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형님!”
장설을 부르는 용하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달랐다.
‘녀석이 또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목소리가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지는군.’
벌써 부담스러웠다. 웬일인지 장설은 용하의 목소리에 짓눌리는 듯했다.
용하 또한 장설을 불러세우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무엇을 망설이느냐? 사내답지 못하구나.”
용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과감히 말했다.
“용두방주를 좀 만났으면 합니다.”
“개방의 구결, 최고 결정권자 용두방주 말이냐?”
“네.”
“그를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
“딱히 무엇을 하려는 게 아니고, 예전에 용두방주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기회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갚고자 함입니다.”
“은혜를 갚는다! 무엇으로 어떻게?”
“글쎄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있지만, 그보다는 용두방주를 만나보고, 그가 필요로 하는 걸 해드리고 싶습니다.”
“네 녀석 말투가 마치, 뭔가 많은 걸 가진 자의 행실 같구나.”
“많은 건 아니지만, 내세울 만한 것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보아라.”
“음, 아직은요.”
아직이라니, 뜻밖의 대답이었다. 적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아직이라, 단순히 은혜를 입었으니, 보답하겠다는 게 아닌 모양이로구나.”
“네, 형님. 진작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검도관인가 뭔가, 그 칼싸움 가르치는 거 만들어 달라고 할 참인 게지?”
확신에 찬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맞습니다.”
용하의 대답에 장설을 길게 한숨을 토했다.
“왜 그러십니까, 장설 형님.”
장설은 또 한차례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대답했다.
“복불복이야. 잘하면 자네가 하고자 하는 걸 얻을 수도 있고, 여차하면 그걸 빌미로 자네 목이 날아갈 수도 있고.”
장설은 웬일인지 말꼬리를 흐렸다. 용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호불호니, 복불복이니 하는 말들. 그거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나저나 형님. 개방으로 가려면 지금도 남채화 안내를 받아야 하나요? 주모 말로는…….”
“주모가 무어라 하더냐?”
웬일인지 장설은 조금은 놀란 기색으로 화급히 물었다.
“아네, 뭐… 별말은 아니고… 예전과 규칙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다고 하더냐?”
이번에도 화급히 물었는데, 장설의 눈빛이나 말투가 섬뜩하게 했다.
“일단 외부인을 철저하게 차단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주가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이 할망구가 별 소릴 다 했구나. 그래서 이제 어찌할 것이냐?”
“이제 어찌하다니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개방으로 가야죠.”
“방주가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서도 꼭 가야만 하겠느냐?”
“네. 그 많은 사람 중에 저를 기억하는 사람 한 명쯤 없겠습니까?”
“없어야지!”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장설의 반응은 용하와 정반대였다.
“없어야 한다니, 어찌하여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말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냐?”
“네. 어찌하여 그리 말씀하시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개방에 가려는 이유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용하가 제 의중을 드러낼수록 장설의 수심은 깊어만 갔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개방을 떠날 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하고 떠나더니.’
장설은 무엇인가 알고 있는 눈치였고, 용하의 눈에도 그것이 여실히 보였다.
‘역시 장설 형님을 찾기를 잘했어. 그런데 저 표정은…….’
장설조차도 곱지 않았다. 일전에 무림을 떠날 때가 뇌리를 스쳤다. 그때 혹여 남은 사람이 다치지나 않을까,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용하와 인공, 두 사람만 떠난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아,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이를 어쩐다…….’
무슨 말인가 해야 했지만, 용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단 말인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엉켜버린 실타래를 푸는 듯한 기분이었다.
“왜, 안색이 그 모양이냐?”
“아, 아닙니다.”
“음, 기어이 개방에 가겠다는 것이냐?”
조금 전과 달리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네 녀석이 무림을 만만하게 본 게로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갑자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내 말이 너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거겠지.”
이번에도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인공이 안 가르쳐주더냐?”
용하는 얼핏 두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곧 내리떴다.
‘대체 뭘 안 가르쳐줬냐는 거야?’
“여기 무림은 검이 곧 법이다.”
“아, 그거요?”
거슬릴 만큼 경망스러웠다. 장설은 혀를 끌끌 찼을 뿐 더는 말을 아끼려 했다.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이 왠지 인공 형님이 저와 설전을 벌이다 궁지에 몰릴 때 쓰는 비겁한 수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개방의 경계석 앞에서 협객 중 하나가 남채화를 둘로 갈라놓는 걸 보았을 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여기 무림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밥 한술 뜨는 것만큼이나 비일비재하다. 그것을 두고 좀 있어 보이게 한 말이 바로 검이 곧 법이다, 라는 것이다.”
“위선이란 말입니까?”
“잔인한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겠지.”
“개인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개방에 가는 걸 포기한 것이냐?”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니 오전 중으로 결정해서 말하거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형님.”
점심 무렵.
“오전 중에 어찌할 것인지 말해 달라고 하였거늘, 어찌하여 아직 대답이 없는 것이냐?”
웬일인지 장설의 목소리는 서슬 같았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어기겠다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개방에 가는 걸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도 괜찮겠느냐?”
“아닙니다. 점심을 거르고서라도 형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설은 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인공 형님과 잠시 상의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이번에도 장설은 여전히 입을 닫은 채였다.
용하는 슬금슬금 장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인공에게로 다가갔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용하는 은밀한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손짓했다.
“단둘이 나눠야 하는 얘기냐?”
인공이 작은 소리로 던진 질문에, 용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인공은 솔깃한 기색으로 종종걸음을 내디뎌 용하 곁으로 다가갔다.
“내게 무슨 긴밀하게 할 말이라도 있느냐?”
“형님, 제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우리가 21세기에서 여기까지 온 건 개방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두말하면 입 아프지. 우리가 막대한 돈과 피나는 노력을 들여 이곳까지 온 건 개방에서 누렸던 부귀영화 때문이 아니었더냐?”
“아니, 부귀영화 때문은 아니었고요.”
“아무튼, 21세기에서 별로 대접도 못 받고 하니, 창의부흥원 원장 시절 누렸던 권세가 그리워져서 무턱대고 온 거 맞잖아.”
“형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합니까. 저 말이죠, 사업하려고 온 사람입니다. 시공간 이동체에 실려있는 거 봤잖습니까? 그걸 봤으면서도 그런 말씀이 입에서 나옵니까?”
용하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앞뒤 가리지 않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고는 곧 장설 쪽을 흘깃 보았다.
다행히 아직은 장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네 녀석 생각이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냐, 여기 무림에 검도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냐?”
“검도관을 건립하기 위해 사업을 해야 합니다. 21세기에서 어린이 장학재단을 만들기 위해 형님이 하셨던 것처럼 큰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일순 인공이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인 것은 아마도 수긍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개방에 갈 이유도 없지 않으냐?”
“아닙니다. 개방으로 가서 용두방주를 만나 아홉 개 정파의 장문인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주선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용두방주는 사업의 결과물에 대한 분배를 제시하겠죠.”
“네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는 대충 알 것 같구나.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까 장설 형님 말대로 개방이 자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아니, 오히려 적대시할 수도 있으니, 그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가지 않았느냐?”
“네, 저도 형님 말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런 게 있으면 미리미리 좀 대책을 세워야지. 점심도 못 먹고 이게 무슨 꼴이니?”
“누가 일이 이 지경이 될지 알았나요, 뭐.”
입이 댓 발 나온 용하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처세술의 대왕 인공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네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은, 아홉 정파의 장문인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것이냐?”
그 말에 솔깃해진 용하의 외면했던 시선이 다시 인공에게 향했다.
“네, 형님.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굳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개방으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달리 방법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들과 거래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치자. 그다음은 어찌할 생각인 게냐?”
“이미 말씀드렸던 대로 검도관을 건립해야죠.”
“여기 무림에 검도관을 차리는 걸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환영할 것으로 생각하느냐?”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다소 들뜬 기색으로 대답했다.
“음…….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요? 특히 그동안 검을 다룰 줄 몰라 스스로 안전을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은 두 손 들어 환영할 것 같은데요.”
인공은 잔잔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까?”
용하가 다그쳐 물었지만, 인공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곧.
“모든 건 가정이다. 만일 거래가 성사돼 막대한 돈을 벌었다 치고. …자네 입에서 검도관 얘기가 나왔을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무엇을 먼저 떠올릴 것 같으냐?”
“조금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검을 다룰 줄 알게 된다면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겠구나.”
이번에도 인공은 잔잔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건 검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한 거고.”
그 순간 용하는 미간을 좁혔다. 그제야 비로소 그 반대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을 먼저 설득해야겠네요. 형님이 말씀하시는 그 반대편 사람들…….”
용하는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또다시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가 싶었다.
“오늘까지는 검을 다룰 줄 아는 자기들끼리 칼부림을 하며 싸웠다. 그런데 앞으로는 농사나 짓고 장작이나 패던 사람들과도 칼부림해야 한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느냐.”
용하는 잠시 치켜뜬 눈으로 인공을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내리떴다.
“게다가 무림검도관은 사제라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다. 그 관계를 정파들은 경계하며 두려워할 것이다. 아마도 그 세력이 커져, 무림맹이 되지 않을까 염려될 것이다.”
무림맹이라는 말에 용하는 두 눈을 치켜떴다.
“무림맹?”
“그리고 그들은 자네를 무림맹의 주인으로 취급할 테지.”
“저를 적으로 간주하겠네요.”
“녀석, 그럴 땐 말귀를 빨리도 알아듣는구나.”
“이제 어떡하죠?”
용하는 저도 모르게 장설을 흘깃 바라보았다. 장설은 못 본 척 국밥을 입안으로 욱여넣고 있었다.
“일단 장설 형님이 밥을 다 드시면, 바로 답을 드려야 하니, 대안이라도 좀 내주십시오.”
“지금 나더러 거짓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냐?”
“거짓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지금 판단하는 게 아니죠. 지금은 그냥 합리적인 거면 뭐든 통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형님 식사 마치면 나와 함께 말씀드려 보자꾸나.”