금의 움직임도 엿볼 수 없었다.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았다고 하는 거지, 피부색이며 온기로 보아선 도저히 살아 있다고 믿기지 않았다.
“유월이 얘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조금 전 짖어댔을 때 정도 거리면, 지금쯤 도착했을 텐데 말이야.”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두려움이 엄습했다.
“괜히 혼자 총대 멘 거 아냐?”
때늦은 후회였다. 바로 그 순간.
“끄응!”
인기척이 들렸다. 용하는 시선은 빠르게 장설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장설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뭐야? 장설 형님이 아니면…….”
용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협객 쪽을 바라보았다. 용하의 눈에 아직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협객이 몸을 뒤트는 광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 혹시 모르니 손을 써둬야겠군.”
빠르게 몸을 움직여 대웅보전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협객을 포박해 둘 밧줄을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대웅보전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밧줄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협객 녀석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둘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순간 용하의 시야에, 연등회 때 쓸 등롱을 걸어두는 삼실이 쳐져 있는 게 보였다.
“아, 찾았다.”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서둘러 삼실을 걷어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협객의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포박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인석아! 네 녀석이 미워서 이러는 게 아니고, 네 녀석이 하도 속임수를 쓰니 나로선 달리 방법이 없어서 이러는 것이니, 자업자득이라 생각하고 감수하거라.”
무슨 저승길 보내는 장례지도사처럼 중얼거리고는 장설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마냥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일주문 쪽으로 가서 기다리는 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는 거겠지?”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용하는 장설을 둘러업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산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가벼웠다.
“이렇게 가벼운 줄 알았으면 아까 인공 형님 따라서 그냥 내려갈 걸 그랬나? 어차피 이곳 지리는 유월이 나보다 더 잘 아는데 말이야.”
발걸음은 물론 마음까지도 홀가분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됐을까.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일주문이 보였다.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한번 불러 볼까?”
일주문에 도착한 용하는 장설을 잠시 내려놓고 목청껏 유월을 불렀다.
“유월! 유월아!”
딱 두 번을 불렀는데 유월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멍멍! 멍멍!
―멍멍! 멍멍!
유월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멈추지 않고 짖었다. 마치 자기 소식을 전해주기라도 하듯 몹시 반갑게 짖어대는 소리였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차게 꼬리를 흔들어대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용하에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오늘은 꽤 일진이 좋은 날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