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하이고, 큰일 날 뻔했네! 그려.”
어둠이 짙은 국밥집 마당에 홀로 남겨진 인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뭘 더 바랄까? 일단 오늘도 목숨을 부지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일단 살아남자. 죽더라도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살아남아서 남은 인생에 어떠한 부귀영화를 누리는지 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죽더라도 죽을 것이다.”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꺼진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공은 안도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곧 조금 전 개 짖는 소리가 들렸던 방 쪽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유월아~ 유월~~”
킁킁! 킁킁!
야심한 밤 국밥집 쪽방에서 하룻밤을 의탁한 사람들이 깨지나 않을까 염려된 유월은 마치 재채기를 참는 듯한 작은 소리를 내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그제야 유월이 제일 안쪽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인공은 또 한차례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기특한 내 새끼! 여태 안 자고 오빠 올 때까지 기다린 거야? 이 늙은 오빠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는 거야?”
바로 그 순간.
“사람보다 개가 더 낫네!”
조금 전 주모가 들어간 방에서 혀를 끌끌 차며 새 나온 말이었다. 인공은 쌍심지를 켠 채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비록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처지였지만 개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그냥 넘어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뭐! 사, 사람보다 개, 개가 낫다고?”
어찌나 울화가 치밀었던지, 목소리가 다 부들부들 떨렸다.
“저 할망구가 뒈지려고 환장이라도 한 거야 뭐야!”
인공은 앞뒤 재지 않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래도 누구 하나 참견하는 사람 없었다.
“대체 뭘 믿고 천방지축 까부는 건지 원.”
뒤늦게 모두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인공은 그제야 목소리를 죽여 얼핏 비굴한 말투로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혀를 끌끌 찼는데, 조금 전 주모가 했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고, 죽으면 늙어야 하나, 늙으면 죽어야 하나?”
횡설수설하는 인공의 귀에 별들이 속삭였다. 소록소록, 스멀스멀.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별들의 속삭임과 함께 칠흑 같은 밤은 깊어만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기지개를 쭉 켜며 국밥집 앞마당으로 나오는 용하. 아직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그 뒤에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오는 인공. 잠시 후 두 사람은 까무러질 듯 놀라며 거의 동시에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마당을 쳐다보았다.
“헉!”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저렇게 새파랗게 질려 나자빠졌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둘의 모습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정말이지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길게만 느껴졌다.
“형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용하와 인공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인기척을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장설이었다.
장설은 국밥집 앞마당에서 기(氣) 수련을 하고 있었다. 장설이야 늘 해오던 것이니 이상할 게 없겠지만, 어젯밤까지만 해도 시름시름 앓던 사람이 기 수련을 하는 광경을 목도(目睹)한 용하와 인공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형님!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입니까?”
아직도 떨리는 심장을 움켜쥔 두 사람은 잠시 우왕좌왕하는 기색이었다. 곱지 않은 눈으로 두 사람을 보는 장설의 입에서 마침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뭣들 하고 있어! 어서들 와서 따라 하지 않고.”
“네!?”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의 반응은 누가 더하고 덜함도 없이 똑같았다.
“어허,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겠느냐?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나자빠져 있을 것이야?”
인공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용하를 바라보았다. 용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는 곧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경쟁이라도 하듯 장설에게로 종종걸음쳤다.
장설 앞에 먼저 도착한 인공이 그의 다리에 매달려 절규하듯 물었다.
“형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아무렇지 않은 거 맞죠?”
간발의 차로 장설 앞에 도착한 용하는, 인공의 질문에 장설이 답하기만을 기다리며, 마치 연모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듯 장설의 이름을 우러렀다.
“장설… 형님…….”
잠깐이었지만 멈춰버린 공간 속에 갇혀버린 듯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그런 답답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적막을 깨며 장설의 목소리가 국밥집 앞마당에 울려 퍼졌다.
“밤사이 심연을 헤매는 듯하더니, 동녘에 해가 떠오를 무렵,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몸이 개운해지더구나. 너희들도 밤새 잘 잤느냐?”
“네, 형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모아 대답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나온 사연이 무엇이든…,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지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지금 두 사람은 자기들 눈앞에서 장설이 살아 움직이며 말까지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냥 좋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유난히도 그 말을 실감하며 활기찬 하루를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왠지 신세계가 펼쳐질 것 같지 않습니까?”
용하가 인공을 흘깃 곁눈질하며 한 말에, 인공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누구 덕분에 왠지 그럴 것 같구나.”
인공의 곱지 않은 눈꼬리가 장설을 향하는 것으로 보아 가시가 있는 말이었다.
용하와 인공은 죽이 척척 맞아, 자기들끼리 소리를 죽여가며 키득거렸다.
바로 그 순간.
“뭣들 하는 짓이냐?”
장설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용하와 인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짐짓 수그러들었다.
“너희들이 내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냐?”
장설의 말에 이번에는 머리칼이 쭈뼛해지더니 입을 모아 물었다.
“형님이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어험!
장설의 헛기침에서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그리고 곧 무겁게 입을 뗐다.
“어젯밤 자시를 지나는 사이에 입적하도록 정해진 팔자이거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장설은 자신의 입적을 방해한 것에 대해 몹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적잖이 당혹스러웠지만,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도 생각한 용하는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서며 장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앞으로 무림에서 펼칠 일에 형님이 꼭 필요해서 그리하였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네 녀석이 펼칠 일이라는 게 혹, 사파(邪派)의 소굴이 될지도 모를 그것이냐?”
장설의 말에 용하의 두 눈이 커졌다.
‘사파? 장설 형님이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대체 무엇을 알고 있기에 사파라고 단정 짓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것이냐?”
장설은 청천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형님이 말씀하신 사파의 소굴이란 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이 궁금하여…….”
“김용하, 네 녀석 머릿속에 있는 그것 말이다. 그것이 사파의 소굴이 될 것이라는 잡념이 나의 뇌리에서 좀처럼 떠날 줄을 모르는구나.”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달관한 장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에 용하의 얼굴에는 어두운 기운이 스멀스멀 번졌다.
‘장설 형님 말씀대로면 무림검도관이 사파의 소굴이 된다는 것이다.’
용하가 생각하는 무림검도관의 밑그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검도관 개관의 의미가 퇴색되는 일이 생긴다면 말이다.
“형님! 그래서 장설 형님과 인공 형님이 필요합니다. 아니,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다 늙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저는 무림검도관의 수련생들에게 검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니 두 분 형님들께서는 검에 서린 정신을 가르쳐주십시오.”
“검에 서린 정신!”
사실 강호 무림 속 사람들에게 검에 서린 정신이란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들에게 검이란 오직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살상 도구일 뿐이니까. 그러니 용하를 보는 장설의 눈빛이 썩 고울 리 없었다.
하지만 용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형님.”
그리고 장설의 눈에는 그런 용하가 분위가 파악도 못 하는 얼치기로만 보였다.
“검에 무슨 정신이 서렸다는 것이냐?”
“네―에?”
뜻밖이었다. 장설이 내비친 뜻밖의 반응에 용하는 경악했다.
‘대체 저 반응은 무엇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설이다. 그는 세상 이치를 달관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장설이……. 게다가 검술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는 장설이 아닌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아하기까지 했다. 세상 누구보다도 검이 품은 정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장설은 처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검은 그저 쇠붙이일 뿐이다.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쇳덩어리.”
“형님!”
“왜, 그동안 속았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라도 한 것이냐?”
“속았다니,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검을 처음 잡았을 때, 누군가 그것에 숭고한 정신이 깃들었다고 가르쳤을 것 아니냐?”
모든 걸 꿰뚫고 하는 말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항변할 의지가 꺾이고 말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는 건 형님 경험치의 극히 일부인 것을.’
장설은 일정한 톤의 목소리로 하던 말을 이어갔다.
“검은 무생물이다. 다시 말해 물건이란 뜻이다.”
“검을 너무 비하하시는 거 아닙니까?”
“뭣이라, 비하? 잘 기억해 보아라. 검이 언제 숨을 쉬더냐, 말을 하더냐,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더냐, 슬퍼하더냐, 기뻐하더냐…….”
장설이 쏟아내는 감정의 종류는 한도 끝도 없었다. 그 많은 것 중에 검이 보여준 건 하나도 없었다. 조금 전 검을 비하하느냐고 했던 말이 용하 자신을 부끄럽게 했다.
“그럼 무엇입니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목소리였다.
“사물에 그 검의 주인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기르는 게 바로 수련이야. 검을 연마한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알아듣겠느냐?”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장설 앞에 무릎을 조아렸다.
“형님!”
그 순간 용하의 목소리는 분출 직전의 용암과도 같았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배우거라!”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해온 생각과 말과 행동이. 유구무언이었던지, 용하는 한마디 말도 못 한 채 다시 한번 납작 조아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앞으로 지켜볼 것이다. 오늘부터 용하 네 녀석이 만들 그릇의 크기에 따라 도울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것이다. 알겠느냐?”
마지막 목소리는 더욱 우렁찼다.
용하는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네, 형님. 이 못난 놈 그렇게라도 헤아려주시겠다니, 저는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전을 관망하던 인공. 대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불현듯 용하 옆자리로 무릎을 꿇고 앉으며 목을 끓였다.
“형님, 감사합니다. 역시 형님다운 결정입니다. 존경합니다, 형님!”
이렇게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김용하와 인공 그리고 장설.
장설이 굳게 감아쥔 두 주먹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가자!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보자꾸나.”
세상 둘도 없이 우렁찬 장설의 목소리는 자신감의 표상이었다. 그의 자신감에 용하는 한껏 들떴다. 장설이 사파니, 뭐니 한 것은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무엇인가 깊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장설 형님의 오해를 풀려면 어떻게든 이 강호 무림에 검도관을 건립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형님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수 있다.’
굳게 다문 용하의 입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